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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문명인이 되자는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분명 사회적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에티켓 운동' 및 '바른생활 운동'들과 동일한 수준의 순기능이다. 캠페인 목록에 열거된 것들은 대부분 동의할만하고 권장할만한 도덕적 행동이다. 이것마저 부정하면 더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다. 그냥 각자 가던 길 가면 된다. 아무튼 이 정도는 전제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질문 하나 던진다. 에티켓운동, 바른생활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얻기 위해 문명 대 미개라는 프레임을 동원해야 할 필연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일단, 문명 대 미개 프레임이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금의 캠페인에서 '문명'이라는 말을 선택하게 만든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생각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분석이 필요한 사회담론임을 가리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유행어는 "헬조선"이었다. 그리고 짝패처럼 헬조선에 붙어다니던 말이 있었다. 바로 "미개"다. 미개한 헬조선. 요컨대 헬조선이 헬인 이유는 미개해서다. 한국사회에서 "미개"라는 단어는 어느샌가 추하고 후진 어떤 존재(들)을 비난하기 위해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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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기표는 우리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병신"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그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 절대다수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일상적 비속어일 뿐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는 결단코 없다." 이 단어는 공론장에선 그래도 좀 자제되는 편이지만, 사적 대화나 웹 공간에서는 여전히 자주 쓰인다. 너무 일상화되어서 대체불가능한 기표로 보일 지경이다. 사람들은 '나는 내 눈 앞의 저 인간을 욕하는 것이지 장애인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아마 그 말은 진실일 게다. 그러나 장애인의 다수는 발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말을 듣고 보면서 상처입는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개별 발화상황의 맥락과 별개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문명과 미개라는 말은 복잡하고 풍부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지닌 개념이다. 그렇기에 모든 진보적이고 세련된 것들을 문명이란 항에 몰아넣고, 모든 추하고 후진 것들을 미개라는 항에 몰아넣는 일이 쉽게 용인될 수는 없다. 의도가 선하니 허용되어야 한다거나 순기능이 있으니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겠지만, 그런 태도들이 사회에 쌓여 가져올 해악은 좋은 의도나 순기능을 까마득히 넘어선다. 만약 우리가 주의해야할 개념의 목록표를 작성한다면, 문명과 미개라는 말은 최상단 어딘가에 위치해야 한다. 인류가 같은 인류에게 자행한 끔찍한 행위들이 대부분 "문명"의 이름으로 "미개"를 향해 저질러졌다. 유럽의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에게 저지른 폭력과 학살, 나치가 유태인, 슬라브족, 장애인,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쇼아(홀로코스트),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부역자들이 식민지 인민에게  저지른 숱한 폭압과 착취가 모두 문명 대 미개의 이분법을 통해 수행되었다. 

왜 문명과 미개라는 말은 잔혹한 폭력을 동원하려 했던 이들에게 그토록 선호되었을까. 그것이 죄의식을 경감해주기 때문이다. 동등하다고 여겨진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던 억압이나 린치가, 상호 우열을 가르는 순간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경우가 많다. '인종청소'와 '학살'이 벌어진 곳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인간존재의 우열을 가르는 담론이 선행했다. 이를테면 르완다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는 "투치족 벌레들"이라는 말이 방송이나 신문 등을 통해 공공연히 유포되었다. 일본 재특회는 중국인과 재일조선인을 향해 "미개하다"고 반복해 낙인찍어왔다.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은 인종주의자의 금과옥조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존재의 우열구분은 언제 어디서나 폭력으로 다가서는 지름길이었다.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은 식민주의의 언어이기도 하다. 먼 곳을 돌아볼 것도 없다. 우리에겐 이미 '민족개조론'이라는 '고전'이 있다. 1922년 춘원 이광수가 발표한 민족개조론은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이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드러난 텍스트다. 지금 유행하는 헬조선론 또는 국개론('국민이 개새끼다')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을 게다. 민족개조론에서 춘원은 조선민족의 쇠퇴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 같은 객관적/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타락된 민족성"에서 찾는다. 바꿔 말하면, 조선민족의 부흥을 위해선 미개한 민족성을 개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요건이 된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성과 계급성을 배제한 문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이 주장이 발표되자 거센 논란이 벌어졌다. 여러 진보적 독립운동가들은 조목조목 민족개조론의 논리를 논파하는 글을 발표했다. 제국주의 일본과 지주/자본가 연합이 농민과 노동자를 착취해 유지되는 식민지 조선의 물적 조건 등 객관적 모순을 민족개조론이 은폐하고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당대 농민/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에 위협을 느끼던 식민지 체제의 지배세력에게 민족개조론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정당화 논리였다. '거창하게 무슨 계급투쟁이고 민족해방이냐. 우리들 미개한 문화부터 선진화하자' 

문명-미개론은 특정시기 서구사회만이 문명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자의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문명사가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보다 많은 것을 혐오스럽다고 인지하는 사회가 보다 문명화된 사회라고 주장한다. 더럽고 불결한 것을 멀리하려하는 사회일수록 문명화된 사회라는 이런 인식은 그러나 고대 로마와 근세 유럽만 비교해도 오류임이 드러나고 만다. 로마 병사는 흐르는 물에 좌식 변기를 놓고 용변을 봤고 흐르는 물에 세척한 스펀지로 항문을 닦았다. 로마인들은 또한 요리에 사용하는 물과 세척이나 용변에 사용하는 물을 엄격히 구별해 사용했다. 반면 거의 근대에 이르기까지 하수처리시설을 제대로 만들지못한 유럽의 궁정인들은 똥과 오물이 곳곳에 흘러넘치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거주구역을 이동해야 했다. 위생이나 혐오와 관련해서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회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하다. 그릇을 세제로 씻은 다음 그 물에 다시 그릇을 헹구거나 몸을 한참 담갔던 물로 몸을 헹구는 영국인의 습속을 보면서, 이 문명국가를 처음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글자 그대로 기겁을 한다. 물과 비누로 용변 본 뒤처리를 하는 인도인이 보기에 화장지로 똥구멍을 쓱삭 닦고 마는 다수의 나라들은 무척 '미개'해보일 수도 있겠다.

문명화 혹은 자본주의화 과정은 사회진보의 축적 과정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문명화와 사회진보는 같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가 '그나마 이 정도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문명화 과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며, 읍소와 캠페인으로 얻어낸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건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문명의 결과가 아니라 진보의 결과다. 그런데 문명과 미개를 운운하는 많은 사람들은 서구사회가 이미 갖춘 에티켓과 매너, 소수자 배려가 어떤 치열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결과만 들이민다. '자, 봐라 너희들이 얼마나 후지고 서구사회가 얼마나 우월한지를.' 이런 인식에 경로는 없다. 오직 결과의 대조와 우열의 비교만 존재한다. 이런 인식만으로는, 나치당이 당대 유럽 최고의 '교양시민'들이 살던 문명국 독일에서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소위 '개저씨'가 개저씨인 이유는 '미개'해서, 문명화 과정을 못밟아서가 아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니까'라는 말을 조금 더 풀어서 쓰면, '그래도 제재받거나 불이익이 없으니까'라는 뜻이다. 개저씨짓을 해도 별다른 사회적 압력이 없는데 자신의 알량한 개저씨짓을 포기할 리 없다. 요컨대 '개저씨'는 매너나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과 권력의 문제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개저씨의 아들은 개저씨가 되고, 그 손자도 개저씨가 될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문명화 캠페인의 순기능은 발휘될 수 있다. "미개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은 심약한 개저씨 몇몇은 개과천선하기도 할 게다. 거기까지다. 

반면 문명과 미개라는 식민주의적 개념틀이 일상화되며 가져올 역기능은 작지 않다. 문명 대 미개 프레임은 인종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진보운동을 무력화하는 논리로 기능해왔다. 개저씨 같은 존재에게 사회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 반드시 문명과 미개 같은 프레임을 동원할 필연적 이유 따위는 없다. 고민해보면 다른 대안들이 있을 것이다. 부당하거나 부조리한 일에 대해 그것이 옳지 않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굳이 '너 미개하다'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 상대의 화를 돋우는 게 목적이면 모를까. 한편 그것이 구조적 모순일 경우, 캠페인이나 에티켓 운동 같은 것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 최선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가 있고, 사회운동이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것은 정작 따로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의 연쇄. 왜 우리는 어떤 '옳음'을 요청하면서 문명 대 미개 같은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동원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진보'가 아니라 '문명'을 요구하는가? 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 그리고 계급과 권력이라는 문제를 우회해 문명과 미개라는 잣대를 들이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또다른 갈래로 뻗어나가는 논의를 요구하기에 다음 기회로 미뤄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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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의 정체성 아노미? 손이상씨의 페이스북 글에 부쳐 file

  • 2016-04-22
  • 조회 수 1840

난 요즘 노동당이 하는 짓 열에 여덟, 아홉은 마음에 안든다(안간힘을 다해 점잖게 표현한 거다). 이에 대해 말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손이상씨의 글을 보면 내 고민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글이 진보정당의 맹점을 날카롭게 짚어주어서? 반대다. 아주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댓글들,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보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진보정당이 계속 망하는 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스스로의 무능과 분열이 첫째 이유고, 기성정당과 제도적 장벽이 둘째 이유고, 정당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서평] 음모론 완전정리: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file [5]

  • 2016-01-12
  • 조회 수 2424

* <황해문화> 2015년 봄호에 실린 글. 서평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음모론 완전정리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완전정리. 그렇게밖엔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담론체계이자 사회현상으로서 음모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음모론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 정도로 진지하고 철저하게 파고든 저술을 본 기억이 없다. 쉽다고 할 수만은 없는 내용임에도 개념의 명징한 사용과 정갈한 문장 덕에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가끔 등장하는 ‘깨알 같은’ 위트와 너스레도 맛을 더한다. 음모론이라는 말에는 이미 상...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을 버려야 하는 이유 file

  • 2016-01-07
  • 조회 수 6036

문명인이 되자는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분명 사회적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에티켓 운동' 및 '바른생활 운동'들과 동일한 수준의 순기능이다. 캠페인 목록에 열거된 것들은 대부분 동의할만하고 권장할만한 도덕적 행동이다. 이것마저 부정하면 더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다. 그냥 각자 가던 길 가면 된다. 아무튼 이 정도는 전제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질문 하나 던진다. 에티켓운동, 바른생활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얻기 위해 문명 대 미개라는 프레임을 동원해야 할 필연성이 있는가? 이 ...

'누구를 향한 표현의 자유인가'라는 질문 file

  •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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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자료들을 틈날 때마다 살펴보는 중이다. 알려졌다시피 불과 100일 동안 80만명~100만 명이 학살당한 인류 최악의 비극 중 하나다. 친절했던 선생님, 목사님, 신부님, 상점 주인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이웃집 소년소녀를 난도질해 죽이고 윤간한 다음 죽였다. 르완다 전체 인구의 최소 20퍼센트가 사망했다. 투치족이 희생자의 다수였지만 후투족 역시 많이 살해당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문맹률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였다.  재판과정에서 언론과 ...

유시민에 관한 짧은 잡감 file [9]

  • 2015-11-15
  • 조회 수 1768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151374 이런 유시민의 논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당선된 것이리라. 뉴라이트가 만든 "재인식"이 시장에서 졌으니 승복하란 유시민의 논리는 곧 "재인식"이 만약 시장에서 승리하면 인정해야 한단 논리다. 시장에서 성공한 삼성과 현대와 기타 재벌의 혹독한 착취와 악행을 우리는 용인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유시민은 그 마지노선을 진보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 난 결코, 결단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시사인 여성혐오 특집에 관한 잡감 file [14]

  • 2015-09-18
  • 조회 수 7530

Gary Becker(1930~2014) 시사인에 흥미로운 특집이 실렸다. 이번 여성혐오 기사도 그렇지만,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예전부터 읽어오면서 '일리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항상 아주 근원적인 부분에서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작년쯤 그 이유를 순간 깨닫고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간단히 적어두기로 한다. 천 기자가 사회나 정치를 설명하는 방식엔 매우 일관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방법론이자 하나의 관점인데, 큰 틀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다. 경제이론 내지 소비...

두 개의 '헬조선' 칼럼에 관한 짧은 메모 file

  • 2015-09-16
  • 조회 수 2157

헬조선 담론에 대한 두 개의 칼럼. 글쓴 두 분 모두 진보적 성향이고 나보다 연배가 한참 위인 분들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152112085&code=990100 http://www.hankookilbo.com/v/72d598f843d54cb2833ccb58ea0a7328 결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헬조선 담론이 "폭발(이동연)"이나 "혁명"(이재현)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담론은 청년들의 것이므로) "폭발"과 "혁명"으로 전화해야 하지 않나, 하는 당위적 기대감이다. 내 관점은...

[한숨] 한국노총이 열어제낀 진짜 지옥문 file

  • 2015-09-14
  • 조회 수 4647

어제 한국노총이 들러리를 선 일반해고/취업규칙 "합의"로, 여러 정권에 걸쳐 참으로 집요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노동계급 파괴공작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본-국가 결속체는 저항할 힘이 없는 노동자들의 손발부터 잘라내 뜯어먹었다. 금융위기 이후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장년층 비정규직 노동자, 2009년 대졸초임삭감으로 생애임금이 뭉텅 잘려나간 대졸청년들은 조직 노동자들과 더이상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에 내몰렸다.  조직 노동자들은 "철밥통" 을 넘어 어느새 "비정규...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하] file [8]

  • 2015-09-08
  • 조회 수 3115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하] <경향신문> ‘헬조선’ 커버스토리에 부쳐 ‘왜 그 단어인가’라는 질문 경천동지할 새로운 현상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결과물이 산출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진부하고 낡은 소재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혹은 은폐되었던 사회적 의미를 건져냈을 때 그렇습니다. 이것은 곧 담론분석의 마지막 단계이자 핵심이라 할 분석적 재구성이 잘 수행되었단 뜻입니다. 분석적 재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하필 그 단어인가?’입니다. 의미망 분석 툴을 돌린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질문도 아마 이것...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상] file

  • 2015-09-08
  • 조회 수 4783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상] <경향신문> ‘헬조선’ 커버스토리에 부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의 ‘헬조선’ 기획은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저는 이번 기사와 같은 웹 담론분석에 관심도 많고 기본적으로 무척 우호적인 편이예요. 제 자신이 웹 담론에 관한 논의를 예전부터 해오기도 했구요(몇 해 전 반이주노동자 온라인 커뮤니티의 극우 담론을 분석한 글을 공저로 출간한 적 있습니다. <우파의 불만>이라는 제목입니다).  기사에서 인용된 ‘의미망 분석’에도 최근 들어 관심이 커졌습니다. 2014년 11월경 어느 모임에서 일베를 주제로 ...

자전거 열풍 시대의 '어떤 인프라' file [5]

  • 2015-05-12
  • 조회 수 535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그리고 좋은 취미로서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체로 한국인들은 물리적 인프라에 한정해서 열을 내며 성토한다. 물론 자전거도로 한가운데 가로수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든가하는 황당한 사례들이 많은 게 사실이고 개선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하드웨어만 보자면 서울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자전거 타기에 꽤 좋은 도시다. 부산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하게 좋다. 자전거도로의 숫자와 총연장, 노면의 질, 표지판, 한강 자전거도로 진입의 편의성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고, 최근 5년간 정말 '눈 ...

'일베기자'관련 위근우 기자의 비판에 대한 재비판 [3]

  • 2015-04-14
  • 조회 수 1949

<아이즈>에 한국방송 '일베 기자' 사건 관련해 글이 올라왔는데 제가 <파벨라>에 쓴 글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어서 간단히 재비판해보았습니다. 짤방은 없습니다. 죄송.. 일베 인베이젼│① 우리 밖의 일베와 실전에서 싸우는 법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5041219387258030 1) "가령 박권일은 미래의 사상검증의 피해자를 우려하며 일베 기자를 배제하는 것에 신중하게 접근하길 제언하지만, 정작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상검증을 정당화했던 건 바로 일베 기자가 보여준 것과 같은 혐오와 차별의 정당화였다. 그걸 막...

세월호 불황론과 불순한 유가족론 file

  • 2015-04-09
  • 조회 수 1245

참사가 일어난지 100일 남짓한 시기로 기억한다.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날로 거세지자 종편과 극우신문들은 입이라도 맞춘듯 정권 방어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제 이슈를 가지고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다. 세월호 때문에 국가경제가 발목 잡혀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세월호 불황론’을 전면에 내걸었다. ‘세월호 딛고 부강한 나라로’ 특집 기사는 침체된 내수시장의 원흉이 세월호 참사인양 몰아갔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지만 내...

'일베기자' 관련 메모: 일베스럽지 않게 일베와 싸워야할 의무 file [37]

  • 2015-04-02
  • 조회 수 3454

KBS '일베기자' 관련해 지금 웹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보면 아직 팩트들이 완전히 정리되지도 못한 상태다. 애초 가장 문제가 되었던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린 생리대 관련 글은 최초보도를 포함 수많은 기사내용과 달리, 해당 기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거기 접근하려면 사번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사번이 없었을 것이므로). 반면 일베에 올린 각종 차별/혐오발언들은 해당 기자가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일베의 그 글들은 입사하기 전 소위 '언론고시생'일 때 쓴 것들이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후각사회, 그리고 후각사회적 현상으로서 '푸드 포르노' file [2]

  • 2015-04-01
  • 조회 수 878

[야! 한국사회] 후각사회 / 박권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4606.html 여름이 가을로 바뀔 무렵 불어오는 바람 냄새,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준 시래기 된장국 냄새, 아버지의 품에서 나던 희미한 파이프 담배의 향, 연인의 살결이 풍기는 달콤한 내음…. 나의 내밀한 냄새 목록에 영원히 각인된 것들의 일부다. 물론 저건 ‘좋은 냄새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끔찍하게 싫어하는 냄새들의 목록도 존재한다. 아무튼 목록에 오른 것과 같은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특정한 감정상황 속으로 빠져든다. 논리와 분석 따...

아시아적 가치, 싱가포르 판타지, 성공적? -리콴유 사망에 부쳐 file [4]

  • 2015-03-25
  • 조회 수 658

싱가포르를 31년 동안 통치했던 독재자 리콴유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지상파와 종편은 온통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해외조문까지 떠난다고 한다. 생전에 ‘박정희의 빅팬’이었다는 리콴유에게 보이는 그 정성과 열의의 십분의 일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역시 씁쓸히 고개를 젓고 만다. 싱가포르가 과연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차치하자. 리콴유는 자기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한국 우파와 상당수 중도층(그러니까 절대다수 국민들)에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