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난 요즘 노동당이 하는 짓 열에 여덟, 아홉은 마음에 안든다(안간힘을 다해 점잖게 표현한 거다). 이에 대해 말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손이상씨의 글을 보면 내 고민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글이 진보정당의 맹점을 날카롭게 짚어주어서? 반대다. 아주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댓글들,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보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진보정당이 계속 망하는 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스스로의 무능과 분열이 첫째 이유고, 기성정당과 제도적 장벽이 둘째 이유고, 정당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가 셋째 이유다. 사실 셋째 이유는 그리 결정적이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의외로 심각하다. 견적이 안나오는 압도적 무지... 하긴 악의적으로 무지를 가장하는 경우도 있을 게다. 손이상 씨의 글은, '0.38% 지지율의 동호회 정당'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이들에게 마침맞은 핑계를 제공해준 것 같다. '저봐, 망하는 애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깐! 멍청해서 자기들 정체성도 몰라요.'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동당의 절정기에 그 당은 '일하는 사람'을 전부 묶어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을 대변하는 '잡탕정당'이었지만, 지금처럼 정체성을 가지고 조롱당하지는 않았다. 이후 그 당이 몰락한 원인 역시 정체성 아노미 따위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현대 정당은 신분, 계급, 정체성의 '동일성'으로 묶이는 조직이 아니다. 여기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모두 해당된다. 계급 또는 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서로 "대립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동질적인 개인들을 솎아내어 그들을 대리하고 대표하는 행위가 아니다. 사회적 "대립관계"는 같은 작업장 내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왜? 그들 역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대립만이 아니라 산업구조에서 발생하는 대립도 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해본다면, 어떤 노동자 집단의 존재 자체가 다른 노동자 집단의 존재를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불가능한가? 손이상 씨 논리대로라면 한국의 정당은 거의 노동조합의 갯수만큼 생겨야 한다. 아니, 대립관계를 궁극적으로 따져나가다보면 한국의 정당은 모두 1인정당이어야 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 각자도생의 사회이므로.
손이상 씨가 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개념을 명확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에 나오는 "대립관계"는 계급적대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정도의 의미다. 지방도시의 노동자들과 수도권 룸펜의 관계는 계급적대 관계가 아니라 그냥 '소 닭보듯 하는' 관계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자 사이에는 갈등과 '계급내 대립'이 실존한다. 이걸 부정하는 것은 기만이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을 실체적 층위에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쯤 초등학생도 안다. 소위 부르주아 정당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서로 "대립"하는 집단을 모두 대변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론 철저히 가진 자의 계급이익을 대변하지 않느냐고? 막상 들여다보면, 철두철미하게 부르주아의 계급이익에만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 민주당 정책 몇은 도시빈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손이상 씨는 '정당의 핵심지지기반'과 '정당의 소구범위'를 동일시 하고 있지만 사실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 어디까지 외연을 확장해갈 것인가는 결국 그 정당의 선택이다. 외연을 지나치게 확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문제시될 수 있겠지만("국민정당" 또는 보나파르티즘) 노동 계급 전체의 이해를 바라보는 정당이라면, 지방도시 노동자를 핵심 지지기반으로 삼는다해서 알바 노동자나 룸펜을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대노동의 대립을 모르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다. 자본대노동의 대립을 우선시하는 까닭이다. 당위로서도 그렇고, 의회내 세력화를 위해서도 당연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