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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문명인이 되자는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분명 사회적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에티켓 운동' 및 '바른생활 운동'들과 동일한 수준의 순기능이다. 캠페인 목록에 열거된 것들은 대부분 동의할만하고 권장할만한 도덕적 행동이다. 이것마저 부정하면 더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다. 그냥 각자 가던 길 가면 된다. 아무튼 이 정도는 전제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질문 하나 던진다. 에티켓운동, 바른생활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얻기 위해 문명 대 미개라는 프레임을 동원해야 할 필연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일단, 문명 대 미개 프레임이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금의 캠페인에서 '문명'이라는 말을 선택하게 만든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생각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분석이 필요한 사회담론임을 가리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유행어는 "헬조선"이었다. 그리고 짝패처럼 헬조선에 붙어다니던 말이 있었다. 바로 "미개"다. 미개한 헬조선. 요컨대 헬조선이 헬인 이유는 미개해서다. 한국사회에서 "미개"라는 단어는 어느샌가 추하고 후진 어떤 존재(들)을 비난하기 위해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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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기표는 우리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병신"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그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 절대다수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일상적 비속어일 뿐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는 결단코 없다." 이 단어는 공론장에선 그래도 좀 자제되는 편이지만, 사적 대화나 웹 공간에서는 여전히 자주 쓰인다. 너무 일상화되어서 대체불가능한 기표로 보일 지경이다. 사람들은 '나는 내 눈 앞의 저 인간을 욕하는 것이지 장애인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아마 그 말은 진실일 게다. 그러나 장애인의 다수는 발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말을 듣고 보면서 상처입는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개별 발화상황의 맥락과 별개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문명과 미개라는 말은 복잡하고 풍부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지닌 개념이다. 그렇기에 모든 진보적이고 세련된 것들을 문명이란 항에 몰아넣고, 모든 추하고 후진 것들을 미개라는 항에 몰아넣는 일이 쉽게 용인될 수는 없다. 의도가 선하니 허용되어야 한다거나 순기능이 있으니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겠지만, 그런 태도들이 사회에 쌓여 가져올 해악은 좋은 의도나 순기능을 까마득히 넘어선다. 만약 우리가 주의해야할 개념의 목록표를 작성한다면, 문명과 미개라는 말은 최상단 어딘가에 위치해야 한다. 인류가 같은 인류에게 자행한 끔찍한 행위들이 대부분 "문명"의 이름으로 "미개"를 향해 저질러졌다. 유럽의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에게 저지른 폭력과 학살, 나치가 유태인, 슬라브족, 장애인,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쇼아(홀로코스트),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부역자들이 식민지 인민에게  저지른 숱한 폭압과 착취가 모두 문명 대 미개의 이분법을 통해 수행되었다. 

왜 문명과 미개라는 말은 잔혹한 폭력을 동원하려 했던 이들에게 그토록 선호되었을까. 그것이 죄의식을 경감해주기 때문이다. 동등하다고 여겨진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던 억압이나 린치가, 상호 우열을 가르는 순간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경우가 많다. '인종청소'와 '학살'이 벌어진 곳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인간존재의 우열을 가르는 담론이 선행했다. 이를테면 르완다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는 "투치족 벌레들"이라는 말이 방송이나 신문 등을 통해 공공연히 유포되었다. 일본 재특회는 중국인과 재일조선인을 향해 "미개하다"고 반복해 낙인찍어왔다.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은 인종주의자의 금과옥조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존재의 우열구분은 언제 어디서나 폭력으로 다가서는 지름길이었다.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은 식민주의의 언어이기도 하다. 먼 곳을 돌아볼 것도 없다. 우리에겐 이미 '민족개조론'이라는 '고전'이 있다. 1922년 춘원 이광수가 발표한 민족개조론은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이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드러난 텍스트다. 지금 유행하는 헬조선론 또는 국개론('국민이 개새끼다')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을 게다. 민족개조론에서 춘원은 조선민족의 쇠퇴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 같은 객관적/외부적 조건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타락된 민족성"에서 찾는다. 바꿔 말하면, 조선민족의 부흥을 위해선 미개한 민족성을 개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요건이 된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성과 계급성을 배제한 문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이 주장이 발표되자 거센 논란이 벌어졌다. 여러 진보적 독립운동가들은 조목조목 민족개조론의 논리를 논파하는 글을 발표했다. 제국주의 일본과 지주/자본가 연합이 농민과 노동자를 착취해 유지되는 식민지 조선의 물적 조건 등 객관적 모순을 민족개조론이 은폐하고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당대 농민/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에 위협을 느끼던 식민지 체제의 지배세력에게 민족개조론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정당화 논리였다. '거창하게 무슨 계급투쟁이고 민족해방이냐. 우리들 미개한 문화부터 선진화하자' 

문명-미개론은 특정시기 서구사회만이 문명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자의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문명사가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보다 많은 것을 혐오스럽다고 인지하는 사회가 보다 문명화된 사회라고 주장한다. 더럽고 불결한 것을 멀리하려하는 사회일수록 문명화된 사회라는 이런 인식은 그러나 고대 로마와 근세 유럽만 비교해도 오류임이 드러나고 만다. 로마 병사는 흐르는 물에 좌식 변기를 놓고 용변을 봤고 흐르는 물에 세척한 스펀지로 항문을 닦았다. 로마인들은 또한 요리에 사용하는 물과 세척이나 용변에 사용하는 물을 엄격히 구별해 사용했다. 반면 거의 근대에 이르기까지 하수처리시설을 제대로 만들지못한 유럽의 궁정인들은 똥과 오물이 곳곳에 흘러넘치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거주구역을 이동해야 했다. 위생이나 혐오와 관련해서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회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하다. 그릇을 세제로 씻은 다음 그 물에 다시 그릇을 헹구거나 몸을 한참 담갔던 물로 몸을 헹구는 영국인의 습속을 보면서, 이 문명국가를 처음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글자 그대로 기겁을 한다. 물과 비누로 용변 본 뒤처리를 하는 인도인이 보기에 화장지로 똥구멍을 쓱삭 닦고 마는 다수의 나라들은 무척 '미개'해보일 수도 있겠다.

문명화 혹은 자본주의화 과정은 사회진보의 축적 과정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문명화와 사회진보는 같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가 '그나마 이 정도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문명화 과정에 의해 자동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며, 읍소와 캠페인으로 얻어낸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건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문명의 결과가 아니라 진보의 결과다. 그런데 문명과 미개를 운운하는 많은 사람들은 서구사회가 이미 갖춘 에티켓과 매너, 소수자 배려가 어떤 치열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결과만 들이민다. '자, 봐라 너희들이 얼마나 후지고 서구사회가 얼마나 우월한지를.' 이런 인식에 경로는 없다. 오직 결과의 대조와 우열의 비교만 존재한다. 이런 인식만으로는, 나치당이 당대 유럽 최고의 '교양시민'들이 살던 문명국 독일에서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소위 '개저씨'가 개저씨인 이유는 '미개'해서, 문명화 과정을 못밟아서가 아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되니까'라는 말을 조금 더 풀어서 쓰면, '그래도 제재받거나 불이익이 없으니까'라는 뜻이다. 개저씨짓을 해도 별다른 사회적 압력이 없는데 자신의 알량한 개저씨짓을 포기할 리 없다. 요컨대 '개저씨'는 매너나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과 권력의 문제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개저씨의 아들은 개저씨가 되고, 그 손자도 개저씨가 될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문명화 캠페인의 순기능은 발휘될 수 있다. "미개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은 심약한 개저씨 몇몇은 개과천선하기도 할 게다. 거기까지다. 

반면 문명과 미개라는 식민주의적 개념틀이 일상화되며 가져올 역기능은 작지 않다. 문명 대 미개 프레임은 인종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진보운동을 무력화하는 논리로 기능해왔다. 개저씨 같은 존재에게 사회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 반드시 문명과 미개 같은 프레임을 동원할 필연적 이유 따위는 없다. 고민해보면 다른 대안들이 있을 것이다. 부당하거나 부조리한 일에 대해 그것이 옳지 않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굳이 '너 미개하다'라고 말할 이유는 없다. 상대의 화를 돋우는 게 목적이면 모를까. 한편 그것이 구조적 모순일 경우, 캠페인이나 에티켓 운동 같은 것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함께 싸워나가는 것이 최선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가 있고, 사회운동이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것은 정작 따로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의 연쇄. 왜 우리는 어떤 '옳음'을 요청하면서 문명 대 미개 같은 프레임을 반복적으로 동원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진보'가 아니라 '문명'을 요구하는가? 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 그리고 계급과 권력이라는 문제를 우회해 문명과 미개라는 잣대를 들이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또다른 갈래로 뻗어나가는 논의를 요구하기에 다음 기회로 미뤄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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