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Gary Becker(1930~2014)
시사인에 흥미로운 특집이 실렸다. 이번 여성혐오 기사도 그렇지만,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예전부터 읽어오면서 '일리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항상 아주 근원적인 부분에서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작년쯤 그 이유를 순간 깨닫고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간단히 적어두기로 한다.
천 기자가 사회나 정치를 설명하는 방식엔 매우 일관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방법론이자 하나의 관점인데, 큰 틀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다. 경제이론 내지 소비자 선택으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설명하고 이번 경우처럼 게리 베커의 이론 등을 활용해 여성혐오를 해석한다. 게리 베커는 알려졌다시피 인적자본 이론의 선구자이자 악명(?)높은 경제환원주의자다. 주류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이념적으론 오른쪽 끝 어딘가에 있다고 보면 된다. 비합리적이거나 경제와 무관해 보이는 행동들에 실은 효용극대화 전략이 있음을 논증하는 데 있어 게리 베커만큼 탁월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가 설명하는 세계는 인간의 효용극대화 행위들로 매끈하게 재단되어 있다. 게리 베커나 앤서니 다운스의 책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합리적 선택 이론의 설득력은 실로 강력해서 사람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킨다.
나는 경제학적 소양이 다수 시민에게 꼭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지만, 세상만사를 효용 극대화 내지 합리적 선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굳이 행동경제학이라는 최근의 유행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런 시각이 실제 인간의 선택과 사회현상을 실재에 가깝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밝혀졌다. 인간행동은 다양한 층위에서 결정된다. 경제적 효용, 종교적 신념, (역사, 문화적) 경로의존성, 인지적 편향, 우연성...등등등.
다시 이번 시사인 기사 내용을 잠깐 이야기해보련다. 이번 시사인 여성혐오 기사는 여러 개의 아티클이 있지만 핵심적인 테제는 다음과 같다. '여성혐오는 연애시장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남성의 가격흥정 전략이다.' 그러나 이를 논증하는 방식은 비논리적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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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스스로 선택해서 이런 전략을 고른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이런 전략적 옵션이 진화 과정에서 유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심리에 내장되어 있고, 특정 상황이 되었을 때 무의식중에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주장이다.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대란,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 배우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이다. 마치 중고차를 고르며 이리저리 트집을 잡고 사고 기록을 따져 묻듯, 학대는 배우자 여성의 가치를 줄여 잡아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다. 이 전략은 분명 자기파괴적이고 위험하지만,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은 어차피 떠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우자보다 뒤처진 남성에게는 이판사판으로 해볼 만한 도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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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락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남성의 선택을 "선택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발동하는 스위치"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단락에서 남성의 선택(즉 학대)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읽어봐도 '무의식적 스위치 작동'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자신과 배우자의 '시장 지위'를 가늠해본 다음 배우자를 두들겨패서 자긍심을 낮게 만들어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 무의식의 작용이라면,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말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남성의 선택은 무의식인가, 의식인가? 어느쪽이 맞는 설명인가? 더 위험한 것은 남성의 여성혐오나 학대 등에 대해 '남성은 그렇게 프로그램된 생물'이라고 설명하는 방식 자체에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사회적/심리적 요소를 자연화함으로써, 실제론 다른 데서 연원한 문제들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여혐 기획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들은 저 위협적인 무리들이 실은 찌질이, 쫄보, 루저들이라는 것에 대해 그럴듯한 서사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여성혐오가 데이트시장에서 밀려난 루저들의 '흥정전략'일 수 있고, 일베가 취직 못한 루저들의 집단적 원한의 표출일 수 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춰버리면 곤란하다. 이것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개인에게 돌리는 형태, 즉 울리히 벡이 말했던 '전기적(傳記的) 해법'으로 귀결하기 쉽다. '어차피 10명 중 1명은 짝이 없다잖니. 여혐질 할 시간에 매력자본을 축적하라구!'
시사인 기사에서는 집단적 선택, 개인적 선택, 의식적 선택, 무의식적 선택(무의식이라는 말은 굉장히 까다로운 단어다), 진화적 선택까지 층위가 제대로 구별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데 그 모든 선택들이 '열세종의 전략'이라는 '하나의 서사'로 빨려들어가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럽다. 익명-다수의 담론장에서의 김치녀 혐오서사와, 사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 학대를 동일한 층위에서 다루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도 의문이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성비불균형이 범죄율을 높인다는 사실, 성비불균형이 범죄 중에서 여성학대범죄를 늘린다는 사실, 성비불균형이 담론으로서 여성혐오를 확산시킨다는 사실은 온전히 같은 이야기가 아니며 각각의 사실 및 관련성은 따로 증명되어야 옳다.
댓글 '14'
abohor
(http://pages.uoregon.edu/harbaugh/Readings/GBE/Risk/Kahneman%201979%20E,%20Prospect%20Theory.pdf)
If you cannot understand what I am talking about, pleas just read Paul Krugman(http://web.mit.edu/krugman/www/evolute.html).
???
출처가 다른 이론 셋이 섞이면 논리적 비약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꼬마
진화이론에서 이론을 설명할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하도록 해당 종이나 인간이 주체적으로 전략을 선택한 것처럼 쓰는 작가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개체가 그런 전략분석을 두뇌속에서 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전략적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해당행동이 진화하도록 압력이 작동된다는 의미로 국한해서 보시면 됩니다. 남자놈들 대가리 속에서 무의식 프로세서가 그런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기사는 안봐서 해결책 측면의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화론이나 진화심리학이 제시하는 이야기는 그런 행동을 하도록 진화될 수 있다 정도이지요. 다른 남자를 살해하고 그의 여자를 약탈해오도록 진화한 남성들도 국가가 법률을 만들어 금지하고 치안기구를 만들어 관리하여 살인률을 떨어트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수렵채집사회의 성인 남성 중 살해되는 비율 40%에 비교하면 거의 0%에 근접하는 현대 사회의 남성 살인률)
진화심리학은 인간은 내버려 두면 계속 저렇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걸 용납할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 처벌하든, 인센티브를 제공하든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별도의 접근은 진화심리학이 아닌 사회학이나 법학 측면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Gary Becker(1930~2104)
이거 좀 수정요.
지금 2015년이거든요.
2014년에 죽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