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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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hellgate.jpg](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137/904/060/c5954729ea425f317ce8562dc8d9db8a.jpg)
어제 한국노총이 들러리를 선 일반해고/취업규칙 "합의"로, 여러 정권에 걸쳐 참으로 집요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노동계급 파괴공작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본-국가 결속체는 저항할 힘이 없는 노동자들의 손발부터 잘라내 뜯어먹었다. 금융위기 이후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장년층 비정규직 노동자, 2009년 대졸초임삭감으로 생애임금이 뭉텅 잘려나간 대졸청년들은 조직 노동자들과 더이상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에 내몰렸다.
조직 노동자들은 "철밥통" 을 넘어 어느새 "비정규직을 만들어낸 온상"으로 규정되었다. 물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조직 노동자 상당수가 각자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해온 건 사실이다. 만약 조직 노동자들이 불안정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목숨 걸고 싸웠다면 어찌되었을까. 부질없는 가정이리라. 조직 노동자들은 2009년 대졸초임삭감 같은 청년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일방적 강탈을 보면서도 발벗고 나서지 않았다. 그나마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움츠러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더 고립됐다. 조직 노동자가 미조직 노동자에게 보여준 실망스런 태도와 별개로, 많은 통계와 연구가 보여주듯 조직 노동자 몫을 날린다고 미조직 노동자 형편이 나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숫자들은 노동자 내부의 격차보다 노동과 자본의 격차가 훨씬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1996년부터 2012년의 기간 동안 자본소득과 계층별 노동소득의 비중을 살펴보면, 임금소득 상위 10% 집단의 비중은 16.0%에서 20.1%로 4.1%p 증가했고 자본소득의 비중은 더 크게 증가했다(20.2%에서 32.5%로 12.3%p 증가). 노동시장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긴 했지만 자본과 노동간 소득 불균형은 훨씬 더 확대되었다는 의미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한국노동연구원, '노동소득분배율과 경제적 불평등(2014)'). 여기에 더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와 하도급 등 불공정 관행이다. 노동과 자본의 격차, 재벌과 중소기업의 격차. 이 두 가지가 바로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암흑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성찰의 움직임들이 영미권 정치지형까지 뒤흔들고 있지만 한국에선 노동운동의 조종이 울려퍼진다. '노동개혁'은 노사정위 같은 협소한 테이블이나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 모두의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공적 사안이며, 정치적 의제다. 그러나 무늬만 남은 '야당', 식물 상태의 진보정치는 정치적 공간을 열지 못하고 있다. 지옥이 지옥인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 고통에 '끝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해고 요건/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건과 기간제 기간확대, 파견업종 확대 등의 비정규 법안마저 정부안대로 통과되고 나면 어찌될까. 단언컨대, 우리는 지금까지 겪은 "헬조선"이 그나마 목가적인 풍경이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