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글 수 36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일본사회의 비민주성과 여성혐오 문화에 대해 사석에서 가끔 이야기한다. 대부분 한국 사건을 이야기하던 맥락에서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에 비해 더 민주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반대로 일본이 더 민주적이라 할 수 있을까?
과거 형식적 민주주의 조차 없던 군부독재 시기의 한국과 당시 일본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일본이 더 민주적인 사회라고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었겠으나, 2020년 현재시점에서 그것을 명백히 결론짓기란 어렵다. 아마 많은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한국이 더 선진국"이라 말하겠지만, 그리고 왜 그리 말하는지도 알 것 같지만("위대한 촛불시위!"), 그러한 우열을 엄밀히 입증하는 것은 문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할 일도 아니다.
윤미향 씨가 국회의원 후보 시절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민주화"를 언급해서 논란이 됐다. 이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윤미향 씨가 타국의 유력한(당선이 거의 확실한) 국회의원 후보였다는 것이다. 시민운동가로서 발언이라면 몰라도 제도권 정치인으로서 발언이라면 그 자체로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말해 인민의 자기지배 원칙이고 현재 국제법이나 관행은 그 지배력의 범위를 대체로 국가 및 연방으로 한정한다. 예외적으로 세계주의가 통용되는 것은 인간 개인이 국가나 권력으로부터 그 존엄을 심각하게 침해당해 긴급한 조력이 필요한 경우다.
그러나 우리가 타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더 본질적인 이유는 외교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실무적인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국가의 민주주의나 민주화를 말할 때 조심스러워야하는 이유는, 어떤 국가의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그곳을 자기 삶의 터로 삼아 살아가는 시민 당사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느 자민당 의원이 "한국이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어떨까? 많은 한국인들이 불같이 화를 내거나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윤미향 의원 후보가 일본의 민주화 운운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의 정치인은 자국의 민주주의를 증진할 책무를 가지지만,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책임을 가지지는 않는다. 당연히 그럴 권리도 없다.
물론 정치인 윤미향은 전시 성노예('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측에 얼마든지 문제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자국민이 구체적 고통을 겪은 역사적 사건이고 인간존엄이 결정적으로 침해당한 보편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슈가 아니라 어떤 나라의 일반적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순간 '선'을 넘는 것이다. 윤미향이 있는 21대 국회가 벌써부터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