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No_femicidio.jpg



1. 언젠가 파벨라에서 간략히 비판한 적이 있는 시사인 기사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을 우연히 오늘 다시 읽었다. 진화심리학, 게리 베커류 경제선택 환원주의, 남녀성비 등으로 젠더 적대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천만한지 새삼 깨닫는다. 본래 명쾌해 보이는 설명일수록 구멍이 많은 법이다. ( 참고: http://fabella.kr/xe/blog2/62184 )

2. 여성은 가장 눈에 잘 띠는 약자이기에 가장 많이 학대받는다. 한편으로 여성은 노인과 유아처럼 철저히 무력한 약자는 아니라는 점 때문에, 즉 가해자의 죄의식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기에 가장 많이 학대받는다. 내가 고통스럽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상대가 그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자를 괴롭힐 수 있는 동물이 인간-수컷이다. 그 학대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드는 것 또한 인간-수컷이다. 윤리, 시민의식, 교육, 문화, 법 등등의 '사회적 압력'이 느슨해지면 폭력은 증가할 것이다. 이는 인간은 본성상 서로에게 늑대라는 식의 홉스적 세계관을 말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변한다는 이야기다.

3. 여성학대, 즉 여성대상 폭력은 모두 여성혐오인가? 어떤 경우 그렇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여성혐오(일테면 김치녀 혐오 같은)가 사후 정당화 기제로 동원되기도 한다. 최근 온라인에서 번성한 여혐 논리는 여성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폭력과 일탈적 유희를 사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기획혐오'이자 '전략적 혐오'다. 내가 이들의 행태를 전통적인 여성혐오증(misogyny)와 구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대상 폭력의 '동기'를 추적해서 완벽히 규명하려는 시도는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동기는 발견되기보다 끝없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혐오'라는 동기보다 '폭력'이라는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혐오범죄법 제정 이전에 먼저, 압도적으로 여성에게 편중하는 이 폭력의 연쇄부터 확실히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와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닥치고 이 폭력을 멈추라는 것. 이 단순한 메시지가 사회를 뒤덮는 것만으로도 폭력은 줄어들 수 있다. 가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선제적으로 피해를 차단/경감하는 게 먼저다.

4. 여성대상 폭력의 본질-가부장주의와 남근주의-은 변하지 않았다.여성이 여전히 폭력의 가장 큰 피해집단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정당화 이데올로기와 서사양식은 변해왔다. 그리고 맞서 싸운 세대도 변해왔다. 혹자는 2015년을 '페미니즘 원년'이라 부르지만 천만에, 페미니즘은 그 이전에도 치열하게 존재했고 절박하게 싸웠다. 담배 피우는 여자 귀싸대기를 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던 시절, 그 90년대 초중반에 글과 말로 만난 페미니스트들, 눈부시게 탁월했던 그녀들에게 나는 여전히 존경심과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 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여전히 이 상황인 게 아니라 그들이 싸워서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고, 그들이 싸웠음에도 아직 이 정도인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아시아적 가치, 싱가포르 판타지, 성공적? -리콴유 사망에 부쳐 file [4]

  • 2015-03-25
  • 조회 수 660

싱가포르를 31년 동안 통치했던 독재자 리콴유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지상파와 종편은 온통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해외조문까지 떠난다고 한다. 생전에 ‘박정희의 빅팬’이었다는 리콴유에게 보이는 그 정성과 열의의 십분의 일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지만 역시 씁쓸히 고개를 젓고 만다. 싱가포르가 과연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차치하자. 리콴유는 자기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한국 우파와 상당수 중도층(그러니까 절대다수 국민들)에게도, ...

후각사회, 그리고 후각사회적 현상으로서 '푸드 포르노' file [2]

  • 2015-04-01
  • 조회 수 883

[야! 한국사회] 후각사회 / 박권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4606.html 여름이 가을로 바뀔 무렵 불어오는 바람 냄새,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준 시래기 된장국 냄새, 아버지의 품에서 나던 희미한 파이프 담배의 향, 연인의 살결이 풍기는 달콤한 내음…. 나의 내밀한 냄새 목록에 영원히 각인된 것들의 일부다. 물론 저건 ‘좋은 냄새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끔찍하게 싫어하는 냄새들의 목록도 존재한다. 아무튼 목록에 오른 것과 같은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특정한 감정상황 속으로 빠져든다. 논리와 분석 따...

'일베기자' 관련 메모: 일베스럽지 않게 일베와 싸워야할 의무 file [37]

  • 2015-04-02
  • 조회 수 3461

KBS '일베기자' 관련해 지금 웹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보면 아직 팩트들이 완전히 정리되지도 못한 상태다. 애초 가장 문제가 되었던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린 생리대 관련 글은 최초보도를 포함 수많은 기사내용과 달리, 해당 기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거기 접근하려면 사번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사번이 없었을 것이므로). 반면 일베에 올린 각종 차별/혐오발언들은 해당 기자가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일베의 그 글들은 입사하기 전 소위 '언론고시생'일 때 쓴 것들이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세월호 불황론과 불순한 유가족론 file

  • 2015-04-09
  • 조회 수 1246

참사가 일어난지 100일 남짓한 시기로 기억한다.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날로 거세지자 종편과 극우신문들은 입이라도 맞춘듯 정권 방어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제 이슈를 가지고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다. 세월호 때문에 국가경제가 발목 잡혀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세월호 불황론’을 전면에 내걸었다. ‘세월호 딛고 부강한 나라로’ 특집 기사는 침체된 내수시장의 원흉이 세월호 참사인양 몰아갔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지만 내...

'일베기자'관련 위근우 기자의 비판에 대한 재비판 [3]

  • 2015-04-14
  • 조회 수 1951

<아이즈>에 한국방송 '일베 기자' 사건 관련해 글이 올라왔는데 제가 <파벨라>에 쓴 글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어서 간단히 재비판해보았습니다. 짤방은 없습니다. 죄송.. 일베 인베이젼│① 우리 밖의 일베와 실전에서 싸우는 법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5041219387258030 1) "가령 박권일은 미래의 사상검증의 피해자를 우려하며 일베 기자를 배제하는 것에 신중하게 접근하길 제언하지만, 정작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상검증을 정당화했던 건 바로 일베 기자가 보여준 것과 같은 혐오와 차별의 정당화였다. 그걸 막...

자전거 열풍 시대의 '어떤 인프라' file [5]

  • 2015-05-12
  • 조회 수 537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그리고 좋은 취미로서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체로 한국인들은 물리적 인프라에 한정해서 열을 내며 성토한다. 물론 자전거도로 한가운데 가로수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든가하는 황당한 사례들이 많은 게 사실이고 개선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하드웨어만 보자면 서울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자전거 타기에 꽤 좋은 도시다. 부산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하게 좋다. 자전거도로의 숫자와 총연장, 노면의 질, 표지판, 한강 자전거도로 진입의 편의성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고, 최근 5년간 정말 '눈 ...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상] file

  • 2015-09-08
  • 조회 수 4787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상] <경향신문> ‘헬조선’ 커버스토리에 부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의 ‘헬조선’ 기획은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저는 이번 기사와 같은 웹 담론분석에 관심도 많고 기본적으로 무척 우호적인 편이예요. 제 자신이 웹 담론에 관한 논의를 예전부터 해오기도 했구요(몇 해 전 반이주노동자 온라인 커뮤니티의 극우 담론을 분석한 글을 공저로 출간한 적 있습니다. <우파의 불만>이라는 제목입니다).  기사에서 인용된 ‘의미망 분석’에도 최근 들어 관심이 커졌습니다. 2014년 11월경 어느 모임에서 일베를 주제로 ...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하] file [8]

  • 2015-09-08
  • 조회 수 3118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하] <경향신문> ‘헬조선’ 커버스토리에 부쳐 ‘왜 그 단어인가’라는 질문 경천동지할 새로운 현상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결과물이 산출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진부하고 낡은 소재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혹은 은폐되었던 사회적 의미를 건져냈을 때 그렇습니다. 이것은 곧 담론분석의 마지막 단계이자 핵심이라 할 분석적 재구성이 잘 수행되었단 뜻입니다. 분석적 재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하필 그 단어인가?’입니다. 의미망 분석 툴을 돌린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질문도 아마 이것...

[한숨] 한국노총이 열어제낀 진짜 지옥문 file

  • 2015-09-14
  • 조회 수 4651

어제 한국노총이 들러리를 선 일반해고/취업규칙 "합의"로, 여러 정권에 걸쳐 참으로 집요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노동계급 파괴공작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본-국가 결속체는 저항할 힘이 없는 노동자들의 손발부터 잘라내 뜯어먹었다. 금융위기 이후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장년층 비정규직 노동자, 2009년 대졸초임삭감으로 생애임금이 뭉텅 잘려나간 대졸청년들은 조직 노동자들과 더이상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에 내몰렸다.  조직 노동자들은 "철밥통" 을 넘어 어느새 "비정규...

두 개의 '헬조선' 칼럼에 관한 짧은 메모 file

  • 2015-09-16
  • 조회 수 2160

헬조선 담론에 대한 두 개의 칼럼. 글쓴 두 분 모두 진보적 성향이고 나보다 연배가 한참 위인 분들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152112085&code=990100 http://www.hankookilbo.com/v/72d598f843d54cb2833ccb58ea0a7328 결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헬조선 담론이 "폭발(이동연)"이나 "혁명"(이재현)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담론은 청년들의 것이므로) "폭발"과 "혁명"으로 전화해야 하지 않나, 하는 당위적 기대감이다. 내 관점은...

시사인 여성혐오 특집에 관한 잡감 file [14]

  • 2015-09-18
  • 조회 수 7542

Gary Becker(1930~2014) 시사인에 흥미로운 특집이 실렸다. 이번 여성혐오 기사도 그렇지만,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예전부터 읽어오면서 '일리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항상 아주 근원적인 부분에서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작년쯤 그 이유를 순간 깨닫고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간단히 적어두기로 한다. 천 기자가 사회나 정치를 설명하는 방식엔 매우 일관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방법론이자 하나의 관점인데, 큰 틀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다. 경제이론 내지 소비...

유시민에 관한 짧은 잡감 file [9]

  • 2015-11-15
  • 조회 수 1772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151374 이런 유시민의 논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당선된 것이리라. 뉴라이트가 만든 "재인식"이 시장에서 졌으니 승복하란 유시민의 논리는 곧 "재인식"이 만약 시장에서 승리하면 인정해야 한단 논리다. 시장에서 성공한 삼성과 현대와 기타 재벌의 혹독한 착취와 악행을 우리는 용인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유시민은 그 마지노선을 진보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 난 결코, 결단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누구를 향한 표현의 자유인가'라는 질문 file

  • 2015-12-23
  • 조회 수 2736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자료들을 틈날 때마다 살펴보는 중이다. 알려졌다시피 불과 100일 동안 80만명~100만 명이 학살당한 인류 최악의 비극 중 하나다. 친절했던 선생님, 목사님, 신부님, 상점 주인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이웃집 소년소녀를 난도질해 죽이고 윤간한 다음 죽였다. 르완다 전체 인구의 최소 20퍼센트가 사망했다. 투치족이 희생자의 다수였지만 후투족 역시 많이 살해당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문맹률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였다.  재판과정에서 언론과 ...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을 버려야 하는 이유 file

  • 2016-01-07
  • 조회 수 6042

문명인이 되자는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분명 사회적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에티켓 운동' 및 '바른생활 운동'들과 동일한 수준의 순기능이다. 캠페인 목록에 열거된 것들은 대부분 동의할만하고 권장할만한 도덕적 행동이다. 이것마저 부정하면 더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다. 그냥 각자 가던 길 가면 된다. 아무튼 이 정도는 전제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질문 하나 던진다. 에티켓운동, 바른생활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얻기 위해 문명 대 미개라는 프레임을 동원해야 할 필연성이 있는가? 이 ...

[서평] 음모론 완전정리: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file [5]

  • 2016-01-12
  • 조회 수 2433

* <황해문화> 2015년 봄호에 실린 글. 서평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음모론 완전정리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완전정리. 그렇게밖엔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담론체계이자 사회현상으로서 음모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음모론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 정도로 진지하고 철저하게 파고든 저술을 본 기억이 없다. 쉽다고 할 수만은 없는 내용임에도 개념의 명징한 사용과 정갈한 문장 덕에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가끔 등장하는 ‘깨알 같은’ 위트와 너스레도 맛을 더한다. 음모론이라는 말에는 이미 상...

진보정당의 정체성 아노미? 손이상씨의 페이스북 글에 부쳐 file

  • 2016-04-22
  • 조회 수 1845

난 요즘 노동당이 하는 짓 열에 여덟, 아홉은 마음에 안든다(안간힘을 다해 점잖게 표현한 거다). 이에 대해 말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손이상씨의 글을 보면 내 고민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글이 진보정당의 맹점을 날카롭게 짚어주어서? 반대다. 아주 기본적인 지점에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댓글들,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을 보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진보정당이 계속 망하는 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스스로의 무능과 분열이 첫째 이유고, 기성정당과 제도적 장벽이 둘째 이유고, 정당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재반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 file [1]

  • 2016-04-23
  • 조회 수 2455

0. "조롱"에 대해 "박권일 선생은 드물게도 내 글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낀 독자다" 글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꼈다고 쓴 기억은 없다. 나는 이렇게 썼다. "손이상 씨의 글은, '0.38% 지지율의 동호회 정당'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이들에게 마침맞은 핑계를 제공해준 것 같다." 조롱하고 싶은 사람에게 핑계를 제공해주는 것과 조롱하는 건 다른 행위다. 손이상 씨의 글을 정말 조롱이라 느꼈다면, 혹은 손이상 씨를 정치적 적대자라 여겼다면, 내 대응방식은 조금 더 혹독했을 게다. "호된 질책은 고맙지만"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당혹...

강남 살인사건에 관한 짧은 메모 file

  • 2016-05-21
  • 조회 수 2105

1. 언젠가 파벨라에서 간략히 비판한 적이 있는 시사인 기사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을 우연히 오늘 다시 읽었다. 진화심리학, 게리 베커류 경제선택 환원주의, 남녀성비 등으로 젠더 적대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천만한지 새삼 깨닫는다. 본래 명쾌해 보이는 설명일수록 구멍이 많은 법이다. ( 참고: http://fabella.kr/xe/blog2/62184 ) 2. 여성은 가장 눈에 잘 띠는 약자이기에 가장 많이 학대받는다. 한편으로 여성은 노인과 유아처럼 철저히 무력한 약자는 아니라는 점 때문에, 즉 가해자의 죄의식을 경감...

최순실 게이트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file

  • 2016-10-26
  • 조회 수 704

0.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그리고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국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자(들)를 권좌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 1. 탄핵은 의회가 한다. 사퇴 또는 하야는 대통령이 한다. 형식이 그렇단 거고, 그걸 압박하는 건 시민이다. 탄핵과 하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투트랙으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2. 대통령 쫒아내면 권력공백을 어찌하냐고? 중립내각 구성하면 된다. 이런 일이 일상적이진 않지만 드문 일도 아니다. 군사 쿠데타 따위보다 훨씬 민주적이며 안정적인 절차다. 3. 여기까지 진행되면 조기대선이 필수적이...

마법에 걸린 신체, 재주술화하는 주체 file

  • 2016-11-13
  • 조회 수 3806

재주술화(reenchantment)는 글자그대로 다시 주술화되었다는 말이다. 베버에게서 시작된 '주술화/탈주술화/재주술화'라는 말에 영감을 얻은 후대의 학자들은 적지 않다. '일상의 사회학'을 주창한 마페졸리도 있고 미학이란 맥락에서 이 개념을 참고했던 벤야민도 있다. 이 글은 그러나 그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베버에게 근대란 합리성의 지배이자 탈주술화의 세계이지만 그가 재주술화를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탈주술화한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신앙인이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