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정안에 대해 짧은 글 하나를 파벨라에 썼다. 글이 올라온 다음날인 5월 28일, 최저임금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찬성자 160인에는 박주민 등 진보의 대표선수인양 호명되던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5월 24일 각 신문에 "2018 1분기 소득격차 사상 최악"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5월 28일 산입범위 개정안이 통과되며 최저임금에 대해 이런 저런 논의들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언론에 드러나는 것으로만 보자면, 최저임금 이슈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는 '부정'이다. '최저임금 만악근원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주로 재벌 및 친재벌 언론들이 이 입장을 공유한다. 그들은 '뭐 소득격차가 사상최악? 이게 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라며 신나게 기사를 쏟아내는 중이다. 두 번째 입장은 '냉소'다. 최저임금제의 한계는 명확하고 그 이슈에 그렇게까지 매몰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 이슈는 '생산성 높은 고급 인재'와 '생산성 높은 우량 기업'과는 크게 상관없으며, '저생산성' 알바와 '저생산성' 사장님의 제로섬 게임 아니냐는 것. 세 번째 입장은 '방어'다. 이 입장에는 최저임금에 올인하는 '최저임금 환원주의'와 분배기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제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오죽하면'이 섞여 있다. 물론 대부분 '오죽하면'에 가깝다.
"2018 1분기 소득격차 사상 최악" 뉴스를 들여다보면, '부정'이나 '냉소'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소득 하위 20% 계층인 1분위의 가계소득은 월평균 128만6700원으로 1년 전보다 8.0% 감소했다.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1분위에서 ‘노동자가구’ 소득은 0.2% 상승한 반면 ‘노동자외가구’의 소득은 13.8% 떨어졌다. 즉, 영세자영업자가 1분기 소득 감소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 것. 1분기 소득격차의 원인에 대해 정부 쪽에서는 '고령화'를, 친재벌 언론은 '최저임금 상승'을 꼽았는데 둘다 명쾌한 설명이라 보긴 어렵다. 고령화로 인해 1분위 소득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세적 원인이지 갑자기 나타난 변화가 아니다. 그리고 1분위에는 알바조차 고용할 여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가 많기 때문에 최저임금과 관련이 크지 않다.
물론 최저임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한국의 소득격차와 빈곤을 최저임금 제도가 전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장 그것 외에 격화되는 소득격차를 완화할 여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만든 건 누구인가? 국가다. 진짜 문제는 국가의 무책임과 비겁함이다. 국가는 이번 산입범위 개악 같은 것은 일사천리로 추진하면서 정작 필요하다못해 화급한 복지제도 개혁에는 손을 놓고 있다. 예컨대 지금보다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고 기업 규모에 따라 사회보장기여금 부담을 늘려야 한다. 실제 통계를 보면 한국 기업들 사회보장 부담금 비율은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심지어 고소득층일수록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이 낮아지는 역진현상까지 나타난다. 문재인 정권은 최저임금 가지고 숫자 장난이나 치지 말고, 심각한 분배/재분배 상황을 타개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제 또한 분배/재분배 시스템 개혁의 연장선에서 검토되고 시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