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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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 하에 각당은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새로 산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최저임금제 개편의 특징을 알아보자. 꼽자면 더 많겠으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안이 가져올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산층 노동자 '무임승차' 차단. 둘째, 빈곤 경계선 노동자에 대한 혜택 삭감. 셋째, 근로기준법의 근간 파괴.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노동자에게는 징벌을, 기업에게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먼저 꼽아야할 핵심은 중산층 노동자 '무임승차' 차단이다. 그동안 재벌 및 친재벌 언론들이 이구동성 지적하던 문제 하나가 드디어 해결됐다. 이들은 "현행 제도 하에서 연봉 4천만 원에 달하는 근로자도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는 불공정"을 줄기차게 외쳐왔다. 요컨대 그들은 '무임승차자'라는 것이다. 그걸 이번에 정권과 민주당이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다. 물론 개편을 주도한 자들은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의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취지야 좋다. 그러나 실제로 저임금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 혜택이 될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2012년~2016년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은 무려 0.5%였다. 5%가 아니다. 0.5%다. 한국은 임금체불 비율도 OECD 최악 수준이다. 이런 문제가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만 확대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적 고소득자에 대한 응징'이라는 성격이 도드라진단 걸 의미한다. 그 대상은 대체로 대도시 중산층일 가능성이 높다. 불공정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정된 몫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한다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둘째, 빈곤 경계선 노동자에 대한 혜택 삭감. 이 문제가 현실에서는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아래부터는 <경향신문> 기사 '저임금 노동자, 내년 기대 월급보다 10만원 넘게 줄어들 수도'에 나온 사례를 인용한다. "노동자 ㄱ씨는 최저임금 수준인 157만원을 받고 식대 15만원과 교통비 10만원을 별도로 받아 세전소득이 월 182만원이다. 만일 산입범위가 바뀌지 않은 채로 내년에 최저임금이 10%가량 올라 시급이 8300원이 된다면 월 최저임금은 173만원이 되고 ㄱ씨의 월소득 총액은 198만원이 된다.하지만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내년에 시행되면 ㄱ씨의 임금 인상폭은 크게 줄어든다. 개정안에 따라 기본급과 직무수당뿐 아니라 월 최저임금 173만원의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 12만8900원이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포함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ㄱ씨의 사업주는 월급을 3만1100원만 올려줘도 기본급과 직무수당, 복리후생비 중 7% 초과분을 합치면 최저임금을 맞출 수 있다. ㄱ씨의 월소득 총액은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기대보다 12만원 가까이 줄어든 186만1100원이 된다. 최저임금이 10% 올라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없는 셈이다."
셋째, 근로기준법의 근간 파괴. 이번 개편에는 사업주가 분기·반기별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넣기 위해 월별로 쪼개서 줄 때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협의'만 하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가장 나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되게 변경하는 것에 나름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었다.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과반수 노조 혹은 노동자 중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상식적으로도 당연한 조항이지만, 지키지 않는 사업주가 태반이기에 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제 개편안은 '동의'를 '협의'로 바꾸어 이 원칙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고 있다. '동의'와 '협의'는 한 글자 차이지만 법적으로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얼마나 악용될지는 명약관화하다. 흥미롭게도 <조선비즈> 조귀동은 "(이번 개편에서) 실속은 노동계가 챙겼다"면서 "현실적으로 이렇게 취업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협의가 필요해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쓴다(<조선비즈>, 최저임금에 정기상여·숙식비 상징적 편입…실속은 노동계가 챙겼다). 이런 기사를 보면 "아무리 그래도 '기레기'라는 말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라는 평소 소신이 흔들리곤 한다.
나는 기억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잡 셰어링’이라며 대졸신입 연봉을 강탈했던 사건을. 이른바' 2009년 대졸초임 삭감 사건'이다. 기성세대-기업-국가는 신입사원 연봉을 빼앗아 비정규직과 인턴을 더 뽑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협잡을 벌였다. 그러면서 '뼈를 깎는 고통분담'이라고 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고통분담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노조의 보호를 못받는 약자에 대한 일방적 도적질이었다. 주도한 관료, 해당 기업 임원들 중 누구도 자기 연봉은 삭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민란이 일어날 줄 알았다. 세계에 유례없는 착취, ‘글자 그대로의 세대착취’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대한민국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가난했던 청년들이 더 가난해졌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 사건이 사대강 사업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묻는다. 무엇을 위한 한반도 평화이고 무엇을 위한 최저임금인가?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 더 고통받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런 것들 아니었나.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산입을 둘러싼 숫자 장난은 조롱일 따름이다. 그리고 내라는 세금 내며 살아가는 중산층 노동자들을 '무임승차자'처럼 몰아가는 것은 모욕일 따름이다. 2009년 청와대 '벙커'에서 대졸초임삭감을 기획하던 이명박은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백번 양보해 그에게 일말의 선의가 있었다 치자. 그럼에도 졸속적 과정과 참혹한 결과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있는 지금,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