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글 수 36

1. 언젠가 파벨라에서 간략히 비판한 적이 있는 시사인 기사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을 우연히 오늘 다시 읽었다. 진화심리학, 게리 베커류 경제선택 환원주의, 남녀성비 등으로 젠더 적대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천만한지 새삼 깨닫는다. 본래 명쾌해 보이는 설명일수록 구멍이 많은 법이다. ( 참고: http://fabella.kr/xe/blog2/62184 )
2. 여성은 가장 눈에 잘 띠는 약자이기에 가장 많이 학대받는다. 한편으로 여성은 노인과 유아처럼 철저히 무력한 약자는 아니라는 점 때문에, 즉 가해자의 죄의식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기에 가장 많이 학대받는다. 내가 고통스럽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상대가 그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자를 괴롭힐 수 있는 동물이 인간-수컷이다. 그 학대를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드는 것 또한 인간-수컷이다. 윤리, 시민의식, 교육, 문화, 법 등등의 '사회적 압력'이 느슨해지면 폭력은 증가할 것이다. 이는 인간은 본성상 서로에게 늑대라는 식의 홉스적 세계관을 말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변한다는 이야기다.
3. 여성학대, 즉 여성대상 폭력은 모두 여성혐오인가? 어떤 경우 그렇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여성혐오(일테면 김치녀 혐오 같은)가 사후 정당화 기제로 동원되기도 한다. 최근 온라인에서 번성한 여혐 논리는 여성에 대한 본능적 혐오감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폭력과 일탈적 유희를 사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기획혐오'이자 '전략적 혐오'다. 내가 이들의 행태를 전통적인 여성혐오증(misogyny)와 구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대상 폭력의 '동기'를 추적해서 완벽히 규명하려는 시도는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동기는 발견되기보다 끝없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혐오'라는 동기보다 '폭력'이라는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혐오범죄법 제정 이전에 먼저, 압도적으로 여성에게 편중하는 이 폭력의 연쇄부터 확실히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와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닥치고 이 폭력을 멈추라는 것. 이 단순한 메시지가 사회를 뒤덮는 것만으로도 폭력은 줄어들 수 있다. 가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선제적으로 피해를 차단/경감하는 게 먼저다.
4. 여성대상 폭력의 본질-가부장주의와 남근주의-은 변하지 않았다.여성이 여전히 폭력의 가장 큰 피해집단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정당화 이데올로기와 서사양식은 변해왔다. 그리고 맞서 싸운 세대도 변해왔다. 혹자는 2015년을 '페미니즘 원년'이라 부르지만 천만에, 페미니즘은 그 이전에도 치열하게 존재했고 절박하게 싸웠다. 담배 피우는 여자 귀싸대기를 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던 시절, 그 90년대 초중반에 글과 말로 만난 페미니스트들, 눈부시게 탁월했던 그녀들에게 나는 여전히 존경심과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 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여전히 이 상황인 게 아니라 그들이 싸워서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고, 그들이 싸웠음에도 아직 이 정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