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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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인사이드 주식 갤러리를 흔히 ‘주갤’, 유저들은 ‘주갤러’라 부른다. 주식시장이란 게 세상 온갖 일에 영향을 받곤 하는지라, 주갤러들은 세상사에 관심이 많다. 물론 아는 게 많다고 주식으로 돈을 번단 보장은 없다. “주식만 빼고 다 잘하는 주갤러”란 말이 나온 이유다. 아무튼 그 주갤러가 또 한 번 주가를 올린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차 청문회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영선 의원이 김기춘의 위증을 밝혀냈는데 그 과정에서 주갤러의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주갤러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과거 한나라당 후보 검증회에서 김기춘이 최순실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영상을 찾아내 알렸던 것이다. 청문회 이전부터 자신은 최순실에 대해 일체 모른다고 딱 잡아떼던 김기춘이었다. 하지만 이 제보로 인해 그는 어쩔 수 없이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고 언급하며 최순실 이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김씨가 자백한 건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 자체는 아니다. 최순실 이름은 들어봤다, 정도로 말을 바꾼 것인데 그럼에도 전국에 생중계된 그 청문회 영상의 효과는 작지 않았다. “주갤러가 해냈다”는 환호가 웹에 넘실댔다. 이후 디씨인사이드 김유식 대표는 한동안 ‘주식 갤러리’를 ‘명탐정 갤러리’로 바꿔 놓기도 했다. 박영선 의원은 주식갤러리 게시판에 ‘안녕하세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박영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라는 글과 사진을 남겼다. “디씨 명탐정 갤러리 / 주갤! 여러분의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젠 주식도 대박 나세요! 감사합니다” 주갤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행방이 묘연할 때도 ‘우병우 변장시 몽타주’ 등을 합성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주갤러가 부각되긴 했지만 그들만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웹상에서 유사한 행동을 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미디어 수용자와는 사뭇 다른 주체다. 단지 정보를 수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공하거나 심지어 생산해낸다. 일본의 IT비평가 우메다 모치오는 오늘날 급변한 미디어환경을 ‘총표현사회’라는 말로 요약한다. 총표현사회는 매체 환경이 일방통행에서 커뮤니케이션 지향으로 변하면서 정보의 수신자가 동시에 발신자가 되는 사회다. 우메다는 인터넷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중을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정도로 추정하면서, 이들은 우중(愚衆)이 아니라 매우 창조적이고 영리한 집단이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축이라고 주장한다.
우메다는 이들 집단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웹에도 이런 집단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절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년 전쯤 내가 떠올린 이름은 ‘표현대중(expressive crowd)’이었다. 표현대중은 매스 미디어의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이 아니라 정보를 가공해서 확산시키거나 아예 스스로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는 대중을 가리킨다. 표현대중에는 소위 ‘파워 블로거’니 ‘네임드 유저’ 뿐 아니라 SNS, 블로그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거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내가 ‘표현대중’이라 부르는 집단을 우메다는 초지일관 희망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한국의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 일본의 재특회 같은 극우집단 역시 표현대중의 일부다. 표현대중들이 부도덕한 개인의 신상을 털겠다며 나섰다가 생사람 잡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류 매체들이 혐오표현과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의를 기울여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온라인상에서는 날이 갈수록 혐오 표현, 차별 발언이 늘어나고 있다. 표현대중들 상당수는 자신의 행위를 정치적 실천이라기보다 ‘정의구현’이라 여기는데, 이번 주갤러의 ‘쾌거’는 그들의 정의구현이 공익과 일치한 경우다. 주갤러라는 표현대중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주식 갤러리가 김치녀 혐오 담론이 가장 많이 유통됐던 커뮤니티 중 하나였단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원문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827.html
'주갤은 본인들이 멍청한 걸 알고라도 있지 메갤은 자기들이 되게 똑똑한 줄 착각해서 더 싫다'라고요.'
참 저런 말들이 한국 남성들의 보편심리라면 우린 끝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