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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의 <여담>은 국내외의 좌파 혁신을 주제로 삼아, 당면한 정세에서 필요하지만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온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운동/노동자운동을 향한 여담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운동의 상황을 소개하거나 논평하는 것도 포함한다.

활동가. 영화연출을 전공했으나, 돌곶이포럼과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 영화 등에 대한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중국 사회운동과 교류하며 국제연대의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쓴 르포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가 있다.

명함을 잃은 좌파

조회 수 1045 추천 수 0 2020.02.20 12: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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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1월 29일 <경향신문>에 게재됐던 임미리 교수의 칼럼 ‘민주당만 빼고’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경향신문사와 임미리 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이후 일어난 일련의 파동 이후의 상황은 586세대 지식인들이 처한 곤란과 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치적으로 타락하고 몽매한 진영논리에 빠진 586세대 지식인과 그 친위부대는 임미리 교수를 비난하고 조롱했고, 반대편에서는 조국 대전 이후의 민주당 및 그 지지자들의 타락이 이번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나는 민주당과 현 정부에 비판적이고, ‘촛불’이나 ‘혁명’ 등의 레토릭을 구사하며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비단 '조국 대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관련 공약을 거의 지키고 있지 않으며, 손바닥 뒤집듯 쉽게 엎어버렸다. 장시간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고, 톨게이트 비정규직‧마사회 문중원 열사 등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이번 겨울에도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 이재용의 불법 상속에 대해서도 눈감아주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고, ‘재벌 봐주기 판결’의 은근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 연말 통과된 개인정보3법 역시 민주당이 만든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인데, 국민의 개인정보를 자본이 이윤의 수단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방향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촛불’이니 ‘혁명’이니 하는 수사를 붙이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2016년 겨우내 이어진 수백만 촛불의 목소리는 망각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 수준으로 가니 586세대 지식인들 중 현 정부의 표리부동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는 문재인 광신도들의 모함과는 달리 중간층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마도 그것이 ‘#민주당만_빼고’ 해시태크 운동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한편 진중권 씨가 다시 온라인에 나타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논평을 달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입장에 대한 미디어의 집중도 높아졌다. 진보누리 시절의 독설이 보다 씁쓸하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땐 ‘민주노동당’의 포지션이었고,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여당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점에 있다.

나는 그가 페북에 나타나 유시민을 신나게 비판할 때 그것도 뭐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유시민의 파렴치한 언행이 지나치게 해롭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그런 것에 제동을 건다는 점에선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다. 진중권 씨 특유의 냉소와 독설은 우리의 ‘다음 대안’을 만들어내는 힘은 되지 못한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의당 주류의 태도 역시 문제적이긴 마찬가지다. 예컨대 윤소하 원내대표는 진중권 씨 탈당 즈음에 황당한 수준의 입장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는데, 김종민 부대표 등이 최근 언론에서 ‘조국 사태 과정의 정의당의 패착’에 대해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윤소하 원내대표는 그 패착의 진정한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케 했다. 그 때문에 사태가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김어준 라디오에 출연해서 실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정의당 정치인들은 어디 가서 ‘진보정당 정치인’이라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

다시 뭇 지식인들의 상태로 돌아오자면, 작금의 상황이 586세대 지식인들의 멘탈리티가 여러 측면에서 붕괴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된 좌파정당’ 혹은 좌파적 대안이 부재하는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다. 주류 집권세력에 기댄 이들은 여전히 자한당 등 수구세력을 최대 적수로 상정하는 ‘독재-민주’의 80년대식 이분법을 우려먹고 있고, 모두 까기를 신나게 시전하면서 ‘대안’에 대해서는 또렷한 입장을 드러내길 피하는 반성적 586세대 지식인들은 자기파괴적 절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조국과 유시민 등이 타락한 586 지식인을 상징한다면, 진중권 등은 절망에 빠진 냉소주의적 지식인을 상징한다. 민주당의 광신적 지지자들은 진중권이나 임미리 등이 민주당 정권만 비판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뉴라이트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욕하고 있지만, 오히려 뉴라이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세력은 정권을 쟁취한 이후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에 대해선 한 없이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고, 이를 비판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에 대해선 온갖 비난을 쏟아대는 이들이다.

물론 이런 두 분류에 속하지 않는 지식인들도 있을 것이다. ‘타락’과 ‘냉소’가 아니라, 둘 모두를 거부하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침묵’을 택한 이들이 말이다. 나는 이들이 오늘날 지식인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침묵은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좌파가 건재했다면, 민주당 정권이 타락하고 친자본적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낼 때 ‘민주당만_빼고’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명함을 제시하며 ‘민주당이 아니라 좌파정당을’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비판할 때조차도 현 정권이 노동 사안 등에 있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보다 비중을 실어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냉소주의적 지식인들은 그런 길을 찾는 대신, 냉소와 ‘절망을 여지없이 표출하기’를 택했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반면 활동가,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민주당만 빼고’라는 슬로건은 한정된 맥락 안에서, 심정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활동가의 태도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사회운동은 대중들을 향해 ‘지표 없이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희미할지언정 자신의 길을 제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의당 지도부의 태도가 역겹고 비판하고 싶다면, 진중권이나 임미리와 같은 냉소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다른 진보정당을 대안으로 제시하거나, 혹은 그 안의 소수파의 자리에 버티고 서서 그 당을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은 그 편에서 이야기하는 게 가장 현실주의적이고 가장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보다 역사적으로 지금의 몰락을 진단하고, 진보정당이 왜 이런 수준으로 추락했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태가 대체 왜 이렇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다 오래 고민한 사람들이 타당한 시각을 갖고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그 편이 민주당의 실체와 자기 세대 지식인들의 타락에 대해 도덕주의적으로 힐난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좌파는 명함을 잃었다. 어디에도 좌파의 자리는 없어 보인다.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40명이나 출마했던데, 이중에서 ‘진보정당다운 국회의원’, ‘준비된 정치인’이 몇 명이나 당선권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저 사람은 대체 왜 나왔나 싶은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은 절대 안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도전이 기대되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좀 됐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도 있다. 주체들의 상태 역시도 정세의 조건인데 냉소적으로만 사태를 바라보지 말고, 이런 형세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총선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총선이 끝나면 마지막 도전을 해보고 싶다. 그것은 정의당 안의 좌파들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통합하고, 안팎으로부터의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좌파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SNS 인플루언서들과는 달리 절망에도 불구하고 대중운동 속에서 존거하면서 해볼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는 것이 활동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 도리도 못 지킬 것 같으면 무책임하게 소꼽장난 같은 소리를 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님들한테는 사고실험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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