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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아카이빙만 하면 된다는 말에 홀랑 넘어왔다. 어떡하지.

찰랑이는 머릿결, 용솟음치는 꽃무늬 셔츠의 사나이.

영화 <미나리> 리뷰

조회 수 523 추천 수 0 2021.03.08 12:50:45
<미나리>를 나흘 전에 보았는데 여전히 여운이 남아있다.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영화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앞에 놓인 인간을 묘사한다. 한국에는 <미나리>가 마치 한국인 이민자들의 미국 정착기를 다루는 가족 서사인 것처럼 알려졌다. 영화의 외적 측면들(한국어 사용,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 각종 영화제 수상 소식들)이 과하게 부각된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인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나리>에는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이 거의 투영되지 않는다. 한국인 가족이 이민자로서 미국 주류사회와 갈등을 겪는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인 밀집지를 피해 이주해온 가족과 한인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시골까지 왔다는 여성의 발화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탈-한국을 시도해왔음을 짐작케 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체성은 민족성이 아닌 계급성이다. <미나리>는 미국 남부 시골에서 이동식 주택에 사는 가난한 소농민을 다루며, 현실의 삶에 최대한 밀착해 그 안에 가득한 결핍과 불화와 환상들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분노의 포도>나 <에덴의 동쪽> 같은 20세기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완고한 사회주의 미학의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제임스 딘 같은 미남은 안 나오지만). <미나리>에서 한국계 이민자 가족은 남부 복음주의의 미신적 환경 속에 그대로 떨어진다. 소규모 가족 농장이 한 뙈기 있으나 농산품의 안정적인 판매처는 커녕 충분한 물조차 얻지 못한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소득을 얻기 위해 부부가 모두 부업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

그런데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실에 맞선 저항 서사를 만들지 않는다. 적대계급과의 갈등 내지 긴장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불안정계급의 삶이 유산계급의 직접적인 착취나 강압에 의해 형성되지 않기 때문으로, <미나리>의 병아리 공장 고용인이나 도시 유통상인 등은 일순간 스쳐지나갈 뿐 단 한번도 착취자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미나리>는 계급 갈등이나 저항을 그리는 대신 20세기 리얼리즘이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걷는다. 계급성 외에 <미나리>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은 <애정의 조건> 같은 헐리우드 통속영화에서 반복되었던, 사건을 통한 감정이입이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개인적인 것일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기도 한데, 그녀는 특히 <애정의 조건>을 ‘미국적 슬픔’의 구체적인 예로 언급한 바 있다. 

<애정의 조건>에 나오는 가족은 아이오와로 이주한다. <미나리>의 가족은 아칸소로 이주한다. <애정의 조건>에 나온 남편은 대학교수지만 학자로서 성공하지 못했으며 소득이 적다. 아내와 끊임없이 불화하다 파혼한다. <미나리>의 남편은 가축공장에서 폐기되는 쓸모 없는 숫놈 병아리와 같다. 아내와 끊임없이 불화하다 결별 선고를 받는다. <애정의 조건>에서 약간 더 교양있는 계급 출신인 아내는 결혼생활 내내 걱정을 안고 산다. 삶의 굴레에 막혀 부부간 대화를 잃어버린다. 아내로서가 아닌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미나리>의 한예리도 그러하다. <애정의 조건>의 아내는 자신의 엄마와 긴밀한 관계로 등장하며 정신적으로 크게 의존한다(영화 포스터도 모녀의 모습만을 제시한다). <미나리>의 한예리와 윤여정의 관계도 그러하다.

<애정의 조건> 같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영화 속에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영화 속 사건들을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일’로 느낀다. 관객을 낯설게 함으로써 감정이입을 원천차단하는 리얼리즘 영화와는 다른 방식이다. 누스바움이 특히 <애정의 조건>이 미국적 슬픔을 드러낸다고 한 구체적 요소는 여주인공의 갑작스런 발병과 죽음이다. 그것은 미국인에게 더 물리적인 두려움이며,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의해 구성된 감정이다(미국인은 굶주림이나 전쟁을 현실적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는다). <미나리>의 가족이 안고 있는 걱정거리도 그와 같다. 가족이 아칸소로 이주하는 차 안에서부터 불화하는 까닭은 어린 아들의 심장질환 때문이다. 시골 농장이라는 공간은 사회보장은 커녕 아무런 의료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병원이 있는 도시까지 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미나리>의 가족은 한국에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를 미국으로 모셔온다. 할머니는 한예리가 항상 부채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홀어머니이자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예리 부부가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갑자기 발병한 뇌졸중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이 펼쳐진다. 이 일은 이윽고 연쇄적인 재앙으로 이어져,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이나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같은 작품들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미국인 관객이 경험할 정신적 충격은 한국인 관객이 느끼는 감정과 매우 다르다.

<미나리>는 이 가족이 어쩌다 미국까지 흘러왔는지, 왜 이런 삶에 놓였는지, 클라이맥스 부분의 그 재앙을 어떻게 딛고 일어섰는지,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관객이 이미 알기 때문이다. 미국 관객들은 이 가족이 아칸소로 향하는 첫 장면부터 닥쳐올 비극을 예감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의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이 가족에게 펼쳐졌을 일들을 상상한다. 이 가족은 하필이면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평생 가난하고 불행했을 것이며, 곧이어 오일 쇼크를 겪고 몰락했든지 또는 근근히 이겨내 집 한 채를 겨우 꾸렸더라도 모기지 체계가 무너지면서 모든 것을 잃었으리라는 상상을 관객 누구나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이 미국 소농계급이 지난 수십 년간 겪어온 삶이며 거기서 더 나아진 경우가 극히 드문 예외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며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나리>는 영화 속 가족의 이전과 이후의 삶에 침묵함으로써 미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명확한 사실을 대단히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오래 전에 실패했고 처참히 무너졌다는 사실 말이다. 폐허가 된 삶의 자리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거기에 휩쓸린 계급은 단지 가난할 뿐 아니라 온전한 삶을 아주 놓아버린다. <미나리>의 아내는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엑소시즘 같은 미신에 기울고 그녀를 비난하던 남편마저도 물을 찾기 위해 유사과학을 받아들인다. 몽매해서가 아니라 다른 수단과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윤여정이 한국에서 가져와 심은 미나리는 비단 한국인 이민자의 은유가 아니라, 그 정도로 무너진 삶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속하고 있는 계급의 은유다.

이것이 미국 영화계에서 <미나리>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또한 이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반발까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사실 미국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받는 일은 이전에도 흔히 있어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런 반발이 없었다. 미국 관객들과 평단의 반응은 2021년 현재의 미국, 철저히 파탄난 미국을 <미나리>보다 잘 드러낸 영화가 없기 때문이고, <미나리> 가족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삶의 은유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영화평이다. 미국 관객들의 <미나리> 리뷰를 보면 트럼프 현상을 언급하는 글이 흔하다.

한국인 관객들에겐 이런 지점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미나리> 가족이 겪는 주된 비극,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막막한 삶이 한국인 관객에게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농사가 잘 안 되면 보조금 받으면 되고 할머니가 쓰러지면 병원에 데려가면 된다. 그래서 <미나리>에 대한 한국인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힐링 영화라는 관점(실제로 왓챠피디아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평가 중 하나). 다른 하나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답답함에 주목하는 관점(그렇게 된 현실적인 요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 가족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미국에 정착하는 집단 서사로 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 세번째 관점을 장착한 관객들은 <국제시장>을 보듯이 <미나리>를 본다. 그리고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나오지 않는 결말에 크게 실망한다.

마지막으로 <미나리>와 비슷한 소재를 다루면서 더 하드코어한 영화인 클로에 자오의 <노마드랜드>를 살펴보자. <노마드랜드>의 여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일하던 공장이 사라지면서 일자리를 잃고 남편마저 죽어버린다. 그녀는 주택을 겸한 차량 한 대에 의지해 미국 서부를 떠돌며 산다. 이미 망가진 삶에서도 비극은 연쇄적으로 일어나, 그녀 자신에게 질병이 닥치고 차량은 망가진다. 모든 삶의 의지를 박탈당한 그녀는 다른 가족과 결합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미나리>의 한예리가 겪었을 수도 있는 가장 처참한 미래의 한 측면, <미나리>가 의도적으로 침묵한 미국의 실패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노마드랜드>도 <미나리>와 같은 해인 2020년에 개봉해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언제나 영화 자체보다도 그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 혹은 사회적인 움직임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미나리>를 사실 5공 때만 해도 한국에 개봉조차 어려웠을 유형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관객들은 이 영화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는 아랑곳 않고 한류에 도취하여 어떻게든 긍정과 희망의 영화인 것처럼 왜곡해 받아들인다. 한편 <노마드랜드>는 중국계 캐나다인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문명이 하드코어하게 무너진 풍경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럼에도 중국인 관객들은 그 영화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는 아랑곳 않고 어떻게든 클로에 자오를 배신자인 것처럼 왜곡해 비난한다. 두 영화 모두, 온전한 감상법은 미국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다. 감독의 혈통을 잊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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