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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아카이빙만 하면 된다는 말에 홀랑 넘어왔다. 어떡하지.

찰랑이는 머릿결, 용솟음치는 꽃무늬 셔츠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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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이 바라보는 남한은 6.25 전쟁을 일으켜 자신들을 침략한 집단이고 미 제국주의의 관리를 받는 유사국가다. 공식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교육해왔다. 물론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북한에 형성된 이데올로기적 믿음이 그렇다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시에 일시적으로 억눌러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튀어나오는 성질의, 남한에 대한 집단적 반감이 있을 것이다. 그 반감의 수준은 한국인이 과거 식민지배에 관하여 일본에 품고 있는 반감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에게는 미 제국의 일부로서의 남한이 언제나 가장 큰 적대 대상이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2. 북한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북한의 공동연락소 파괴는 한국이 실행했거나 실행중인 화해치유재단 해체, 신일본제철 강제매각과 비슷하다. 양쪽 다 이전의 국가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적대적 행동이다. 나의 이런 진단에 불쾌감을 느끼고 전혀 사안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한국인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일본과의 합의는 파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 이상으로, 남한과의 합의는 파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북한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애초에 합의가 정당하지 않았다고 느낄 테니까. 또한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정의롭게 여기는 이상으로, 북한사람들도 남한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정의롭게 여길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비해 훨씬 더 닫힌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추론할 수 있다.
3. 남한 자금으로 개성공단 입주, 금강산 개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등은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들에게 베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북한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북한사람들은 “왜 우리 땅에 쟤들이 건물을 짓고 주인 행세를 하는가”하는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제주도에 한국 해군이 철수하고 일본기업 생산기지가 들어와있다고 생각해보라. 아무리 많은 경제효과가 있다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인이 많을 것이다. 북한사람들도 당 중앙이 승인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랐지만, 남한의 베풂을 경제적 침투행위로 쭉 인식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 중에도 일본이 차관을 내어주거나 통화스와프를 제안하는 것을 경제적 침투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집단적 감정은 일순간에 어느 계기로든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그 계기가 대북 전단이었다.
4. 남한이 북한에 경제협력을 통한 앞으로의 번영을 제안했을 때, 북한은 유엔제재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내심은 대단한 모욕감을 느꼈을 수 있다. 북한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처지가 어렵고 빈궁하더라도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들도 (특히 성인이 되어 탈북한 경우) 그러하여, 가능하면 밥 한끼도 얻어먹으려 하지 않고 항상 자신이 계산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그걸 ‘사회주의적 자존심’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동유럽이나 러시아사람들도 다 그런 게 있다나. 일본은 사회당 정권 시절, 이전의 협정으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입장에서 전진해 일본국민의 모금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재차 보상했다. 그때 한국인들, 특히 위안부 운동단체는 일본이 ‘돈을’ 준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고 거세게 반발했다. 일본의 위안부 지원활동가들과 평화운동가들은 그걸 ‘한국인의 양반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5. 일반적인 북한사람들은 전두환, 김대중, 박근혜, 문재인의 정치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한국사람이 무라야마, 고이즈미, 하토야마, 아베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 중에는 일본이 자민당 일당체제만 쭉 이어왔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 90년대 일본은 일본신당, 사회당의 진보정권 시대였고 모든 내각의 모든 총리가 과거 식민지배를 사과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국 매스컴이 “일본의 꼼수”, “여전한 침략야욕”, “우경화”로 바꾸어 전달하지 않은 예가 없다. 틀림없이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반적인 북한사람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한국인에 비해 훨씬 제한되어 있다. 그들이 남한 정치의 변화를 이해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우리 쪽에서 평화를 진정 원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일도 몹시 어렵다고 본다.
6. 일반적인 북한사람들은 남한 정부여당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태영호씨의 당선과 그의 발언들을 한국 전체와 퉁쳐서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간인이 날려보낸 대북전단도 남한 정부의 공식적인 행위와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일본정부가 과거사 사죄를 할 때마다 일본 내에서 반발하는 우익계의 목소리가 있었다. 한국 매스컴은 언제나 그것을 일본 전체와 퉁쳐서 보도했다. 일반적인 한국인 대부분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북한은 더 심할 것이다.
7. 한국 국방부는 북한이 개성공단에 군대를 배치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국방부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하는 경고다. 하지만 이런 경고가 북한의 적대 행위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한국이 일본 자산을 강제 매각하면 반드시 대응하겠다는 일본의 경고가 수 차례 있었지만, 그러면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더 많은 불쾌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국 진보진영에서 북한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아사히신문의 극단적인 친한파 논설가조차 한국의 대일정책을 우려하는 칼럼을 내고 있다. 한국 매스컴이 그것을 소개할 때는 ‘일본의 협박’, ‘보복 위협’으로 다룰 뿐이다. 한국이 일본을 그렇게 인식하는 것처럼, 북한은 남한에서 나오는 경고나 염려를 모두 부당한 위협으로 인식할 것이다.
8. 실낱 같은 기대를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작년 여름부터 지속적인 비난 성명을 내왔다. 그럴 때마다 대북정책에 관여하는 정부 관리들은 그 의미를 축소하고 긍정적 해석을 내놓곤 했다. 남북평화의 희망이 너무 큰 탓에 판단의 왜곡이 있었다. 그러나 대북온건파가 그리 반응할 수록 북한은 오히려 무시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과거 무라야마 총리가 “한일합방이 합법이었더라도 그 내용은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것이었음이 틀림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한국인들로부터 “한일합방이 합법이라는 거냐”며 대단히 거친 비난을 받았다. 북한의 비난성명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때 무라야마를 비롯 사회당 정치인들은 한국측의 비난을 축소하고 애써 긍정적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로 인해 한일관계 경색이 지속됐다. 나는 그게 일본 사회당이 몰락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9. 판문점선언을 남한 국회에서 비준하려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공동연락소 폭파 이후 오히려 비준을 서두르는 외통위원장 판단은 틀렸다. 지금 비준하면 안 된다는 청와대 판단이 옳다. 최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중의원이 한일 위안부합의를 일본만이라도 일단 시행하자고 하였을 때, 한국 언론은 그것을 ‘재압박’, 기시다를 ‘아베의 후계자’라고 표현했다. 그런 것처럼 남한 국회가 지금 판문점선언을 통과시킬 경우, 북한은 그것을 평화-우호의 제스쳐가 아닌 일방적인 압력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참고로 기시다는 고가 마코토 파벌을 물려받은 리버럴로, 현재 자민당 주류와 매우 성향이 다르다. 한국에 대하여도 가장 온건파다. 그는 한일협력의 희망이 너무 큰 탓에 정확한 판단을 못 하고 있다. 한국이 위안부합의를 되돌릴 리가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북한도 판문점합의를 되돌릴 리는 없다. 이미 파기된 것이다.
10. 대부분의 외교전문가들은 북한이 “어떤 전략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분석해 내놓는다. 이는 북한이 이성적 계산에 근거해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다. 내 생각은 반대다. 북한의 행동은 당 지도부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보통사람들의 집단 감정 때문이고, 일종의 저항적 신념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본다. 이성적 사고를 한다면 대남 적대행위를 할 때마다 남한의 대북온건파 입지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 조차도 일본을 비난할 때마다 일본 내 친한파의 입지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적지 않은 한국인이 무역규제와 불매운동으로 한국도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에 더 큰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한국인도 이럴진대, 북한사람들도 북한이 피해를 입더라도 남한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을 기뻐한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다.
11. 한국 진보진영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우호감정, 즉 우리는 한 민족이고 결국에는 합쳐야 할 것이라는 관념은 북한에서는 전혀 공유하지 못하는 감정일 가능성이 있다. 민족의식에 근거한 섣부른 희망만으로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공동연락소 폭파가 그 동안의 모든 우호 노력의 실패를 증명한다. 판문점합의와 평양선언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물론 타이밍은 좋았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할 것이다. 북한과의 평화는 북한의 민주화/자유화로는 결코 이룰 수 없고 (평범한 북한사람들은 평범한 한국인들이 일본을 대하듯 남한을 대할 것이므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결단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잘 되지 않았다. 한국이 보인 우호적 제스쳐를 북한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굴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12. 한국은 일본 사회당과 민주당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한국이 민주화된 90년대, 일본 진보진영은 가까이에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이 생겼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일본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김대중 납치사건 등을 계기로 한국 민주화를 오랫동안 지원/지지해왔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적극적인 우호외교를 펼쳤지만, 그들은 한국을 경제적〮문화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국제무대로의 개방을 이끌어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기에 한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더구나 그들은 독재에서 해방된 이들이 “쇠말뚝을 박아서 민족정기가 훼손됐다”는 샤머니즘적 원한을 가졌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결국 한국으로부터 돌아온 것이 비난뿐이니 일본 유권자들은 차라리 보수정권으로의 안전한 회귀를 선택했다. 일본 사회당은 옴진리교 테러 때문에, 민주당은 후쿠시마 쓰나미 때문에 몰락했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우리도 무작정 북한을 도와주려 하거나 섣부른 기대를 품고 접근하다가 한순간에 다같이 무너질 수 있다. 북한이라는 체제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여길 거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니 다들 좋은 사람이더라, 라고 할 사람도 있을텐데 물론 그거야 그렇겠지만.
13. 경제협력, 관광개발 등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이 아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어차피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나 물자 지원이 아닌 체제보장이다. 경제적인 도움을 줘봤자 그들은 승전의 대가를 받아내는 것을 그저 당연하다 여길 것이다. 그게 반복되는 강탈의 원인이다. 북한은 7월 27일, 그러니까 정전협정 체결일을 전승절로 기린다. ‘미 제국과 남조선 괴뢰도당을 꿇어앉혀 항복문서를 받아낸 날’로써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한다. 그러니 거기다 대고 “이제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갑시다”하고 말해도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불쾌감을 살 수도 있다. 북한사람들은 자기네가 이미 전쟁에 이겼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선 이겼고, 쌀도 필요없다고 하고(작년에 쌀 보내겠다 했을 때 엄청 반발했었다), 요구하는 것은 체제보장뿐이다. 정확히는 핵 보유국의 지위를 갖는 체제보장. 북한은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달갑게 여기질 않고 무엇을 주더라도 호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댓글 '1'

??

2020.07.06 10:35:09

정말 궁금한데 "평화시에 일시적으로 억눌러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튀어나오는 성질의, 남한에 대한 집단적 반감이 있을 것이다. 그 반감의 수준은 한국인이 과거 식민지배에 관하여 일본에 품고 있는 반감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에게는 미 제국의 일부로서의 남한이 언제나 가장 큰 적대 대상이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요? 어떤 여론 조사 결과라도 있나요? 이 글의 가장 큰 전제나 마찬가지인데 전혀 논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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