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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그들은 왜 부채춤을 추었는가

조회 수 2050 추천 수 0 2015.04.09 13: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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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사건'은 이제 망각의 강을 건너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의 '배후'를 의심했던 수사기관도 김기종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건 당시에 목격했던 기이한 반응들은 쉽사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리퍼트 미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명목으로 등장했던 일련의 '퍼포먼스'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정상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들이 돌연 비정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여기에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미 대사에서 칼을 휘두른 김기종의 행위를 정상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 행위의 의미에 대해 논하는 사안과 별도로,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식을 우리는 '근대적인 것'이라고 부르도록 교육 받았다. 말하자면, 근대인이라면, 개인에 대한 개인의 복수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말아야한다는 규범이 우리의 상식, 또는 상식적 판단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종의 '테러'가 있자마자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즉각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특히 극우와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보수정치인들과 보수언론들은 앞다투어 배후설을 흘리면서 종북이라는 고전적 전술을 끄집어내기에 바빴다. 

통진당 해산 이후에 한국에서 종북이라는 말은 비정상적인 것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언어가 되었다. 이 상징언어는 '괴뢰'나 '꼭두각시'라는 과거의 은유처럼, "자신의 자유의지를 버리고 북한을 무조건 추종한다"는 뜻에 가깝다. 이런 양태는 과거 서구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무신론의 종교비판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계몽주의자들에게 종교는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을 '광신'이라는 위험에 빠트리는 대표적인 해악이었다. '광신'은 무엇보다도 자율적 개인으로 분리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질서를 잡아야할 '다양성'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키메라 같은 괴물이었다. 

경제를 우선 순위에 둠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던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광신'은 더더욱 쓸모없는 열정의 소모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런 논리에서, 설령 종교를 완전하게 폐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광신'이라는 뇌관을 제거한다면, 합리적인 세계의 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세속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종북 비판은 이렇게 '광신'을 제거하고자 했던 종교비판의 연장이다. 따라서 종북비판과 '통일대박론'은 서로 대립한다기보다, 후자의 논리에서 전자의 논리가 등장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광신적인 북한 추종세력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대박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은 '조국통일'을 혁명 완수로 생각했던 북한의 논리를 정확하게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김기종의 행위를 간단하게 비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한 정부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정상적인 것을 옹호하는 수사법을 사용했다. 특히 대통령은 이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는데,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의 논리에서 김기종이라는 비정상적인 것에 대비되는 정상적인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인 셈이다. 따라서 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에게 미 대사가 습격을 받은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이라는 정상적인 것의 근간을 뒤흔든 종북주의라는 '광신'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미대사관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 이른바 기독교인들이 쏟아져 나와서 집단으로 부채춤을 추었다. 미 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지극히 온정적인 마음의 발로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빗대어서 "나는 리퍼트다"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미 대사가 했다는 "함께 갑시다"는 말이 잠언처럼 나부꼈다. 

이 모든 일들은 그냥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미대사관 앞에 모여든 이들에게 그만큼 '한미동맹'은 연약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종북주의라는 '광신'의 준동이 오늘날의 한국을 존재할 수 있게 만든 그 '한미동맹'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에 집단적인 행동을 이끌어냈으리라. 이 집단적 행동에 놀랍게도 부채춤이라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부채춤이라는 '전통'을 전시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하필이면 부채춤을 추었는지 생각해보면 비밀이 풀리지 않을까. 부채춤이야말로 '만들어진 전통'을 대표하는 근대적 산물이다. 부채춤은 '조국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면서, 전근대적인 농촌을 새마을로 바꾸었듯이,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무속의 제의를 근대적인 무용으로 만들어낸 것이 부채춤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954년 김백봉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군무로 발전한 것이 부채춤이다. 이런 과정은 한국의 부채춤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 자체가 전통을 재창조하고 익숙한 시공간의 체험을 분리시켜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명된 전통'이나 '원시적 열정' 같은 개념들은 이런 근대화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부채춤은 이런 의미에서 한국 근대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한국에서도 근대화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감추는 양면성을 내포한다. 보여줄 것과 감출 것을 결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지켜볼 것이라고 가정하는 '시선'이다. 이것을 보통 '타자의 시선'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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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에게 이 '타자의 시선'은 다른 무엇도 아닌 미국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의 탄생과 형성은 냉전질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세계체제 구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세계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이를테면 한국 보수의 생존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동맹'은 미국이라는 '타자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는 한국 보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채춤은 한국 보수가 보여주고 싶은 한국적인 것의 모습이고, 이것을 미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인정 받을 때 비로소 보수가 바라는 '한미동맹'은 유지될 수 있다. 분명히 미대사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던 이들에게 이런 논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을 테다. 김기종이라는 '광신'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채춤은 '근대 예술'이라는 합리성의 이름으로 불려나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던가. 자못 그 '합리성'이 자아낸 정경은 또 다른 '광신'에 가깝지 않았던가. 

이 '광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김기종의 행위를 '광신'으로 규정하는 그 입장 역시 '광신'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론 이것은 한국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근대 자체에 감춰져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근대는 재현되지 않는 것들을 '광신'으로 규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미대사관 앞에서 선 보인 부채춤은 무속의 제의에서 기원한 것이었다. 무속이라는 전근대적인 요소를 구경거리로 만들어낸 것이 부채춤이다. 무속이라는 종교성을 제거하고 만든 합리적인 구현물이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불려나온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하게 근대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예증도 없는 것 같다. 김기종을 '괴물'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괴물'이 아님을 '타자'에게 증명하기 위해 한국의 보수가 펼쳐보인 퍼포먼스도 그 못지않게 괴물스러웠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보수의 입장에서 김기종이 한국 근대화의 나쁜 것을 다 모아놓은 결과물이었다면, 자신들의 부채춤은 반대로 한국 근대화의 좋은 것만을 다 모아놓은 결과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결국 둘 다 '괴물'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왜 그런 것일까.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판단에서 좋고 나쁜 것을 나누어서 전자를 위해 후자를 배제하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이런 괴물성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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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리우드로 간다": "곡성", 어떤 '촌스러움'에 대한 혐오 file [14]

  •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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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영화 <기생충>을 이제야 보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덕분에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미리 알고 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 공포’가 횡행했지만, 이 영화는 줄거리를 다 알고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영화 <명량>을 보고 “이순신 장군 죽는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스포일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여하튼 칸의 수상 덕분인지 이런 “스포일러 마케팅” 덕분인지 영화의 흥행은 성공했지만, 만일 이 둘이 없었더라도 이 영화가 이토록 관심을 끌 수 있었을지 ...

비트코인 신드롬 fi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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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비트코인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빌 모러가 2015년 <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화폐의 미래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트코인은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유시민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광풍’으로 진단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작전세력들’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비트코인에 대한 다소 과도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유시민 같은 이들의 주장을 문제 삼기 위해...

랑시에르를 만나다 fi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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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 문이 열리자 자크 랑시에르는 변함없이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나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학술행사가 있어서 들른 차에 잠깐 찾아뵙고자 했던 것인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길어져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청탁할 것이 있었고, 또한 다른 부탁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은 거실도 변함없었다. 아담한 살굿빛 소파가 놓여 있는 정경은 몇 년 전에 찾았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지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특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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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트럼프 현상을 다시 생각하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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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의 타락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만들어낸 전후 자유주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배경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디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경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만큼 미국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일...

트럼프는 무엇의 이름인가 file [2]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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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긴 결과였다. 클린턴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위터에서 생뚱맞게 샌더스 때문에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개탄하다가 나오미 클라인에게 반박을 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가 가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에 벌어졌던 일들과 겹쳐지는 장면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정부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훌륭했을지 몰라도, 그...

자코메티 file

  • 2017-12-09
  • 조회 수 1907

“나는 예술에도 관심 있지만, 본능적으로 진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러므로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코메티는 ”미술은 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신비감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도쿄에 가서 봤던 자코메티 전은 띄엄띄엄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전시를 둘러보면서 종종 ‘현대인의 고독’을 표...

2015년 신경숙 표절 논쟁은 무엇이었나 file [6]

  • 2015-12-13
  • 조회 수 1725

표면상 '표절 논쟁'이었지만, 2015년에 일어난 '신경숙 표절 문제'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신경숙의 표절 여부이고, 두 번째 문제는 신경숙 자체이다. 둘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이른바 '표절 논쟁'을 경과하면서 서로 겹쳐 보이게 되었다. 이런 착종이 곧 증상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증상은 여러 가지 진실을 말해준다. 메시지를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증상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 그러니까 신경숙의 표절 여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석연찮은 논리이긴 했지만, 본인도 ...

소녀상 file

  • 2016-02-11
  • 조회 수 1718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20세기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상징 행위’의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작동방식을 실증해서 보편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만큼 상징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상징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보면 흉조이다. 상징의 문제는 상징물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차원을 얻기도 한다. 상징물은 분명 추상적인 상징성을 실현한 것이...

순수한 상호공생의 이론적 근거: 슬라보예 지젝과 한병철의 논쟁에 대해 file

  •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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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Fall Semester에 기고한 "On The Rationale Of Pure Mutualism: An Intervention Into The Debate Between Slavoj Žižek And Byung-Chul Han"을 강영민이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코로나19(COVID-19)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동물 같은 숙주를 필요로 한다. 라틴어로 동물(animal)은 숨이 붙어 있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의 의미 상징 체계 내에서 이미 바이러스 감염의 문화적 기원이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동물이 바이러스를 다른 동물로 이동시킨다. 오늘날 같이 동물이 다른 동물들과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