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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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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특강을 위해 초청 받은 오사카 대학에 갔을 때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선 골목 어귀 파출소 게시판에 붙어있던 수배 전단지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훑어봤는데 거기에 적혀 있는 문구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름도 생소한 무장조직의 가담자 둘을 수배하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에 정보를 검색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74년 8월부터 시작해서 5월까지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를 비롯해서 주요 일본 기업과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 이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명의로 성명서가 나왔다. 단체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 수배전단은 그 사건 이후에 일제 검거를 피해 도피한 조직원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에 대해 여러 경로로 알아보던 중에 나는 <외박>과 <산다>를 만든 김미례 감독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펜데믹 때문에 개봉을 우려했지만 다행히 영화는 관객을 만날 수 있었고, 나도 극장에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당사자들을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이 단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추정들을 명확하게 만들어줬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왜 “동아시아”를 단체명으로 내걸고 다른 기업도 아닌 미쓰비시를 처음 목표로 삼아 타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이들이 왜 “반일”을 기치로 내걸었는지 그 의문도 일정하게 풀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이 영화에 대한 여러 리뷰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서 지적하는 “폭력투쟁”을 왜 이들이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단체의 명칭이 이미 이들의 지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GV에 나온 패널이나 이 영화에 대한 소개 기사를 쓴 기자들이 이 문제를 너무 쉽게 간과해버린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웠다. 사실 이들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이들의 명칭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이나 소개가 대체로 폭탄테러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동아시아”와 “반일”, 그리고 “무장전선”의 조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을 지칭하는 이름은 “무장전선”이라는 투쟁 방식 못지않게 “동아시아”와 “반일”이라는 지정학적인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왜 이들은 “국제”나 “글로벌”이 아닌 “동아시아”를, 그리고 왜 “항일”이 아닌 “반일”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일까. 


<반일>(Anti-Japan)이라는 책을 쓴 미국 듀크대학 레오 칭 교수는 동아시아의 정서에서 “항일”과 “반일”을 구분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항일”은 주로 중국과 중화권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일본 제국주의와 투쟁해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뉘앙스를 띠고 있는 반면, “반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이나 대만처럼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국가에서 채택하는 용어로 한국전쟁과 이어진 냉전체제에서 반공주의와 결합해서 “민족”을 호명하는 기제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북한이 자신들의 건국신화를 “항일무장투쟁”이라고 지칭하고, 왜 남한이 한일무역분쟁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벌이는 일본 제품 반대 캠페인을 “반일불매운동”이라고 지칭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반일”이라는 명칭을 채택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들이 등장한 1970년대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다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그에 따른 반일감정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1972년 미국이 센카쿠 열도를 일본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일본의 건재함을 재확인한 사건이었다. 1972년은 인도네시아에 있던 베네딕트 앤더슨이 수하르토에게 추방당해서 태국으로 갔던 해이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생생하게 밝히듯이, 앤더슨이야말로 당시 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실시간으로 목격한 증언자였다. 앤더슨이 쫓겨나고 2년 후인 1974년 1월 15일에 일본총리 다나카 가쿠에이의 인도네시아 방문이 있었고 그 시기에 맞춰 자카르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또한 같은 해 센카쿠 열도 반환에 항의하는 홍콩과 대만의 청년들이 미국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면서 반일감정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에서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당시에 순전히 ‘소영웅심’에 젖어 섣부른 행동에 나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단체의 주동자인 다이도우지 마사시는 1970년 봄 호세이대학 사학과에 재학 중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연구하면서 고조되고 있던 반일운동을 무장투쟁으로 전개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와 생각을 같이한 이들이 모델로 삼은 것은 당시에 쿠바를 비롯해서 제 3세계 국가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도시 게릴라전이었다. 지금에 와서 이들의 투쟁 방식이 과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소련과 미국 모두에 반대하는 비동맹운동이 타오르고 있었고 일본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둥회의에 참석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시도할 때였다. 이들의 눈에 자신의 조국인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파렴치범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를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에 대해 도덕적 항의를 조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왜 시민들과 함께 하는 길을 찾지 못했는가 반문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에게 시급한 문제는 전후에 다시 부활하고 있던 자본주의였지, 일본 사회의 변화가 아니었다. 이 자본주의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글로벌한 규모로 재건되고 있었다. 이들이 관공서나 군부대를 타격한 것이 아니라,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자본주의의 골간을 파괴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최후 단계라는 레닌의 정의를 충실히 따랐던 것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불장난이 아니었다. 당시에 세계는 소련의 한계를 넘어선 공산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혁명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핵심은 비동맹운동이 미국과 소련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는 것이 아니라, 소련마저도 이 공산주의 이념의 걸림돌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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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단순한 무장단체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다시 이들의 명칭을 살펴보아야한다. 이들은 “전선”이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이 말은 자신들을 영웅적인 전사로 본 것이 아니라, 전선에 가담하는 일원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이 “전선”은 그 무엇도 아닌, 당시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던 제 3세계 해방전선이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고립의 결과물이 아니라, 전후 부흥에 취해 있던 일본 사회에서 탈주함으로써 제국주의의 잔재와 부활에 맞서 싸우는 제 3세계 해방전선에 뛰어드는 결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은 다른 어디도 아닌 동아시아였고, 아시아 반제국주의의 코드였던 반일이었고, 당이나 동맹이 아닌 전선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이름에서 “무장”만 도드라지게 부각해서 평가하는 태도들은 70년대 일본 청년들을 움직인 이념적 동기를 지워버리고, 그 행동의 과격성만을 문제 삼는 편향에 불과하다. 물론 그만큼 한국은 이른바 ‘시민의 상식’을 벗어난 모든 행동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고 차단하려는 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화염병을 잊어버린 지금 한국은 70년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출현하게 만든 그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들을 가리켜 실패한 혁명가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그 방법의 실패와 별도로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동아시아의 모든 문제가 제국주의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기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진실 말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격파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였고, 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여전히 인류의 과제로 남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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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탄핵, 잔치는 끝났다 file [6]

  • 2017-04-05
  • 조회 수 14161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되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매주 20차에 걸쳐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광화문 촛불집회는 승리의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경우는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초창기에 폭력이니 비폭력이니 논쟁이 잠깐 일었지만, 청와대 바로 앞까지 촛불이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유야무야되었다.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2008년 촛불집회와 2017년 ...

집밥 논쟁에 대하여 file [1]

  • 2015-07-19
  • 조회 수 7962

며칠 동안 때 아닌 집밥 논쟁이 뜨거웠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프로그램 때문인데, 그 중심에 백종원이라는 한 사내가 있다. ‘백주부’ 또는 ‘백선생’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사내를 둘러싼 다양한 견해들이 가히 ‘백종원 현상’이라고 부를만한 흥미로운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발단은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쓴 백종원의 요리에 대한 논평이었다. 한 마디로 백종원의 요리프로그램은 맛있는 음식보다도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업소 레시피”를 소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다. 여기에서...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기: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어떤 혁명에 대한 환상 file [3]

  • 2015-05-27
  • 조회 수 7011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아예 대학원 비평수업의 소재를 제공하고자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 온갖 철학적 주제를 암시하는 상징과 알레고리로 잔뜩 치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주제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음향이나 시각효과에서 이 영화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할리우드 방식의 컴퓨터그래픽 영화를 넘어서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배우들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했을 액션의 리얼리즘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시대착오적이기에 훌륭한 성취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차기 대통령의 딜레마: '큰 정치'의 전망을 기대한다 file [2]

  • 2017-02-05
  • 조회 수 6073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할 시기는 격동이라는 한 단어로 담아내기에 너무도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후 세계 질서를 구축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제일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원인 제공자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사실상 전후 세계 질서가 표방했던 개방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점차 폐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야말로 개방주의를 기치로 내건 전후 세계 질서에 가장 잘 적응해온 아시...

예술과 증언

  • 2019-03-24
  • 조회 수 5986

런던에 있는 영국 국립 미술관에 가면, <아르놀피니의 초상>이라는 그림이 있다. 지금 이 그림의 제목은 <초상>이지만 내가 맨 처음 이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아르놀피니의 결혼>이었다. 1434년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제에 대한 논란은 많은데, 플랑드르 브루제에 살던 이탈리아 상인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그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한동안 우세했지만, 1997년 아르놀피니가 실제로 1434년에 결혼하지 않았고, 반 에이크가 죽은 지 6년이나 지나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제목이...

강남역 사건과 여성혐오 file [2]

  • 2016-05-26
  • 조회 수 5095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잠재해 있던 뇌관 하나를 터트렸다. 이 뇌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되었던 문제를 수면으로 띄워 올렸다. 바로 그것은 여성차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속내를 파고들어 가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을 감추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처음에 ‘여혐’에 근거한 증오범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타올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증오범죄보다는 조현병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살인’으...

한병철과 헬조선 file [3]

  • 2017-03-21
  • 조회 수 4657

한병철 교수의 특강이 모종의 '퍼포먼스'였던 모양이다. (▶참고 글) 이 문제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린 평가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철학자의 객기" 정도였는데, 이를 두고 벌어지는 풍경이 자못 심각해서 짧게 몇 마디 보태고자 한다. 참석한 관객들의 '증언'과 이후 알려진 정보들에 따르면, 저자는 출판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본인의 강연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미리 주문해놓은 것을 봐도 무엇인가 특별한 계획이 그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해프닝...

100만 인파의 의미 file

  • 2016-11-16
  • 조회 수 4290

100만의 인파가 서울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서울이라는 장소성을 넘어선 ‘시민들’의 집결이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인터넷은 물론 지상파 방송을 타고 생중계되었다. 누구는 봉기라고 했고, 누구는 거대한 콘서트 같다고도 했고, 누구는 엄청난 인파에도 폭력 없이 평화롭게 끝난 시위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고도 했다. 여하튼 언론들은 100만이라는 숫자와 질서정연하게 끝난 비폭력 평화시위를 강조했다. 이렇게 100만 명의 인파가 청와대를 ‘포위’한 듯 연출한 보도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장관은 SN...

미투 운동과 한국의 진보주의 file

  • 2018-03-17
  • 조회 수 4187

미투(#MeToo)라는 말이 처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폭발적인 운동으로 번져갈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들불처럼 퍼져나간 미투는 이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누구는 이렇게 한국 사회에 성범죄가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터져야할 문제가 지금에야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 특히 남성이 저지르는 성 관련 범죄는 거의 먼지처럼 일상에 퍼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할리우드로 간다": "곡성", 어떤 '촌스러움'에 대한 혐오 file [14]

  • 2016-05-16
  • 조회 수 4116

* 이 글은 결정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신 분이나 아니면 보실 생각이 없는 분들에 한해 읽으시기 바랍니다.  <곡성>은 한 마디로 감독이 제대로 소재를 장악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한 영화이다. 반짝이는 장면들도 없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교과서적인 장르 영화 장면들의 오마주들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코미디에 장르물이고 상업영화라고 했지만, 코미디라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장르물이라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상업영화라기에는 너무 예술적이다. 자기 장난감 자랑하는 아이 같은 ...

“기생충”을 보다 file [2]

  • 2019-07-04
  • 조회 수 3740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영화 <기생충>을 이제야 보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덕분에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미리 알고 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 공포’가 횡행했지만, 이 영화는 줄거리를 다 알고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영화 <명량>을 보고 “이순신 장군 죽는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스포일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여하튼 칸의 수상 덕분인지 이런 “스포일러 마케팅” 덕분인지 영화의 흥행은 성공했지만, 만일 이 둘이 없었더라도 이 영화가 이토록 관심을 끌 수 있었을지 ...

비트코인 신드롬 file [1]

  • 2018-01-27
  • 조회 수 3079

가히 비트코인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빌 모러가 2015년 <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화폐의 미래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트코인은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유시민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광풍’으로 진단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작전세력들’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비트코인에 대한 다소 과도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유시민 같은 이들의 주장을 문제 삼기 위해...

랑시에르를 만나다 file [1]

  • 2018-04-23
  • 조회 수 2629

자택 문이 열리자 자크 랑시에르는 변함없이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나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학술행사가 있어서 들른 차에 잠깐 찾아뵙고자 했던 것인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길어져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청탁할 것이 있었고, 또한 다른 부탁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은 거실도 변함없었다. 아담한 살굿빛 소파가 놓여 있는 정경은 몇 년 전에 찾았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지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특강 때문...

그들은 왜 부채춤을 추었는가 file

  • 2015-04-09
  • 조회 수 2006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사건'은 이제 망각의 강을 건너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의 '배후'를 의심했던 수사기관도 김기종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건 당시에 목격했던 기이한 반응들은 쉽사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리퍼트 미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명목으로 등장했던 일련의 '퍼포먼스'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정상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들이 돌연 비정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여기에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미 대사에서 ...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트럼프 현상을 다시 생각하자 [2]

  • 2016-12-25
  • 조회 수 1914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의 타락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만들어낸 전후 자유주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배경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디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경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만큼 미국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일...

트럼프는 무엇의 이름인가 file [2]

  • 2016-11-10
  • 조회 수 1904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긴 결과였다. 클린턴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위터에서 생뚱맞게 샌더스 때문에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개탄하다가 나오미 클라인에게 반박을 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가 가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에 벌어졌던 일들과 겹쳐지는 장면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정부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훌륭했을지 몰라도, 그...

자코메티 file

  • 2017-12-09
  • 조회 수 1867

“나는 예술에도 관심 있지만, 본능적으로 진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러므로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코메티는 ”미술은 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신비감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도쿄에 가서 봤던 자코메티 전은 띄엄띄엄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전시를 둘러보면서 종종 ‘현대인의 고독’을 표...

2015년 신경숙 표절 논쟁은 무엇이었나 file [6]

  • 2015-12-13
  • 조회 수 1708

표면상 '표절 논쟁'이었지만, 2015년에 일어난 '신경숙 표절 문제'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신경숙의 표절 여부이고, 두 번째 문제는 신경숙 자체이다. 둘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이른바 '표절 논쟁'을 경과하면서 서로 겹쳐 보이게 되었다. 이런 착종이 곧 증상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증상은 여러 가지 진실을 말해준다. 메시지를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증상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 그러니까 신경숙의 표절 여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석연찮은 논리이긴 했지만, 본인도 ...

소녀상 file

  • 2016-02-11
  • 조회 수 1696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20세기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상징 행위’의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작동방식을 실증해서 보편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만큼 상징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상징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보면 흉조이다. 상징의 문제는 상징물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차원을 얻기도 한다. 상징물은 분명 추상적인 상징성을 실현한 것이...

페미니즘과 자유주의 file [1]

  • 2015-04-01
  • 조회 수 1606

그동안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뜨거웠지만, 그렇게 생산적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본격 거론되고, 한국 사회와 관련한 문제가 여성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문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문제 중 하니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여성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정치적 차원을 열어내는 의제라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