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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 이 글은 Fall Semester에 기고한 "On The Rationale Of Pure Mutualism: An Intervention Into The Debate Between Slavoj Žižek And Byung-Chul Han"을 강영민이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코로나19(COVID-19)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동물 같은 숙주를 필요로 한다. 라틴어로 동물(animal)은 숨이 붙어 있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의 의미 상징 체계 내에서 이미 바이러스 감염의 문화적 기원이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동물이 바이러스를 다른 동물로 이동시킨다. 오늘날 같이 동물이 다른 동물들과 빈번히 접촉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지 않았다. 각각의 바이러스는 고유의 영토를 가지며 특정한 종에 맞는 개별의 숙주 동물이 있다. 바이러스는 고유의 서식지에 사는 특정 동물종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영토화'(territorialization) 법칙을 변화시킨 건 인간의 이동성이다. 실크로드가 흑사병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겼으며, 유럽의 팽창과 경쟁이 스페인독감(실제로 스페인에서 유래된 건 아니지만)의 전면적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21세기에도 우리가 목격하듯이 코로나19의 전세계적인 확장이 글로벌 자본주의가 야기한 인간의 이동성 때문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장 초기의 보도처럼 유행병의 발발이 중국에서 일어난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러나 팬데믹의 원인을 그저 중국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가장 세계화된 도시 중 하나인 우한에서 일어난 돌발적 감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곳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바이러스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많은 저널리스트와 평론가들이 박쥐 같은 야생 동물을 먹는 중국 문화를 팬데믹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런 문화는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인수공통감염(人獸共通感染, zoonotic infection)에 대한 일상적인 노출만으로는 코로나19처럼 빠르게 여러나라에 팬데믹을 일으킬 수 없다. 우한 같이 글로벌화 된 도시가 인간의 이동성을 통해 국경 너머 바이러스의 전면적 전파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최근의 의학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같이 폐렴을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NCIP)에서는 "많은 증상들이 경미한 것이 사실"이고 "고립된 케이스와 접촉을 막는 격리라는 제약" 때문에 상황 통제가 쉽지 않다고 한다.[1] 이런 경미한 증상이 코로나19와 사스(SARS) 같은 바이러스의 차이점이다.

중국 정부가 우한 내 전문가들의 의견과 초기 경고를 무시한 것은 사실이다. 당국은 우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정보를 나누는 것을 억압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태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중국 정부의 비민주주의적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스티븐 리 마이어스는 중국의 투명성 부족이 효율적 격리가 실패한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스 이후, 중국 정부는 세계적인 질병 보도 시스템을 구축했노라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물론 그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의 전제를 따라가보자. 마이어스는 한 논쟁적인 연구를 인용하며, 만약 중국 정부가 유행병 국면에서 한 주 빨리 더 공격적인 액션을 취했다면, 감염률이 훨씬 더 낮아질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2] 그러나 이런 인용에는 모순이 있다.

여기서 물어야할 것은 마이어스가 지지한 "공격적 액션"의 의미이다. 그것은 중국 정부가 경고 시스템에 재빨리 반응했어야 하고, 저널리스트와 소셜 미디어를 오가는 정보의 공개적 순환을 허용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또는, 우한 당국이 유행병 방지를 위해 사람들이 집에 있기를 권장하며 감염된 사람들의 증상을 의료 센터에 친절하게 보고하도록 요청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공격적 액션"은 그런 "민주적 방역"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마이어스의 주장은 동그라미를 네모로 만드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만약 중국 정부가 경고 시스템에 즉시 반응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공격적 액션을 주저하게 만든 데는 여러 정치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몇가지가 떠오르지만 마이어스의 추측처럼 자유의 부족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필연적으로 격리와 자유는 호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의 실패를 만회하면서 중국이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이동성을 극단적으로 금지시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에 중국의 방법을 따르지 않은 유럽과 미국은 유행병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중국의 경우만이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심지어 한국조차도 자유를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자유가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이동성의 통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문제는 중국이 감염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초기 대응에서 "공격적 액션"을 취하지 않은 어떤 부재하는 원인(an absent cause)이다. 그 부재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의 초기 대처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로벌 시장의 거대한 공장으로서 중국 정치는 자국의 경제 성장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현 정치 체제를 지지하는 중간계급의 요구도 달래야 한다. 우한은 중국 내륙의 중심에 위치한 고도로 글로벌화된 교통과 산업의 허브 도시다. 국가의 심장부에 위치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중심이다. 우한의 통제는 중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3] 그래서 중국의 초기 대응 실패의 원인은 민주주의의 부재도 아니고 시스템의 비효율성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오히려 진짜 원인은 자본의 고도화된 이동성을 위해 지역 공동체에 희생을 강요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파괴적 시스템에 있다. 이런 사실은 중국이 민주적이냐 아니냐는 질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동성이 낳은 결과이고, 동일한 무역의 규칙에 근거한 시장 만능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파라다이스에 대한 글로벌리스트들의 신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과 한병철의 논쟁은 이런 쟁점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지젝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글로벌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오지심장파열권'(Five Point Palm Exploding Palm Technique)이며 지금까지의 방식이 아닌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4] 지젝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를 앞당기는 코로나19의 위력을 영화 <킬빌>에 나온 환상적 무술에 빗댄다.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야기한 팬데믹이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파라다이스의 이면에 횡행하는 가짜 뉴스, 음모론, 인종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바이러스의 감염적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지젝은 지금의 팬데믹이 우리에게 글로벌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를 생각할 것과 공산주의를 재발명할 것을 요구한다고 결론 짓는다. 그에게 지금 당면한 요구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공산주의를 리부팅하는 것이다. 그는 이 논쟁에서 더 나아가 공산주의를 초기화함으로써 우리를 설득하려 하고 있다.[5] 지젝은 한번도 공산주의자였던 적이 없는 영국 수상 보리스 존슨 같은 이가 공산주의자를 대신해 글로벌 팬데믹이란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든다. 그에게 공산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공백으로서 정치의 빈자리에 항상 존재해왔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주인 기표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병철은 공산주의를 재발명할 것을 호소하는 지젝에 맞선다. 그는 이 위기 이후 글로벌 자본주의는 재빠르고 정력적으로 회복될 것이며, 바이러스 따위가 우리에게 정치를 "사유"나 "재사유"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지젝이 틀렸다고 선언한다.[6] 한병철은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예로 들며, 위기상황은 항상 더 향상된 통치 시스템을 허용하게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유럽조차도 팬데믹에 대처하는 중국 모델을 성공적인 시스템으로 간주할 것이며, 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디지털 경찰 국가를 도입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한병철의 입장은 권위주의적 체제가 위기상황을 예외적 법령의 구실로 이용한다고 묘사한 조르조 아감벤이나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와 비슷해 보인다. 나아가 한병철과 에스포지토는 중국을 유럽의 미래로 보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한병철의 걱정처럼 에스포지토도 예외상태로의 일탈이 "민주적 체제를 중국 같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유사하게 만드는 정치적 과정을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7]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유럽의 미래가 아니라 오히려 유럽도 이미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진짜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팬데믹이라는 현실은 유럽의 예외성이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럽연합에 대한 수전 왓킨스의 분석은 오늘날 유럽이 어떻게 존재해왔는가를 설명한다. 1970년대 이후로 유럽의 정치체에 세 가지 차원의 구조적 변형이 있었는데, "1.통치자와 피통치자 간의 시민-민주적 관계, 2.멤버쉽 국가 간의 내부-국가적 관계, 3.경제적 블럭을 이룬 국가들의 대외적 역할을 규정한 지정학적 관계"가 그것이다.[8] 예를 들면 "1970년대 초 브레튼 우즈 시스템의 붕괴, 1990년대 초 소련의 몰락, 그리고 2008년 폭발한 세계 금융 위기"같은 외부의 압력이 이런 구조적 변형을 강제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변형은 각각 순서대로,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중국의 부상에 따른 글로벌화, 2008년 이후 부채에 허덕대는 스테그네이션과 일치한다. 유럽은 이미 글로벌 자본주의의 일원으로서 이런 초고속 경제성장 시스템에서 벗어난 지역이 아니다. 유럽적 가치의 쇠퇴는 명백해 보인다. 2015년의 샤를리 엡도 사건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유럽의 특권의식이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에티엔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당시의 총격은 그 유럽의 특권의식을 위해 누구든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점을 가르쳐 줬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 유럽은 더이상 펜스에 걸터 앉아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갈등을 지켜보며 즐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한병철의 문제는 이런 무지한 혼동보다 더 심각하다. 그가 중국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어떻게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게 됐는가를 진단한 것을 보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는 아시아적 유리함이 "권위주의적 멘탈리티"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아시아 사람들은 국가 권력에 더 복종하며, 그들의 일상은 디지털 감시 시스템에 엄격히 훈육되어 있다. 판옵티콘적 정부를 따르는 이런 아시아적 체제가 유교적 전통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를 보면 이런 논리는 곧 약점을 드러낸다.

그가 한국의 성공적인 감염 관리 사례를 관찰하며 놓친 것은 한국 정부의 프로파간다 이면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한국에 사는 입장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정부 방침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디지털 감시 시스템을 속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의 감염률이 낮은 이유는 유교적 전통이나 디지털 빅 브라더 때문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동원된 저임금 공공 의료 노동자들과 공무원들 때문이다. 한국이 코로나19를 통제하는 방식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노동력의 원시적 착취에 기대고 있다. 그들은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검사한다. 심지어 자가 격리 규칙을 어긴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까지 책임진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중앙 센터가 아니라 이런 수고를 돕는 유용한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병철이 성공의 배경으로 주목한 한국의 "권위주의적인 멘탈리티"는 일제 강점기와 냉전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 시기에 반공적 독재 정권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이 나라에 도입했다. 반공의 유산으로서 국가 권력에 대한 권위주의적 복종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에도 잘 적응하게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한국 경제 시스템을 본질적으로 중앙 정부가 운전석에 앉아 고삐를 틀어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권위주의적 외양을 이유로 한국을 전체주의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정확한 질문은 왜 이런 권위주의적 집단주의가 글로벌 자본주의와 조화를 이루어 왔냐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다른 모든 아시아 국가에도 해당된다.

한병철이 지젝의 공산주의에 가한 비판 또한 전체주의에 대한 그의 편견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젝이 그 개념을 통해 말하려는 바는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푸르동이 아니라 푸리에적 의미에서 사회적 상호공생을 지칭한다. 푸리에의 "상호공생"은 경제 이론을 넘어서는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이다. 내 견해로는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주의의 초월적 사용이며, 들뢰즈의 의미에서 순수한 사회공생이 재발명 또는 반복되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파라다이스, 즉  노동계급 없는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만 아니라면 뭐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해 모든 생명체들과 자유롭게 연대하는 순수한 상호공생을 실험한다면 어떨까? 글로벌 팬데믹은 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 국제적 협력 체계를 건설하고 정치적 실패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새로운 인터내셔널리즘을 사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병철의 결론대로, 우리를 글로벌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만인이 서로 평등한 상호결사의 정치적 주체, 즉, 생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초월적 이념으로 그 이성의 조건을 협상하는 전달자로서의 평등한 존재일 것이다. 글로벌 팬데믹 이후의 변화된 세상을 상상하는 힘은 바이러스도 이성도 아닌 바로 그 이념에서 나올 것이다. (번역: 강영민)
  1. 1. Qun Li, et al. “Early Transmission Dynamics in Wuhan, China, of Novel Coronavirus–Infected Pneumonia.”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Vol. 382. No. 13. 2020. 

  2. 2. Shengjie Lai, et al. “Effect of 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 for containing the COVID-19 outbreak in China.” MedRxiv.org. https://www.medrxiv.org/content/10.1101/2020.03.03.20029843v3.full.pdf

  3. 3. See, “Why Wuhan is so important to China’s economy and the potential impact of the coronavirus.” 24.01.2020. South China Moring Post. https://www.scmp.com/economy/china-economy/article/3047426/explained-why-wuhan-so-important-chinas-economy-and-potential

  4. 4. Slavoj Žižek. “Coronavirus is ‘Kill Bill’-esque blow to capitalism and could lead to reinvention of communism.” 27.02.2020. https://www.rt.com/op-ed/481831-coronavirus-kill-bill-capitalism-communism/

  5. 5.  Slavoj Žižek. “Communism or babarism, it’s that simple.” An interview with Renata Ávila.

     DiEM25 TV. https://dialektika.org/en/2020/04/01/slavoj-zizek-on-coronavirus-communism-or-barbarism-that-simple-video/

  6.  6. Byung-Chul Han. “La emergencia viral y el mundo de mañana.” 23.03.2020. El País. https://elpais.com/ideas/2020-03-21/la-emergencia-viral-y-el-mundo-de-manana-byung-chul-han-el-filosofo-surcoreano-que-piensa-desde-berlin.html

  7.  7. Roberot Esposito. “Biopolitics and Coronavirus: A View from Italy.” 31.03.2020. The Philosophical Salon. http://thephilosophicalsalon.com/biopolitics-and-coronavirus-a-view-from-italy/

  8.  8. Susan Watkins. “The Political State of the Union.” New Left Review 90 (2014), p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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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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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알렌카 주판치치는 자신의 짧은 에세이에서 이탈로 스베보의 소설 <제노의 양심>에 등장하는 애연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애연가는 언제든지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애연가의 ‘양심’에 비추어본다면, “담배를 끊는다”는 그의 진술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우는 행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애연가는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모순적인 진술과 행동을 지속하는 것일까. 달리 묻자면 이 애연가는 왜 서로 충돌하는 것이 빤한 자신의 진술과 행동...

<레오파드>, 비스콘티의 극장에서 그람시를 보다 file

  • 2015-06-17
  • 조회 수 1369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를 보여주는 ‘오래된 미래’이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보여준 그 혁명의 열기가 식은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영화가 <레오파드>인 것이다. 1963년도에 개봉한 영화와 2015년에 개봉한 영화가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전후 체제’의 모든 것은 반복되었을 뿐,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레오파드>는 이 통찰을 선취하고 있는 영화이다. 물론 <레오파드>는 ‘빈 체제’라는 ‘...

프로듀스 101, ‘국민’을 호명하는 어떤 방식 file [8]

  • 2016-04-19
  • 조회 수 1454

“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 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듀스 101>이라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문구이다. 소속사의 연습생을 ‘국민 투표’로 101명 선출해서 ‘드림팀’을 만들어낸다는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언급이다. 101명의 연습생은 “국민 프로듀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게 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비밀은 이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에 감춰져 있다. 겉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

트럼프와 촛불, 두 개의 공화국 file [3]

  • 2017-01-30
  • 조회 수 1490

“트럼프도 박근혜처럼 임기 중에 탄핵당했으면 좋겠다.” 힐러리 지지자였던 미국의 지인이 내게 보낸 메시지이다. 그만큼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많은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반도의 정세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역시 트럼프 당선 못지않게 극적인 것이다.  이 상황은 어떻게 극적인가? 2012년을 상기해보자.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보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화’를 의미했다. 이 ‘정상화’를 다른 용어로 번역하면 ‘정치...

페미니즘과 자유주의 file [1]

  • 2015-04-01
  • 조회 수 1640

그동안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뜨거웠지만, 그렇게 생산적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본격 거론되고, 한국 사회와 관련한 문제가 여성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문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문제 중 하니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여성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정치적 차원을 열어내는 의제라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

순수한 상호공생의 이론적 근거: 슬라보예 지젝과 한병철의 논쟁에 대해 file

  • 2020-04-25
  • 조회 수 1685

* 이 글은 Fall Semester에 기고한 "On The Rationale Of Pure Mutualism: An Intervention Into The Debate Between Slavoj Žižek And Byung-Chul Han"을 강영민이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코로나19(COVID-19)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동물 같은 숙주를 필요로 한다. 라틴어로 동물(animal)은 숨이 붙어 있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의 의미 상징 체계 내에서 이미 바이러스 감염의 문화적 기원이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동물이 바이러스를 다른 동물로 이동시킨다. 오늘날 같이 동물이 다른 동물들과 빈...

소녀상 file

  • 2016-02-11
  • 조회 수 1718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20세기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상징 행위’의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작동방식을 실증해서 보편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만큼 상징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상징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보면 흉조이다. 상징의 문제는 상징물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차원을 얻기도 한다. 상징물은 분명 추상적인 상징성을 실현한 것이...

2015년 신경숙 표절 논쟁은 무엇이었나 file [6]

  • 2015-12-13
  • 조회 수 1725

표면상 '표절 논쟁'이었지만, 2015년에 일어난 '신경숙 표절 문제'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신경숙의 표절 여부이고, 두 번째 문제는 신경숙 자체이다. 둘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이른바 '표절 논쟁'을 경과하면서 서로 겹쳐 보이게 되었다. 이런 착종이 곧 증상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증상은 여러 가지 진실을 말해준다. 메시지를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증상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 그러니까 신경숙의 표절 여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석연찮은 논리이긴 했지만, 본인도 ...

자코메티 file

  • 2017-12-09
  • 조회 수 1906

“나는 예술에도 관심 있지만, 본능적으로 진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러므로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코메티는 ”미술은 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신비감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도쿄에 가서 봤던 자코메티 전은 띄엄띄엄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전시를 둘러보면서 종종 ‘현대인의 고독’을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