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되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매주 20차에 걸쳐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광화문 촛불집회는 승리의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경우는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초창기에 폭력이니 비폭력이니 논쟁이 잠깐 일었지만, 청와대 바로 앞까지 촛불이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유야무야되었다.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2008년 촛불집회와 2017년 촛불집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촛불집회가 청와대 앞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무엇도 아닌 사법당국의 허가 때문이었다. 이 허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허가는 많은 것을 내포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의 법리가 87년 6월 항쟁 이후의 합의, 이른바 87체제를 부정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87체제의 기준으로 보면 최순실 게이트는 87체제 이전의 부정부패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은 2008년의 경우와 다르다는 판단이 사법당국에게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의혹 단계에서 사법당국은 중대한 대통령의 위헌 혐의를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탄핵열차는 그때부터 궤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의지와 법의 판정이 일치를 이룬 결과가 탄핵이었던 셈이다. 루소적인 ‘일반 의지’는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 4%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공유한 가치로 표현되었다.
과연 그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 가치는 탄핵을 인용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잘 명시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탄핵은 시장질서의 교란이라는 ‘경제적 이유’에서 정당화되었다. 시장의 질서를 감시 감독해야할 정부가 그 질서를 위반했고, 그 정부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이 법의 정신에 근거해서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은 옳은 것으로 판결 났던 것이다.
이른바 법의 정의라는 것은 심각한 기울기를 교정하는 균형추이다. 탄핵 과정에서 오히려 법의 저울을 교란하고자 했던 당사자는 과거처럼 ‘좌파 불순세력’이 아니라 계엄령을 주장하고 군대의 무력을 요청한 ‘친박 세력’이었다. 시인 이영진은 1987년 6월 항쟁이 끝난 뒤에 쓴 시에서 “계엄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고 표현했는데, 이 상황은 2017년에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계엄군’은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친박 극우’가 간절히 원했던 국가폭력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의 출현이라는 예외상태는 도래하지 않았다. 반대로 ‘좌파 폭력 집회’를 간절히 원했던 당사자들이 폭력 집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고 주동자는 경찰에 소환되는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광화문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든 이들이 ‘국가의 출현’을 요청했다. 이들이 간절히 원한 것은 ‘계엄령’과 ‘군대’로 지칭되는 절대적 폭력이었다. 이 폭력은 법의 정지를 의미한다. 법을 정지시키고 다른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대적 폭력을 이들은 갈구했던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박근혜라는 기표를 욕망하는 과잉의 주체들이다. 이들의 슬로건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박근혜를 지키자’였다. 이 발언은 곧 ‘증상을 지키자’는 뜻이다. 이 증상은 실정법을 초월한 정언명령이다. 그러나 이 정언명령은 시장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금지된 것이다. 이들에게 박근혜는 이 금지의 주박을 풀어줄 마법사였을 것이다.
박근혜라는 기표가 제공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정치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들의 ‘조국’을 돌려받는 것이다. 그 ‘조국’은 잘 나갔던 박정희 시절의 복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런 열망을 박정희 향수로 간단히 치환해버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향수는 기본적으로 상실의 애도를 전제한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박정희 시절의 복원은 이런 애도를 누락하고 있다. 이들은 박정희의 부활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누렸던 그 즐거움을 다시 누리길 원한다.
마치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어게인 2002년’을 외치는 처럼, 이들 역시 ‘어게인 1961년’을 외치는 것이다. 이들이 다시 복원하고자 원하는 것은 민주화를 통해 훼손된 박정희 시절의 가치이다. 그 가치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법을 정지시키는 권력, 독재자이다. 이 독재를 칼 슈미트는 법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헌법의 효력을 정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주권자(sovereign)라고 보았다. 법의 밖에 있는 주권자를 부정하고 법이 곧 주권이라고 주장하는 법철학의 입장이 바로 네덜란드의 크라베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켈젠으로 이어져 완성된 법치국가의 원칙이다. 이런 켈젠 법철학의 구현체인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을 주권의 재현으로 보았기 때문에 법에 따라 선출되었음에도 법에 구속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을 ‘국정농단’을 일삼고 헌법의 원칙을 위배하는 ‘범법자’로 규정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법이 곧 주권이라는 헌법의 원칙은 오늘에 이르러 법의 밖에 존재하는 주권자를 제거하지만, 어제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던 그 원칙이기도 하다. 상황 역전은 분명 극적으로 보이지만, ‘법의 저울’이 지향하는 균형의 중립성을 생각한다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법이 말하는 정의(justice)는 바로 공정한 것(just)이다. 이 공정한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속성을 암시한다. 법은 합리성으로 재현할 수 없는 과잉을 제거하는 장치이다. 이 법의 중립성을 훼손하고자 했던 당사자가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의 자리까지 이르게 만든 것이 이렇게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에 이런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급기야 최순실 게이트로 전모를 드러냈다.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야말로 어떤 과잉의 기표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과잉은 다른 무엇도 아닌 초법적인 주권자의 복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런 과잉의 열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라는 아이돌을 둘러싼 팬덤이 광신적일지라도 합리성을 자임하는 보수의 지지를 획득했다는 것이 문제다. 보수는 왜 이 극우의 과잉을 지지했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재는 민주주의보다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다르지만 공약에서 변별성을 느낄 수 없는 조건이라면 유권자들 입장에서 선택의 기준은 ‘공약을 누가 더 추진력 있게 실행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2012년의 박근혜는 분명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진 대기업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허니문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기업들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과거 박정희 시절의 특혜 관계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고 과단성 있는 주권자로 새로운 법을 세워야할 대통령은 칩거한 채 나타나지 않았다.
박근혜라는 개인의 무능도 이번 탄핵에서 하나의 변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민주화 세력에게 홀대 받는다고 여기던 산업화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줄 알았던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과 최측근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보수의 지지가 소멸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반대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지지했던 이들에게도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화 이후에 갑자기 대한민국을 망친 주범으로 전락해버린 산업화 세대, 그 중에서도 합리적 보수로 재현되지 않는 냉전 극우세력의 인정투쟁이었다. 이 민주화의 내용이 결과적으로 소비자 민주주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박근혜라는 ‘극우의 아이돌’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지분을 인정받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룬 소비자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구체제의 가치관은 촌스럽고 낡은 것으로 간단하게 치부되었다. 이들에게 자유주의는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혼돈을 극복할 방법으로 이들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대적관’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단순히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복각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애국’이었다.
민주화를 ‘혼란’으로 보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법의 우위에 두는 발상은 오늘날 극우주의의 전형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탄핵 반대를 이유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들었다. ‘애국’을 외치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애국’의 내용은 민족보다도 국가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민족은 정치적 단위이다. 소녀상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민족은 국가로 포섭되지 않는 정치를 의미한다. 소녀상은 민족과 국가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가는 합의해주었는데 그 국가의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면, 국가는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한 선험성이다. 국가보다 민족이 우선했다는 인식인 것이다. 이때 민족이란 실질적으로 민족-국가의 구성원 인민의 다른 이름이고, 민족주의는 루소적 일반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의 조합은 이런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상징행위이다. 이들은 국가보다 우선하는 민족을 논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국가가 법보다 위에 존재해야하는데, 민족이 그 국가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말처럼, 근대적 계몽의 기획이 궁극적으로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귀결하는 것이라면, ‘친박 극우’가 긍정하는 근대화 역시 최종 목표는 민족-국가의 완성에 그치는 것이 아닐 터이다. 이들 역시 국제적 관계에서 ‘애국’을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런 ‘애국’을 국제적 차원에서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반공주의이다. 이들에게 경험적인 국제 공조의 기억은 전후 체제의 반공주의 연대라고 볼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태극기 집회’ 주동자 중 한 명은 “미국이 좌파세력에게 차기 정권을 넘기려고 해서 성조기를 흔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은 미국의 오판, 또는 선택을 교정하고 변화시킬 요량으로 성조기를 태극기와 함께 흔들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성조기는 태극기의 존재 이유이면서 동시에 태극기의 법을 다시 세울 수 있게 해주는 대타자이다. 박근혜라는 상징 기표를 통해 이들이 원했던 것은 민주주의를 조장하는 87체제의 법을 정지시키고 민주화 이전으로 모든 것을 돌려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탄핵은 역사의 역행이 불가능하다는 진보의 비가역성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출은 독재자의 딸조차도 민주적 방식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유물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진적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너무도 기계처럼 잘 작동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알랭 바디우를 변주해서 말하자면, 이 민주주의의 기계에서 누락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왜 민주주의를 하는가”라는 기원적 질문이다. 이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민주화 과정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진리의 주체들’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탄핵의 과정을 ‘시민 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은 혁명이었다기보다 87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을 광화문에 불러낸 것은 87체제의 논리였다. 이 논리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기표를 통해 구성된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 논리는 한국 사회의 공리를 구성하게 되었다. 80년대를 주도했던 반자본주의적 급진주의 역시 이 공리에 따르면 제거되어야할 과잉이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그 법이 갑자기 진보적으로 바뀌어서 이번에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과잉을 제거하고 주권의 재현으로서 법을 정립해야한다는 원칙에 의거해서 판단한다면, 둘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87체제의 합의를 무효화하고 민주화 이전으로 가치체계로 회귀하려다가 체제의 반발력에 밀려 좌초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이 체제의 반발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민주화 이후 한국이라는 국가의 구성원이 이르게 된 정치적 마지노선이라는 사실이 이번 탄핵으로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탄핵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법을 전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누구도 법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상태는 없었다. 법의 경계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밝히고 축제를 벌였다. 광화문 집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인 수의 정치를 보여주는 환등상이었다. 이 환등상은 군중이라는 스크린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군중이 모이는지 그 사실이 중요했다. 온갖 과학적 방법론이 동원되어서 실제로 광화문을 오간 군중의 수가 계산되었다. 정치를 과학의 토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군중의 수에 대한 집착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지율 4%를 보도하는 뉴스의 시각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무엇보다도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를 전제한다. 플라톤이 비웃었듯이, 실제로 그 지배가 다수의 권리를 위임 받은 과두정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이 대원칙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이상적 합의이다. 이 이상적 합의와 현실 정치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불일치가 결과적으로 광화문 촛불집회 같은 분출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렇게 분출된 인민의 일반의지를 과잉의 정치로 간주하는 자유주의적 공리로 인해 결과적으로 이 군중의 에너지는 그람시가 이야기하는 ‘변형주의’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이 ‘변형주의’는 과두정 내의 자리 바꾸기를 통해 이런 과잉의 정치를 무마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의 원리에 따라 셈해진 것들을 재현한 총체가 바로 국가라고 한다면, 광화문 촛불집회와 같은 분출은 그 셈에 포함되지 않은 공백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백은 수로 고정할 수 없는 정치적 에너지의 방황을 의미한다. 이 정치적 에너지가 광화문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다수의 일원으로 포함되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너도 나도 광화문으로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진술은 어폐가 있다.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기보다, 광화문에 모이는 순간, ‘시민들’로 인준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다. 평소에 ‘시민들’로 불리지 못했던 이들이 스스로 시민권을 획득하는 영토가 바로 광화문이었다. 이 영토에서 ‘시민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각자의 고원에서 내려와서 일시적이나마 새로운 평등주의를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은 분명 소중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을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는 분명 평등의 축제였다. 그러나 이 평등의 축제는 과잉의 정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정치적이고 반정치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속성 때문에 이 축제는 ‘친박 극우’ 또한 배제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나눠진 부분집합들은 탄핵의 과정에서 군중의 환등상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 환등상이 사라지고 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환등상은 꺼지고 남는 것은 선거이다. 이 선거는 스포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가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다는 주장은 이상일 뿐이다. 실제로 스포츠의 목적은 흥행이다. 소비자 민주주의에서 선거라는 스포츠의 절대 과제는 이것이다. 선명한 대결구도를 제대로 만들어낼수록 선거는 성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존재는 이미 유명무실해진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다시 불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새삼 확인시켜준 셈이다.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아군과 적군을 확실히 구별하고자 했던 이들의 시도는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라는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있을 ‘장미 대선’은 이렇게 복귀한 정치의 궤도 위를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이 궤도 위를 달리는 것은 ‘혁명열차’가 아니다. 이 열차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탄핵도 끝났고, 잔치도 끝났다.
* <르몽드디플로>에 게재된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댓글 '6'
영국날씨좋냐
하나마나한 일반론적 주장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애초에 뭘 주장하는지가 안 보여서 질문을 한 거예요. (소년의노래님 역시도 추측만 하실 뿐이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일반적인 주장이다" 라고 하실 수 있는 건지 좀 미스테리어스하네요;) 뭔가를 추구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니까요.
왜 쏘아붙인다는 인상을 받으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저는 읽다가 생긴 의문이 있어 질문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