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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박항서 매직

조회 수 328 추천 수 0 2019.02.22 22: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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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매직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10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스즈키컵 우승을 이끌고, 베트남 A매치 16경기 무패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축구를 FIFA 랭킹 역대 최고로 끌어올렸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흥미롭게도 박항서 감독의 말에 따르면,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함께 수석 코치를 하면서 지도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박항서 매직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 감독은 진정성을 핵심으로 꼽았다. 철저하게 베트남인이 되고 자기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서 선수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진술은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지 않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히딩크 감독 역시 비슷하게 현지화를 실천하는 리더십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박항서 매직히딩크 매직의 베트남 판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히딩크 매직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열망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마법의 주문에 담겨 있는 의미는 2002년을 다시 한 번 불러내고 싶은 열망이다. 2002년은 우리에게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연호할 수 있게 만든 계기였다. 그 이전까지 시달리던 국가 정체성의 문제를 단번에 잠재운 것이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였다. 어떻게 보면, 사건을 통해 한국은 드디어 선진국또는 정상국가의 언저리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 횡행하던 역사 허무주의를 날려버린 것이 2002히딩크 매직이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유럽을 방문하면 반드시 참관하고자 하는 유명한 축구리그들이 대중문화로 인지되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였다.

한때 우리에게 약소국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켰던 독립운동같았던 축구가 프로축구의 이미지로 재편된 것도 히딩크 매직덕분이었다. 이른바 애국심이 아니라 축구 자체를 즐기는 축구팬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그때부터 확산되었다. 그러나 박항서 매직이 재차 증명하듯이, 애국심과 축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히딩크 매직의 본질도 사실은 애국심이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서서 세계 최강의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2002년 월드컵이었다. 여기에 선명하게 국가의 이미지가 박혀 있다. 이 사실을 누락하고 한국 축구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항서 매직이라는 명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의 축구 열풍은 분명 국가의 재현을 빼놓고 이해할 수 없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의 클럽축구팀을 맡고 있었다면 이렇게 주목 받진 않았을 것이다.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맡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사실에서 박항서 매직을 호출할 때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한국 대 베트남이라는 국가 대 국가의 표상을 불러낸다. 한국인이 타국에 가서 성공했다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국은 한국이 한때 전쟁에 참여했던 국가이다. ‘박항서 매직에서 이 역사적 배경은 깨끗이 소거된다.

물론 스포츠는 정치를 얼버무리는 수단이다. 스포츠를 소프트파워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소프트파워를 앞세운 한류 침공을 주장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어떤 이들은 한국의 문화산업이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독재 국가들의 위정자들에게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는 아편으로 이용당한다고 비판한다. 문화가 소프트파워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주장들은 일정하게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한때 1980년대 한국에서도 3S정책이라고 해서 문화산업을 이용한 국민의 통제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소프트파워로 쉽게 정리하기 어렵다. 문화는 권력관계로만 순환하지 않는다.

박항서 매직히딩크 매직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동일한 열망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열망은 무엇일까. 한국의 자본주의와 베트남의 사회주의가 만나는 지점은 무엇일까. 그 공유의 지점에 민족이 있을 것이다. 베트남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수단으로 축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이방인박항서가 숭고대상인 민족을 가시화하는 존재로 서 있다. 이 원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의 우리를 만들어내는 민족은 이방인을 통해 현시된다. 마치 우리에게 히딩크가 그랬듯이, 박항서 역시도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의 의미를 보여주는 낯선 신체’(a strange body)로 인입된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박항서 매직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은 삼성의 베트남 진출이다.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삼성 취업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듯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특권이다. 삼성이라는 동경의 대상과 박항서 매직은 연동한다. 여기에 한류는 철저하게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일체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이 근대의 쾌락원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박항서 매직은 역설적으로 지금 베트남이 처해 있는 현실들을 거울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회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경제가 서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 모순을 봉합할 문화적인 기제(機制)가 바로 민족주의인 것이다. 하나의 민족-국가로서 베트남은 부재한 민족을 국가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고, 여기에 박항서 매직이 말 그대로 마법처럼 강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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