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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한병철과 헬조선

조회 수 4726 추천 수 0 2017.03.21 16: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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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교수의 특강이 모종의 '퍼포먼스'였던 모양이다. (참고 글) 이 문제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린 평가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철학자의 객기" 정도였는데, 이를 두고 벌어지는 풍경이 자못 심각해서 짧게 몇 마디 보태고자 한다. 참석한 관객들의 '증언'과 이후 알려진 정보들에 따르면, 저자는 출판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본인의 강연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미리 주문해놓은 것을 봐도 무엇인가 특별한 계획이 그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그친 느낌이다. 내가 보기에 이 해프닝에서 재미있는 건 한병철 교수의 기행보다도 그의 특강 이후에 벌어진 관객들의 반응이다. 왜냐하면 한병철이란 개인 자체가 그렇게 한국적 상황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병철 같은 '에고만땅가이'는 한국에 흔하디 흔하다. 강신주만 해도 무례한 퍼포먼스로 치면 한 퍼포먼스하지 않나. 몇몇 감상문(?)들을 훑어보니 대체로 평은 둘로 갈린다. 크게 나눠서 소비자를 우롱했다고 보는 소비자권리주의적 입장과 그 소비자권리주의를 비웃는 고고한 예술적 지양이라고 보는 부르주아 교양주의적 입장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전자는 쾌락의 평등주의라는 한국 특유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후자는 엘리트주의에 입각해 고급한 예술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옹졸한 소비자권리주의의 폭력을 비웃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쾌락이라는 공유할 수 없는 '특이성'을 서로 평등하게 나누자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고 '천원'을 돌려주겠다는 아리송한 대답을 한 한병철 교수의 태도는 쾌락 원칙을 거스르는 '불쾌한 응대'였을 것이다. 부르주아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면 특별히 고민할 문제는 없다. 한병철 교수의 예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양 없는 관객들은 애초에 그 자리에 오지 말았어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어중이떠중이들까지도 지고지순한 예술에 한마디씩 거들고야마는 미개한 헬조선의 현실이 문제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더라도 한병철의 행동을 '자유로움'으로 해석하는 관점이다. 자유롭게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한국은 이 소비자들에게도 헬조선이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존재는 한병철 교수처럼 헬조선의 경계를 넘어 '자유로움'의 자격을 획득한 '능력인'이다. 그만한 지위와 자격(베스트셀러작가이자 유럽강대국 대학에서 교수로서 가르치고 있는 세계적 사상가)을 갖춘 '식민지 개룡남'의 권위를 부러워하는 시선(욕망)에서 전자와 후자의 긴장관계는 해소되어버린다.  

한국 부르주아 주체의 한계를 넘어선 자본주의 너머의 '자아 이상'은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라 이처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현신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아시아적 자유주의의 종착역이 이를 관통한다. 공동체는 없고 오직 생존을 위한 개인의 경쟁만이 존재하는 이 자유주의는 결국 '강자 생존'이라는 전도된 다윈주의의 21세기 판본에 지나지 않는다. 줄곧 주장해왔지만 이 민주적 유물론이야말로 한국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근본이념이라는 생각이고 한병철이라는 헬조선을 떠나 무사히 코즈모폴리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존재가 몸소 이를 다시 증명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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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asd

2017.03.21 17:43:06

출판사의 사과문을 읽어보면 한병철씨와 "그런 식"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한 게 아니고, 강연 자체를 합의한 것일 뿐인 듯하네요. (한씨의 상황을 미리 파악하지 못 했다고 썼습니다.) 한 씨의 강연(?) 내용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출판사와 합의된 건 아닌 듯 하네요.
전체적인 논지에는 동감합니다.

이택광

2017.03.22 14:08:49

네 그렇군요. 내용을 좀 수정했습니다.

소년의노래

2017.03.24 10:41:51

http://blog.naver.com/meow1121/220964300380 해당 블로거가 이런 반론을 제기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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