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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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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할 시기는 격동이라는 한 단어로 담아내기에 너무도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후 세계 질서를 구축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제일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원인 제공자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사실상 전후 세계 질서가 표방했던 개방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점차 폐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야말로 개방주의를 기치로 내건 전후 세계 질서에 가장 잘 적응해온 아시아 국가 중의 하나였다. 산업화의 완성에 그쳤던 다른 아시아 신흥국가들의 발전과 비교해서 한국은 미국적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도입해서 내면화한 비서구국가라고 부를 만하다. 일각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 성공한 모범으로 추켜세워지기도 했는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평화시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경제적으로 편입되는 것 못지않게 그 이념적인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공리적 규범으로 삼게 된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외면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전후 국가 건설은 이제 본격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박정희 체제가 내세웠던 수출 주도의 성장모델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물론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재빨리 트럼프 정부의 요청에 맞춰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탄핵정국이라는 내부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탓인지 국가적 전망을 새롭게 고민해야할 당사자들인 정치권은 여기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소한 대선 잠룡이라고 불리는 이들만이라도 이에 대한 대책들을 내놓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겠지만, 4차 산업혁명 같은 공허한 구호만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언론조차도 누가 유력한 후보인지 점찍기에 바쁠 뿐 정작 그 후보가 집권 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정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한가하게 앉아서 우리 편 이겨라응원전이나 펼칠 분위기는 아니지 않을까.

반복해서 말하자면 미국이 국제주의적 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 때문이 아니다. 트럼프는 이런 분위기를 현실로 바꾸고 있는 매개자일 뿐이다. 트럼프는 60년대 복지국가에서 누렸던 지위를 되찾고자 하는 몰락한 백인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욕망을 체현하고 있는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박근혜가 그랬듯이, 트럼프 역시 미국이라는 증상을 계속 즐기기 원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이었다. 4년 전 한국에서 박근혜라는 증상은 70년대 고도성장의 단물을 그리워하는 유권자들의 욕망을 잠시 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그에 대한 탄핵이 말해주듯, 이 증상은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 났고, 한국 유권자들은 즐거움을 계속 유지시켜줄 다른 증상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그 증상은 처음부터 박근혜라는 증상과 단절해야 가능하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박근혜에서 얻고자 기대했던 즐거움을 실현해야하지만, 결코 박근혜라는 증상과 같을 수 없는 이 동그란 네모는 분명 형용모순이다. 따라서 차기에 누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든 그는 박근혜보다 더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체제의 불가능성이라는 자명한 현실에서 다시 박정희 시절에 좋았던 것을 약속해야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박근혜의 청산이 곧 박정희 향수의 종언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한국이 자본주의라는 경제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박정희 향수는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박정희 향수는 남아 있겠지만, 박정희 체제는 결코 다시 실현될 수 없다. 게다가 수출 주도 성장이라는 박정희 체제의 유산도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국제질서의 재편이 목하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큰 정치의 전망을 누가 내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한국의 유권자들은 그 전망을 미래 정치의 희망으로 채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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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삐로리

2017.02.05 20:26:41

동감임다
대선 출마할 사람들 인터뷰 같은거 들어봐도 도대체 아무 구체적인 전망이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누구 인터뷰 들어보니 아주 인물이 괜찮더라, 지지해야겠다, 이러고 있고 (이건 주로 진보계열.) 보수쪽들은 뭐 예전 그대로 삼국지 스타일 인물관 가지고 황교안이 대세다 이런 얘기만 반복할 뿐이고. 깜깜하네요.

소년의노래

2017.02.05 23:27:09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대립일 뿐, 정치다운 정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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