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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100만 인파의 의미

조회 수 4299 추천 수 0 2016.11.16 16: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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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의 인파가 서울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서울이라는 장소성을 넘어선 ‘시민들’의 집결이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인터넷은 물론 지상파 방송을 타고 생중계되었다. 누구는 봉기라고 했고, 누구는 거대한 콘서트 같다고도 했고, 누구는 엄청난 인파에도 폭력 없이 평화롭게 끝난 시위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고도 했다. 여하튼 언론들은 100만이라는 숫자와 질서정연하게 끝난 비폭력 평화시위를 강조했다. 이렇게 100만 명의 인파가 청와대를 ‘포위’한 듯 연출한 보도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장관은 SNS에서도 펼쳐졌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집회에 나간 인증 사진으로 봇물을 이루었다. 가족 단위로 참여해서 자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부모들도 없지 않았다. 텔레비전 인터뷰에 등장한 어떤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역사적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에 좋을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종편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정치평론가는 6월 항쟁 때 서울역에 모인 인파를 회고하면서 “그때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지금 다시 100만 인파가 운집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법원도 청와대 코앞까지 인파가 진출할 수 있도록 이례적으로 허락했다. 그토록 소원이던 청와대를 바로 볼 수 있는 지점까지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 법의 경계 너머를 나아가려는 몸짓은 있었지만, 누구도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논란이 있지만, 이 문제는 시위에 대한 국가폭력의 대응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시위를 하는 이들은 없다. 이런 행동은 시위라기보다 테러나 약탈일 것이다.

갑자기 국가폭력의 태도가 바뀌었기에 비폭력 시위가 가능했다. 문제는 국가폭력이다. 시위대 내의 폭력분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질문은 "왜 국가폭력이 대응을 하지 않나"라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시민들’은 11월 12일이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예감하는 듯했다. 암묵적으로 ‘시민들’은 100만 집회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쳐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천만관객 영화처럼 그렇게 집회도 100만 명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너도 나도 믿었다.

광화문에 모인 100만 명이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체제 전복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법원이 허락한 선을 거리낌 없이 넘어갔을 테다. 100만 명이 원한 것은 체제 전복이 아니라 체제를 정상적으로 다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만 제거하면 이 체제는 정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여기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농담처럼’ 이 정부는 대통령 없이도 4년을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독대’하기 쉽지 않던 정부였다. 대통령은 각료들과 국정을 논의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빠진 상태에서 이들은 각자도생했다. 어떻게 말하면 대통령은 언제나 이미 이 체제 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상태가 비정상적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상 자유민주주의의 구조가 바로 이렇지 않은가. 통치하되 주권자는 보이지 않아야한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대통령과 같은 행정수반은 그 권력을 ‘대리’할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인격은 보이지 않아야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이 역할을 누구보다 잘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통령은 아예 사생활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인격화한 대통령이라기보다 상가 앞에 세워져 있는 등신 광고사진 같은 느낌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최순실과 대통령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이 모든 것은 갑자기 ‘기만’으로 판명 났다. 비인격성에 머물러 있던 대통령이 인격화하면서 ‘시민들’은 그 평범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길라임’이라는 가명은 이런 대통령의 탈신비화에 불을 질렀다. 자신들이 즐기는 것을 함께 즐기는 대통령의 모습은 ‘경악’을 자아냈다. 온갖 패러디 영상과 농담이 인터넷을 물들였다. 갑자기 대통령의 이미지는 ‘레이저를 발사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에서 ‘보톡스나 맞으면서 희희낙락하는 유한부인’으로 전락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이런 이미지 반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종편에 출연한 정치평론가들은 연일 “강남 아줌마 최순실에게 놀아난 국정”이라는 표현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대통령 퇴진’을 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체제에 순치한 평화집회’여서 문제라기보다, 이처럼 과거의 귀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87체제가 만들어놓은 무한루프는 언제 끝날 수 있을까. 100만 명이 모인 것만으로 사건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87년도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그 ‘100만 학도’가 이제 민중가요와 만장을 버리고 대중가요를 부르는 ‘100만 시민’으로 바뀐 풍경에 가을이 담겨 있었다.

체제는 언제나 내재적인 기원을 가진다. 트럼프의 경우를 보라. 그는 이제 막말과 스캔들로 얼룩진 미국의 대통령이지만, 그를 둘러싼 이런 장막들을 걷어내면 지극히 평범한 미국 부유층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는 세계 부의 40%를 독차지한 5%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낙오한 ‘무’의 집단을 대변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트럼프야말로 미국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본질인 것이고, 이 본질이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자 언캐니(uncanny)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지금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상성’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개인의 특성으로 환원하는 문제들을 사실상 이 체제를 구성하는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대통령의 ‘비정상성’이 드러내는 것은 박근혜 정부 자체를 탄생시킨 그 보수 정치체제의 공백이다. 이 공백은 포퓰리즘의 에너지이지만, 결코 보수주의로서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의 과잉이다. 박근혜는 그 과잉을 대표하던 기표였다. 이제 그 기표가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상상과 실재 사이에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광화문에 모인 100만의 인파는 이 균열의 외설성을 견디지 못하고 너도 나도 뛰쳐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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