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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은 사회적 구조와 의미망에서 발생한다는 전제 하에, 한 사람이 처한 사적고통을 공적언어로 해석하는 글을 인터뷰나 에세이로 쓸 예정이다. 말의 억압 시대,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글쓰는 사람.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등에서 글쓰기 수업을 열어 자기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며 자기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쓰기의 말들> <폭력과 존엄 사이> 등을 펴냈다.



민지(가명)는 수업시간에 자주 엎드렸다. 의견을 물어도 묵묵부답.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더는 말을 시키지 않았다. 물잔처럼 놓여있던 민지는 할 말이 생각나면 남의 말을 끊고 불쑥 끼어들었다. 주장도 의견도 아닌 그 파편적인 말들을 나는 팔뚝에 튄 물방울 닦듯 무심히 대꾸하거나 못 들은 척 넘겼다. 한번은 민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쌤은 할 말 없을 땐 말 시키고 말하고 싶을 땐 안 시켜요.”


고루 발언 기회가 돌아가는 ‘말의 평등’을 우선시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민지는 ‘어른들’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했다. 아는 얘기가 나와도 끼어들 순간을 못 찾겠다고, 다른 사람 말이 끝나고 말하려면 안 끝나고, 끝나면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는 거다. 말수 적던 아이가 맞나 싶게 눈을 맞추고 조리 있게 말을 했다. 


십대부터 삼십대까지 모인 여성 쉼터에서 민지는 최연소였다. 열다섯살. 아무래도 경험이나 지식, 언변 등 토론 자원이 취약하다 보니 말의 권력에서 밀렸을 것 같다. 나는 이야기해줘서 고맙고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만큼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니까 앞으로는 발언을 원하면 손을 들자고 제안했다. 이후 민지는 엎드리지 않았다. 


수업 내내 입을 다문 이도 있었다. 아마도 성격이 소심한가 싶어 넘어갔다가 물어도 응답이 없으니 화가 났다가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추측했다가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속을 몰라 난감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다. 사람 마음 헤아리는 눈치는 좀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 공급되지 않자 나는 관계의 뜨개질에서 첫 바늘도 꿰지 못했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꺼내 읽었다. 거기엔 ‘수동적 저항’의 대가가 나온다. 주인공 바틀비는 면벽 묵언수행 급, 하는 말이라곤 한마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가 전부다. 변호사 사무실에 고용된 필경사인 그는 어느 날부터 일손을 놓는다. 항상 거기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 변호사는 그를 어르고 달래고 연민하다가 분통을 터뜨린다. 좀 합리적으로 되라고 애원하지만 “송장처럼 창백한” 바틀비는 미동도 않고 입을 뗀다. “현재로선 좀 합리적으로 안 되고 싶습니다.”(77쪽) 


소설을 읽다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안 할 거면 왜 안 하는지 적어도 이유는 말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 모든 걸 안 하고 ‘끝’까지 버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속 시원한 해명 없이 소설은 장탄식으로 끝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102쪽)


그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 (좋은 소설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생각했다. 처음엔 바틀비가 이유도 없이 일하지 않는 게 이상했는데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다. 바틀비는 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가, 그럼 나는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타인을 이해시키고 이해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해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헛것 아닌가….


역시 미국 단편소설인 샬롯 퍼긴스 길먼의 <누런 벽지>에는 인간 이해에 서툴다는 점에서 <필경사 바틀비>의 변호사와 닮은꼴 인물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 후 병을 앓는데 아이도 돌보지 못할 만큼 몸이 아프다고 말하지만, 높은 신분의 내과의사인 남편 존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시적인 신경성 우울증과 약간의 히스테리로 진단하고 휴식 요법을 권한다. 


“존은 내가 실제로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걸로 그는 만족이다.”(163쪽) 


남편은 아내에게 이유를 묻지도 듣지도 않고 자기가 알아서 판단하고 통제한다. “나는 의사야. 내가 알아.”(173쪽)라며 아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잘라내고 무조건 쉬어야 한다며 글쓰기 같은 활동을 금지한다. 남편이 너무 현명해서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나는 어떤 식으로든 말해야 한다”(170쪽)고 여겨 방문을 잠그고 몰래 글을 쓴다. 


좀 합리적이 되라고 말하는 변호사, 네 병은 내가 안다고 말하는 의사. 그걸 꼭 알려주지 않으면 하나도 모르고, 알려주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은 이 시대의 전문가들이다.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기 위해 진득한 노력을 기울이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해버리는 재주에만 능하다. 


그들에게서 글쓰기 강사라는 이름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나를 본다. 그나마 엎드린 이유를 말해주었던 민지와 안 하고 싶은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아이에게,  매사 논리를 따지고 원인을 분석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바틀비가 변호사에게 했던 말이 나를 향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79쪽) 


그간은 글쓰기 수업을 열열히 원하는 이들만 만났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중 비자발적 집단과의 수업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와중에 얼굴이 자주 화끈거렸는데, 내가 평소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게 생각나서다. 실상은 목소리 없는 자를 좀처럼 못 견디고, 논리적 전개가 아니면 상황 이해에 서툴고, 원활한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면 구성원을 제쳐두기도 하는 사람이 나였다. 우선은 불안과 조급 없이 목소리 없는 이들과 그냥 있는 연습부터 필요했던 것이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 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 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창비세계문학 미국 – 필경사 바틀비> 창비 8936471759_1.jpg


*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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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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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0
  • 조회 수 817

고양이 키우기에서 고양이 되기로

  • 은유

수레 집에 혼자 있겠구나. 밖에서 전화하면 딸아이는 정정한다. 아니, 무지랑 둘이 있어. 아, 그렇지 무지가 있었지. 자꾸 까먹는다. 무지는 우리집 고양이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라서 나는 아이 혼자 있다고 여기고, 고양이를 자신과 동등한 개체로 여기는 딸아이는 둘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기가 이토록 어렵다.  3년 전, 딸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한 장 보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품고 있는 장면이 ‘명화’ 같았다. 친구의 지인 새끼 고양이들인데 다 입양이 결정됐고 한 마리만 남았다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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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사랑은 없다 file [1]

  • 은유

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기회에 관심이 많다. 이제껏 사랑을 몇 번 해봤느냐는 물음을 실없이 던져보기도 한다. 상대는 거의 머뭇거린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기준 설정부터 간단치 않은 거다. 내게 사랑은 나 아닌 것에 ‘빠져듦’ 그리고 ‘달라짐’이다. 우연한 계기로 엮여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면서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게 되는 일. 연애가 그랬고 공부가 그랬다. 이전과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계기적 사건이 사랑 같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에는 내 어설픈 사랑 연구에 맞춤한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온...

  •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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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수만큼 우리는 돈을 번다 file

  • 은유

개강 후 두 번째 수업에 과제 발표자가 결석했다. 과제 부담일까, 개인 사정일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저, 오늘 안 오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지난주에 수강 취소하고 환불받았는데요.” 예기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나는 전달을 못 받았다며 얼버무리고 끊었다. 문자로 남길 걸 괜히 전화했나.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책망했다. 그날 전화를 끊고 수업을 잘 마쳤다. 집에 가는 길, 얼마 전 통신사 해지방지팀에서 일하다가 자살한 현장실습생이 떠올랐다. 취소·환불이란 말들이 귓속으로 여과 없이 파고드는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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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맞벌이 하시죠? 수레는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면서 보내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학부모가 되고부터 핸드폰 액정에 학교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철렁한다. 학교는 어쩐지 불길의 정조를 몰고 온다. 담임의 부름을 받고 불안을 안고 몇 시간 후 빈 교실에 마주 앉았을 때, 담임은 물었고 나는 순간 깜깜했다. 뭐든지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말할 게 없었다. 월수금 영어학원 간다고 둘러댔지만 고작 한 시간 반. 끝나면 아이는 또 무얼 할까.   상담 중 담임이 말했다. 지난주 과학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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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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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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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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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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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0483

한 병 딸까요? file

  • 은유

배우 윤여정이 ‘박카스 아줌마’로 나온다기에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챙겨보았다. 윤여정이 맡은 배역은 소영.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삼팔3.8따라지’(전쟁 고아)로 태어나 식모살이, 공순이, 양공주 등 여러 직업을 거친다. 젊었을 때 미군 흑인 병사와 살림을 차렸고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 해외로 입양 보낸 사연이 있다. 하필 전쟁통에 삶에 제약이 많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필두로, 살면서 몇차례 난폭한 우연을 통과하자 남은 거라곤 몸뚱이 뿐. 65세 여성 노동자는 가방에 박카스를 챙겨넣고 파고다 공원 일...

  • 2016-11-14
  • 조회 수 2966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file [20]

  • 은유

나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중3 초에 그 학교를 알게 됐고 '공부 잘해야 가는 학교' '취업 명문'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까스로 합격했고, 잠실에서 무악재까지 왕복 서너 시간 등하굣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다녔다. 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일찌감치 따두었고 2학년 올라가서 5월에 국내 최대의 증권회사로 취업이 결정됐다. 그때부터 책 보고 시 베껴 쓰고 음악 듣고 학교 건물 뒤편 우애동산에서 낙엽 주우면서 한량처럼 놀았다. 금융권에서 여직원은 여상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여상 중에서도...

  • 2016-11-10
  • 조회 수 38984

기죽지 않는 자기 소개 file

  • 은유

"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70살인데 결혼을 안 했고 자식이 없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지역 평생학습관 글쓰기 수업 첫시간, 한 여자 학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일흔 살에 비혼 여성? 내용의 희소성보다 그 사실을 서슴없이 터놓는 당당함에 처음엔 당황하고 곧이어 감탄했다.  일정한 나이에 학교 가고 취업 하고 결혼 하고 자식 낳고 사는 인생 행로를 가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시시때때로 불편을 겪는다. (중년 여성은 무조건 ‘어머님’으로 불린다.) 왜 남들처럼 살지 않는지 설명을 요구받는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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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너희들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종족들이에요.” “무조건 남자들은 앞으로 살면서 여자 말을 듣고 산다 생각하면 중간은 간다.”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잘 보살펴 달라.” “사람이 아니고 개다 생각하면 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김제동의 강연 동영상 자막이다. 김제동은 ‘연애할 때 싸우지 않는 법’을 특유의 입담으로 설파하고 객석을 채운 선남선녀 커플들은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박장대소다. 화기애애한 강연장 분위기를 보는 나는, 웃자고 하는 말에 땅이 꺼져라 한숨 쉰다.  김제동의 말은...

  • 2016-05-30
  • 조회 수 1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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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지하철 객차에서 장애인 아들과 비장애인 아버지를 보았다. 건장한 성인 체격의 아들은 천진난만한 어투로 목청껏 떠들고 크게 웃었다. 주변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금만 작게 말해달라고 타일렀다. 자상한 눈빛이었다. 부자지간의 대화가, 그들의 외출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다. 직업정신인데, 무수한 이야기가 깃든 얼굴, 자기정리가 된 듯 편안한 기운에 끌렸다. 어떤 일로 웃는지, 속상한지, 불편한지, 실망하는지, 어떻게 기운 차려 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매스컴에 소개...

  • 2016-05-10
  • 조회 수 597

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file

  • 은유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

  • 2016-04-15
  • 조회 수 266

절판기념회를 축하해도 되나요? file

  • 대통령

아마도 ‘국내 최초’가 아닐까 싶은 ‘절판기념낭독회’가 지난 3월 17일 역촌동 북앤카페 쿠아레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나의 첫책 <올드걸의 시집>. 이 책은 여자, 엄마, 작가로 사는 이야기에 시를 곁들인 산문집이다. 2012년 11월에 출간됐는데 출판사의 사정으로 3년 만에 절판의 운명을 맞았다. 절판이란 출판하였던 책을 더이상 펴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예기치 못한 절판 사건을 통해 지난 한달, 나는 출판 만큼이나 값진 경험을 했다.  먼저 물건 파는 법을 배웠다. 출판사에서 남은 책 100권을 내게 보내주었다. 사과 상자 크...

  • 2016-04-01
  • 조회 수 230

여가부에서 온 우편물 file

  • 은유

여성가족부에서 우편물이 왔다. 24세 남자의 무표정한 정면 측면 얼굴과 전신 사진, 주소, 범죄 사실이 담긴 ‘고지정보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것으로 성범죄자가 사는 인근 지역에 보내진다고 했다. 성범죄자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데 그 우편물은 안도감보다 불쾌감만 키웠다. ‘이웃을 조(의)심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런 행정 조처는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골목길에 나타난 범죄자라는 편견을 강화해 집안이나 사무실에 ‘상주’하는 가해자를 못보게 한다.  성범죄자는 낯선 남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

  • 2016-02-15
  • 조회 수 322

죽음과 죽음 사이 밥이 있다 file [1]

  • 은유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이웃 아줌마) 장례식으로 끝나는 수미쌍괄식 구성이다. 검은 상복의 여인 네 명이 주인공. 15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통해 만나게 된 이복 여동생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다. 바닷가 마을과 집이 주무대인데 잔멸치 덮밥, 카레 등 식사 장면이 많이 나와 군침을 돌게 하니 이 작품을 ‘먹방 영화’로 추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내게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 밥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가족 영화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없음으로 채워진...

  • 2016-01-05
  • 조회 수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