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통은 사회적 구조와 의미망에서 발생한다는 전제 하에, 한 사람이 처한 사적고통을 공적언어로 해석하는 글을 인터뷰나 에세이로 쓸 예정이다. 말의 억압 시대,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글쓰는 사람.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등에서 글쓰기 수업을 열어 자기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며 자기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쓰기의 말들> <폭력과 존엄 사이> 등을 펴냈다.
시내 길가에서 뷔페 레스토랑 간판을 발견한 아이가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게 말한다. “아, 애슐리다! 또 가고 싶다.” 나는 아이에게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본 내용을 말해주었다. 딸아, 애슐리와 자연별곡 등의 이랜드그룹 계열사 외식브랜드에서 지난 1년간 4만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 임금을 84억 원이나 가로챘다단다. 그건 연차수당, 휴업수당, 연장수당, 야간수당 등 수당이란 수당은 다 빼먹은 거라고. 일 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 업체를 엄마는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딸아이는 열다섯살이다. 빨리 커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싶다고 곧잘 말하곤 한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딸아이가 지금은 먹으러 가는 사람(소비자)이지만 언젠가 일하러 가는 사람(노동자)이 될 것이다. 조직의 가장 약자인 아르바이트생이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게 어른의 임무이다. 법적 제도적 규제는 개인의 힘으로 어찌하지는 못하니, 소비자로서 나쁜 기업이 왜 나쁜지 퍼뜨리고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나의 자발적 불매운동 시작은 삼성그룹이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난 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실태와 비민주적인 기업 문화의 심각성을 알았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고 황유미의 실화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2014)을 보면서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 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저 모양일까. 돈의 논리 앞에 사람은 우습게 버려지는 게 마치 조폭 영화를 보는 듯 끔찍했다. 대학생들은 왜 저런 기업을 가장 선호할까. 인간 존중보다 고액 연봉이 좋은 기업의 우선 조건이라면 그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가. 그 후 가전제품이나 핸드폰 등을 살 때 삼성을 제외했다. 우리집은 삼성 로고 박힌 물건이 없고, 물론 아무런 불편도 없다.
삼성그룹에 이랜드그룹까지 추가된다면 소비생활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다. 브랜드 종수가 늘었으니 불편이 체감될 것 같다. 실제로 며칠 전엔 선배가 공짜 영화 티켓이 있다고 해서 만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하필 이랜드그룹 백화점 건물에 있었다. 밥을 먹으러 식당가에 가니 온통 그 계열사 브랜드였다. 시간도 촉박하고 해서 ‘나가서 먹자’고 말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고백했다. 나, 이랜드그룹 불매 시작했어! 유난스러운 거 같아 망설였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 선배도 관심을 보였고 우린 윤리적 소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새해가 밝는다. 내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은 없다.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먹고 사고 쓰고 사는 일상은 계속 될 것이다. 그때 무엇을 어떻게 왜 선택해야할지 돈을 쓰는 기준은 챙겼다. 적어도 노동자 임금을 떼먹지 않는 기업 제품을 선택하고, 프랜차이즈 업체보다 얼굴 아는 가게를 애용하고, 더불어 공존하는 법은 모른 채 공룡처럼 제 몸집만 불려가는 기업은 멀리하자고.
그러니까 땀 흘려 번 내 돈이 부를 독점하는 소수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더 따지고 더 유난을 떨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와 내 아이가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은 좋은 대통령이나 전문가가 나서서 뚝딱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저마다 일상의 아주 소소한 실천이 일궈내는 것이라고, 모든 가치와 신뢰가 허물어진 세상의 끝자락에서 나는 생각한다.
* 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