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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은 사회적 구조와 의미망에서 발생한다는 전제 하에, 한 사람이 처한 사적고통을 공적언어로 해석하는 글을 인터뷰나 에세이로 쓸 예정이다. 말의 억압 시대,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글쓰는 사람.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등에서 글쓰기 수업을 열어 자기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며 자기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쓰기의 말들> <폭력과 존엄 사이> 등을 펴냈다.



시월 이후 내 하루 일과는 ‘문단_내_성폭력’ 검색으로 시작됐다.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증언을 식후 30분 이내에 챙겼다. 꼬박꼬박 듣기로 말하기를 지지했다. 모 시인, 모 시인, 모 소설가, 모 시인은…. 술자리에서 가해지는 너절한 희롱의 말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이 어린 습작생에게 등단을 미끼로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며 접근하고 성적 탈선이 미학적 실천인 양 꼬드기고 금품 갈취를 행했다는 기함할 증언까지 나왔다. 이런 일들을 마음에 쟁여두고 살았다니 그 삶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무수한 성폭력 사건을 접하지만 늘 처음인 양 충격을 받는다. 타락한 도덕성 때문이 아니다. 개개인은 얼마든지 시시껄렁하고 생각보다 취약하다. 이것은 ‘문학’ 판에서 발생한 공공의 일이다. 내가 아는 문학은 타인의 고통에 섬세하게 관여한다. 그 일을 업으로 삼은 자들이 어떻게 이토록 가까운 이에게 집요하게 고통을 가했을까. 이 비참을 주변의 동료들은 몰랐을까. 고통에 대한 남다른 촉수를 가진 이들이 유독 이 사안에는 둔감했을까. 알고 난 뒤에는 어떤 심정일까. 물음이 빗발쳤다. 김수영의 시구대로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 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딨을까”. 


시 독자로서 속상함이 크다. ‘글에는 시를 쓰고 삶에는 침을 뱉지 말라’(나탈리 골드버그)는 격언을 지침으로 삼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도 당황스러웠다. 나는 ‘존재의 심층에 거주하는 시’를 인간 탐구와 자기 성찰의 교재로 삼아왔다. 사는 문제로 혼란을 겪을 때마다 시를 꺼내 읽었는데 문단-시단에서 문제가 일어나자 출구가 막혀버린 기분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존재의 심층까지 침투하는 성폭력 사건이다. 성폭력은 한 인간의 존엄과 일상을 간단히 뭉개버리는 일이다. 약하고 여린 존재에 감응하는 시에 대한 반역이다.


성폭력 피해는 대부분 아는 사람한테서 당한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폭력이란 것을 인지하기까지 혼란을 겪으며, 사건의 인과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자기를 의심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혹여 여지를 주었을까, 좀더 현명했다면 피했을까 자책한다. 공적인 말하기는 몰락 체험에 가깝다. 상황을 복기하고 피해를 입증하느라 폭력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자기가 말하면서 자기가 시달린다. 살아온 언행을 통째로 의심받기도 하고 주변인의 이탈을 지켜보기도 한다. 결국 피해자가 제 삶의 근거지를 떠나는 것으로 무마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피해자는 가고 가해자는 남고. 다시 찾아온 가해자의 일상은 그렇게 다시 또 성폭력의 온상이 된다.  


문단_내_성폭력은 그 질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까. 몰락에서 생성으로의 이행. 성폭력 사건에서 이것이 가능하려면 세 가지가 필수다. 자기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여성주의), 그리고 같이 들어주고 분노하고 발언하는 동료들, 품어주는 공동체가 그것이다. 


첫째 항목 말하기-해석하기는 문단의 강점이다. 예술계 성폭력 중 문단의 피해 증언이 활발한 건 피해자가 자기 상황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훈련된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말하기는 간단치 않다. 더한 고통 덜한 고통이 있는 게 아니라 n개의 사례에는 n개의 고유한 고통이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불행의 단독성’을 표현하느라 부단히 썼다 지우고 검열하고 탐색하며 뒤척일 터다. 그 지난한 ‘말하기’ 과정을 겪어내는 동안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전환과 연결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동료들의 연대는 진행 중이다. 시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교육받았고, 이제 남성 시인인 저는 문단 내 성폭력의 가해 구조를 지탱하여 왔습니다. 이처럼 가해자에 대한 비난에서 저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진실을 퍼뜨리는 일, 남성중심의 문단구조를 바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김상혁 @redinsilver) 트위터 140자를 통한 끔찍한 증언이 나오는 사이사이 동료 시인의 자기 성찰과 지지 발언도 꾸준했다. 


지난 11월엔 문단 내 성폭력 방지를 위한 작가 모임인 ‘페미라이터’가 발족했다. “성폭력·위계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겠다”, “지면과 발언권, 지위에서 비롯되는 권력을 명확하게 인식하겠다”, “문학 출판계의 성폭력·위계 폭력의 피해 생존자들을 지지하며 함께 목소리를 내겠다” 등 7가지 약속을 내걸었는데, 이를 지지하는 1차 서약 작가가 671명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문단은 피해자를 품어주고 다른 피해자를 낳지 않을 안전한 공동체일까. 상징 권력으로서의 문단은 여전히 무겁다. 문제제기하는 사람을 문제시 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어떤 집단이든 성역 없는 비판이 어렵고 ‘영향력 있는 사람’일수록 내부 문제에는 유독 침묵하는데, 문단도 예외는 아니다. 난 문단에서 진단과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길 계속 기다렸다. 내가 영향 받은 문인의 말들, 진중한 입장 표명보다도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분노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이러한 내 생각을 문단 내 지인 몇명에게 조심스레 터놓았을 때, 푸념 섞인 반론이 나왔다. 성폭력 방지와 문화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수백명 주체들이 작가 서약을 해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유명한 사람이 나서서 복잡한 상황에 대해 발언해야 문제가 정리됐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유명인 의존증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강 작가는 왜 가만히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고 ‘남성 문인들 연대라도 만들어서 입장 표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요구를 듣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타당한 지적이다. 뜨끔한 부분이 있다. 피해자와 지지자의 용감한 ‘목소리’와 유의미한 움직임을 놓치고 무작정 ‘말씀’을 기다린 건 아닌가 나 역시 반성했다. 그런데 이런 측면도 있다. 세월호 사건, 국정 농단 사태 등 한국 사회에 일어나는 온갖 부정의와 비합리에 대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과 분석을 내놓곤 하던 문인들이 자기 동료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 혹은 예비 동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성폭력 사건은 ‘우리 안의 세월호’가 아닌가. 


이것은 유명세에 대한 기댐일 수도 있지만 익숙한 언어로 복잡한 사안을 정리해왔던 독자로서 바람이기도 하고, 혹시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식으로 성폭력 사건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여성으로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조바심이기도 하다. 이것이 의존적인 태도라는 것을 이번에 깨우쳤다. 이 수동성을 넘어서는 독자로서 주체적인 실천을 나는 고민한다. 



문단_내_성폭력을 접한 독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 피해 증언 경청하기. 진실 알리기. 진짜 시와 가짜 시, 좋은 평론과 나쁜 평론을 가르는 안목 키우기. 나는 페미라이터 홈페이지에 나온 작가 서약 명단에서 내 책꽂이에 있는 시인과 평론가의 이름을 대조해보았다.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의 기자회견문 등 다른 형태의 움직임도 찾아보았다. 『문학동네』 『문예중앙』 등 각종 문예지 겨울호가 특집에 수록된 문단 내 성폭력과 여성 혐오 관련 글을 읽어보려 한다. 문예지의 폐쇄성과 현학성을 넘어서는 글들, 폭력이 일어난 일상의 구석진 자리까지 흘러들어가는 유연하고 낮은 목소리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수영은 “심금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사회는 단순한 전달과 노예의 언어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며 “인간 사회의 진정한 새로운 지식이 담겨 있는 언어를 발굴하는 임무를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멸망하는 나라”라고 일갈했다. 새로운 언어 발굴, 낡은 언어 교체, 그것은 문단_내_성폭력 피해자의 말하기에서 이미 시작됐다. 문단_내_침묵은 깨지고 있다. 이 오래고 두터운 침묵의 지층에 균열을 내는 더 많은 증언들, 더 많은 지지의 목소리가 눈처럼 어지러이 떠돌고 쌓이길, 그것이 강의실이든 술자리든 회의실이든 일상의 풍경을 바꿔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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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화웹진 채널예스에 실렸습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2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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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고 쓰지 말고 file [5]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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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file [20]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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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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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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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말 file [2]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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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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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애인 아버지가 된다 file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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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10
  • 조회 수 696

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file

  • 은유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

  •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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