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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은 사회적 구조와 의미망에서 발생한다는 전제 하에, 한 사람이 처한 사적고통을 공적언어로 해석하는 글을 인터뷰나 에세이로 쓸 예정이다. 말의 억압 시대,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글쓰는 사람.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등에서 글쓰기 수업을 열어 자기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며 자기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쓰기의 말들> <폭력과 존엄 사이> 등을 펴냈다.

그렇게 장애인 아버지가 된다

조회 수 689 추천 수 0 2016.05.10 16:06:28


지하철 객차에서 장애인 아들과 비장애인 아버지를 보았다. 건장한 성인 체격의 아들은 천진난만한 어투로 목청껏 떠들고 크게 웃었다. 주변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금만 작게 말해달라고 타일렀다. 자상한 눈빛이었다. 부자지간의 대화가, 그들의 외출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다. 직업정신인데, 무수한 이야기가 깃든 얼굴, 자기정리가 된 듯 편안한 기운에 끌렸다. 어떤 일로 웃는지, 속상한지, 불편한지, 실망하는지, 어떻게 기운 차려 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매스컴에 소개되는 동정과 차별의 대상인 장애인 말고 다른 이야기들, 지하철 한 칸에 섞여 타는 동료 시민으로서, 애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도 장애인 아들을 두었다. 오빠가 삼십대 초반 급작스런 질병으로 장애를 얻었다. 신앙심 깊고 인정 많은 엄마는 평소 약하고 병든 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당신의 아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자 크게 절망했다. 엄마에게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지 인정의 실체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설명했다. “얘가 ○○대를 나왔는데 이렇게 됐다.”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나는 민망하고 애처로웠다. 그건 장애인이라는 ‘비정상성’의 노출을 학벌 자원이라는 ‘정상성’의 외투로 가려보려는 안간힘 같았다. 장애인은 못배우고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편견의 그물에 두 분 스스로가 휘적휘적 발이 걸려 넘어지고 상처 입었다.

자유기고가로 일하며 난 장애인과 자주 만났다. 기업체 사보와 공공단체 기관지에서는 ‘소외된 이웃’을 향해 손길을 내미는 사회공헌 활동이 단골 메뉴다. 장애인 학교 체육대회에 취재를 갔을 때다. 그날 만난 학부모가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지원이 끊기고 다닐 곳이 없다고, 아무 힘 없는 문필하청업자인 내게 이십여분을 하소연했다. 청각장애인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는 노트북을 사이에 놓고 한줄 한줄 질문과 대답을 입력해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창작 작업을 상상하고 기록했다. 뇌병변 장애인 인터뷰에선 활동보조인이 통역을 도와주었다. 더치커피처럼 한 단어씩 느리게 떨어지는 말들을 난 처음 맛보는 커피처럼 찬찬히 음미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긴 생머리의 여성 학인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걸레 짤 힘도 없이 손목이 아플 때가 많아서 서류에 자신을 장애인으로 표시한다고.

‘장애인 페미니스트’ 해릴린 루소는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에서 자기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놓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작 몇 층 이동하는 동안에도 익명성을, 잠깐의 고요를 누릴 권리가 없는 불편을 토로한다. 구조적 문제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한다. 일과 책으로 장애인의 언어를 접하며 내 편견은 서서히 무너졌다. 존재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정상적인 삶이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 아니라면, 장애인이 처한 곤란을 정확한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매우 임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의 장애는 극복할 수 없다고 들었다. 사실 비장애인도 평소 뭘 그리 극복하고 살지 않는다. 해릴린 루소 말대로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가 있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선, 비장애인도 닦달당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였다면 우리 부모가 그토록 절망했을까. 

지하철에서 목청이 커지는 장애인을 만나면? 장애인이 ‘극복’할 수는 없지만 비장애인이 ‘수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짜증내지도 힐끔거리지도 못본 체하지도 않으면서 익명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기술은, 대부분 관계의 문제가 그렇듯 내가 풀어야 할 몫 같다. 그래서 난 뭐에 끌린 듯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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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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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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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촛불 집회는 수업을 마친 후 학인들과 동행한다. 20대부터 50대까지 삼삼오오 몰려간다. 일전에 문화공연에 정태춘이 나왔을 때 사오십대는 작은 탄성을 냈고 이십대는 물었다. “정태춘이 누구에요?” “음유시인인데, 우리나라의 밥 딜런 같은 존재랄까?” 난 가사도 음색도 최고인 가수라고 한껏 들떠 소개했다. 설명을 듣던 친구는 검색 본능에 따라 스마트폰을 켜더니 날 보여준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정태춘. 집회에 온 젊은이들이 ‘늙은 가수’를 모르는 것이다.  지난 주말 집회에는 남성 댄스그룹 DJ DOC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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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이 ‘박카스 아줌마’로 나온다기에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챙겨보았다. 윤여정이 맡은 배역은 소영.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삼팔3.8따라지’(전쟁 고아)로 태어나 식모살이, 공순이, 양공주 등 여러 직업을 거친다. 젊었을 때 미군 흑인 병사와 살림을 차렸고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 해외로 입양 보낸 사연이 있다. 하필 전쟁통에 삶에 제약이 많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필두로, 살면서 몇차례 난폭한 우연을 통과하자 남은 거라곤 몸뚱이 뿐. 65세 여성 노동자는 가방에 박카스를 챙겨넣고 파고다 공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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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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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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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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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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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689

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file

  • 은유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

  • 2016-04-15
  • 조회 수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