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강성원
(인터뷰는 민미협 30주년 기념 <인터뷰 집>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여차 저차한 이유로 못 실렸음이 글은 원래의 인터뷰 글에서 <인터뷰 집취지 관련 인터뷰 도입부는 삭제됐음그밖에 인터뷰 중간 중간에서도 <인터뷰 집관련 내용은 삭제됐음
sns에 올리는 일은 성완경 선생님의 허락 하에.
인터뷰 내용 중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내용에 대해 질문할 때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문장을 축약하거나 풀어쓴 경우도 있지만선생님이 쓰신 문장 그대로 드러내면서 질문하려고 했음.
이 글에서 언급한 성완경 선생님의 책논문에세이 등 글 목록은 함께 첨부한 <현실과 발언기념 자료집과 성완경 선생님 <평론집>에 실린 선생님 글 목록에 들어있음.
---------------------------------------------------------- 

23424342.JPG

성완경 선생님과 이런 개인적인 욕심의 인터뷰를 하게 되어 저로서는 매우 뜻깊은 일이라 여기며 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먼저 성완경 선생님과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게 된선생님이 그간 활동하신 내용에 대해형식적인 순서로잠깐 짚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현실과 발언창립동인이시자 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운동을 이끌어 오신 1세대 이론가이자 실천가이십니다이후 지금까지 우리 미술문화의 담론형성과 그 변화발전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미술과 미술비평이 나아가야할 길을 찾아오신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이십니다교육자로서도 미술교육의 새로운 이론과 실천을 이끌어내시면서 교육현장을 지켜오셨고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영화출판 등 문화산업 현장의 발전을 위해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비판적 이론의 개입으로 우리 시각문화지평을 확장발전시켜 오셨습니다
선생님의 그간의 이런 작업들 전반에 대해 제가 직접 듣고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저 개인으로서는 무척 기쁘고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입니다사실 성완경 선생님이 행해오신 숱한 발언들과 글 속에 담긴 사상과 창조적 감각과 시각문화 전반에 걸쳐 그 저변을 다지고 발전시키기 위해 해오신 사업들을 제가 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저의 그간의 관심과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저의 경우 90년대부터 그림마당 민 마지막 기획실장으로 사실상 민중미술현장에 접했던 것이기에성완경 선생님에 대한 구술사적 인터뷰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성완경 선생님이 개입 해오신 시각문화 영역 전체에 걸쳐 혹은 인터뷰를 진행하기 보다는 제가 그간 관심 있게 지켜본 미술평론가 성완경의 모습을 제 관점 중심으로 들여다보는 인터뷰를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파악한 해방 이후 최대의 미술평론가이자 최고 큐레이터본격적인 가장 뛰어난 큐레이터이시고 미술평론가이신 성완경의제가 생각하는 특이점이 과연 성완경 선생님의 비평적 시각의 중심인지를 직접 선생님에게 되물어가면서 확인하고 싶은 인터뷰에 가깝습니다
제가 궁금해하는 성완경이라는 개인의 특이점의 측면에서 성완경 선생님의 한국 현대미술관과 민중미술관결국 성완경이라는 개인적 정체성의 시각에서 보이는 한국현대미술과 민중미술의 모습을 들어보고자 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미술평론가 성완경과성완경이 보는 한국현대미술과 민중미술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구체적으로는 민중미술 1세대 미술평론가의 활동목적과 어쩌면 거기에 담긴 좌절이라면 좌절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들도 찾아보고 싶습니다
사실 특이점이라 말씀 드렸지만특이점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것은 선생님의 특이한 정체성인데다시 말해 제가 보는’ 선생님의 정체성에서 선생님의 시각의 특이점이 나온다고 보는건데선생님의 교양과 취미가 남다르다는 전제에서 선생님의 그 교양과 취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러한 정체성과 한국동시대미술나아가 민중미술과의 관계를 그려보자는 인터뷰입니다
저는 성완경 선생님의 교양이 그 흔한 말로 오래된 미래같은, 70년대 이후 우리 현대사의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깃발 같았고 그래서 특이점이었지만미술평론가 성완경으로 상징되는 그 시대정신과 체계는 지금도 사실상 여전히 오지 않은 시대정신이요 체계로 보입니다
성완경 선생님만이 시대정신을 담지하고 계셨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성완경의 시각은 동시대 미술교양의 질적 피라미드의 첨예한 꼭대기에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
선생님은 제게는그간의 여러 활동들과 발언들글들을 종합해보면, 70년대 이후 우리 미술문화의 생산자층이거나 수용자층 가운데서도 가장 고급스런’ 문화교양을 지니신 한 분 이십니다말하자면 가장 뛰어난 문화예술정치감각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제가 말하는 교양의 개념은 단순하게 일반적인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인문학적인 교양적 지식들에 대해 알고 감상할 줄 아는 차원이 아닙니다이 차원과 질적으로 일정하게는 다른 그래서 지향점이 다른사물과 사태감각과 정치에 대한 시대적 통찰 혹은 인식상의 고전적 인문학적 문화적 본능을 지니신 분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지난 시대의 지식인들 누구보다 탁월한 시각적인 정치감각을 지니셨으며 서구의 고전 중의 고전들 그 인문학적 예술적 통찰에서의 지적 모험들에 대한 공감에 그야말로 제대로 자신을 투여하고자 하는 시각문화 평론가이십니다미술계에서는 거의 견줄데가 없습니다인터뷰를 시작하고 저의 계속되는 이런 발언들에 선생님이 무척 당혹스러워하시고 계시지만사실상 제 문제의식이 이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지금까지 이런제가 아는 기억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부터 제겐 의문이 들고 또 바로 이 점이 선생님의 비극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선생님이 지니신 시각문화 교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양이라고 규정할 때의 바로 그 본래의 의미에 가까운 다시말해 양()이 아닌 질()로서의 교양의 내용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다시말해 탁월한 문화적미학적 질에 대한 판단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물론 누가 얼마만큼 누구보다 탁월하냐의 문제는 상대적일뿐이지만성완경 선생님이 해오신 글 과 실제 사회활동의 내용에서 저는 이 탁월함을 보고인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70년대 이래 시각문화계에서 볼 때 가장 탁월한 미감적 판단력의 소유자이시며 미감적 정치성의 질을 그 각양각색의 차이들에서 제대로 음미하실 줄 아는 거의 유일한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이십니다제 어휘로는 그래서 제대로된 교양의 소유자, ‘비판적 지식인이십니다이 부분이 분명하게 가치평가되지 않으면제 경험으로는재력 등 여러 가지 외적인 능력으로 발휘되는 큐레이터쉽이나 글들이 문화로 포장되게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선생님의 이같은 교양의 질이 사실상 우리 미술계에서 일반적으로 교양이라고 할 때의 교양의 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그래야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행해지는 모든 움직임들의 가치방향에 기준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못했습니다한번도 이러한 교양곧 최고조의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시대정신으로까지 우리 시대정신이우리의 시대가 고양된 적이 없었습니다그래서 늘 소위 유한계급 마담의 문화교양같은매스컴에서 회자되는 통속 인문학적 소양이나 미술교양을 갖고 시대의 문화가 재단평가됩니다이런 교양들이 선생님의 활동이 노력을 기울이시는바 여러 미술문화의 확대발전을 위한 시도들을 가볍게 코웃음치고 밀쳐내버리게 됩니다그래서 미술교육과 문화 관련 독서의 내용도 모두 뒤죽박죽될 뿐입니다정리정돈 된 교양지식은 미술학원에서의 기법이나 대학입시에서의 정답같은 지식과 교양에서 나타날 뿐입니다
선생님의 교양비판적 지성은 선생님이 우리 현장의 시각문화를 바라보는 잣대로 작동하고 있지만현장에서의제도미술계에서의 일반 미술교양과 미술을 향수하는 교양의 질은 선생님의 것과 다를 뿐만 아니라 차이가 날뿐 아니라 그래서 지향성에서도 구별되기에선생님은 통속교양들이 기준이 되는 현장의 상황을 시지프스가 언덕 위로 돌을 힘겹게 밀어올리듯 밀어올리지만시지프스가 손을 떼는 순간선생님이 글과 행동의 포커스로 현장을 대상화하지 않는 순간미술계는 이라는 자신의 질량으로 원래 있던 그 자리곧 우리 미술의 그 구태구악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어쨌든 저 나름으로는 이런 관심에서 선생님의 그간의 활동들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이때 선생님의 관심은 크게 두가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읽혀집니다하나는 서구적인 지극히 심미적인 혹은 예술자율성에 대한 극히 모더니즘적인 신념 등 이러한 감각에 대한 탐닉과 동경으로 나타나는 방향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관심입니다특히 예술의 민주화 방식에 대한 관심입니다선생님 스스로는 이 두 방향의 관심들을 최소한의 소통과 최대한의 소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물론 이 두가지 다른 방향의 관심으로 인해 선생님은 살아오는 과정의 이런 저런 국면마다 일종의 관심의 분열이라고 할만한 태도들을 보이시면서도최종적으로는 얼핏 이런 상호 적대적인 예술의 당위들예술의 자율성이냐 예술의 정치화냐 하는 문제를 화해시켜 보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의 정상화와 그 확장의 계기를 찾아보고자 하셨고저는 이 일이 선생님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보입니다
  
인식의 정상화란 제대로된 질적비판적 지성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한 우리 현대미술이요그 확장의 계기란 우리 현대미술이 놓인 여러 안팎의 계기들을 지양시켜내는 작업일터인데사실 어찌보면 당면한 당연한 과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뷰는 주로 이 문제를 둘러싼 선생님의 말씀을 들는 정도에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성완경 선생님(이하 으로만 표기)
맞습니다강 선생님이 지적했듯 저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그리고 덧붙이자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의 정상화’ 노력과 열정은 그야말로 평화롭고 호의에 젖은 시선보다는 불안하고 악의를 띤 시선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드러나는 진실의 국면이란 것이 있다고 언젠가 쓴 적이 있습니다
강성원(이하 강으로만 표기)
선생님은 미술비평은 흔히 어떤 작가나 작품 또는 유파에 대해 그 미학적 가치판단을 내리는데 초점을 두고 씌여진다이런 비평의 성격은 흔히 개별적이고 분배적이다 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저는 개별적이고 분배적이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매우 놀랐고너무 적확해서탁월한 지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늘 어떤 답답함이 있었는데이 표현을 보면서 아이거였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개별적분배적인 것이 아닌예술에 대한 문화비평적인 접근으로 나아가게 되신 것이라고 금방 이해가 됐습니다
선생님은 덧붙여 문화비평적 접근을 미술이 사회 속에 어떻게 수용되어 하나의 역사적 단위로써 문화유형의 전체성격에 적용하는지를 이해하고 하는 방식이라고도 설명하셨습니다
성 
솔직히 이런 문제와 연관된 미술제도비평으로 더 나아갔어야했습니다충분히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 측면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현실과 발언 초기에 <미술제도의 반성과 그룹운동의 이념강연에서 공동토론회를 한적 있는데미술제도 속에서의 게임 같은 일들로곧 상업주의와 경력주의 등등으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너무 단순하게 도식적으로 다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술문제를 보는데 있어서 미술제도의 안과 밖의 중충적 컨텍스츄얼리티를 보려고 했습니다이렇게 보는 관점으로 우리 현대미술의 인식의 정상화와 확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자 해왔던 것입니다
강선생님이 표현하신 두가지 관심의 방향이란 것을 저는 혁명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혁명하는 것이라고 표현해 왔습니다조금 아까 말한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의 정상화와 그 확장의 계기를 말하자면 혁명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혁명하는 것’ 사이의 차이와 상관관계 속에서 보려고 했고돌이켜보면 이 문제는 지난 미술운동 동안에도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문제들이긴 하지만동시에 그럴려면 미술제도와 미술언어의 중층성과 컨텍츄얼리티에 대하여 치열한 의식으로 사유되고 이를 미학적 정치적 논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의식의 개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지만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민중미술은 절반쯤만 성공한 미술운동이고 그 역사적 평가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도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혁명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혁명하는 것의 문제이 문제를 프랑스의 청년회화 그룹의 이론가들과 당시의 프랑스 마오이스트들한편으론 쉬포르쉬파스 그룹에서 다루었는데예술과 정치의 상호관계에서 중요한 것은그림 자체의 물질적 조건들을 해체하면서 부르주아적 일루젼에 빠져드는 것을 해체하는 것 곧 미술의 언어를 혁명하는 것이혁명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들이 이 때 나왔습니다요즘의 시점에서도 이 논쟁들의 궤적들을 다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동시대의 문제로 제게는 다가옵니다
이 논의들은 바로 장 뒤뷔뇨의 에술사회학적 명제들이기도 한데그에 의하면 사회의 본질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사회학적으로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갈등을 이루면서 진행됩니다새로운 계층의 부상등 계급문제도 그렇고 새로운 경제적 환경의 변화나 기술적 발전 등등의 변화가 있습니다
저는 사회의 역동적 변화 속에 있어야할 예술은바로 그 변화가 초래할그 변화로 인해 충족되기를 기대하는 욕구가 생겨난,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에 기본적으로 시선이 닿아있어야 된다고 믿습니다그것을 채워줘야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다예술이 그 변화된 감수성그것에 대해 응해야하고 그것을 전달해줘야 하는 감수성의 세계가 있는데이 감수성을 채워주지 못하면 유효하지 않는 예술이라고 봅니다
새로운 사회변화에 따른 잠재적 관중이 생겨나고이들은 이들의 상상력을 채워주기를 기다립니다더 중요한 것은 예술은 당연히 사회의 폭넓은 대중과의 상호호흡 속에서 있는 것이고그 대중과 관중에게 상호 응답하면서 예술이 되는 것입니다

제 인터뷰의 요체이지만미리 말씀드려보면저는 성완경 선생님이야말로 성완경 선생님의 그 잠재적 관중이라 보는 것입니다그리고 한국의 동시대 미술은 성완경이라는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를 못채워주면서도 마치 시대의 상상력인양 한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선생님의 좌절이구요..
  
잠재적 관중은 곧 보통의 관중이되 스스로 당당한‘ 관중이고 그런 관중이 되어야하는데, ’당당한 관중은 선생님에게서만예를 들면, ’시대변화를 수용하는 잠재적 관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게 문제입니다전형적 이념형으로서는 선생님의 비평을 통해 잠재적 관중의 그 상상계가 존재하고실제적으로는 사실상 민중미술과 함께 하거나 연대하거나 지지를 해온작가들과 평론가들과 콜렉터들과 기타 문화계 밖의소수이지만 보통의 당당한 관중층이 존재했기에 민중민족문화운동이 지난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나마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제도 속 미술계 대중은작가든 감상자든 콜렉터이든 스스로 당당하지‘ 않은 관중들입니다이들은 외국이론이나 개념외국의 혹은 국내의 대중적 일반적 제도교양에 기대어야 비로소 자신의 문화에 대해 당당해집니다그래서 국내의 현실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변화의 욕구들에 대해 당당하게 대하지 못합니다이들은 변화를 바라는새로운 자생적 내용과 형식의 예술을 주장하는 시대정신을 오히려 무지하다며 불온하게 바라보는 관중들입니다
한편 선생님을 비롯한 동시대의 진보적 당당한 관중층은 자신들을 스스로는 이러한 보통의 잠재적이지만 당당한 관중층으로 이론상으로는 구별해내지 못합니다이들은 스스로를 민중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지식인으로 남느냐의 문제로 생각을 풀거나 자신도 대중으로 여기거나 대중을 자신의 반대편에 둔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할 뿐입니다
한편 더욱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위시해 일군의 잠재적 당당한 관중층제가 말하는 탁월한 본능적 진보적 교양층이 존재하는데이들 보통의 당당한 관중들이 분명 시대 속에 움직이고 있는데이 관중들에 대해 일반교양 대중들은이들의 교양(비판적 지식)은 좌파적이라거나 민중적이라거나 불온시하면서 서로간에 인식의 오류와 이로인한 비평의 몰생산성이 반복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좌우지간이런 변화에 전혀 응답을 못하고 있는 예술그것이 해방 이후 우리의 현대미술입니다.
그리고 이들 보통의 당당한 관중이들에게라도 우선 지적문화적으로 의미있는 것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미술이 그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데 현재는 그만한 예술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력화되고 허구화된 가짜의 현대미술이 일반적이기에보통의 당당한 대중들과의 지적이고 의미있는 소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미술은 전근대적입니다노래방에서 악을 쓰는 대중들이 차라리 이러한 가짜 현대미술 보다는 낫다고 봅니다우리 현대미술은 사람들에게 지적이면서도 관능적 충족감미적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가사회가 잉태해온 잠재적 관중에 대해 우선 신뢰해야 합니다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그 발전에 상응하는 잠재적 관중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이들의 욕망에 축적되고 있는 무엇인가 다른 상상계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무엇인가 변화된새롭게 표현되기를 기다리는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있습니다이들의 갈등의 실체에는 이들의 욕망도 있고이들의 희망의 실체도 있습니다미술은 여기에 응해야만 합니다하지만 우리 현대미술은 여기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봅니다

  
선생님 말씀을 따라 듣다보니저는 이 다른 상상계가 생산해낸 작업들이 민중미술이라고 보는 것이구요선생님의 말씀은 우선은 한국 현대미술의 인식의 정상화’ 노력이라는 큰 과제를 위해 비판적이면서도 불안한 시선이 더 적합하다는 비평가의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그리고 혁명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혁명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는화가의 올바른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셨고이 과제에 대한 설명을 위해사회의 변화에 상응한 관중 탄생으로 이야기가 귀결되고 있습니다제가 보기엔 이렇게 연결된 지점들의 전체 체계가 곧 선생님이 말씀하신미술언어와 제도의 중층성과 컨텍스츄얼리티로 이해됩니다
선생님의 미학과 정치학의 상관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그러니까 미술언어의 혁명에 대한 것이며이 혁명적 언어는 이를 요구하는 잠재적 관중의 존재곧 당당한 수용자층의 새로운 욕망을 반영하는 새로운 상상계와 그런 상상계를 그려낼 수 있는가그려낼 수 있어야한다는 문제제기의 언어가 되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게 됩니다작가에게는 새로운 관중층의 상상계를 예감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그럴러면선생님을 쫒아가다보면미술사에서 진짜 중요해지는 것은 새로운 관중이 지닌 상상계의 문화적 퀄리티곧 문화적 힘일 것 같습니다문화적 전망과 비전타당성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비평작업의 핵심은 바로 선생님이 사실상 문화 향수자층 또는 시민대중의 동시대적 감수성과 그 상상력’ -그 안에 서로 다른 지향점을 지닌 관중층이 복합적으로 복잡하게 분열되어 섞여 있다는게 문제이지만에 주안점을 두시는 점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술의 민주화 문제에 있어 문화전파주의적 관점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도 연결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또한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현대미술과 민중미술운동에 대해서도 평가하시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나아가 이에 연관되어 우리 현대미술에 대한 선생님의 인식의 정상화 방법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런데다 선생님은 관중의 상상계에 지적인 힘과 관능적인 충족감그리고 미적 충격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계십니다선생님 자신의 상상계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그렇다면 작가의 상상력에도 이런 경향들이 모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매우 혼란스러운 요구들입니다.
성 
그럼에도 불구하고조금 더 보자면우리 현대미술은 미술계 그들끼리의 게임에만 몰두해 왔습니다너무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이에 비해 보면 순수미술계에서 저급하다고 하는 대중문화가 미술 보다 훨씬 낫습니다대중문화 속에서는 이들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를 위한 독특한 서사들이 그래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미술도 그 속으로 확장되어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미술은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를 마주하며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루어가야 하며 이때 문화적 헤게모니의 문제와 누가 문화의 주도세력인가의 문제에 연계된 문화의 자주적 관리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나의 글 <미술의 민주화의 문제등은 바로 이러한 의도하에 쓰여진 글로 내가 해온 작업의 대부분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민주주의의 진전은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와 결합해 공공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강 
말씀하신대로 잠재적 관중과 그들의 새로운 상상계는 사회변화의 과정에서 생겨납니다근데 사회변화 자체가 근대적 욕망의 다이내미즘으로 추동되기도 합니다식민지에서 해방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시스템들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던 한국사회의 당면한 정치적 요구에 맞춰 급조돼왔습니다사회구성원들은 이 시스템들의 다이내미즘에 때로는 환멸하기도 하며 좌절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한편에선 열광하고 동경하며 따라왔습니다.
이런 변화는 문화계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미술계로 한정해 볼 때선생님은 한국 현대미술의 다이내미즘은 이런 와중에서도 특히대체로 국가지방 자치단체재벌화랑미술단체등 에이전트와 이해집단들의 권력과 자기현시적 욕망에 의해 촉발되어 왔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이 저돌성전근대적 비합리성 속의 다이내미즘이야말로 한국적 문화의 특수성을 말해주는 핵심 요소일지 모른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현대미술이이같은 한국 사회변동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하는근대적 의미의 문화적 문맥의 형성에 성공하고 있느냐에 대한 점검그 속에서 어떻게 한국 현대미술의 자율성과 동시에 생산성의 컨텍스트라는 문화적 문맥이 형성되고 있냐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만이 한국 현대미술과 미술비평이 성장발전할 수 있다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보기에선생님의 비평 작업은 선생님의 말씀대로한국 현대미술이 이러한 문화적 문맥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관찰하고점검하고자 나아가는 작업이었지만작업의 결론은 부정적이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분석에 의하면, 70년대 이전에는 이러한 문맥에 대한 뚜렷한 의식조차도 없었던 것이고. 80년대 이후 <현실과 발언>과 민중미술운동에서도 나름대로는 이러한 문화적 문맥의 형성을 고민했던 것이지만주로 선생님의 이론적 실천적 비평활동들을 통해 이러한 문맥에서의 한국 현대미술 형성이 추구되었지만사실상 여전히 지금도 우리 미술계는 이 문맥의 구체적인 모양새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현대미술과 미술비평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는 것이고실제 동시대인 오늘날의 한국 현대미술의 상황이 바로 이렇습니다한국 현대미술은 그저 여전히 저돌적인 다이내미즘의 비합리성만에 의해 촉발되고만 있습니다통속적이고 저돌적인 돌쇠식 다이내미즘으로 시대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온 잠재적 욕망을 드러내거나 할 뿐이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최초의 풍경들이란국가에서 밀어붙이는 국가재건의 다이내미즘에 부응하면서 생겨난 이해집단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원래 서구 현대미술에는 그 자체 고유한 미학적 차원으로말레비치에서 보듯뛰어난 작가들의 상상계에서 만들어나가는 자율성의 부분이 있고근데 이 부분이 제도미술로서의 기능도 하고동시에 미술이 바우하우스나 러시아구성주의에서처럼 변화하는 사회의 실제적인 필요에 부응하는 시각언어로서의 생산성을 지니는 맥락이 있습니다이런 부분을 개념주의적인 것으로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미술현장에서 보면최병수가 6월 항쟁 때 장례행렬을 디자인하고 걸개그림을 그린 맥락도 사회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생산적 미술의 생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언어 자체의 혁신에 몰두하는 자율성 까지는 아닐지라도 자율성 자체가 예술에만 기여하면서사실 제대로 된 기여도 아니었지만자율성과 생산성을 같이 볼 수 있는 지점을 우리 현대미술은 놓치고 있습니다이 두 지점의 만남을 이루어낸 경험이 없습니다이런 지점을 동시에 보자는 것이 앞서 말한 미술의 안팎을 같이 보자는 의미입니다

자율성이 이렇게만 기여하는 상황을 두고 선생님은 개별적이고 분배적인’ 미술활동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하셨지요미술비평가로서 선생님은제가 옆에서 그간 느끼기에는예술언어 자체의 혁신에 몰두하는 자율성이야말로 선생님에게는 현대미술다운 현대미술이고 서구의 현대미술에 대해 젊은 날 그토록 탐닉하게 되셨던 것도 이 점 때문이 아니셨나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바라보는 두가지 방향의 미술에 대한 관심 중 한 축이 이 지점인데그래서 이 지점에 대한 애증이 있어 보이십니다.
선생님의 미술평론가로서의 우울이라할까 비극은 선생님 당대에 미술 자체의 언어를 혁신하는 미술을 경험하지 못하신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더군다나 이러한 언어로 미술의 정치적 생산성 까지 담보하는 미술작품을 발견하지 못하신 거니까요
이 논의를 이어가보면선생님은 이러한 두 지점의 만남의 경험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가 우리 근현대미술사나 미술계 전반에 고착화되어 있는 제도화한 교양의 폐쇄성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이 페쇄성이 미술의 안팍을 동시에 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쓰신 적 있습니다보통의 당당한 관중들을 불온시하는 제도화된 교양의 페쇄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페쇄성이 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보통의 관중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상호 괴리나 소외에 기생해 사실상 제도적 모더니즘 미술과 민중미술을 바라보는 적대적 시각 혹은 앞에서 언급하신 한국 현대미술의 저질적 다이내미즘그리고 서정적 관조주의나 철학적 관념주의의 미술사적 주류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시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중요한 것은 저 잠재적 관중들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미 일정하게는 보통의 당당한 관중들 속에 개별적으로 산발적으로 존재하지만이들 속에 시대정신의 잠재태로 존재하긴 하지만시대정신의 당당한 사회적 당위로까지는 완전한 모양새를 갖추지는 못한
바로 잠재적 관중들이 집합공공인격으로까지는 주관화되지 못했지만그 잠재적 관중층의 문화적 본능과 판단력에 말을 거는 일그리고 그들에게 소통으로서의 미술의 힘이 결국 그들 자신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 아닌가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관중의 힘이 곧 진정한 우리 현대미술의 힘이자 문화가 될 것이라고 하시며 이러한 자세의 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미술이야말로 지금도 여전히 우리 미술계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막연하지만 미술에 대한 회의감을 지양해낼 수 있는 진정한 산미술이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중의 층이 지금도 매우여전히 얇다는 것아니 어쩌면 이러한 층이 실제로 일정하게나마 형성된 적이 있었던가 하는 회의를 여전히 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현대미술에 대한 선생님의 주된 비평적 고찰은제가 보기엔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관중의 힘의 부재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오신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보는 시선다시 말하지만이 시선을 나는 개념주의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미술의 안과 밖을 동시에 본다는 것은미술의 자기 참조적(Self-referential)곧 예술 자체의 자율적 언어에 대한 내재적 탐구와사회와의 관계 곧 사회변화 속에서 역동적으로 갖는 관계의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사회와 예술을 동시에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의 자율성과 예술이 사회적 변화에 역동적으로 부응하면서 생기는 고민을 동시에 매개할 수 있는 시선입니다이 시선에 대한 요구에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모든 고민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재적인 사회적 상상계에 부응하는 예술의 자율적 언어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요구를 내재화 할 수 있는 그런 미술곧 그런 의미를 지닌 개념주의적 미술을 우리 현대미술에서 찾고 싶었고그러한 것으로서의 현대미술이 우리 현대사의 동시대 미술로써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그리고 이러한 시선으로 우리 현대미술사와 미술계를 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우리 근현대 미술은 초기 서구미술 수용기에는 인상파 미술 하다가 이후에는 서정적 추상미술 하다가 미니멀리즘도 수용하는 식으로 서구 미술사조를 추수하기만 해왔습니다나에겐 이런 우리 미술사가 매우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러한 양상을식민주의의 영향으로 아무 사회의식도 역사의식도 없이 전근대성에 사로잡힌 문화적 상태를 비판해왔습니다우리 미술사에는 서구에서 보면 본래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미술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 이태리 미래파나 다다이즘러시아 구성주의나 바우하우스 운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용해보고자 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미술계에는 서구의 역동적인 생산적인 미술에 대한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지식도 많이 결여돼 있었지만이렇게 미적인 것의 생산성을 추구하는 현대미술 운동이나 이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내가 보는 우리 현대미술은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빈약했고현대미술의 개념이 공허했고그 공허함 만큼 미학의 내용과 형식에 알맹이가 없어 추상적이었고 그 예술의 자율성은 새로운 언어의 전통이 없어 추상적 외형만의 것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문제들과 연관해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미술인들 자신이 상호 의사소통의 노력을 포기하고 있다고제가 해석하면서로가 미술에 대한 잘못된 관념곧 교양으로 대화를 하니오인된틀린 관점입장들을 자기목숨처럼 끌어안고 있으니서로간의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죠.
선생님은 또 그래서 직업인으로써 떳떳하고 쾌활하며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한다는 최소한의 윤리가 메말라 있고미술이 재미없게 되어간다고 말씀하신적도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축하는 항상 인생의 성공에 대한 축하이지 창작의 성과에 대한 축하는 아니다나아가 비단 작가 자신의 말에만 조리가 없는게 아니다미술에 관한 이야기 전체가 그런 편이다라고 쓰신 걸 본적 있습니다
이처럼 풍성한 미술정보미술산업미술교육미술시장에 접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그 전체로부터 얻어낸 우리의 지식은 항상 단편적이고 불확실하며 모호할 뿐이다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미술에 관해 통용되는 지식과 신념의 덩어리 전체는 실상은 한정된 교양의 되새김질과 비슷한 것이며 지극히 폐쇄적인 제도에 비유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선생님의 이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기가 막힌 지적이라고 늘 새삼 느끼게 되는데사실 이런 지적이 그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이런 문제가 선생님에게서처럼 가장 특수한 우리 문화의 현대적 문제점으로 거론 된 적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작품에 담는 소재로서의 현실이 아니라 미술활동의 본질이나 기능기질 등에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역동적 인자로서의 현실이 영역이야말로 미술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근원적인 질문들이 난기류처럼 소용돌이 치는 영역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설픈 취향이나 교양을 갖고 발을 디뎌 놓는 곳이 아니라고그래서 미술에 대한 이해의 범위나 기질의 범위의 차이는 그대로 소통의 범위와 질의 차이로 연결된다작가의 최소한의 소통능력이 최대한의 소통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상의 문제점은 상투적인 예술의 신화와 권위에 바탕을 둔 무비판적인 예술 존중의 문화적경제적 태도가 일종의 사회적 가식으로 전락할 만큼 미술의 참된 사회적 수용과 기능과는 거리가 먼 허구적인 예술애호의 틀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화랑가에서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는 유명 작가들의 비슷비슷한 자기복제 작품들 대부분은 사실상 키치에 다름 아니며 위조지페를 남발하는 것으로 보신 것입니다
창작활동이 창조적인 모색의 차원으로부터 사업적인 결단의 차원으로 넘어갔고사업주의는 관료주의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미술이 미술 자체의 폐쇄적인 논리에 의존해 발전할 길이란 없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진정한 문제를 갖지 못하거나 또는 그 해결을 유보함으로써 결국 남의 기준에 영합하게 되고 이와 함께 획일적인 집단미학에 의탁하는 현실이 생겨나고작가가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인생 전반이나 현실전반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확신을 갖고 대처하지 못하고 이러한 실제적인 결핍과 유보를 극히 형식적인 완결성이나 획일화된 논리의 심각성에 의지해 위장하려 든다고도 보셨습니다.
서구미술을 피상적으로 수용하면서 서구 미술의 생성과정보다는 결과만 주목하고 미술의 토픽과 사조의 변화를 쫒지만 현대미술을 둘러싼 여러 상황의 특수한 문제는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원산지의 그것 보다 더욱 경직되고 도식화된 미술일종의 변종의 미술이 우리 모더니즘 미술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미술 애호가들은 우리 미술가들의 관념 자체의 도식성 때문에 일정한 만족의 도식성을 갖게 됐고 작가들은 재료와 기술을 부자연스런 방법으로 끔찍하게 혹사해 기술이 도식적인 관념의 도해를 위해 사용되고더구나 거기에 양식적인 완결성이나 때로는 기념비적인 효과까지도 부여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미술은 미술에 대한 형식주의적 사고의 최소한의 소통으로 인한 철학적 도태물이라고도 하셨습니다이러한 미술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미술사와 미술관을 미술의 종착지요 최후의 절대적인 참조처처럼 믿게 하며 이야말로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자기의 실제 삶은 물론 역사와의 대면까지 유보하며 쓸쓸히 투쟁하다 사라져간 미술전시가 동료들과 함께 영원히 봉안되는 곳으로오늘날 미술가들의 활동의 거의 유일한 영역으로 공룡처럼 비대해진 전시회주의를 후견하는 대부와 같은 존재로 화하게 된 배경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비판적인 예술존중의 문화적 경제적 태도가 일종의 사회적 가식으로 전락할 만큼미술의 참된 사회적 수용과 가능과는 거리가 먼 허구적인 예술애호의 틀을 한국적 현대미술계가 만들어낸 것이라 하시면서이 허구적 예술애호의 틀로 인해 무엇인가 참된 가치를 전달하는 살아있는 예술곧 참된 가치란 가능한 것을 향한 공동체 체험의 양산인데 이것을 우리가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궁극으로는미술을 결국 지성의 소산그것은 만들고 조직하고 구축하는 일알려져 있는 모든 힘인생 전반에서 발견되는 모든 의미를 종합하고 연출할수 있는 으로 표현하시면서 마침내 특정한 생활양식을 가진 어떤 인구집단의 존재를 요청하시게 됩니다
말하자면 제가 보기에는선생님이 말씀하신 바로 이 집단이저 나름으로는, ‘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관중이라고 비유적으로 포괄적으로 혹은 개연적으로 범주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당당한 자세의 군중들이야말로 70, 80년대 민중문화운동에 함께 했던 저들 문화인들의 정체성이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 집단이 지닌 무형적이면서도특정 사회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는 비판적 지성은선생님이 말씀하신 문화의예술 작품의 정신적 가치를 미술관 밖 현실 속으로 매개해서문화기능이 비현실화되고 장식화 되는 사회적 메커니즘그 기형화의 메커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도나 문화장치통념관례등의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힘들에 대항하고자 하는 저항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들의 비판적 지성의 움직임을 선생님은 보통의 당당한 문화적 힘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이해 했습니다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의식들이 뭉쳐미술에서는 <현실과 발언이후 민미협의 발족에 이르는 기나긴 지난한 길들을 열어나가게 된 것이라 보고 계신 것이라 보입니다이렇게 저는 선생님의 미술비평 내용을 인식이해하고 있습니다이 인터뷰에서 선생님과 하고 싶었던 얘기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잠재적 관중의 개념과 관련해 선생님의 지금의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성 
이 얘기를 둘러 말해보자면허구적인 예술 애호의 틀허구적인 예술진흥의 틀해방 이후 문화계의 제도기구들이 확장되어 왔지만그 내부에 기업예술적상업주의적 동력학이 커지면서 그자체가 권력이 됐습니다팽창적행정적 기구에 돈과 권력이 작동하면서 예술 허구의 틀이 혼돈스럽게 이리저리 한편으론 융합되기도 하면서 오히려 예술을 무력화시켜왔습니다
예술가가 여기에 편승하지 않으면 빛을 보기 힘들게 되어 온 것입니다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그래서 참된 예술의 가치는 가능한 것을 향한 공동체 체험의 양상공유 가능한 공동체 체험의 장을 담는데서 나온다며 그래서 훌륭한 작품을 더많은 대중이 알아보고 소비하도록 해야한다는 발상이 생겨납니다이런 예술을 전파하자는 생각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로선 이게 일종의 문화주의적문화 전파주의적 시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이런 문화전파주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이러한 시각은 부분적으로만 옳을 뿐 한정적이고 그릇된 것일 수 있습니다생활양식 자체가 예술이고그리고 생활양식으로 민주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누가 사회변화를 견인하는 추동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말하자면 사회주의적인 접근에서 나오는 예술의 민주화보다는 예술의 사회화에서 참다운 예술의 가치를 찾아야합니다
선진적 외국 작가들을 어마어마하게 초대해와서 시민들을 문화적으로 계몽시킨다는 발상이 아니라박구용 교수가 작년 광주 비엔날레 발제에서 지적했듯광주라는 지역의 역사와 토양그 경험과 의식들 안에 주체적 역량이 있는 것이고그래서 이들을 인문학적으로 살찌우고 그 사람들이 예술과 문화창조의 새로운 정치체제주체적 역량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습니다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도 사실 이런 차원에서 운영되어야 맞는거겠지요.

과연 무엇이 어떠한 것이 문화사회의 발전인가 하는 문제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예술이 어떻게 사회와 연관이 되는가 하는 문제 등등에서 예술애호와 예술지원의 허구적인 틀을 비판하면서 예술의 가치가 미술관 밖 생활에 매개되고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는가의 문제를 봐야합니다
문화의 자연적 불평등과 문화적 전파주의 사이에서 누가 사회변화의 주체가 되는가 하는 문제그런데 동시에 지적예술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영원히 우월성을 갖고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헤게모니를 잡아야하는가의 문제그리고 이런 불평등이 영속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고급한 문화를 소비전유하는 것만으로 문화에 대한 논의가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들은 미의 향수자만이 아니라 예술의 생산자가 되어야하고 대중 고유의 생각과 문화그 상상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능동적인 예술창조 주체로서의 역량발현이 되어야합니다이것이야말로 그래서 진정한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얘기입니다
기존의 관례적인 문화 전파문화 소비가 아닌이런 차원에서의 민주화가 아닌더 깊은 예술의 전유와 사회정치적 의식의 함양이 병행돼야 하는 문제입니다
랑시에르는 미적 감수성의 변화를 도모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폭넓은 예술교육과 사회정치적 변화를 내다 볼 수 있는 정치적 의식의 변화가 동시에 병행되야 한다고 했습니다
역사변화의 주체로 대중이 힘과 헤게모니를 갖게 되는 과정대중이 이런 과연 힘을 갖게 될지의 문제가 중요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변화 그 자체사회경제적 물리적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그 선험적 조건으로써 예술과 미의 개념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물론 이것이 바로 난제이긴 합니다

얘기를 다르게 접근해보면선생님은 도덕성과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생기는가라는 질문을 하시면서 변화의 불가피성이 곧 도덕성이고 진리라고 말씀하신적 있습니다이 주제와 연관해 저는 선생님의 누가 사회변화를 견인하는 추동체가 되느냐의 문제도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것이 도덕이고 진리라는 관점과 연결되어 읽혀집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결국 선생님은 미술의 민주화를 위한 추동체는 허구적 예술 진흥장치나 예술애호 장치가 같은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잠재적 관중이 공동체 체험의 문화적 생산자가 되는 것이 보다 유효하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이 변화가 만들어낸 잠재적 관중들의 상상계에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서의 도덕성과 사회적 합의 문제도 연계잠재되어 있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물론 작가도 그 중요한 한 축이지만작가의 경우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를 그 내부에 예견 혹은 예감하면서 동시에 예술자율성의 핵심형식인 기존 미술언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이것을 사회정치적 생산성으로 전화시킨 미학으로 만들어낼 때만 해당되는진정으로 그의 예술의 정치성이 참된 예술의 가치로 전화될 수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미술의 진정한 민주화는 이런 작가들의 정치적 작품을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길을 통해 얻어지기 보다는잠재적 관중이 예감하는 상상계가 정치적 생산성을 갖추고 사회 속으로 매개될 때 보다 유력한 것이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한편 저로서는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에서 결국 80년대 민중미술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저는 선생님의 이런 인식의 지점을 오늘 이 인터뷰를 정리하는 화두로 삼고 싶습니다.
좀 더 이 얘기를 구체적으로 보자면, 70년대 말 80년대 초인사동 화랑가에서 이루어지는선생님이 보시기에고급문화인양 하는 키치미술우리 현대미술의 소비는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가장 기형적인 측면으로 작품 구매의 결정이 구매자 자신의 취향이나 안목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눈치와 풍문에 의한 것이고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선택된 작가의 폭이 너무 좁고대개의 화랑이 이들 몇몇의 또같은 작가의 작품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하시기도 했습니다
이 점이 우리 미술문화가 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관중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현실의 일면이라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이 대중으로 부터는 소외된 원인 중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중의 기대를 미술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보편화한 무력감 때문에미술이 제대로의 기능을 통해 당당한 올바른 심미안을 지닌 관중의 형성에 이바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단은 회의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도 하셨습니다제가 보기에도 화단의 대표적 모더니스트 작품들이 어떤 당당한(?)관중들에게는 매우 허접하게 보였던 경험이 아직까지도 분명 있습니다
성 
미술이 사회로부터삶으로부터 유리된 상황이 우리 현대미술의 상황입니다. ‘관중의 기대라는 말을 장 뒤비뇨의 예술사회학 명제와 연결해 생각해보면그에 의하면사회의 변화가 역동적이면서 그 긴장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그래서 그 역동성이실제 변화하는 사회의 세계관이 예술 속에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런 변화를그것을 느끼는 관중의 기대가 분명 있을터인데해방 이후 우리 모더니즘 미술에서는 이런 부분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그런데도 우리 현대미술모더니즘 미술은 진품성을 가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후기인상주의자들 중에서 몇몇 좌파나 무정부주의 화가들이 노동자 운동과 연대한 활동을 했습니다이들의 움직임에서 예술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아방가르드는 짧은 시간이나마 합쳐진 적이 있었습니다인류의 예술사에서 사실 이 방향이 일치되어 예술로 나타난 적은 아주 짧은 기간의 움직임에서 뿐입니다
20세기 들면서 예술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아방가르드는 분리됩니다예술적 아방가르드는 멋진 신화로 포장되기도 하고권위로모더니즘의 모험들로혁신들로 이해됐습니다그러면서 노동운동적인 그런 쪽 날개는 지하화 됐습니다이 부분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갈라져 나가기도 합니다우리 미술계는 이런 서구 현대미술사의 전개과정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예를 들면 동학을 근대의 출발점으로 삼거나일제시대 카프와 해방 후 좌우익 예술계의 대립그리고 60년대에서 80년대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의식들이 점철되듯 존재해왔습니다
이 의식들을 상호연관시켜 거기에 바탕을 두고 예술이 어떻게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어 왔는가를 검토할만 했지만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충분히 연구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요즘에 와서는 이런 전통이 대중의 망각 속으로 가라앉아 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시장가치의 힘이 거대해졌고상대적으로 많은 인구가 무력화주변부화 됐습니다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한국 현대미술은 내용 자체가 사실상 함량미달이라고실력없는 미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당시에도 <현실과 발언>은 창립 선언문에서 오늘날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기존 미술형태에 대하여 커다란 불만과 회의를 품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기 나름으로 모순에 빠져 방황을 거듭하고 있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려는 의욕을 다지면서 출발한다고 선언 했습니다
알베르스가 <20세기의 지적 모험>에서 지적한 지적 축적의 역량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을 좀 더 해보면이것은 일종의 실력의 문제인데즉 교양의 형성이 튼튼한가 아닌가의 문제인데예술의 어떤 경향성의 선택 문제 이전에우리 예술계는 일종의 식민지의 식민지로 잘못된 지식의 습득이 많아 전반적으로 허약하고 그럴수록 지식이 권력화되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하지만 그런데도 그 상태에다 예술의 진품성과 교양의 진품성이라는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은 민중미술에서 비로소 한국 현대미술이 최초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자각을 했던 것으로 보시는데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민중미술이란 그야말로 기존에 한국 모더니즘 미술으로 분류되던 한국 현대미술 주류 전반의 무력함에 대해 비판적이던 불특정 미술계 구성원들의 자각된 근대의식의 발로요이런 문맥에서 민중미술’ 개념을 읽는다면민중미술을 특별한 미술운동이나 미술운동 그룹이 추구했던 개념으로서의 미술로서 보다는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열망하던당시 한국 사회 불특정 인구들의 잠재적 비전을 공유하고 그 열망을 표현하고자 했던 우리의 현대미술을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성 
이런 생각은 완결된 결론이라기 보다는김경현씨가 조직한 민중문화 두 번째 심포지움민주주의와 민중문화대중문화와의 관계에 초점을 둔 심포지움으로 거기서 한 말인데민주화의 과정과 예술과의 상관관계의 시각에서 즉 민중문화운동의 필요성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민중미술이야말로 해방 이후 최초의 우리나라 모던아트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선생님은 우리 사회의 근현대성에 대해모든 분야에 모더니즘적 기계장치가 서둘러 그 전문 요원들과 함께 배치되고 여러 형태로 한국적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다시말해 한국 현실에 대한 기여와 착취개발이 동시에 시작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제도가 또 한국적 현실을 착취하는 상호교환적 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이같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 한국에서의 미술의 제도화이고 이 제도의 현실에 대한 특이한 적응기제를 만들고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비정상적인 메커니즘이 이 적응방식의 퇴적 속에서 생성됐고그래서 이 적응방식에 내재한 가짜의 성취를 통해서만 행정적학예회주의적 활력이 미술활동에 공급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 
식민주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채로 미술교육미술중개 제도가 후진적 모습 속에서 정착하여 권력이 되어왔고그래서 퇴행적으로 작용해온 한국 현대미술사의 지점들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잠재적 관중이 문화생산자로써 그들의 상상계가 새로운 미술언어의 혁명과 미술의 민주화를 위한 작동에 기반이 되면, ‘비판적이고 당당한 자세의 관중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90년대 이후 무수히 공공성’ 혹은 공공미술이라는 말들과 실천들이 있어 왔지만공공미술은 마치 미술의 한 장르나 분야로서 대해지고 있습니다그리고 공공성 개념은 오히려 사회를 다양하게 장식하는 가치관의 하나처럼 떠돌고 있어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들 잠재적 관중의 상상계는 사회의 어느 일상의 경계의 언저리에서 그 안과 밖을 서성이는근현대로부터 제거된 사회적 상상력으로 유폐되어져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그가 거기 있는지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바 그 맹목의 문화적 통념과 속물주의와의 당당한 비판적 문화의식간의 대중정치적 인정투쟁에서의 실패가 결국 한국적 모더니티라든가 좁게는 민중미술에 대한 개념규정과 평가해석에서 민중미술을 모더니즘과 대랍적인 관계항의 것으로 형식화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포스트민중미술로 불려지는 2000년대 이후의 후속 세대들도 결국 선생님 표현대로 한국화한 국제주의 미학으로그 정치적 이슈들에도 불구하고한국적 원초성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거머쥐려는 선에서 절충한 서정적주관적 대응물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한국미술의 국제진출과 국제적 동시성이라는 매력있는 논리와 동시에 한계를 지녔다고 말씀하신 70년대 모더니즘 미술양식의 본질과 크게 다름 없는 방향이고, 90년대에 나타나는 이런 문제지점들은 민중미술이 결과적으로는 반만 성공한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선생님의 평가에 맞닿아 있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성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미술 전체에 대해 개념적 맥락에서 제도의 안과 밖을 보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인터뷰를 다시 정리해 보기 위해민중미술운동이 남긴 이야기들에 대해 좀 더 들어 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해보고 싶습니다. 80년대 이후 현발과 두렁이 상당수 지식인들과 일부 중산층 그리고 일부 운동권 학생 및 근로대중 속에서 잠재적 미술 관중을 새롭게 창출해보려던 노력들이 있었고이들이 일정한 운동의 전위적 역할을 공유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는 바로 이들이 잠재적 미술 관중이라고바로 그 비판적이고 당당한 삶의 자세의 관중과 겹쳐지는 모습이라고 보입니다
그렇지만이들이 비록 전위적 역할을 자발적으로 지고 나왔지만결국 민중미술의 운동 이후의 미술계의 움직임을 보면그 속에서는 이런 주체들의 역사적문화적 위상에 어떤 모호성이 생겼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호성이 민중미술 내부의 이질성의 지점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민중미술에 대한 평가가 그동안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배경으로 보기도 하셨습니다결국 민중미술은 절반쯤만 성공한 미술운동으로 그 역사적 평가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의 전위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비판적으로 당당한 자세의 관중을 힘있게 형성하지는 못하고 미술운동이 퇴조한 부분도 일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민중미술이 한국의 전체 미술계로부터 폭넓은 동의와 지지를 획득하는데 이러한 사회적 조건들은 일종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씀도 이 문제와 연관된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중요한 것은 저 잠재적 관중들에게 말을 건네는 일과 그리고 그들에게 소통으로서의 미술의 힘이 결국 그들 자신의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한다고 항상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립니다
이런 맥락에서 두렁 창립전의 글에서도 밝히신 산미술을 위한 전략에서 미술의 건강성 회복이나 미술 민주화의 핵심은 대중들이 단지 미술 수용의 폭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서가 아니라그들이 스스로 자기 표현의 욕구를 갖도록 자극하는데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성 
대중이 훌륭한 예술의 감상자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예술의 실천생산자가 되고 특정 인구 집단의 생활양식을 보존하고 이것을 사회적으로 확장해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농민노동자그런 사회학적 단위들의 고유한 어법과 매너사고방식이 존재하는데그러나 지금 이 방식들이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전통적 생활양식 집단으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그리고 이들이 다시 예술에 참여하고 참여적 관중이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동시대에서의 김봉준과 홍성담 나아가 민중 판화가들의 미술사적미술적문화론적 역할은 이 지점에서 연결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미술문화와 대중문화 속 깊은 병폐는 바로 자기표현의 욕구 그 자체가 문화와 삶의 맥락을 떠나 문화를 소비하는 현상에 있습니다. <두렁>의 산미술 이념은 속물적인 창조와 향유 욕구의 미술행태에 저항하는제도미술교육과 관례적 미술활동의 한계를 극복해 대중의 잠재적인 표현욕구와 능력을 개발하면서 민중을 살아있는 예술의 표현주체로 이끄는 힘의 미술이야기의 미술나눔의 미술이자 배움의 미술을 추구하는 전위적 미술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의 미술에는 이야기의 욕구가 들어있으며 두렁식의 그림들은 민중의 공동체적 염원의 일반적인 표상그 결속감의 상징이자 거기에 교훈적선전적투쟁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강력한 효용을 갖는 매체로서의 미술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미술적 가치는 민중을 패배주의로부터 지켜내고 그들의 정치의식과 사회투쟁 역량을 자극하는 상당한 효용을 지닐 수 있습니다이러한 평가는 작금의 한국 현대미술 전반에 상실되어 있는전통의 실제적 가치를 두렁이 현대적 미적 문화로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미술적 실천이 자기희생을 무릅쓰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활동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동이 뿌리를 두고 있는 도덕적 기초가 한국의 민족사에 대한 그들의 인식에 긴밀히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전반의 현실과 발언임술년등을 비롯한 여러 그룹의 작가들 또는 개별 작가들이 폭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던 소박하고 풍자적이고 지적이며 개방적인 모더니즘의 여러 어법이 문화적 설득력의 불가결한 부분이며그리고 두렁의 전위적인 이러한 미술행동 방향 또한 우리 근현대 미술사에서는 매우 의미있는 움직임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를들면 두렁의 <만상천하>(조선 수난민중 해원탱같은 작품들은 삶의 현실을 그 전형의 측면에서 파악한 표현형식인데 비현실적이고 기복적인 초월적 세계원초적이고 설화적인 상상구조등 이러한 표현형식에 내재된 한계가 그대로 답습되고 특히 그것이 앞서의 현실해석의 전형성과 한데 결합함으로써 현실의 생동하는 모순의 역동적 표현 대신에 다소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며 그래서 현실의 실체적 모순을 중화 내지 증발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평가는 사실상 90년대 민중미술 퇴조기에 접어들면서 민중미술의 후세대들이 해내는 작업들에서 더욱 퇴행적으로 고착화되어온 양상이기도 합니다오랫동안 계속된 반독재 투쟁은 선전적 정치예술의 표현수단이 개발되도록 했으나 문화적 설득력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약하고 예술적 행동과 그 내용이 상투화추상화하는 결과도 초래했습니다민족주의적 민중운동적 행동동기의 반복된 자기 정당화가 예술행위를 공리주의적 맥락의 거의 자동화한 자기포만 속에 감금시키면서 예술의 내적 맥락 즉 텍스트의 문제가 빈곤 속에 방치되는 과정이 병행되어 갔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보다 앞서서 서구사회는 포스트모더니티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미적 주체들의 보편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인지도 모릅니다비판적인 미적 주체들이 일상의 차원에서 삶의 보편적 주체로 등장하는 역사적 시기의 도래를 확인하며 포스트모더니티 시대를 규명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의 주체적 지속과 발전으로서의 실제적인 맥락이며 그 맥락에 대한 적합성이며 이와 같은 문화의 특질을 이해하고 그 이해의 바탕위에서 이들의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개입의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더할나위 없는동시대의 예술가들에게 던지는 선생님의 매우 현실적인 조언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들의 작업환경 속에서나 그들이 사는 동네나 거리에서 그들에게 조언하고 함께 얘기하고 또는 생활하면서 일종의 지도자-이끄는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교육적 의미 내지는 사회문화적 활동가의 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길이 바로 진정한 예술 사회화와 민주화의 길이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오늘 인터뷰의 결어를 저는 이와 같은 말씀들로 삼고 싶습니다.
그럼 인터뷰를 끝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완경 선생님께 선생님이 성장해오신 과정에서의 서구미술계와 한국미술계에 대해 쌓은 여러 감각들 혹은 소위 제가 말하는즉 저는 이것을 굳이 교양의 차원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살아온 과정에서 축적된 교양과 그 미감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제 어휘로서의 이런 교양은 필연적으로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그래서 제 의미에서의 이 교양개념을 달리 표현하면비판적 지성의 지성이라고 대체할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니까 선생님의 미적 지성이 내공을 갖게된 역사와 문화그 프로세스를 들여다보고 싶어서입니다
이번 짧은 인터뷰에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선생님의 비평적 관점과 비전 그 보이지 않는 중충의 지층을 관통한다고 할 수 있는두개의 개념의 실마리를 잡고 이 실마리를 따라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편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인터뷰를 끝내려는 지금 보니인터뷰 전체가 인터뷰어가 선생님에게 묻고 싶은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그래서 다시 제 입으로 확인해보는 저의 질문으로 거의 이루어졌다는 불안감이 듭니다제 질문을 너무 들이대기만 하면서 인터뷰를 끝낸 것 아니냐는 자괴감이 듭니다
지금부터는 선생님의 일종의 자술(自述)같은 이 주제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 미술을 위한 의미있는 예측들을 잡아 낼 수 있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그러기 위해 아직도 제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문제의식들의 지점들을 다시 들춰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활동 전체의 맥락과 그 의의에 대한 얘기들은 그간 없지 않아 있었고 해서저로서는 이번 인터뷰가 6.70년대 제가 지닌 미적 문화제가 그 안에서 스스로를 형성해왔던 지점의 특이성이 미술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이해로 연결되는 저변을 거칠게나마 드러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저로서는 이에 연관된 문제의식은 완결되지 않았습니다앞으로 언젠가는 문제를 도식적 설명방식이 아닌 입체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이를 위해 강성원 선생님의 말씀대로 여기서 조금 더 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충해보겠습니다
대학시절과 70년대 초 프랑스 유학가서 내 시각의 보충변화가 있었는데앞선 시절과 비교해보면 서로 대조적인 부분도 있고 연속선상에서의 상보적인 부분도 분명합니다그리고 여전히 이 시절의 사고들은 전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씨앗 같은 부분들입니다이번에 제대로 쟁점화 될 수 있도록 들여다 보는게 중요했지만차후에라도 다시 좀 더 깊이 검토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미술계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성 
저는 미술과 사회의 관계라는 문제에서 제도미술과 재야미술 현장의 경계 혹은 그 사이 지점을 넘나들면서 미술 교육의 실천적 변화미술의 사회적 역할 곧 미술의 공공적 실천의식으로 번민하며 현장 미술비평과 실천적 미술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모더니스트로서현대주의자가 되는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 찾아 읽거나 관심을 갖은 사람들과 사건들사상과 책문화현상들은 나 나름의 일정한 문화적 경로를 형성한다고 여겨지는데 그 속에서도지금 보자면이미 서로 대조적이면서도 상보적인 세계가 있었 왔다고 보이고 이런 양상은 나에겐 일정한 생애적인 문화적 내적 자기 콘텍스트를 형성하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기간 동안 아주 빠른 속도로 조형적인 것현대적인 것구조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것 등에 대한 감각을 깨우쳐나가며 쉽게 경탄하며 경도되어갔습니다그러면서 포괄적으로 외국문화에 대한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이지만 뭔가 그것들 가운데서 각각의 특별함에 대한 예민한 후각을 키우게 됐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문화원에서의 이런 체험은 유럽 현대문예의 전반적인 것들이 더 경이롭게 다가오는 경험이었습니다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축적질의 두께에 신뢰를 갖게 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프랑스어와 영어 등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서구지향적인 의식들이 생겨났고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근사하게 보인다는 것이 제게 많은 기대와 관심그것에 대한 이해와 지적 소유욕망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되면서 공항을 보았을 때의 느낌입니다그때 공항을 보고 공항이라는 시스템에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공항이란 공간을 처음 보면서 그 문명과 문물에 대한 감격아마도 개화기 때 서양문물을 보고 느낀 것이 이런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 같습니다말하자면 감동의 칼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에서 배운 내용은 이에 비해 신빙성이 적은 어떤 지식이었습니다뭔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은 어떤 지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비슷한 서구 문화의 감동의 칼날로 다가 온 것은 거리 벽화와 지하철 등에 쓴 낙서광고들이었습니다이 중 지금도 기억나는 문구가 있는데, ‘국가는 당신을 운반하지 않는다당신을 뺑뺑이 돌린다라는 문장입니다저는 이런 문장에 깊이 감흥받곤 했습니다
저는 학교 수업보다는 국립시네마테크 등에서 지적 만족감을 얻고 엄청난 흡수력으로 파리의 도시경관과 그 문물에 매료되었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항상 예술과 동시에 예술을 둘러싼 문맥을 보고 즐기며 모더니즘 문화를 수용했던 것입니다신구상회화와 쉬포르쉬르파스 같은 미술운동도 당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저로선 매우 다양한 진폭의 미술 개념에 대한 체험을 한 것 같습니다

얘기를 듣다보니 선생님은 한국에서의 제도권 교육과 제도권 예술에 거의 흥미를 못느끼신 것 같습니다

일종의 상대적인 비교인데당시 서울미대와 한국 미술계에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러한 콘텍스트적 근거가 희박한 내용들로 채워진 교육과 미술계의 작품과 이론들이라는 인상 때문입니다오도된 혹은 생략된 것 혹은 가짜임을 점차 본능적으로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모더니즘과 모더니티 문화는 형식의 발전사만이 아닌 사회문화적 격동과 착종 속에 그 문맥이 걸쳐져 있는 의식과 문화들입니다그래서 저는 개인적 감수성으로 그 지적인인문적인 배경들을 즐기고 인식하고 받아들이고자 했고 그렇게 노력해왔지만서울 미대의 강의 내용에는 그러한 것들이 삭제 돼있었습니다다양하고 풍부한 잡다한 정치사회역사그리고 미디어 발전사에 연관한 상호교차 속에서 틈틈이 교차하는 내용도 보아야하고 보게 되는 것인데이런 부분들에 대한 인식이 삭제돼있습니다
저는 여러 장르가 얽혀있고 우연성의 미학이 있는 것나아가 플럭서스 등 비주류의 미학 등 그런 주변부적인데서 이론적 실천적 자유와 실험을 즐겼고 그런 흥미에서 주변의 문명과 문물을 봅니다그리고 어떤 교회당 인쇄물 특집호의 주제에서 오늘 인터뷰에서 논의됐던 그림을 혁명할 것인가혁명을 그림화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본 적 있습니다두 사람의 화가가 논쟁을 하는데한 사람은 혁명의 추동 수단으로서다른 한 명은 그림의 형식을 해체해 그림의 일루전그 구조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데 필요한 시선을 해체하여 그림의 해체와 동시에 부르주아 시선의 해체해야한다는 주장으로 서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르크 데바드와 클로드 비알라 같은 프랑스 남부 쉬포르쉬르파스’ 계열의 작가들은 영구혁명을 주장하며 데바드의 경우 회화는 혁신과 혁명을 그리는 것이라며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으로 회화에 반부르주아적 가치를 구축하고자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즐기고 가까이하던 흥분하던 미술은 매우 강렬하게 회화적이며 색채적이며 동시에 해방적 기능을 지닌 대중의 감각에 호소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다시금 마티스를 생각하게 되는데우리는 앙리 마티스를 다시 읽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마티스는 어쩌면 가장 혁명적인 작가이다그는 진정하게 부르주이적 시선을 해체할 수 있는 혁명가로 마티스의 색채나 형태에 대한 민감성이 진정한 혁명의 원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원시시대적 직관이 지유롭게 펼쳐진 어떤 바탕 같은 것창이나 사각형 같은 닫힌 구조가 아니라매듭이 있는 것이 아닌 그런 것으로서 이미 혁명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권위주의적이고 학벌주의적인 미술계에 대한 불만 속에서 사실 제도미술 개념을 둘러싼 미술계 제도그 중에서도 미술시장과 미술계 밖의 사회정치경제 문제에 대한 미술의 비판을 다룬 주제들을 당연히 유학 후 핵심적인 한국미술의 과제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제도미술비판의 칼을 서서히 구체적으로 이곳 현장의 언어로 다듬기 시작하신 것이네요.

지금 돌이켜 보면 경험의 원근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경험의 원근 속에서 역사와 사회를 추체험하며 각자 개인은 자신의 삶을 다듬어 나가게 되는 것 같은데저로선 우리 근현대사에서 볼 때, 60년대의 4.19와 5.16, 나아가 80년대의 민족민중민주 운동의 역사를 
가까이서 겪은 것이고, 68년의 프랑스와 72-75년의 프랑스 역사를 추체험 한 셈입니다그러면서 역사와 사회에 눈뜨고 추체험하면서 국제적 현대미술의 동향과 그 배경이 되는 그곳의 역사와 사회문화들 직간접적으로 격고 느끼면서 이곳과 그곳의 현대미술에 대해 개안해 나갔던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그 역사를 직접 체험하면서도 미술계 문제 외에우리 역사나 사회에 대한가까이 있는 현실과 멀리 있는 현실에 대한 정치사회적역사적 집단경험에 대한 발견그 집단적 경험 속에서 집단의 운명이나 처지그 운명 속에서 개안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저의 이해가 뭔지 불충분했고 무언가 제 관심에 결핍된 것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국제적 현대미술의 개인적 수용체험과정과 우리 모더니즘 미술의 이해 문제를 저 개인적으로는 요즘 앞서 말한 집단의 삶이 처해진 운명들에 대해 관심을 보다 구체화하는 문제와 연관해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그러면서 저의 국제적 현대미술에 대한 개안 체험서양미술 전통그들의 지적인 것의 전통의 맥락 속에서 미술의 흥미로운 지점, ‘천개의 고원을 발견하는 즐거운 깨달음이 있었던 것인데 이것이 제겐 굉장한 쾌락이었기에내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즐거운 깨달음이었기에이 체험의 차원이 집단의 삶에 처해진 운명이라는제 내부에서 요즘 새삼스레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차원을 내 내면에 어떻게 매칭할 것인가어떻게 이 두 차원은 내 안에서 존재해왔고 존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2차원을 그리고 어떻게 내 안에서 배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오늘 강선생님과 나눈 인터뷰의 여러 물음에 답변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집단의 고통을 진보의 전망지평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과제를 그러니까 나머지 생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20세기의 지적 모험>을 쓴 불문학자 R. M. 알베레스가 현대문예 전반의 주요 흐름을 상황적으로 선택과 결단을 내리면서 개인에게 내려진 굴레들을 극복해나온 역사로 보듯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유럽인들의 문예관에 자연스런 교양의 차원으로 존재했듯미술에서도 이런 지점들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도 미술사에서 이런 전통을 찾아야하는데미술이란 것 자체가 지식사적인 레이어들의 풍부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런 레이어들을 바탕으로 미술에서 깊이 있는 내용과 형식을 찾아야 합니다
현대성이란 이런 것들의 복잡한 맥락위에 펼쳐지는 것입니다사진이나 실험영화만화와 기타 서사형식들영상문화적인 부분들기술문명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예술의 다양한 형식들대중문화의 산업적 풍경들의식의 풍경들 이런 것들이 현대성으로 우리 삶에 자연스럽고도 깊숙하게 맥락화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 것들을 읽어내는 즐거움그 내용이자 맥락이 지식이고 미학입니다
우리 미술계가 이런 지적이고도 미학적인 맥락 곧 이것이 바로 문화인데 이것을 읽어내야 합니다우리 미술계의 미래비전은 지금 한국에서 현재 통용되는 그런 맹신되는 모더니즘 미술에 있지 않습니다그런 입장은 뭔가 잘못 짚은 것입니다왜냐하면 이런 시선에는 현대미술의 폭넓은 지평에 대한 인식이 함량미달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식민지 시대 미술교육의 영향하에 있는 우리 현재의 미술교육의 내용은 마찬가지로 함량미달입니다버려야 될 어떤 것이 아직 폐기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저는 이러한 점에서 기존 모더니즘 미술개념의 함량미달편협한 지점에서 저와 다른 현격한 다름을 느꼈고 제가 아는 세계상제가 아는 미술상의 지유로움을 추구하면서 의욕을 느꼈고 그러면서 미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제 믿음에 확고했습니다.
이런 제 생각들은 <현실과 발언동인 모임으로 수렴됐습니다임옥상은 이런 저를 두고 당시 변태’ 선생이라고 불렀는데제가 초현실적이고 전복적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나름의 이 당시의 저의 글들생각들움직임들에 대한들 일말의 회한도 있습니다이러한 생각들을 좀 더 계몽적인 의도로글로 써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나아가 역사에 대해 좀 더 충분히구체적으로 인식을 심화시켰어야 하지 않았나 일말의 느낌이 듭니다그리고 특정 시공간에 존재하는 구체적 개인인 제가 마찬가지로 특정 시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들그들의 개별적 태도들에 대한 자각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실과 발언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글쓰기에 매진했지만동시에 늘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도피해 자기자신의 모호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당대 사람들로부터 단절된 채 혼자만의 자유의 공간을 즐겨왔던 것 같은데곧 퇴행 욕구가 있었는데되돌아보면미술계 속에서 적셔져 있는 습관이 퇴적된 양상 아니었나 싶습니다
역사의 현재성을 경험한 것 같은 순간이 있긴 있었지만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지금의 판단입니다앞으로 제가 스스로 이 문제에 부딪혀가고 싶습니다모순 속에 실체가 드러난다고 하는데하지만 이런 의식가운데서도 스스로 의식을 더 고양하고 지식을 정련해 집단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제가 해온 미술이론을 더 정교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미술이란 개인적이고 각별히 고독한 고요한 세계이자 고요한 침묵의 쾌락의 문제라는 점을 변호하려는 관성도 다시 불쑥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모순된 의식에 대한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들긴 듭니다만 곧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술과 퇴행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미술을 하고 싶은미술의 자기최면 효과라는 것이 있는데이런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이러한 분열된 갈등을 느끼고평생 그 사이의 심연의 경계를 넘나든 저의 삶그 의식에서 치열하게 삶을 극복하고 싶다는 깊은 욕구가 지금 간절하게 제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글쓰기를 좀 더 수련해 이런 갈등이 극복된 연금술적인 모양새를 얻어 보고 싶은 것입니다문학장르는 이런 면에서는 미술 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가능성을 안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미술계는 미술은 매음굴이나 마약자기도취적인 부분이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미술계는 한편으론 연예적인 파티의 세계 혹은 돈 없는 연예계 같아서 승자독식하는 연예계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는 경험도 이곳이나 파리에서 겪은 제 체험입니다전 세계적 현상입니다과장된 숭고와 종교적 구원 등 자아 도취된 작가들스타작가와 팔리는 작가로 떠오르기 위해 갖가지 술수로 경쟁하는 끼리끼리의 경쟁과 유명인으로서의 권력질 등 국제 미술계의 거대미술의 스페터클한 장들은 이러한 구도 속에 있습니다그래서 이러한 미술계에서 제가 좀 더 치열하게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의미가 무엇에 있는지 늘 이런 회의가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사실 그간 지속적으로 예술가가 무엇이냐에 대한 허상을 비판해왔습니다그리고 저는 예술에 대한 제도의 그와 같은 탄압에 대한 글들을 통해 제도미술과 순수미술의 개념에 대한 관계를 꾸준히 지적해왔습니다
제가 쓴 글 중에 프랑스 작가 장 뒤뷔페가 문화부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문화의 경찰서 앞을 지난다는 생각을 한다”(뒤뷔페질식하게 하는 문화)고 말한 바를 인용해 이 문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뒤뷔페의 이 말에는 제도적 교양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그리고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하는 문화에 대한 의심과 거부감이 스며있습니다
신구상 회화를 탄생시켰던 60년대 말 프랑스청년회화전의 작가들은 그들의 1969년 연례전에 문화와 경찰이란 주제를 끌어 들였습니다사회와 예술자본주의와 문화의 관계는 흡수통합이냐 전복이냐의 이슈와 더불어 현대의 예술적 사유와 행동의 미학적 윤리적 차원을 결정짓는 중요한 바로미터로서 기능한다는 지적을 했던 것입니다. 60년대와 70, 80년대 내내 세계의 수많은 개념예술가들은 다양한 비물질적예술의 전략 속에서도 예술의 제도와 언어 그리고 사회에 대한 비판은 지속됐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논의 자체에 대해서도 스스로 많은 고뇌를 안고 있습니다예술의 아방가르드자유란 과연 어떤 본질의 것인가자기 정당화일뿐 아닌가진짜 해방된 사회는 선구자의 의식에서만 존재할 뿐 아방가르드 미술은 사회의 단지 청량제일뿐 아닌가 하는 생각들입니다
그래서 진보적 예술가들의 할 일은 비판적 전복적 사고를 통해 이러한 청량제라도 계속 제공해야하는 것 아닌가서구 현대미술 관련해서 진정한 자유의 실체는 무엇인가아방가르드적 자유가 지닌 한계는 무엇인가 등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새로운 단계에서 검토해 봐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술사 내의아방가르드적 자유와 진보적 실천내의 기존 권위들에 대해서 고민스럽게 다시 붙잡고 늘어지고 싶습니다이러한 의지야 말로 사회적 모순들 간에 상호 소통하고자 하면 해야 할 일 아닌가 싶습니다소통을 미술의 가치영역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술을 이러한 의미에서의 소통형식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의 태동도 새로운 미술을 통해 전근대적인 인식들미술의 개념들미발전 부분들함량미달이라고 여겨졌던 지식들정보들방법들에 대해 소통해보고자해서 출발했었습니다그리고 이 의식은 지금도 저에겐 여전히 현재적 의식인 것입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의 태동의 뿌리 중 하나는 한국미술이 당시 너무 로컬한 풍경 속에서너무 순수주의적으로 갇혀 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이 틀을 깨고 미술을 가치있는 소통형식으로 바꾸는 문제가 시급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저로선 오래된 미래 같은당대를 그 맨 앞에서 달려왔던 한 뛰어난 미술평론가의 생각의 많은 갈피들과 그 숨결들의 생생함을 보았습니다성완경 선생님의 고민이 저와 우리 미술계 너머 우리 현대성에 일종의 해방적 기능을 하리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선생님이 갖고 계신 지금의 고뇌들이 보다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임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저는 성완경 선생님이 우리 시대 최고의 교양층에 서계신 분이라는 전제를 두고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그것은 제가 그간 선생님의 책을 읽고 활동을 보며 인지한 가장 선명한 특이점은 선생님의 남다른 문화교양지성과 그 지성이 형성되게 된 개인사 속에서의 지성사에 있다고 판단해와서입니다이 말은 사실 별도의 검증이 필요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굳이 인터뷰를 통해서 새삼 밝혀지는 그런 판단이 아니고그간의 성완경 선생님의 다양한 활동의 궤적으로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수 있었던 느낌과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 저에겐 다른 차원의 확신이 생겼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선생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잠재적 관중우리 미술계에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 같은우리 사회의 근현대적인 여러 격동적인 변화에 의해 형성되어야할 잠재적 관중의 가장 문화적인 전형그 역사적 현존의 모습이야말로 성완경 선생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그리고 성선생님과 함께 당대를 고민했던 여러 문화계 구성원들이며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주었던 당당한 자기의식을 지닌 대중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완경 선생님이 지닌 교양과 지성이 시대변화를 수용한 잠재적 관중의 산 증거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선생님의 글과 활동전반의 내용이야말로 잠재적 관중의 교양문화의 산물이요 보통의 당당한 관중의 문화를 반영한다고실체화한다고보통의 당당한 관중이라는 이념적 실체의 일종의 현존하는 기관이라고이미 일정하게 역사가 된 우리 근현대동시대사의 변화를 바라보고 수용한 잠재적 관중의 미술언어요 미술교양이라고이미 우리 문화사의 가치기준인 문화적 규범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성완경 선생님이 지닌 상상계를 반영하고 예감하는 미술이야말로 한국 현대미술이 자기 시대를 인식하고 넘어 갈 수 있는 참다운 동시대 미술일 것이라고 짐작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성완경 선생님의 비평과 여러 가지 문화적 실천 작업들은 그야말로 비판적이고 당당한 관중의 시대일기이자 우리 미술문화의 현대적 생산성을 높여가는 작업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 하신바대중의 작업환경 속에서나 그들이 사는 동네나 거리에서 그들에게 조언하고 함께 얘기하고 또는 생활하면서 일종의 지도자-이끄는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교육적 의미 내지는 사회문화적 활동가의 일이 길이 바로 진정한 예술 사회화와 민주화의 길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선생님 자신이 바로 이 길을 걸어오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오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신 성완경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며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file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75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강성원 (인터뷰는 민미협 30주년 기념 <인터뷰 집>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여차 저차한 이유로 못 실렸음. 이 글은 원래의 인터뷰 글에서 <인터뷰 집> 취지 관련 인터뷰 도입부는 삭제됐음. 그밖에 인터뷰 중간 중간에서도 <인터뷰 집> 관련 내용은 삭제됐음. sns에 올리는 일은 성완경 선생님의 허락 하에. 인터뷰 내용 중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내용에 대해 질문할 때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문장을 축약하거나 풀어쓴 경우도 있지만, 선생님이 쓰신 문장 그대로 드러내면서 질문...

<근현대 시각이미지와 여성>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24

미술로 표현된 근현대 여성의 모습은 과연 ’여성‘을 담고 있는가,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성은 과연 여성주의를 실현하는가, 여성미술은 어느 정도로 여성해방적 미술을 성취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간략한 질문형식의 문제제기를 해보자.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여성이미지들에 과연 여성성의 달라진 의미들이 반영되어 있다면 여성미술은 시대마다 얼마나 이런 여성성의 문제자체를 인지, 인식해 담아내는가? 여성작가들의 작가활동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자신이 옹호하는 여성성과 일치하는가 하...

내 마음의 수선전도(修善全圖)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25

   내 마음에도 ‘수선전도’가 존재한다. 내 마음이 느끼는 서울의 전체상인데 내가 느낀 서울의 심경상(像), 그 바닥이자 하늘이다. 원래 ‘수선전도’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한 나라의 ‘수도(首都)’의 의미는 으뜸가는 선(善)을 건설하는 일 곧 수선(修善)의 시작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수선전도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기관들이 국심(國心)의 세력중심으로 재현돼있다. 오늘날의 광화문 부근 영역이 정부청사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등이 들어서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상징하듯...

_‘퍼블릭 아트’는 동어반복적 개념어이다.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25

<광장의 예술과 퍼블릭(Public Art) 아트 개념> 1 광장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광장에서 함께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연대감이다. 광장에 서면 일상 속 불만과 갈등이 내일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의 순간에 내 옆 어느 낯선 사람도 내 마음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벅찬 뜨거움이 올라온다. 굳이 촛불집회같은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디인가 누구나가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주변을 누리고 공중의 특별한 간섭없이 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

깊이의 허영 리얼리즘 변종현실 file

  • 쾌활림
  • 2017-09-17
  • 조회 수 125

1 변종현실   제1의 리얼리티가 있다. 제1의 리얼리티는 제1의 리얼리티를 숙주로 한 기생 리얼리티와 그 변종을 무한증식한다. 리얼리티가 무한증식하는 줄기는 의식상에서의 범주에서이다. 그리고 숙주리얼리티 변종들 바이러스는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항상성을 지녀서 겉으로는 가시화되지 않는다.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것은 제1의 리얼리티가 개인이 해체, 파괴할 수 없는 구조로서의 ‘현실 겉면’이기에, 철의 장막이기에 무한증식하는 숙주 리얼리티는 의식 바탕 저 아래 깊이로 밖에는 변종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file

  • 쾌활림
  • 2017-04-01
  • 조회 수 339

월간미술 4월호 연재 글(그간 반년 가량 개인사정으로 중단 했다가 다시 시작)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1. 맥 컴퓨터와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한 텍스트나 이미지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호환을 위해서는 다른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호환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특별한 수단은 결국 상품으로 구입해야 한다. 구글 시트(Google Sheets)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Microsoft Word)나 한글 워드로 쓴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호환이 안 되면 텍스트를 복사해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 작업들을 메일로 전송하고자 ...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 쾌활림
  • 2016-08-28
  • 조회 수 64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월간미술 연재13) 1 이 세상에 실제하는 공론의 양대 축, 공론이 그 안으로부터 생성되는 원천은 제도와 인간이다. 세상의 저간에 떠도는 갖가지 공론들은 인간 개개인에게서, 그들 모두 간의 삶의 느낌에서 나온다. 이런 가지가지 개인감정과 이해(理解)의 시선들이 실제로 모아져 일정하게 객관화된 것이,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의 ‘필요’에 따라’ 정착된 것이 ‘제도’이다. 제도는 제도의 정신으로, 관련된 법으로 움직여진다. 제도는 본질상 인간의 행위가 일으키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예측시스...

민중미술의 미학 file

  • 쾌활림
  • 2016-05-30
  • 조회 수 388

민중미술의 미학   1 미술가가 자신이 직접 본 광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동, 서양 모두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가는 이즈음부터 자신이 본 생활상의 장면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듬뿍 담아 일정한 틀 속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보다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사실상 일반적인 사회경관 대부분의 광경들은 작가 주변의 일상생활 아니면, 사회 밑바닥 층의 헐벗고 남루하고 그럴 수 없이 가난한 삶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인생에 회의가 들고 인생의 고통 전반에 생각이 ...

악덕,공공성, 제도의 영혼 file

  • 쾌활림
  • 2016-05-28
  • 조회 수 139

악덕, 공공성, 제도의 영혼   1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이래 악행(惡行)이나 악덕(惡德)을 묘사하는 숱한 어휘들도 생겨났다. ‘흉악하다’, ‘수전노 같다’, ‘냉혈한이다’ 같은 표현들과 ‘악덕 군주’, ‘악덕 자본가’, ‘악덕 계모’, ‘모리배’, ‘간신’ 등등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악덕’에 얽힌 이야기들이 인간언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덕한 행위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악덕에 관련된 형용어들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숨을 걸고라도 간절히 기...

메타포, 정원, 공공영역 file

  • 쾌활림
  • 2016-01-29
  • 조회 수 161

메타포. 정원(庭園). 공공영역   1   우주의 역사, 자연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자연의 역사는 뇌의 생리 속으로 자신의 역사, 그 시간 속 공간 속 축적된 의미들을 전달한다.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 생활의 고통의 역사는 예민한 신경의 공감적 능력에 자신의 고통을 풀어낸다. 자연이 삼킨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과 개체가 행한 생의 무리수, 공포와 착종된 비전을 그려낸다. 그래서 자연이 종국에서 드러내는 생활상의 과거, 산화(散華)된 경험의 소리와 냄새, 빛과 감각의 모든 스펙트럼을 얼마...

자연의 우울_사실성의 우울 file

  • 쾌활림
  • 2015-12-25
  • 조회 수 413

1 자연이 합법칙적이라는 관념은 근대화된 관내(管內) 학문, 곧 근대과학의 산물이다. 근대적 학문범주에서‘자연’으로 범주화된 세계는 과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자연’도 분명 존재한다. 곧 인간의 ‘생활세계’로 근대과학의 탐구 대상인 자연세계를 자원으로해‘인류 발전’이라는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인류생활로서의 세계이다. 사실상 개인이 몸담고 있는, 개인에 관여되어 있는‘자연세계’는‘자연’으로서의‘생활세계’이다. 과학 연구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자연세계는 추상적인 ...

전통_효과의 사다리, 무의미의 의미 file

  • 쾌활림
  • 2015-09-27
  • 조회 수 1432

1.   아프리카 해안가 어디에선가 부터 해협을 건너고, 지구 표면을 따라 방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족적, 이 발자취를 인류사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전통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지구 위를 방랑하다가 삶의 터전을 세우고 발 길 닿는데까지 영토화한 일도 흔히 역사라고 불려지지만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부터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석기, 철기 시대를 열고, 삼한과 백제, 신라, 고구려를 세운 일도 역사이고, 당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생활의 전...

자기만의 세계상 file

  • 쾌활림
  • 2015-07-29
  • 조회 수 1215

자기만의 세계상 _  새로운 체험의 초현실 1. 누구나 한번 쯤은 살면서 권태롭기까지 했던, 아귀다툼 같았던 일상이 지상의 행복이구나 하며 느낄 때가 있다. 누구나의 일상이 같은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이 반복되는 생활리듬에서 나왔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별별 이유와 고통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벼터내는 것은 나날의 생계(生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목격하고 체험한, 피해 입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세상...

제대로 사는 삶의 문제 file [2]

  • 쾌활림
  • 2015-07-03
  • 조회 수 450

1 인류는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하는 아주 오랜 물음, 문명이라는 이름의 물음에 이끌려 살아왔다. 인간의 문명 특히 서구문명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할 까닭이 없는, 이런 물음을 갖지 않는 인간을 인간다운 생명으로 여기지 않아왔다. 제대로 사는 것이, 궁극에서 보면 사회의 공적 영역, 그 부산함에, 시끌벅적한 부(富)와 부를 창출하는 기술과 노동, 사업과 인간관계, 인정과 평가의 사회생활에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으로 끼어들어 살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갈구하는 것이...

예술과 생활2 file

  • 쾌활림
  • 2015-05-28
  • 조회 수 370

김성룡천일야화 프로젝트   1. 역사는 거창한 비전과 계획이 이룬 삶이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구성원들 일부가 대량살상으로 인해 혹여 절멸 된다고 해도, 나머지 개인들이 비참한 생활로나마 생존할 수 있다면, 역사는 생존자들의 핍진한 이해관계의 긴장으로 무장돼 미래만 바라보며 나가게 된다. 굶주림과 학대가, 살상과 모반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은 새벽위로 떠올라 밤사이로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일상에서 몇몇 극소수 개인들은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도 기획하고 생의 미화도 만끽하면서 ...

미학이란 무엇인가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306

 1 일반적으로 '미학'이란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조금은 그 뜻을 막연해한다. 그래도 '미에 대한 학문'이니까 예술에 관한 전문지식체계를 다루거나 미용 등 구체적인 생활분야에서 무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될 때 미학을 언급한다는 정도는 알 수 가 있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의 미학 이해는 틀리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미학'은 얼핏 대하기 만만치 않은 아우라와 수수께끼로 가득 차 보인다. 통념이 과연 맞는 것인가 반신반의 하게 된다. 한편 미학에 대한 통념이 미학에서 실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

사회시스템과 미술2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84

1 개인이 자기자신에 대해 모르는 정도는 타인에 대해 모르는 그만큼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모르는 정도가 클수록 한 사회가 지닌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불일치가 커진다. 세계화로 전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마치 전지구의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 지구의 남반부와 북반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이 정도로 나마 서로 인지하고 알고 지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뿐더러, 또 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서로 간에 모르는 부분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

인문학의 정치,미술의 정치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542

이인철/스포츠 공화국의 상과 하  1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논쟁이 있다.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하자면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발언을 해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예술가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참여예술을 주장하는 작가는 보통 좌파진영에 속한 작가라고 추정, 분류되면서 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서 보듯 전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순수냐 참여냐의 예술적 선택에서 예술을 통한 현실참여를 예술적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온시하면서‘정치적 미술’로 문제시 한 것이다. 실제 정...

사회시스템과 미술1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19

서용선<단종복위모의>   최경태 <겨울 아침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1.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활로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 ‘생활’(生活)에 나서야 나날의 일상과 자신의 생애가 보장되고 생명의 잠재적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생활에 나서지는 못한다. 성년이 되기까지는 경험해야한다. 경험을 위해 배워야한다. 초기 인류라면 생활을 위해 무작정 걸으면서 보고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 시대 접어들면서는 생활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배워야했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체계(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가 경험하고...

경험과 판단의 아카이브_필요하지만 없는 것에 대한 단상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41

  조양규 <31번 창고> * 인간은 살면서 생활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감정은 어떤 생명체 보다 유별나고 복잡하다. 특히 삶의 감정이 단순히 수동적인 지각현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판단과 경험내용의 복합체이며 주관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지식의 결합물이며 의식의 총체물이라는 점에서 우주의 어떤 것 보다 특수한 인간만의 세계를 표상한다. 이러한 표상들로 부터 사고와 관념의 상들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의식작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