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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익숙한 것들을 뒤로 하고, 다시금 사유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게시판에서 나는 ‘독일’ 이야기를 하게 될 테지만, ‘독일’을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즉 사회민주주의의 낙원도, 경제강국이라는 유토피아도, 그리고 ‘선진국의 문물을 배우고 전하는 유학생’도 이 공간엔 없다. 대신 (독일)사회의 ‘반대편’에 놓인 잡다한 것들을 다루는 사전, 기사, 보고서 등의 인용문들이 이 공간을 채우게 될 것이다. 사회의 풍경은 이 반사회적인 - 각각 asozial, unsozial, kontrasozial에 해당하는 - 것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베를린 유학생.

"문명하셨습니다."

조회 수 1284 추천 수 0 2016.01.06 22:40:01

호후홍.jpg

지금까지 어떤 문명이 미개함을 몰아내자는 캠페인으로 건설된 바 있을까. 있다. 오직 식민지들에서만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을 건설이라 부를 수 있다면. 오늘날 미개를 타파하고 문명을 갈망하는 목소리들에 (문명인 다운) 주체적인 자의식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문명 캠페인은 두 개의 타자화 형식, 즉 1. "미개"라는 타자를 설정하고 공격하는 것, 2. 스스로 "외국"이라는 대타자(오직 구미의 선진국들만이 이 "외국"이 될 수 있다)의 대상이 되는 것 속에서 이뤄진다. 그 속에서 문명을 갈망할 수록 주체는 더욱 더 식민상태에 빠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형식은 좌우, 연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건 발견되기 때문에 특별히 고를 것 없이 어젯밤에 트위터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인용해 보자. SBS스페셜이 충격적으로 미개한 다큐, <엄마의 전쟁>을 방송한 뒤 나온 말이다. 


"@Dxxxxxxk  1월 4일

다큐멘터리 하는 외국친구들이 한국 다큐멘터리는 왜 드라마틱하냐고 물은 적있다. 음악이 너무 많고 제작진의도로 쓴 자막이 많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에 입각한 진실을 전달하면 된다.감정은 관객의 몫이다. 


@Dxxxxxxk 1월 4일 @Dxxxxxxk 외국 다큐멘터리를 보라. 최대한 현장음을 살리고 음악도 나레이션도 최소화한다.그것은 제작진의 해석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감정적인 나레이션의 도배,인터뷰에도 넣는 음악,제작진이 멋대로 해석한 자막,이건 다큐가 아닌 의도된 영상일뿐이다."


미개한 내용은 물론, 미개한 형식에도 지친 반도의 다큐 시청자는 다큐의 이데아, 다큐의 문명을 찾으러 "외국"을 향한다. "외국"을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비판할 수 있는 길이 반도에는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

눈을 조금 돌려 보면, 이러한 '문명화'는 서구에서는 '원주민'이 '이민자'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수 정당인 독일 바이에른 기사당은 최근 난민들에게 독일의 기본법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 독일(유럽)의 기본적 가치들을 인정한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주자는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애초에 난민(이민자) 전체에 미개의 혐의를 씌우고, 문명 앞에서의 주체성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다. 물론 동성혼 반대라던지, 부부간에도 형법상 강간죄를 적용하려는 법에 반대표를 던졌던 것 등을 포함해서 바이에른 기사당의 여러 정책이 얼마나 '문명'적인지 감히 반도인인 내가 판단할 수는 없을 테다. 저명한 68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알리스 슈바르처는 그의 잡지 EMMA를 통해 이주민 무슬림(남성)들을 끊임없이 비판하는데, 그 내용이란 정작 이슬람 교도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게 "이슬람주의 십자군의 깃발", "21세기의 파시즘"을 보여준다는 식이다. 히잡을 쓴 여성이 이슬람주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거나, 최소한 자기 주체적인 여성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히잡을 벗지 않고서는 무슬림 여성이 문명인이 될 방법이 없다.


흥미롭게도 이들 '원주민' 혹은 '문명인'들 사이의 섹슈얼리티와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바이에른 기사당과 알리스 슈바처 사이는 동이 서에서 먼 것 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동성혼이나 고용평등, 낙태 등의 이슈에서 이들은 전형적인 대립 관계에 속할 것이다. 백인-기독교-계몽주의-페미니즘-자본가-노동자…사이의 수많은 균열과 대립의 선들은 이들 모두가 '문명'이라는 대타자의 목소리에 복종할 때 깨끗하게 사라진다. 이 균열과 대립을 통해 탄생한 주체("문명인")의 역사는 오간 데 없고 미개를 향한 타자화만 남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서구 문명 자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의 부친살해(프로이트)도 없고, 모든 가치를 전복시키는 어린아이(니체)도 태어나지 않는 문명. 그야말로 "문명하셨습니다." 



*

반도의 "문명화 캠페인"은 문명을 사랑하고 미개를 멀리하는 이들의 소망처럼 반도인들이 문명인이 되는 결론을 낳을 수 있을까. 아이즈IZE의 신년 캠패인에서 내건 100개의 목록이건, 혹은 트위터같은 곳에서 '미개'와 '문명'이라는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이런 저런 행위건, 그 미개와 문명의 '내용'은 결코 문명화 캠패인의 성공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니라 (수행적인) 형식이다. 사실 이런 캠페인의 진짜 내용은 그 형식에서 나온다. 그리고 문명과 미개라는 형식 속에서 발생하는 균열 혹은 적대는, 문명을 낳기엔 위험하고, 무력하다.


댓글 '5'

ㅇㅇ

2016.01.07 22:43:03

"독일 바이에른 기사당은 최근 난민들에게 독일의 기본법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 독일(유럽)의 기본적 가치들을 인정한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난민신청자의 지위를 주자는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애초에 난민(이민자) 전체에 미개의 혐의를 씌우고, 문명 앞에서의 주체성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다. 물론 동성혼 금지 등을 포함해서 바이에른 기사당의 여러 정책이 얼마나 '문명'적인지 감히 반도인인 내가 판단할 수는 없을 테다."

문명대 미개라는 프레임에서 보자면 기사당의 입장도 만만찮게 미개하다는 식으로 비꼬셨습니다. 물론 그건 비꼬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고, 글쓴이께선 문명대 미개 프레임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신다 하였으니, 글쓴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비유없이 말하자면 기사당의 반 동성애 정책, 난민들이 독일의 기본적 법과 질서에 동의해야 독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한 점 등등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신다는 뜻이겠지요. 말씀인즉슨 기사당을 포함한 독일의 정당 또는 독일 사람들 일반은 난민들이 그들 나름의 율법을 고수하는 데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될 터인데, 그들의 율법은 반 동성애적 입장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글쓴이의 기준에 따르면 '미개한(바람직하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지되어서는 안 되는 건가요?

김강

2016.01.08 06:50:39

독일에서 논란이 된 것은 위에서 쓴 내용을 담고 있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만' 난민으로 받아준다는 기사당의 정책입니다. 이건 난민에 관한 국제협약은 물론 독일 기본법(헌법)과도 충돌할 위험이 있는 거지요. 난민과 이주민의 '통합' 문제는 긴 시간이 걸리고, 또 신중함이 요구되는 사회문제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화국 안에서 어떻게 융합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건 모두의 몫이죠.

그리고 저런 서류에 사인요구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한 것이 곧 "그들의 율법을 고수하겠다는데 간섭하지 마는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논리면 기사당 외의 모든 정당이 저 제안을 말도 안 된다고 거부했는데, 그 사람들은 이슬람 율법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랬을까요? 무엇보다 어차피 독일에서 살면 당연히 독일법의 규제를 받게 되고요, 아무리 개인이 자기의 도덕법칙에 따르면 무죄라고 주장해도, 범법행위를 하면 차별없이 벌을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한 국가사회의 정치적 차원에서는 누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건 헌법이 객관적으로 상위에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굳이 그것을 인정하네 마네 싸인하고 할 필요가 없죠. 저 정책은 그저 난민을 일반적으로 범죄적이거나 미개한 존재로 생각하는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두려움에 기생하는 정책일 뿐이에요. 기독교인에겐 하느님 나라가 위에 있냐 헌법이 위에 있냐 이런 거에 싸인하라고 할까요. 저런 정책은 통합엔 오히려 저해효과만 가져올 뿐입니다. ㅇㅇ님께서 어느 나라에 이주민으로 가 있는데 매일 매일 사상과 양심에 대해 질문을 받으며 생활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아 물론 한국인들은 그 옛날 언젠가 내국인인데도 매일 매일 국민교육헌장 같은 걸 외워야 했던 시절도 있었죠. 뭐 그런 식으로 어떤 가치를 사회에 심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문명인이라면:-) 보통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질문

2016.01.08 08:57:50

"한 국가사회의 정치적 차원에서는 누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건 헌법이 객관적으로 상위에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굳이 그것을 인정하네 마네 싸인하고 할 필요가 없죠. 저 정책은 그저 난민을 일반적으로 범죄적이거나 미개한 존재로 생각하는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두려움에 기생하는 정책일 뿐이에요."

기사당의 주장이 욕먹는 주된 이유는 아무런 실효성 없이 괜히 난민들만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죠. 잠재적 범죄자 취급, 미개 어쩌고 보다는. 그와 별개로, 위에서 하신 말씀을 보니, 난민들에 대한 우려를 그저 보수적 유권자들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막연한 두려움 쯤으로 치부하시는 듯 한데, 파리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나 최근 쾰른에서 일어난 집단 성범죄 문제를 보고도, 그게 그저 보수적인 유권자들만의 기우라고 생각하시나요? 얼마나 걱정되고 다급하면, 저런 바보같은 정책까지 내세울까 뭐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이 전혀 안 가세요? 남을 해한 전적이 있는 노숙인을 집에 들이면서, "쟤가 나를 해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는 게 그저 "잠재적 범죄자", "미개인"인 취급하는 나쁜 짓으로만 보이세요? 님이 그런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저리 쉽게 "서구 제국주의자" 프레임을 씌우는 것 역시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설마 비서구인이 서구인에게 행하는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가지 더. 히잡을 쓰고 있는 여성이 페미니스트일 수 있죠. 실례로, 말랄라도 히잡을 쓰고 다니죠. 말랄라가 히잡 쓰고 다닌다고 서구에서 페미니스트 취급 못 받는다는 얘긴 못들어 봤는데, 님은 들어 보셨으니 "히잡을 쓴 여성이 이슬람주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거나, 최소한 자기 주체적인 여성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얘길 하신 거겠죠?

별개로, 히잡 쓰고 다니는 여성이 페미니스트일 수는 있으나, 여성은 무조건 히잡을 써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이를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겠죠. 이유야 님도 모르시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 둘은 구별을 하세요.

그리고 이건 정말 궁금한 건데, '문명(인)'이라는 기표에 담긴 기의들은 아주 세밀하게 분석하시면서, '히잡'이라는 기표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둔감하세요? '문명'이나 '미개'라는 말만 입에 담아도 서구 제국주의자 취급하면서, 히잡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안하시는데,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aa

2016.01.31 18:17:18

"얼마나 걱정되고 다급하면, 저런 바보같은 정책까지 내세울까 뭐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이 전혀 안 가세요?" 정책은 평가되고 비판되는 것이지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남을 해한 전적이 있는 노숙인을 집에 들이면서, "쟤가 나를 해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는 게 그저 "잠재적 범죄자", "미개인"인 취급하는 나쁜 짓으로만 보이세요?" 전과가 있는 한 '개인'과 반사회적 행동(범죄, 테러 등)을 저지른 사람들이 속한 '집단'을 비교할 수는 없죠. 수 백만 명의 난민 중 문제를 일으킨 난민이 그 중 과반이라도 차지합니까?

aa

2016.01.31 18:40:29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사당이 제안했다던 정책 내용이 지젝이 주장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fugees should be reassured of their safety, but it should also be made clear to them that they have to accept the area of living allocated to them by European authorities, plus they have to respect the laws and social norms of European states: No tolerance of religious, sexist or ethnic violence on any side, no right to impose onto others one’s own way of life or religion, respect of every individual’s freedom to abandon his/her communal customs, etc. If a woman chooses to cover her face, her choice should be respected, but if she chooses not to cover it, her freedom to do so has to be guaranteed. Yes, such a set of rules privileges the Western European way of life, but it is a price for European hospitality. These rules should be clearly stated and enforced, by repressive measures (against foreign fundamentalists as well as against our own anti-immigrant racists) if necessary.”
http://inthesetimes.com/article/18385/slavoj-zizek-european-refugee-crisis-and-global-capitalism

지젝은 repressive measures에서 그쳤지만 그것을 구체화시킨다면 결국 '문서에 서명' 같은 걸로밖에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차별 없이 법의 규제받고 처벌받는다'는 위의 답변을 보고 다른 여지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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