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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익숙한 것들을 뒤로 하고, 다시금 사유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게시판에서 나는 ‘독일’ 이야기를 하게 될 테지만, ‘독일’을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즉 사회민주주의의 낙원도, 경제강국이라는 유토피아도, 그리고 ‘선진국의 문물을 배우고 전하는 유학생’도 이 공간엔 없다. 대신 (독일)사회의 ‘반대편’에 놓인 잡다한 것들을 다루는 사전, 기사, 보고서 등의 인용문들이 이 공간을 채우게 될 것이다. 사회의 풍경은 이 반사회적인 - 각각 asozial, unsozial, kontrasozial에 해당하는 - 것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베를린 유학생.

역주 | 그리스 치프라스 수상과 차카탈로스 재무장관이 국민투표에서 채권단 안이 부결된 뒤에 이와 비슷한 긴축안을 재출함으로써 각국 좌파들 내부에서 혼란스러운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 칼럼은 독일 좌파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리자 정부의 신 협상안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신 협상안은 정치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독일 정부가 이끄는 현재 유럽질서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무엇보다 정치적 행위자로서 좌파진영의 무능이야말로 이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유럽 및 그리스 좌파의 다음 스텝은 일각의 그렉싯 주창자들이 아니라 일보 후퇴 이후 다시금 투쟁을 조직하는 데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 원글 주소: http://www.neues-deutschland.de/m/artikel/977586.gegen-das-linke-grexit-gered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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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ARIS MESSINIS

이제 공식적으로 떠오른 그렉싯Grexit(주/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은 우선은 쇼이블레의 프로젝트다. 그렉싯은 자본 내부의 특정 파당에 의한 정치적 프로젝트지만, 그것을 자본주의의 자체의 프로젝트라 볼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 전체는 더 큰 활동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긴축을 완화하거나 없애는 방향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부채모라토리엄이나 일부 탕감 역시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쇼이블레의 파당이 계속 승승장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독일에서 70%를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무엇보다 독일내 좌파의 문제다. (또한 더 넓게는 유럽 핵심부 좌파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 내부에서 쇼이블레 쪽이 아니라 다른 파당이 승기를 잡는데에 내기를 건 것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주/프랑스 정부나 미국의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등 지배구조 안에서 메르켈-쇼이블레 정부와 각을 새우고 있는 쪽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가 앞으로 수 시간, 혹은 수일 내에 볼 수 있는 가능한 옵션 중 하나다. 

61%의 그리스인들은 50%가 넘는 유권자들이 참여한 국민투표에서 긴축협상안 반대에 투표했다. 이것은 분명하게 쇼이블레의 요구에 대한 반대투표였다. 하지만 이것을 그렉싯에 대한 찬성투표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반대표가 보여주는 그리스인들의 의지는 쇼이블레의 요구에 대한 반대 만이 아니라 유로존에 잔류하려는 의지 역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의 투표를 좌파적인 것이라 볼 수 있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좌파가 주류가 된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반대표를 던진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그들의 굴욕과 빈곤화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존엄을 주장한 것이지 지배계급의 종결이나 그에 따른 결말에까지 투표를 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주의 로망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좌파들이 그렉싯을 추진한다면, 그들은 반대표를 던진 유권자들 중 소수의 지지만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반대 유권자들의 뜻을 경향적으로 거스르는 것이며, 그리고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들과는 분명하게 적대하는 것이며, 또한 기권한 유권자들 대다수와도 대립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논의의 여지 없이 그렉식은 적어도 당분간 (약 몇년이 될 것이다.) 그리스 경제를 빠른 속도로 망가뜨릴 것이다. 유로에 대한 접근권을 가졌거나, 빠져나가는 사람들이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때문에 좌파적인 그렉싯은 약 절반 정도에 달할 그리스인들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들의 저항은 분명 매우 전투적인 형태로 분출할 것이고, 그리스 바깥의 세력들은 모든 가능한한 형태로 이들을 지원할 것이다. 그렉싯을 찬서하는 좌파들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다. 
 
그렉싯을 수행한 좌파의 그리스는 결국 21세기에 20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에 후신 프로젝트를 하나 추가한 정도로 그칠 공산이 크다. 권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빈곤상태의 행정이 이뤄지고, 그 지지자들은 이데올로기적 배당금 (“사회주의 그리스로 전진 전진! 미래는 빚나고 있다!”)이나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될 수록, 이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20세기의 모든 경험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급진적인 해방을 위한 싸움은 언제나 가능한한 최악의 조건 속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결국 알려지게 된 구 현실사회주의 사회들의 정치적, 도덕적 황폐화는 오늘의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어떠한 환상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 속에서 우리가 처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좌파적 그렉식을 포기하는 것이 현 시리자 정부에 뜻하는 바는 결국 분명하게도 쇼이블레의 요구들을 수용하면서 부채 문제를 강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배반”이 아니다. 단지 쇼이블레 파당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지배관계를 다시금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70%의 독일인들, 유럽 중심부의 사람들, 구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주민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시리자 정부의 출발시점이나 국민투표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 그것이 부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도 - 패배다. 시리자만의 패배가 아니라 모든 좌파의 패배이며, 또한 시리자 프로젝트를 다른 유럽을 위한 싸움으로 가져가려 했던 모든 사람들의 패배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가 결코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이 패배야 말로 현재 시작되어야 할 투쟁들의 서막이 되어야 한다. 이 싸움들은 결코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이 투쟁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투쟁이 벌어져야 하며, 또한 내부적 갈등들이 동반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투쟁은 (현재로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시리자 정권의 행위가 가장 중심에 놓인 그런 싸움은 아닐 것이다. 결국 2015년 1월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인들의 저항이 거두었던 성과, 그리고 확신할 수 있는 것들 - 광장(들)의 민주주의로부터 일상의 정치화, 그리고 정당을 투쟁의 수단으로 입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 은 시리자 정부의 정치에 달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연대하면서) 시리자 정부와 거리를 두거나, 시리자 정부와 대립하면서도 계속될 수 있다. 이 공간에서야 많은 것들이 가능할 수 있다, 아직 시험해 보지 않았고, 밟아보지 못한, 발명되어야 할 아래로부터의 21세기 사회주의 말이다. 모든 다른 곳에서 그랬듯 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가진 급진적이고, 그래서 아직은 소수파적인 형식들 속에서 그 다음의 반란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란을 좌파적 그렉싯 프로젝트나, 필연적으로 권위적 수밖에 없는 네오-현실사회주의 빈곤체제를 이끌고 나가는 것과 혼동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이들 그렉싯의 투사들은 오직 그들 자신의 가능성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려 하며, 그래서 다른 이들을 해방과 행복으로 이끌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차이다. 

아직은 시리자에 보냈던 연대와 지지 - 물론 그것은 너무나 약했고, 그래서 근본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낳은 요인이 된 것이지만 - 를 철회할 이유는 없다. 그 반대다. 그리스의 새출발에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아는 것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리야 말로 성공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한다면 (독일과 유럽의 핵심부에서) 시리자의 배반을 논하며 다투는 것은 터무니없는 거만함이며, 우스꽝스럽고 역겨운 행동이다. 

토마스 자이버트 | 철학자. 독일의 급진좌파 운동네트워크인 Interventionistische Linke (개입행동좌파)의 회원이며, 신그람시주의적인 “모자이크 좌파”전략 (통일된 좌파정당이 아니라 각 부문의 좌파 행위자들이 유기적으로 행동하며 사회전체의 해방을 추구하는 전략)의 이론가 중 하나다. 
번역 | 김강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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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민중이 사라진 시대, 민중신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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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고작 청와대인가 fil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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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남자들’ 담론과 내일의 극우정치 file [1]

  •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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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신학을 떨쳐낼 수 있을까 - 마크 릴라, «사산된 신» 서평 (2009) file

  • 김강
  •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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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2009년 «온라인 당비의 생각»에 실었던 글이다. 아래에 쓴 "문명하셨습니다."와 연결되는 관점을, 특히 '정치와 종교' 문제와 관련하여 짧은 서평 안에 정리해 둔 글이라 몇 년 지난 글이긴 하지만 약간의 코멘트를 추가하여 «파벨라»에도 담아둔다.  1648년 10월 24일. 베스트팔렌의 오스나브뤼크에서 역사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조약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벌어진 ‘신교 유럽’과 ‘구교 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30여 년의 전쟁을 끝맺는 것이기도 했지만, ‘교회의 정치에 대한 지배’라는 중세 유럽의 기나긴 신학-정치...

"문명하셨습니다." file [5]

  •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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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좌파 버전의 무의미한 그렉싯 담론에 반대함_토마스 자이버트 file

  •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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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급진좌파운동 약사(略史) file [1]

  •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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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운동의 학생 지도자 루디 두취케 6, 70년대의 독일 급진좌파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익숙하다. 50년대의 보수적인 “총리 민주주의”의 시기를 거쳐 대연정 및 사회민주주의의 황금기에 접어든 독일(서독)에서도 반전운동과 반권위주의로 특징지워지는 68혁명의 기운이 불어왔다. 이 시기의 서독의 의회정치는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 그리고 소수파 자유당 단 3당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교회(가톨릭과 독일개신교)나 노동조합,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이들 정당을 통해 대의되는 조합주의적 사회형태를 띄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