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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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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그가 마을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는 바로 우리 시대였다”라고 썼다. “오월 광주의 죽음에서 시작”된 시대를 가장 폭넓게 대변한 노무현이 실패한 저항의 책임을 지고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적어도 비겁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자기를 던졌”다고, 김상봉은 썼다.

노회찬 의원이 서울 남산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속보를 들었을 때, 나는 멍한 상태로 김상봉의 저 글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한 시대가 끝났다면, 노회찬의 죽음으로 아직 오지 않은 시대를 열고자 했던 희망이 사라졌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1987년 완성되지 않은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도전이 좌절됐다면, 노회찬의 죽음으로 1997년 시작된 파괴적인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저항이 실패했다. 노회찬의 죽음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노무현의 선언에 진보적 정책을 내밀며 벼랑 끝에 서 있던 한 정치인의 의지마저 꺾였음을 의미한다. 그가 경제적 양극화에 저항하기 위해 비난을 무릅쓰고 강화했던 민주노동당 정책실은 사라졌고, 그 정책실을 이끌던 이들은 노회찬 생전에 곁을 떠났거나 노회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민주노동당 정책실이 만들었던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과 같은 빛나는 정책들은 다른 정치 세력에 의해 전유되거나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과거가 되었다. 노회찬의 죽음으로 그 정책들도 죽었다.

돌이켜보면, 아직 오지 않은 시대가 잠시 얼굴을 내민 적이 있었다. 2004년 4월 15일 오후 6시, 광화문 앞 동아일보 빌딩 위 대형 TV에선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거셌지만,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으로 선거 막판 판세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열린우리당이었다. 최소한 ‘과반인 150석 이상 확보가 확실하다’는 문구가 떴다. 하지만 그날 광화문에는 TV 화면 한구석에 조연들이 띄운 ‘한 조각 희망’을 보고 환호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진보정당 의회 입성. 민주노동당은 비례 투표에서 13%나 되는 지지를 받아 8석의 의석을 확보했고, 지역구 2석까지 모두 10석을 차지했다. 비례대표 끝자리에, 김종필을 밀어낸 노회찬이 있었다.

그날이 화려한 시대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면 그저 벚꽃처럼 잠시 피어올랐던 짧은 절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건, 짧은 절정일지언정 결코 거저 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회찬은 그 짧은 절정을 위해 오랫동안 흙을 다지고 물을 뿌려온 지난한 과정의 증인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직선제를 쟁취한 기억은 뚜렷하지만, 민주화운동을 기폭제로 일어난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는 기억은 우리에게 소거되어 있다. 노회찬은 이때 인천과 부천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들을 묶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출범시켰지만, 1989년 인민노련 핵심 멤버들과 함께 검거돼 옥살이를 했다. 1992년 3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중당이 참패하면서 이우재, 이재오, 김문수와 같은 핵심 인사들이 보수로 전향하고, 1992년 연말 치러진 대선에서 민중 후보 백기완이 참패하면서 진보정당 운동에 회의가 팽배했지만, 출소한 노회찬은 묵묵히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 사무총장과 대표를 맡았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많은 진보 인사들이 ‘최초의 정권 교체’ 명분을 좇아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그는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에 남아 대선 득표율 1.2%를 딛고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권영길은 “1997년 대선에서 진보 후보였던 내가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로 모두들 실의에 빠졌을 때, 다시 진보정당 추진 운동을 일으켜 세운 이가 노회찬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실패할 때마다 아직 오지 않은 시대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이 한 움큼씩 빠져나갔지만, 노회찬은 늘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 노회찬이 남산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아직 오지 않은 시대를 열고자 했던 희망을 노회찬마저 등졌다면 이제는 누구도 그 시대를 열 수 없게 된 것 아닐까 생각했다.

노회찬은 끝내 오지 않을 어떤 세상을 열기 위해 홀로 불가능과 싸웠다. 우리는 그에게 불가능과의 싸움을 위탁한 채, 무슨 일만 있으면 그를 비판하고, 그에게 책임을 물었으며, 그의 선택을 원망했다. “낡은 것은 죽었는데 새로운 것은 당도하지 않은” 상실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노회찬을 낡은 것으로 규정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것을 하고 있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하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노회찬이었다. 그는 새벽 버스를 타고 청소 노동 현장으로 가는 투명인간들에게 말을 건네 비로소 그들을 세상의 일원이자 정치적 동지로 불러냈고, 이제는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삼성 권력이 모두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을 때부터 삼성과 싸웠으며, 대체복무제 없는 법안이 위헌적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14년 전에 이미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했다. 장애인과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과 성소수자, 해고 노동자들이 줄줄이 추모 논평으로 노회찬의 삶을 증명할 때, 그는 우리 앞에서 다시 새로워졌다. 그러나 그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말과 자신의 몸을 비수처럼 던지고 나니, 새로운 것은 꺾이고, 아직 오지 않은 시대를 열고자 했던 희망은 한 조각마저 다시 세울 수 없게 됐다.

진보 정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한 상태다. 노회찬이 마지막까지 서 있던 세상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불신자들로 가득하다. 체제 불신자들은 정치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한 짬짜미로 돌아가고, 지식인과 언론 역시 그런 체제에 부역한다고 여긴다. 체제에 대한 불신은 불온한 에너지가 되어 체제를 전복하는 동력이 되어야 하건만, 그 동력을 끌어안아야 할 좌파는 지리멸렬하다.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극우의 것이 되었고, 체제 불신자들은 나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해자가 되어 소수자를 혐오하고, 고통의 책임을 전가할 희생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에게 좌파나 진보는 교육받은 엘리트의 것이고, 위선적 화법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기만 좋아하는 이들이 구축해놓은 말의 세계에 불과하다. 노회찬이 있다면, 이 체제 불신자들의 분노를 어떻게든 진보적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을 것이다.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고 부딪혔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죽음을 뒤로하고, 더 이상 책임 물을 대상도 없는 상태에서, 이제는 무슨 일만 있으면 그를 비판하고, 그에게 책임을 묻고, 그의 선택을 원망하던 이들, 노회찬을 낡은 것으로 규정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것을 하고 있다고 자위했던 이들이 나설 때 아닐까. “저항이란, 투쟁을 타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지금 자신의 일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라는 도미야마 이치로의 문장은 노회찬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처럼 들린다.

그렇게 명령처럼 돌진한다, 체제 불신자들의 에너지 속으로.

*뉴스민에 게재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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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한겨레>가 연재한 기획 시리즈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은 청년 기획이지만 청년 기획이 아니다. 이 기획은 평소 언론을 통해 서울 4년제 대학생, 특히 ‘스카이’(SKY) 대학생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청년이 100명뿐이라고 가정하고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과 성비, 학력과 학벌 등을 고려해 분류해봤더니, 서울 4년제 대학생은 16명, 스카이 대학생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이에 평소 과소대표됐던 84명의 비서울 대학생과 전문대생, 고졸자 등을 전국에서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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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참사와 두 갈래의 촛불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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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2010년대는 두 가지 사건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이고, 다른 하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그때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최소한의 시스템마저 붕괴했다는 걸 보여줬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선택이나 작동하지 않은 수난 구조 체계 문제는 오로지 시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청해진해운은 회사 과실로 사고가 난 사실이 드러나면 선체 보상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퇴선 명령을 주저했다. 참사 2년 전 국회는 예산을 절감한다며 수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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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동안의 ‘조국 사태’는 2019년의 한국 사회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정확히 조명했다. 수많은 이들이 사태의 의미에 말을 보탰다. 어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응원하는 이유’를 열변했고, 다른 이는 ‘조국이 최순실이나 우병우와 다른 게 뭐냐’고 꼬집었다. 누군가는 ‘입시제도의 개선’을 요구했고, 또 다른 이는 ‘검찰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자 서 있는 자리를 이렇게나 선명하게 드러낸 쟁점이 또 있었을까. 한국 사회는 이제까지 어떤 현안을 두고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뉘어 싸워왔다. 1970~80년대에는 한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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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아니라 입시제도에 분노해야 한다”는 말에 관하여 file

  •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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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논문의 제1 저자가 되는 게 말이 안 된다, 특혜다, 좌파들도 결국 하는 짓은 똑같다는 비난보다 저런 일까지 해 가며 대학을 가야 하는 ‘입시제도’에 분노해야 한다”는 글이 공유되면서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세 가지 짧은 생각이 들었다. 1. ‘입시제도’에 대해 분노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가운데 핵심은 “대학입시를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전형 세 가지로 단순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교육 공약 발표 때 “학교 공부...

‘강한 일본’과 공화국의 책무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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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7년 교육기본법을 제정했다. 그 전까지 일본은 메이지 일왕의 '교육칙어'에 기반한 국가였다. '신민의 충효'를 국체의 정신으로 규정했다. 이 정신을 받든 군국주의는 무수한 일본인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교육기본법은 이 '교육칙어'를 부정하고 개인의 존엄을 위한 교육을 강조했다. 평화헌법과 함께 '국가를 위해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 국가가 있다'는, 일본의 전후 체제를 만드는 핵심 뼈대가 됐다. 그러던 교육기본법이 2006년 12월15일, 59년 만에 개정됐다. 아베 신조가 처음 총리가 된 지...

한개의 상산고와 신분 사회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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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수 156

2010년 9월 서울시교육청의 한 회의실. 초중고 각급 학교 교사, 빈곤 아동을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와 대학생 비영리 교육봉사단체 간부 10명이 모였다. 경쟁에서 낙오한, 이른바 ‘학습 부진아’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날은 첫 회의여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하고 각자 처한 상황을 공유했다. 그런데, 서울 강북에 있는 한 공립 특성화고 교사가 말을 떼자 회의실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우리 학교는 성적 하위 98~99% 학생들이 모인 곳입니다. 시험 문제를 내도 아무도 풀지 않습니다. 전교생이 320명인데 272명...

59살 순옥씨의 삶 file

  • 2019-06-04
  • 조회 수 169

순옥(가명)씨는 59살이다. 24살 때 결혼했다. 아이를 낳아 어느 정도 키운 뒤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사업하는 남편은 벌이가 고정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후 30여년 동안, 순옥씨는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고 식당에서 일하고 공장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홀로 키우고, 시부모도 모셨다. 여느 베이비붐 세대처럼, 순옥씨도 자신을 ‘낀 세대’라고 불렀다. 부모 부양 의무를 지는 마지막 세대이자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첫 세대다. 순옥씨 세대는 하루 8시간 노동 개념이 없었다. 식당에서 일할 ...

가난은 정신장애를 범죄로 이끈다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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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남성 안아무개씨가 방화·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숨진 5명은 여성이거나 10대 혹은 노인이거나 장애인이었다. 많은 살인범들처럼 안씨도 약자만 골라 살해했다. 덩치 큰 남성들은 마주쳐도 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상대를 잔혹하게 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다치기 싫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약자를 공격해 피해 규모를 키워야 더 큰 이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범행이 더 큰 이슈가 되어야 자신의 ‘억울함’과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려는 의도가 성공할 수 있다. 경찰과 언론은 ‘억울함’...

버닝썬과 인공혈관, 주체 없는 권력의 도구들 file [1]

  •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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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시작된 폭행 사건이 연예인과 경찰의 유착 의혹으로 번졌다. 연예인들의 카톡방 친구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엘리트 경찰 간부와의 친분을 앞세워 불법촬영 피해 여성들의 고소와 클럽 불법운영 등을 무마했다는 의혹이다. 그렇게 10명에 이르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가 법적으로 없던 일이 됐다. 사회는 그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데, 정작 수사기관의 반응은 달랐다. 경찰은 이번 일 때문에 숙원 사업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물거품이 될까 애태운다. 검찰은 경찰의 곤란한 처지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

20대 남성과 문재인, '젠더 갈등'이라는 맥거핀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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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20대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늘 대상으로 존재한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때만 되면 20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OO세대’로 호명하고 싶어 한다. 흥미로운 건 보수나 진보나 이런 욕망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보수는 주로 20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능력주의’나 ‘탈이념성’,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나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자라난 세대’라는 어떤 신문의 ‘G세대’ 담론이 대표적이다. 진보는 ‘삼포세대’나 ‘헬조선’ 담론과 같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 불...

‘모두가 정규직이 되면 김용균 같은 죽음이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file

  • 2018-12-26
  • 조회 수 175

2011년 12월 9일 0시 29분께 인천공항철도 계양역에서 검암역 쪽으로 1.2㎞ 떨어진 철길. 백인기(당시 54살) 씨 등 6명의 노동자가 선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자정, 서울역에서 출발해 검암역으로 향한 공항철도 마지막 열차가 시속 80㎞로 달리다 이들의 등 뒤를 덮쳤다.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1명은 다리가 부러졌다. 이들은 사고 전날까지 인천공항 쪽 운서역부터 검암역 사이 구간에서 선로 보수작업을 해왔다. 공항철도 인천공항행 막차는 0시 20분 이전에 이 구간을 통과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계양역과 검암역 사이...

방탄소년단 ‘원폭 티셔츠’가 문제적인 이유

  •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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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공허한 싸움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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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면 10개 채널 가운데 최소한 서너개는 먹방이다. 요리의 맛을 경쟁하는 방송, 외국 여행을 하면서 먹는 방송,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먹는 방송, 쉽게 맛을 내는 비결을 알려주는 방송, 숨겨진 맛집을 알려주는 방송, 그냥 맛있게 먹는 모습 그 자체로 충분한 방송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요즘에는 먹는 장사를 컨설팅하는 방송, 무턱대고 포장마차를 차리고 먹는 장사를 하는 방송도 인기다. TV만이 아니다.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는 먹방의 주요 무대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인 소셜블레이드에 의하면,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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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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