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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후쿠오카와 한국의 '싱크홀'

조회 수 3215 추천 수 0 2016.11.28 1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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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새벽 5시15분께. 일본 후쿠오카시 하카타역 앞 5차선 도로가 푹 꺼지듯 무너졌다. 폭 15m, 길이 20m, 깊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평일이었고, 이 일대가 후쿠오카에서 손꼽히는 번화가라는 점에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상자는 단 한 명 발생했다. 그것도 싱크홀로 전봇대가 쓰러지면서 발생한 정전 때문에 어둠 속에서 계단을 헛디딘 이가 발목을 삐끗해서 생긴 경상이었다. 그런데 이 사고를 두고 가장 화제가 된 건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싱크홀을 완벽하게 복구한 일본의 모습이었다.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일제히 일본인들의 근면하고 효율적인 사후 조처에 감탄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히려 사고 발생 직전의 상황이었다.

싱크홀이 발생하기 15분 전. 사고 장소에선 지하철 연장 공사를 위한 터널 굴착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시공업체 직원은 터널에서 물이 새고 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지만, 이 직원은 자신이 본 사실을 즉각 현장 책임자에게 보고했다. 현장 책임자는 바로 경찰에 신고해 교통 통제를 요청했다.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시공업체는 자사 차들을 동원해 도로의 교통 흐름을 막았다. 이 모든 것이 15분 안에 이뤄졌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15분 뒤에 땅이 무너져 내렸다. 현장은 통제되고 있었고, 생명은 소실되지 않았다.

가까운 나라에서 일어난 이 하나의 사고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한국의 15분도 저럴 수 있었을까. 한국의 시공업체 직원은 물이 새는 장면을 의아하게 여길 여유가 있었을까. 시공업체 직원이 누수 사실을 보고했더라도 현장 책임자가 이 보고를 묵살하진 않았을까. 되레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야단치진 않았을까. 시공업체는 위험 상황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현장을 자체 통제하려 했을까. 경찰은 현장의 신고를 신뢰하면서 사고 대처에 신속하게 움직였을까. 이 의문들에는 대체로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는 답이 떠오른다. 한국에는 위기 대처 시스템이 이미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 답은 지금 싱크홀처럼 무너지고 있는 박근혜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다. 한국에서 박근혜라는 이름은 효율성을 절대화하는 성장과 성공 우선주의, 그리고 능력주의를 상징한다. 이 이데올로기 안에서는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하고, 공공성보다는 사적 이해가 우선하며, 인간보단 서열이 우선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권력과 영합하는 수단도 상관없고, 눈속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선 속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 속는 것은 개인의 무능이고, 속이는 것은 성공의 비결이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 신뢰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공공성보다 사적 이해가 우선하는 사회에서 나의 위험이 아닌 위험은 위험이 아니다. 그러니 눈앞에 드러난 위험도 은폐되거나 다른 사람이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전가된다. 게다가 이런 사회에선 위험을 막기 위한 조처가 어떤 수익을 남길까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그러니 위험 대비는 모두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축출됐다. 그곳엔 인간의 생명을 눈 앞에 두고도 공공성은 생각하지 않고, 수익성을 따지는 계산기만 오롯하다.
인간보다 서열이 우선하는 사회에선 문제를 제기하는 말보다 문제 제기자의 지위에만 시선을 둔다. 그러니 지위가 낮은 이의 말은 공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앞서 속는 것이 개인의 무능이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인간보다 서열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지위가 낮은 이의 말은 그저 무능한 자의 불평불만일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후쿠오카 싱크홀 같은 사고는 사회에 대한 신뢰 부재와 은폐되는 위험, 가려지는 말로 인해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IMF 사태와 이명박 집권으로 성장과 성공,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실패하는 것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연장선상에서 박근혜라는 이름을 택했다. 그 선택 2년 만에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박근혜라는 이름에 대한 지지는 국정농단 파문 이전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성장과 성공,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정치 세력은 박근혜라는 이름을 지우고 난 뒤에도 여전히 지지를 얻고 새로운 기반을 형성할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박근혜 하야나 탄핵에 그치지 않는다. 박근혜가 하야를 하거나 탄핵을 당한다 해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신뢰가 부재하고 위험이 은폐되는 현실의 자장 안에 존재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신뢰의 부재 문제는 더 노골화하고, 위험은 더 깊숙이 은폐될지도 모른다. 박근혜 국정농단 파문으로 한국 사회의 지난 50년이 적나라하게 폭로됐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고발하는 지탄의 손길이 박근혜를 향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자신을 향한 성찰이어야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p.s.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 일주일 만에 복구된 후쿠오카 싱크홀에 또 다시 균열이 생겼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완해 게재함


댓글 '2'

소년의노래

2016.11.28 17:38:27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하고, 공공성보다는 사적 이해가 우선하며, 인간보단 서열이 우선한다-

이 대목을 저는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위험한 것은 '공공성과 사적이해를 대등한 것으로 놓고 저울질하며 균형 있는 지성인인 척 뽐을 내는 변종 극우파'가 아닌지요. 안전이라는 비용을 감당해야한다 얘기하면서 비효율적인 건 나쁜 것이라며 모순된 주장을 하는 시장주의자들과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해야한다 주장하면서 내 몫을 부당하게 뺏기는 것도 싫다고 호소하며 피해의식을 과장하는 속물들. 그런 존재들이야말로 이곳의 이념적 좌표를 오른쪽에만 머무르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훈

2016.11.29 10:38:34

네, 말씀하신 부분도 분명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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