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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문제는 조영남이 아니다

조회 수 1141 추천 수 0 2016.05.22 22:01:44

00557947501_20160518.JPG 사진 : 한겨레 김명진 기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8년 동안 가수 조영남의 그림을 대신 그렸다고 한다. 이 화가는 그림 1점당 10만원의 대가를 받았다. 검찰은 사기 혐의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을 조영남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서 전시하고 판매했다는 것이 검찰의 생각이다. 화투 시리즈가 대표적인 조영남의 작품 가격은 호당 50만원 정도다. 주로 팔리는 크기는 20~30호로 1000만~1500만원을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계 일부는 반발했다. 미학자 진중권은 <매일신문> 기고에서 “적어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그리고 팝아트 이후 예술가가 작품에 ‘콘셉트’만 제공하고 실행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은 관행이 되었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블로그에 “미술계에 굳은 관행에 대해 외부에서 너무 몰라서 생긴 일이라고 본다”고 썼다. 진중권은 이어 문제 삼아야 할 건 10만원이라는 낮은 대가,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았다는 걸 미리 밝히지 않은 조영남의 윤리 의식이라고 했다. 다만 “외국에서도 조수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본인이 사전에 밝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힌 검찰의 설명과 달리 ‘미리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현대미술에서는 진중권과 반이정의 지적대로 콘셉트를 제공하는 창작과 실제 작품으로 재현하는 제작은 분리되어 있다. 핵심은 창작이지 제작이 아니다. 지금까지 관행이 그래 왔다면, 창작과 제작을 따로 했다는 사실만 두고 조영남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미리 밝혀야 할 의무가 없다면 조영남의 윤리 의식을 문제 삼는 일도 정당한 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제작이라는 공이 가려져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창작이 핵심일 뿐, 창작과 제작이 협업인 건 분명하다. 그림 제작 과정에 어느 정도의 공력과 시간이 투입됐는지 살펴봐야겠지만, 1점당 10만원이라는 대가가 적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검찰의 설명과 달리, 외국의 경우에도 미술품의 제작자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제작자가 원한다면 관행과 달리 작품에 제작자 표기를 논의해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조영남은 제작자에게 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옳다. 그런 논의가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에 제작자가 검찰을 찾았을 수 있지만, 애초부터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에 나설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먼저 창작과 제작의 분리 관행이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인지되고 있었는가 여부다. 예술계의 관행은 혹시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공유됐던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진중권은 “인터넷에 분노를 쏟아내는 정의로운 대중의 현대예술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과잉행동”이라고 대중을 비판했다. 대중이 이 사건에 공분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이름없는 ‘하청업자’들이 빈번하게 협업이나 관행을 빌미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생산에 들인 땀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에 대한 무지”라는 이유를 달아 대중을 담론에서 가볍게 내치기보다, 검찰 수사를 비판하면서도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술계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지 않았을까. 관행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예술이 일상이 되기 어려운 이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아울러 지금까지 있어왔던 이 관행이 앞으로도 정당할 것인가 묻는 작업 역시 과제로 남아 있다. 관행이란 건 기준도 아니고 법칙도 아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관행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제작자가 제작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길 원하지만, 창작자가 관행뿐만 아니라 문화 권력이나 도제적 시스템을 이용해 이 요구를 억누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약자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대체로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미약하나마 저항이란 걸 했다가 더 강하게 짓밟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는 조영남이 아니다. 현대미술의 관행은 이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미술계 내부의 은폐된 모순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해소를 위해 나서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 아닐까.

*<방송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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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파편적으로 다가온다. 파편적 사실들을 잇는 맥락은 어떤 충격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되곤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전세계를 강타한 ‘트럼프 쇼크’는 저학력 백인층이 파편적 사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 그 파편적 사실의 단초를 던진 사람은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이다. 디턴은 지난 20년 동안 전세계 대부분 선진국에서 중년층(45~54살)의 사망률이 감소했으나 미국 백인 중년층의 사망률만 인구 10만 명당 연간 370명에서...

박근혜 게이트, 붕괴된 믿음 체계와 분노 file

  • 2016-11-06
  • 조회 수 12079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는 내게 “정신이 멍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도 했다. 그것은 어떤 정신적인 붕괴처럼 보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믿음 체계가 한순간 와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동반 붕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파문을 대하는 대부분 시민들의 반응은 내 어머니와 비슷한 것 같다. 내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40년 동안 메울 수 없었던 차이처럼, 박근혜를 지지했던 지지하지 않았던 말이다. 세대와 지역, 성별과 정치적 지향을 막론하고 ...

간호사가 버티고 선 사회 없는 사회 file [3]

  • 2016-10-10
  • 조회 수 327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도 가끔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 혈액투석 환자가 쇼크 상태에 처할 때다. 혈압 조절에 실패해 쇼크 상태가 오면, 환자는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구토 직전까지 간다. 온몸에 쥐가 나기도 한다. 내 몸이 나를 쥐어짜듯 옥죄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는 참담하다. 하지만 그 참담함은 내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 순간으로 지나보낼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돕기 위해 달려오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은 고귀하다. 병원은 그래서 존재한다. 한국의 많은 병원들이 사적 재...

시사인 사태와 진보, 윤리적 저항 file

  • 2016-09-18
  • 조회 수 1413

진보 시사 주간지 <시사인>이 곤욕을 치렀다. 최근 잇따라 메갈리아와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놓으면서다. 대체로 남성 사용자들이 많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사인> 절독 운동이 벌어졌다. 심지어 <시사인>이 2년 전 표지로 썼던 태극기와 욱일기를 합성한 이미지가 편집국에 걸려 있는 장면이 포착된 걸 두고 ‘매국 잡지의 증거’라고 비판받는 황당한 사건까지 생겼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이 그렇듯, 이번 사건도 대체로 자신이 가진 견해에 따라 적으로 삼은 상대에게 온갖 부정적 요소...

민간 잠수사 김관홍과 김상우, 그리고 공우영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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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24일. 잠수사 김상우는 44m 수면 아래 있었다. 맹골수도 물살은 거셌다. 최대 4노트. 폭우가 내린 날 쏟아지는 계곡물만큼 빠르다. 몸의 균형은 자꾸 무너졌다. 머구리 헬멧에 연결된 숨줄이 끊기면 회복할 수 없다. 심해는 24시간 어둡다. 시야는 10㎝ 앞. 외워 둔 세월호 도면을 복기하며 배를 더듬어 내려갔다. 수압과 배 하중에 눌리고 어긋난 격실 문은 굳게 움츠리고 있었다. 온 힘을 모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쌓여 있던 짐이 무너졌다. 뚝 소리가 났다. 김상우는 움찔했다. 일단 수습한 학생을 수면 위로 올려야 했다. ...

올랜도 펄스 게이 클럽 참사에 대한 소고 file

  •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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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펄스 게이 클럽 참사는 현재까지 보도된 바로는 성소수자 혐오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용의자 오마르 마틴이 범행 도중 사살됐기 때문에 혐오 범죄로 확증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관련 보도가 더 이어질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1차 근거는, 일단 참사가 일어난 장소가 게이 클럽이라는 사실, 그리고 “몇달 전 아들이 마이애미에서 두명의 남자가 키스하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 아들이 그것 때문에 펄스 나이트클럽을 공격했을 수 있다”고 말한 아버지 세디크 마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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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2
  • 조회 수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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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은 '선거 혁명'이 아니었다 file [4]

  • 2016-04-24
  • 조회 수 1870

축제는 끝났다. 누구도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새누리당은 12년 만에 참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시적이나마 원내 1당이 됐다. 국민의당은 둘 사이를 비집고 나와 제3지대를 구성했다. 진보 정당은 발걸음을 더 내딛지 못했다. 언론은 ‘선거 혁명’이라는 말까지 썼다. ‘징벌 투표’라는 말도 나왔다. 한 사회학자는 이번 선거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버금간다며 “이제 국민들도 성장 신화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증거”(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칼럼 '박정희 성장 신화는 이제 마침...

두 가지 공포와 정치의 복원 file

  • 2016-03-20
  • 조회 수 412

대통령은 집권 3년 내내 하나의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다. 모든 말은 그 목적에 의해서만 발화한다. 그 목적에 대한 거역 혹은 의구심은 곧 배제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 모습을 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 결과에서 똑똑하게 목도하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대통령을 불편하게 했던 이들은 모조리 내침을 당하고 있다.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소속 정당이나 주변 정치인들의 그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도 대통령의 권력 재확인 작업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대통령의 말은 자주 주술 관계가 연결...

13살 소녀의 죽음과 사회적 방임 file

  • 2016-02-22
  • 조회 수 325

2015년 3월15일. 갓 중학교에 입학한 13살 소녀가 집에서 뛰쳐나왔다. 종아리와 손에 멍이 들어 있었다. 친구가 이유를 물었다. 소녀는 “어제 부모한테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소녀가 중학교에 등교한 건 겨우 8일. 의지할만한 관계가 생길 겨를이 없었다. 이튿날 소녀가 찾아간 사람은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였다. 소녀의 친구는 “딱히 갈 데가 없어서 찾아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교사는 다시 소녀의 부모를 선택했다. 폭력을 당해 집에서 뛰쳐나온 소녀를 달래 집으로 돌려보냈다. 3월17일. 소녀의 아버지는 오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