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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주체'라는 말이 '욕'의 용도로 나를 향해 발화되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제껏 써온 글들, 앞으로 쓸 글들 모두 "말하고자 하는 하위 주체"의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그 몸부림을 기록하고 축적하고자 한다.

극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영화를 보고 잡글을 쓴다. 틈 나는 대로 맥주를 마시고 춤을 춘다.


링크: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468 ("탈김치됐으니 축하" 그들은 왜 빈곤 청년을 혐오하나 - 강현구, 미디어오늘.)

금요일 오후 강릉행 버스 안에서 저 글을 읽었다.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쓰는 데에 영 익숙하지 않음에도, 독수리 타법으로 힘들게 오랜 시간을 들여 페이스북에 당시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이를 다시 다듬고 보완하여 올린다.

구의역 추모_민중의소리.jpg
(사진 설명: '민중의 소리'가 게시한, 구의역 사고사 피해 노동자 추모 집회 당시 사진. 이 추모의 집회에 참석한 건 남성만도, 비-페미니스트만도 아니었다.)

일단 이것은 확실하게 밝혀두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 나는 저 필자가 인용하는 워마드의 빈곤 혐오에 동조할 생각도 지지할 생각도 전혀 없다. 고인에 대한 조롱 역시 나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더욱이 가혹한 노동 조건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쉬는 날에는 다른 동료들과 피켓시위에 나섰던 가난하고 성실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 이 불합리하고 약자를 착취하며 위험을 가난한 이들에게 외주화하는 사회 구조에 의해 살해당한 노동자의 죽음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이에게 가해지는 조롱과 비아냥은 아무리 미러링이든 그저 드립에 불과하든 받아들이기도, 용인하기도 힘들다. 

작년에 메갈리아에서 '이백충'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도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았으며, 경악하고 분노했다. 당장 '이백충'이란 단어는 나도, 내 남성 파트너도 타격하기 때문이다.  '이백충'이란 단어는 포괄적으로 가난한 이들, 저임금 노동자들을 타격한다. 당연히 여성들도 포함된다. 동일한 노동을 해도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진급에 제한을 받으며 임금 인상도 느리게 진행되거나 좌절당하기 쉽고, 애초 직종의 선택에 있어서도 보이는/보이지 않는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제한과 한계가 있고, 여성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종이 다시 저임금 직종화하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빈곤 혐오 언어들은 남성보다 필연적으로 더 가난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타격한다.

빈곤이 여성에게 더 가능성이 높고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와 통계로 드러난다. 절대 빈곤층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다. 절대 빈곤층 및 상대적 빈곤층 양 영역에서 공히 여성 가구주의 빈곤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연구된다. 특히 한부모 가정의 여성 가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래 전부터 가장 높고도 심각하다(이 문제는 아동 빈곤율과도 연결된다). 노인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노인층 자체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고 노인 빈곤 역시 해가 갈수록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는데, 노인 빈곤층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평균 약 10년이 길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여성이 더 가난하게, 그리고 더 오래 가난하게 산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이백충'이 메갈리아를 대표하는 언어 중 하나로 등극하지는 못하고 길지 않은 수명을 다했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이 사용자들의 심리적 반발에 부딪힌 결과이자 소극적 차원에서의 '자정'이 작용한 결과로 본다. 이 단어가 자정의 대상이 된 이유도,  내가 이 단어를 비판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조준을 잘한다 해도 혐오의 실제 타격은 제일 약자가 받으며 둔탁하고 느슨한 혐오일수록 가장 약자가 타격 받기 쉽다. 빈곤에 대한 혐오가 확대되고 일상화되며 흔해질수록 그 혐오는 여성을 향할 수밖에 없고, 그 타격도 여성이 더 크게 받는다. 이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단어가 바로 '이백충'이었다.

(여기서 통계로 잡히지 않는 여성의 빈곤도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매우 흔한 예로 부부인데 자기 명의의 재산은 없는 경우, 혹은 있더라도 경제력 행사권이 거의 없는 여성의 경우 등. 이런 종류의 빈곤이 다른 의미에서 또한 심각한 이유는 이것이 당장 가시화되지 않다 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가리워져 있는 빈곤, 폭력과 억압과 착취를 감내함으로써 가까스로 도래를 연기하고 있는 빈곤이기 때문이다.)

이제 애초 저 미디어오늘의 글로 돌아가 보자. 글의 제목에는 "왜?"라는 질문이 들어가 있는데, 글 전체에서 "왜?"에 대한 대답이 없다. 그 결과 저 글은 "그들은 빈곤청년(남성)을 혐오한다, 왜냐면 빈곤청년(남성)을 혐오하기 때문이다"라는 토털러지가 된다. 대신 저 글은 저 워마드에서 빈곤 자체를, 빈곤한 청년들의 약자성 자체를 조롱한다며 워마드를 '고발'하고 이들을 반 휴머니즘적인 집단으로 낙인 찍는다. 이들이 진보의 연대성을 끊을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이 경고는 메갈/워마드에 대해 소위 진보진영 내에서 지지의 입장을 밝힌 이들을 향한 협박이기도 하다. 결국 저 글이 향하는 바는 메갈/워마드에 대한 부정, 그리고 그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지의 입장을 철회할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빈곤 혐오를 반대한다며 문제 제기하고 있는 글이 빈곤의 문제에서도, 청년의 문제에서도 여성은 괄호 안에 처박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마드의 빈곤 혐오는 정확히 하면 빈곤 청년 '남성'에 대한 혐오일 터이다. 그런데 필자는 제목은 물론 본문에서도 내내 고집스럽게 '빈곤 청년' 혐오라 지칭한다. 남성이 곧 보편이요 청년의 대명사란 말인가? 위에서도 길게 서술했지만 현실에서 빈곤의 문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심각하지 않은가?  여성이 더 압도적인 다수로, 심지어 더 오래 빈곤에 시달린다. 청년층의 빈곤 문제라고 별다르지 않다. 남성의 군 생활 동안 여성이 돈을 버는 상황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이 상황 외에, 많은 여성들이 가계 부양 혹은 남자 형제의 진학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할 것을 종용받는 상황, 진학을 하더라도 집안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취업 기회 자체의 제한으로 인해 더 열악한 조건의 저임금 노동을 수락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심지어 여성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직종들의 경도 열악한 조건의 저임금 노동 직종들이라는 사실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사회초년생들의 빈곤, 노동빈곤(노동할수록 빈곤해지는) 역시 남녀 모두의 문제인데, 여성의 경우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오히려 여성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처럼, 빈곤은 종종 남성들의 것으로 독점되고, 현실적으로 가장 심각하고 가장 개연성이 높은 여성의 빈곤은 이 지점에서 폭력적으로 삭제된다. 남는 것은 막연하고 나태하기 짝이 없는 구호로서의 '빈곤 혐오 반대'인데, 이 나태함과 막연함이야말로 빈곤을 계속해서 타자화하고 외면하는 방식이다.

빈곤이 타자화되고 혐오당하는 것은 워마드나 메갈리아만의 일이 아니다. 저 필자가 구의역 청년 노동자의 죽음과 그에 대한 추모를 향한 비아냥을 인용했으니, 나 역시 강남역 살인사건의 추모와 구의역 청년 노동자 추모를 잠깐 비교하며 살펴보려 한다. 

'추모'가 상징성이 매우 강한 행위인 만큼,  사회 모순으로 인한 죽음을 향한 추모는 일각의 판단이나 기대와 달리 애초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강남역 피해자에 대한 대규모 추모는 사람들이 그 죽음에 대해 강력하고 광범위한 '동일시'를 통해 이뤄졌다. 이 동일시는 자신 역시 같은 사회적 위치이므로 같은 비극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문구가 가장 많이 공유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강남역 추모 행렬이 그토록 강력했던 건, 이 추모가 기본적으로 '동일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추모에 대한 몰이해, 나아가 비아냥 역시 정확히 이 동일시를 향해 이루어졌다. 이 몰이해와 비아냥이 드러내는 것은 또 다시 여성이 처한 사회적 위치이다. (이 모든 과정에 '정치적'이라는 묘사를 어떻게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반면 구의역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서 빈곤은 추모에 동참한 이들에게도 타자화되었다. 많은 이들이 역시 '나도 이렇게 죽을 수 있다'에서 추모의 글귀를 붙였으나, 또한 많은 이들이 이 추모에서 공유한 감정은 연민과 동정이었다. 내가 당장 당할 수 있는 죽음 대신, 내 자식/친구가 당할 수 있는 죽음으로, 한 발짝 더 떨어진다. 빈곤 연구물들을 보면 IMF 이후, 그리고 2007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더욱 사회가 양극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으며 빈곤 문제가 더 심화되며 광범위화하고 있는데도, 가난은, 빈곤은 동일시보다 타자화의 방식으로 고려된다. 죽음에 대한 추모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빈곤 혐오를 비판하는 언어들이 또 다시 빈곤을 타자화하면서 빈곤의 여러 가지 얼굴과 양태를 도외시한다. 워마드의 빈곤 남성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흔하고 일상적인, 손쉽게 빈곤을 타자화하는 방식을 더 극단으로 밀어부친 것이다. 구의역 노동자와 그를 향한 추모에 대한 비아냥은 바로 이 타자화의 틈을 뚫고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빈곤에 대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취하는 빈곤을 괄호치거나 타자화하는 관습, 또한 광범위한 빈곤 혐오의 분위기에서, 워마드의 빈곤 남성 혐오도 튀어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우 경악스럽지만, 그에 경악하는 이들 또한 다른 방식으로 가난을 혐오하고 타자화하고 있는 것이 이 광경의 진짜 정체이다. 

구의역 사고사 노동자 조롱.jpg

(사진 설명: 강현구 씨가 인용한, 구의역 추모에 대한 워마드의 일부 댓글.)


나아가 저 필자가 인용한 워마드의 워딩들을 볼 때, 구의역 노동자를 향한 빈곤 혐오와 조롱의 문구의 맥락에 강남역 추모 당시 터져나왔던 일각의 비아냥과 평가절하 시도에 대한 반발의 기운이 읽힌다. 성격도 방향도 달랐던 두 개의 추모장에서 강남역에 등장했던 추모의 방식이 구의역에 비슷하게 등장한 것에 대해, 이 역시 강남역 추모를 평가절하하고 훼손하려는 의도라는 오해 내지 피해의식도 함께 읽힌다. 나는 이 피해의식에 동의하지 않고 반발의 방식 역시 당연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강남역 추모가 지닌 힘(정치성)을 계속해서 평가절하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피해의식을 전혀 근거 없는 망상으로 쉽게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 글이 미처 인식하지 못해서, 혹은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있는  어떤 맥락에 대해서도 말을 덧붙이고 싶다. 워마드의 워딩들에 강력하게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워마드의 배제나 혐오집단이라는 낙인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나 워마드를 적극 지지하는 이들이나 공히 공유하고 있는 어떤 전제된 맥락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공유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미처 공유하고 있지 못한 것, 혹은 눈 감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 사회적, 구조적 문제에서 특히 진보진영에서 적극 고려하고 배려하는 빈곤의 문제가 여성의 빈곤은 괄호치고 있다는 문제의식
2. 가난의 서사, 빈곤의 서사마저도 남성이 독점하고 있거나 하려 든다는 인식
3. 나아가 젠더 위계에서의 폭력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의 변명과 알리바이로 빈곤이 너무 자주 들이밀어지고 이것이 너무 쉽게 승인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

저 글 자체가 1번과 2번에 해당사항을 품고 있다. 나아가 3번은 위에서 말한 대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난을 타자화하는 습관에 속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가난을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자신들의 폭력을, 그리고 자신들의 여성에 대한 젠더 착취에 종종 '가난'을 핑계로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이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더욱이 나는 저 필자가 들이민 인용들에서, 그 워딩들이 드러내는 것이 실제로는 '공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공포의 정체는 무엇인가? 폭력과 착취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 그것에 빈곤이 핑계로 들이밀어질 가능성, 그 경우 그 폭력과 착취가 손쉽게 승인 혹은 이해받을 가능성,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인 여성은 지워질 가능성에 대한 공포이다. 안타깝게도 이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이 공포 역시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언제나 어떤 공격과 혐오의 타격점의 끝은 가장 약자가 되기 쉽다. 그런데 이것은 착취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여성이 가난한 남성에게 착취당할 확률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겠지만,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착취의 결과는  훨씬 더 참혹하고도 여파가 더 길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실제로 경험했고 여전히 그 후유증의 여파를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저 필자가 인용한 "부자 한남충 vs 열등 씹치남" 대조표 및 그 비슷한 워딩들로 가 보자. 이 워딩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남자와 연애를 한다면 어차피 그는 날 물리적 혹은 정서적으로 학대하거나 억압할 확률이 99%' 라는 절망과 포기이다. 어차피 그럴 거라면, 어차피 당할 학대와 억압과 착취라면 차라리 돈 있는 놈에게 당하겠다는 것이다. 동의할 순 없지만 이해는 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가 말하자면 일베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는 심지어 2년 전 40대 초반인 나도 가졌던 공포다. 2, 30대 여성이 가진 공포의 크기, 그리고 실제로 겪고 있는 이들의 절망은 내가 가졌던 공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클 것이다. 이 공포를 과연 피해망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일베의 멘탈리티에서 특히 여성 혐오는 단지 일베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진보적이라 자평하는 이들도 대다수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도 여성들도 이것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가진 여성 혐오를 매우 맹렬하게 돌아보고, 성찰하고 있다. 

혐오의 외피를 쓴 저 워딩들이 실제로 드러내는 것, 함유는 하고 있지만 미처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는 못하는 것을 성실하고도 사려깊게 살피고서야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고, 또 더 나은 대처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어느 집단을 낙인찍어 배제하고 도태시키려는 손쉬운 방법보다 그쪽이 훨씬 더 사회 정의에 부합하고 더 진보적이다. 많은 이들이 메갈리아 혹은 워마드는 혐오 집단이기 때문에 그들과 연대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 혐오의 외피를 쓴 워딩들이 어디에서 연유했고 실제로 가리키고 있는, 혹은 드러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한 성찰과 숙고와 분석을 결여한 채로, 부정확한 비판과 함께 혐오집단으로 낙인 찍고 배제하는 데에만 골몰하겠다면, 나는 묻고 싶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정확히 혐오의 방식 아닌가, 라고. 메갈이 혐오집단이라서 그들을 반대한다는 이들이 그들을 매우 전형적인 방식으로 혐오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혐오가 아닌 방식으로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결론은 저 필자의 것과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빈곤 혐오가 결국 빈곤 (장애인 성소수자 저학력 비정규직노동자/무임금자) 여성을 가장 크게 타격할 것이기 때문에 빈곤 혐오에 반대한다는 바로 그 점에서, 나는 워마드의 빈곤 혐오를 비판한다. 그렇기에 빈곤 혐오의 언어를 거둬야 한다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싶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남성의 빈곤만을 말하며 여성 빈곤을 삭제하는 시도에 대해, 다른 악덕의 핑계로 가난을 소환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런 빈곤 혐오 반대야말로 또 다른 빈곤 혐오이자 빈곤의 타자화이기 때문이다. 빈곤 문제를 사고하고 이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여성 빈곤에 대한 연구와 말하기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여성 빈곤에 대해 더 많은 말하기와 공유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일단 찾아낸 대처 방식이자 결론이다. 이게 적어도 매갈 낙인 찍기와 배제 및 고립보다는 훨씬 더 진보적이고 옳은 방향이라고 자평한다.

댓글 '8'

ㄹㅇㄴㅁ

2016.08.11 02:57:11

원래 혐오를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이 일반적 상식을 가진사람들은 최대한 자제하는 대단히 저급한 기쁨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특히 자기보다 약하거나 적어도 만만한자들 가학적으로 조리돌림하고 혐오하면 기분좋죠. 일단 익명성 속에 물리적 안전성을 확보하고 나면 가난한 한국 남성만큼 만만한 상대가 있겠습니까? 일베가 한국사회의 각종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이유도 이런 뒤틀린 가학성과 지배감정이죠.
필자분은 온갖 관심법과 기괴하고 부정학한 맥락읽기를 통해서 메갈/워마드를 해석하지만, 메갈/워마드를 추동하는 힘은 일베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면서까지 메갈/워마드를 옹호하는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어쩌다가

2016.08.11 04:36:32

저 역시 탈김치 하고픈 한남충으로서 ... 먼저 메갈-워마가 빈곤 남성을 왜 혐오하는지는 뻔합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풍족하고 세련된 삶(딱 '섹스앤더시티'의 그것) ... 메갈-워마 옹호 논의들은 이러한 '욕망'을 그냥 괄호쳐버립니다.

메갈-워마를 대상으로 빈곤 혐오의 언어를 철회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요? 애초에 설득이 불가능합니다. '싫다'는 감정을 어떻게 설득하죠? 설령 '설득'이 된다(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일시적으로 오그라들 뿐이겠죠.

메갈-워마에 대한 '낙인찍기와 배제'라는 표현도 무리가 있습니다. 좌표찍고 분탕질하기나 신상털기를 그냥 두란 말입니까? 아무리 좋게 보려고, 아니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아웃팅 같은 범죄적 행위나 조리돌림은 가만두면 안 됩니다.

메갈-워마를 IS와 비교하면(이들은 나치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일단 IS를 '악'으로 규정하며 그게 비교 대상이 되냐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엔 비교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비교하는 것 자체가 IS에게 실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슬람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시도해 본다면 말이죠. 어찌됐든 메갈-워마 실드 쳐주기는 "내가 샤를리다" 캠페인보다도 저질이라 봅니다.

노바리

2016.08.16 19:55:23

어쩌다가 / 메갈, 워마드, 기타 등등을 IS에 비유하시는 건 실상 IS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신단 얘기로 들립니다. IS의 테러 방화 학살 약탈 전쟁 소식이 뉴스와 활자, 동영상으로 전달된다고 그저 가상의 허구가 아니니 현실 감각을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IS에 실례라고요...? 허...

그리고... '섹스앤더시티'적 바로 그것의 풍족하고 세련된 삶이라니... 대체 언제적 섹스앤더시티이며... 님이 말씀하시는, '섹스앤더시티의 딱 그것의 풍족하고 세련된 삶'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좀 무리하게 지름신 맞는 취미 내지 취향 분야가 한둘쯤 있고 그거 때문에 부업 뛰고, 연애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수다 떨며 밥 먹고, 가끔 비싼 거 먹으러 가거나 미술관 전시회 혹은 공연 보러 가는 삶이요? 이 욕망이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아웃팅엔 저 역시 반대합니다. 하지만 아웃팅이나 조리돌림을 '가만두면 안 된다'고 하시면, 님이 지지하는 대안은 어떤 것인지요?

ㄹㅇㄴㅁ

2016.08.11 05:42:13

윗 분이 섹스앤더시티 이야기해서 한마디 덧붙이자면,(IS 부분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메갈/워마드가 표상하는 '여성'이 어떤 여성인지 생각해보세요.
메갈/워마드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트위터의 자칭 페미니스트들만 해도 82쿡 같은 곳의 주부들에 대한 비아냥은 일베 못지 않아요.
그리고 글쓴분 나이대 혹은 조금 많은 여성분들 잘 관찰해보세요. 특히 마트나 시장, 저렴한 식당같이 임금이 비교적 낮은 곳에서 일하시는 여성분들요. 그 ‘소위’ ‘여성’혐오라는 것이 웬만한 젊은 남자들보다 훨씬 심한 걸 관찰할 수 있지 않나요?

메갈/워마드가 사실 페미니즘보다 조리돌림에 훨씬 관심이 많지만, 그나마 페미니즘에 눈돌릴 때 마저도 그 페미니즘의 여성은 교묘하게 중산층(적어도 마음만은)에 어느정도 교육받은 젊은 한국+선진국의 시스젠더 여성으로 설정하지요.

결국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여성 내부의 다양성들을 무시하고 타자화시키고 있는 셈이죠.

클리셰 같지만 현대차 노조와 손잡고 식당아줌마들 다 잘라낸 노무현이 내각에서 근사한 여성 장관 네댓명씩 임명하는 이런 풍경들 / 박근혜도 여자니까 여자들 마음 잘 이해 할 거라는 ‘페미니즘’적 사고들...
메갈이고 자시고 간에 제가 볼 때는 전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루하고 뻔한 반복이죠...

노바리

2016.08.16 19:55:55

ㄹㅇㄴㅁ / 저급이든 고급이든 "약자나 만만한 자들 조리돌리고 혐오하는 게 기분 좋"은 일이라니요!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제까지 그 긴 기간 인터넷에서 여성들이 그토록 혐오의 대상이 되고 모욕과 외모 품평과 사이버 성폭력과 위협을 당했던 거로군요!! 그래서 결론은 '한국 남자가 가장 만만하다'라고요?

일명 '밥 꽃 양 사태', 즉 사측의 구조조정 요구에 현대차 노조가 여성 노동자들 전원 해고에 합의함으로써 노사 타협을 이뤘던 98년 그 사건을 지금 페미니스트들, 메갈/워마드 욕하자고 끌고 나오시다니 심각한 무리수네요. 일단 그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아니고 김대중 대통령 때거든요. 당시 이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밥 꽃 양>이 2001년 완성돼 그 뒤로 여러 영화제 및 단체 등을 돌며 순회상영을 했었고 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에 가장 격렬하게 비판했던/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 참고로 전 저 당시 저 영화를 유료로 표를 사서 본 1인이네요. 지금 님이 말하는 트위터 페미니스틀, 메갈리아 및 워마드의 적지 않은 분들(전체는 아닌 걸로 압니다)이 바로 이 사건을 들면서 여성운동이 노동계는 물론 운동권과 절대 연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때 내각에 오른 여성들, 박근혜 지지하는 중산층의 교육받은 시스젠더 여성 운운하며 사실관계 다 틀린 채 맥락까지 틀리게 인용하는 밥꽃양 사건이요?

중장년 여성들도 여성혐오를 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여성혐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걸 돌이키고 반성하고 성찰하며 싸우는 게 페미니즘이죠. 2000년대 초반 어느 게시판서 저는 "페미니스트인 나는 내 안의 가부장제와 계속 싸운다"고 고백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젊은 페미니스튿은 "나도 내 안의 여성혐오와 싸운다"고 고백하더군요. 님은 '중장년 여성들도 다 하니 나도 여성혐오를 하겠다'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 생활과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 여성 스스로도 여성을 혐오하게 만드는(이는 상당 부분 자기혐오와도 통합니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여성혐오에 함께 저항하는 길을 택하시길 권유드리고 싶습니다.

ㄹㅇㄴㅁ

2016.08.11 06:30:10

하여간 메갈/워마드에 이상한 판타지들 안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은 블루스웨이드 같은 인간들 집합체지요...

ㅎㅌㅎㅌ

2016.08.11 06:36:32

트윗하시나보넴요.

노바리

2016.08.16 19:56:38

계정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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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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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영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1987년을 언급하는 서사들은 대체로 신기할 정도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지운다. 학출과 넥타이부대가 다했다는 식, 혹은 ‘일반 시민’들이 그 혁명을 완성했다는 식이다. 사실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이번 촛불정국에서도 “노동자들 자제요~”를 외치는 건 여전했으니까. 그나마 영화 <1987>에선 연희(김태리)의 죽은 아버지를 ‘투쟁하던 노동자’로 설정해 그 흔적을 남겼다.‬ 권영숙 선생의 표현을 빌어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연희의 아버지는 ‘체불임금 투쟁’을 했던 노동자였다. (참고: 권...

미디어오늘 강현구 기고문 ""탈김치됐으니 축하" 그들은 왜 빈곤 청년을 혐오하나"을 읽고 file [8]

  • 2016-08-08
  • 조회 수 2213

링크: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468 ("탈김치됐으니 축하" 그들은 왜 빈곤 청년을 혐오하나 - 강현구, 미디어오늘.) 금요일 오후 강릉행 버스 안에서 저 글을 읽었다.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쓰는 데에 영 익숙하지 않음에도, 독수리 타법으로 힘들게 오랜 시간을 들여 페이스북에 당시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이를 다시 다듬고 보완하여 올린다. (사진 설명: '민중의 소리'가 게시한, 구의역 사고사 피해 노동자 추모 집회 당시 사진. 이 추모의 집회에 참석한 건 남성만도, 비-페미니스...

엄기호님의 글 "사랑과 난입" 논란에 대하여 file [6]

  • 2016-06-06
  • 조회 수 2576

엄기호님의 글(링크: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05292059005&code=990100)과 페미디아에서 esse님이 쓰신 비판글(링크: http://femidea.com/?p=706), 그외 다양한 반응글들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거대한, 그러나 필연적인 맥락의 오독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성화의 부모님이라고 지칭된 글 속 인물들 관계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가정 폭력을 가했다는 정황은 확실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엄기호님의 글 중간에 치료를 받던 남편이 아내에 대한 '폭력'을 인정했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 '폭력'...

메르스의 공포와 불안에 대한 어떤 '인문학적' 성찰 file [5]

  • 2015-06-14
  • 조회 수 1854

어제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어느 아파트 단지가 있는 관할 보건소와 그 아파트 관리실에 단체로 민원이 빗발쳤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있으니 조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민원들은 하나같이 그 아파트의 몇 동 몇 호에 사는 가족을 지목하고 있었다.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온 병원에 근무하는 이와 그의 가족이었다. 그렇게, 그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이와 그 가족은 “메르스 의심 환자”로 찍혀 신고 대상이자 조치 요구의 대상이 되었다. 지인은 그 민원을 직접 받은 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실제 얘기다. 국가 방역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감상기 file [9]

  • 2015-05-27
  • 조회 수 5388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홍보 포스터를 처음 본 순간 내 눈은 그저 샤를리즈 테론의 모습에만 고정되었다. 시리즈의 원래 연출자인 조지 밀러가 돌아왔다는 사실도, 꽤 호감을 갖고 있는 배우 톰 하디가 출연한다는 사실도 관심 밖이었다. 아니, 나는 오히려 노 감독이 왕년에 자신이 히트시켰던 프랜차이즈 시리즈로 되돌아온 것에 대한 일말의 편견과 걱정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를 박박 깎고 얼굴에 검은 기름칠을 한 채 도전적으로 정면을 보고 있는 샤를리즈 테론의 모습을 보라. 그녀가 누군가. 사적으로 가정 폭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