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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명교의 좌파여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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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콩 항쟁을 둘러싼 모순과 국제연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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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0-06-03T13:43:25+09:00</published>
		<updated>2020-06-03T15:35:46+09:00</updated>
		<author>
			<name>홍명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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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안치영 교수님(이후 존칭 생략)의 홍콩에 대한 글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있어 글을 남긴다. 일국양제는 그 출발부터 모순적인 시스템이었다. 한때 이병한 같은 사람들은 그것이 “유가 전통의 천하 관념을 복원한 것”이라고 허황되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드러난 바, 유가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일종의 구실에 불과할 뿐, 중국이 개혁개방을 거쳐 경제 성장을 구가하기 위해선 홍콩이라는 유용한 도구가 23년 간 필요했...</summary>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kvgmc6g5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lt;a href=&quot;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062139137176785&amp;amp;id=100001421875204&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rgb(255, 170, 0);&quot;&gt;안치영 교수님(이후 존칭 생략)의 홍콩에 대한 글&lt;/span&gt;&lt;/strong&gt;&lt;/a&gt;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있어 글을 남긴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일국양제는 그 출발부터 모순적인 시스템이었다. 한때 이병한 같은 사람들은 그것이 “유가 전통의 천하 관념을 복원한 것”이라고 허황되게 설명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드러난 바, 유가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일종의 구실에 불과할 뿐, 중국이 개혁개방을 거쳐 경제 성장을 구가하기 위해선 홍콩이라는 유용한 도구가 23년 간 필요했던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고도의 자치’란 부동산 자본가들과 친중 정치 엘리트들만의 ‘자치’였을 뿐, 평범한 시민들에게 ‘고도의 자치’란 주어진 적이 없다. 그것은 영국 식민지 체계를 그대로 본 딴 형태의 모순적 도시였을 뿐이다. 일국양제는 정세에 따라 규정될 수밖에 없었고, 중국-홍콩 체제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위태로워지기 시작할 때, 그것의 존립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일국양제를 보장하라!”는 홍콩 민주파의 구호는 당면한 현실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만, 실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갈망해온 홍콩 민중의 역사를 다른 언어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한데 나는 안치영의 글 하단(홍콩인들의 문제; 중국 인민들과의 연대가 아니라 서방과의 연대 선택) 내용은 매우 문제가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안치영은 홍콩 항쟁 과정에서 홍콩 시민들이 “중국의 인민들과 연대한 중국 민주화의 선봉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연대한 탈중국적 경향을 거침없이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라벨까지 무리하게 덧붙인다. 하지만 이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사회운동 주체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일단, 740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어찌 단일하겠는가. 그건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여러 복잡한 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만큼이나 난해하고 단순하지 않다. 홍콩에 진정한 보통선거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범민’(泛民)이라고 하는데, 이들 범민 역시도 단일하지 않다. 이들 중에는 그저 보통선거 정도의 개혁만을 원하는 리버럴리스트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민주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 등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스트도 있고, 영국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는 소수의 노인들, ‘홍콩독립’을 외치는 지역민족주의자들까지 포괄한다. 어찌 이들을 뭉뜽 그려 그중 일부의 모습을 통해 홍콩 시민의 태도를 설명할 수 있나.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홍콩 항쟁 초기의 상황을 보면 이런 복잡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 수 있다. 가령 튄문공원(屯門公園)에서 지역 주민들은 내지(内地；중국대륙) 출신의 성매매 이주여성들을 경멸스럽게 지칭하며 공원에서 당장 나갈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이런 모습은 홍콩인 상다수가 갖고 있는 내지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혐오 정서를 드러낸다. 또, 안치영이 언급한 것처럼 유니온잭을 들고 시위를 하는 일부 시위대의 모습은 제국주의 영국이 이 모순의 출발이었다고 보는 우리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홍콩의 다른 공간들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가령 내지인 여행객들에게 ‘홍콩 항쟁’에 연대해줄 것을 호소함으로써 펼쳐졌던 긴장도 높은 상황들이 있었고, 홍콩 항쟁에 연대하기 위해 대륙에서 온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높은 관심도 있었다. 이런 상황들은 범민의 복잡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나아가 한 사람의 정서마저도 양가성이 있음을 반영한다. 한데 홍콩 항쟁을 비판하거나 혹은 단순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무시하고, 이 안의 차이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안치영도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더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중국 내지의 사회운동적 조건은 상당히 열악하다. 2010년 난하이-혼다 파업 이후 폭발적으로 이어졌던 신노동자(농민공)의 파업 물결은 광둥성을 비롯한 연안지역의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2016년 즈음부터 2019년 봄에 걸쳐 전개된 당국의 강도 높은 탄압은 이런 운동의 싹을 거의 절멸시켜버렸다. 운동 속에서 성장하고, 운동 속에서 고차원의 전망과 전략들을 모색하던 활동가들은 소리소문 없이 체포되거나 자취를 감추었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특히 2018년 여름부터 2019년 여름까지 1년 간 지속된 제이식 노동자 탄압은 그것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었다. 1천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세계의 공장 광둥성 선전에선 그 정도면 작은 공장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장에서 고작 공회(노동조합) 설립을 요구하고 싸웠다는 이유로, 또 그것에 연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의 100명의 노동자‧학생‧NGO 활동가들이 체포됐다. 이들의 핵심은 베이징대학 마르크스주의학회를 중심으로 한 청년 마오주의자 그룹인데,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홍콩대학 교수 Ngai Pun(潘毅)와 홍콩의 좌익 활동가들이다. 潘毅는 이제 더 이상 연구를 명목으로 대륙에 입경할 수 없다. 들어가는 순간 체포되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홍콩의 지식계나 사회운동이 중국 내의 사회운동과 연결된 맥락은 결코 짧지 않다. 가령 1993년 선전의 한 인형공장에서 불이 나 그 안에서 일하던 81명의 여성 노동자(이들은 모두 이 즈음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농민공이었다)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이 끔찍한 노동 참사에 연대했던 건 홍콩의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던 중국 도시들의 노동권에 대해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그리고 물론 이런 연대는 최근까지도 지속됐다. 홍콩은 중국 정부가 자본 투자를 끌어들이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사회운동가들이 중국 사회운동을 조력하고자 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홍콩정부(혹은 중국정부)가 왜 홍콩 사회운동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던 제이식 투쟁에 대한 탄압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에 &#039;범죄인 송환조례&#039;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물론 이 조력 중에는 미국의 리버럴스트도 있고, NED도 있었으며, 혹은 사회주의자들도 있었다. 마치 과거 한국 사회운동에 대한 국제연대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듯이 말이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그 때문에 홍콩인 ‘일부’가, “유니언잭과 성조기를 든 순간 중국인들에게 홍콩은 (…) 제국주의와 결탁한 ‘한간(漢奸)’일 뿐”이라는 안치영의 말은 중국 관료들이 홍콩에 대해 갖는 모순적이고 국가주의적인 태도에 대한 알리바이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안치영은 “홍콩 문제를 둘러싼 서방의 압력은 (…) 제국주의의 간섭의 연속으로 중국 정부의 내부적 지지 기반을 강화시키고 비판자들의 목소리를 막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에게는 그렇게 부정적인 것도 아니”라고 분석한다. 물론 이는 맞는 말이지만, 여기엔 누락이 있다. 오늘날 중국의 통치 시스템에 대한 내부의 비판자들, 좁게는 비판적 지식인들, 넓게는 경제사회적 모순에 불만을 품은 농민공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논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3667/912/083/e74fada3b92b4de7f2b1c58ff2b4733b.jpg&quot; alt=&quot;910da1ea697648d8a6a752de524c42cf (1).jpg&quot; width=&quot;1080&quot; height=&quot;720&quot; /&gt;&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나아가 안치영은 “미국의 홍콩에 대한 제재는 중국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의도에서 벗어난 홍콩의 기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보면서, 여기에 덧붙여 “홍콩에서의 자본의 이탈과 부유한 홍콩인들의 이탈은 홍콩 서민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주거 조건의 개선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는 터무니없는 예측이다. 2003년 홍콩 경제가 급속도로 추락해 불만이 폭증했을 때, 중국 정부가 택한 해결책은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메스가 아니라, 홍콩에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을 풀고, 동시에 여행객을 대거 유입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홍콩의 경제지표를 개선시켰고, 홍콩 경제에 엄청난 버블을 형성시켰다. 2003년부터 2017년 사이 홍콩 GDP는 무려 93.9퍼센트 성장했고, 홍콩 주식시장에서 중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2에 다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버블 속에서 모순이 폭발했는데, 개혁개방 이후 형성된 중국의 졸부들이 홍콩의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고, 동시에 여행객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다보니 물가도 급속도로 오르고, 홍콩 도심 곳곳의 가게들 역시 문을 닫고 죄다 여행객을 위한 점포들로 바뀌었다. 오늘날 홍콩의 부동산 시장은 전 세계에서 타 도시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인데, 여기엔 중국 자본의 투기가 한몫했다. 아마도 안치영이 들었다는 광둥성의 모 대학 교수의 친구들은 이 투기 붐에 따라가지 못한, 정치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소수의 중산층들일 것인데, 그런 이들의 진지하지 않은 태도가 홍콩 시민 다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lt;/span&gt;&lt;br /&gt;&lt;/p&gt;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홍콩 문제는 중국 내부 문제 맞다. 나아가 아시아의 문제이고, 전 세계 민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바깥의 사회를 살펴보고, 그곳의 문제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려 노력하는 이유는, 그곳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홍콩이 겪고 있는 극심한 빈부격차(홍콩의 지니계수는 0.520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충분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집값과 임대료, 40만 명에 달하는 이주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인권, 노조 할 권리가 거의 보장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職工盟은 이에 맞서 더 많은 노조를 만들고, 코로나 시기에 추락하는 노동권을 방어하는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부동산 재벌과 기업들의 무절제한 투기 행각, 그리고 극소수의 재벌 및 중국 통치 권력과 조우하며 공공을 위한 정치가 아닌 사적 통치행위를 일삼는 지배엘리트들의 문제 등은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에도 결코 낯설지 않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안치영은 홍콩과 광주는 다르다고 말한다. 맞다. 홍콩과 광주는 다르다. 조슈아 웡은 “홍콩은 광주입니다”라고 말하지만, 홍콩은 광주가 아니고, 다른 모순들 속에 위치한다. 하지만 조슈아 웡 말고도 다수의 홍콩 시민들이 ‘광주’에 대해 자꾸 질문하는 이유는 둘이 같기 때문이 아니다. 광주 항쟁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뼈저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홍콩 시민 9천 여 명이 시위 과정에서 체포됐고, 홍콩경찰의 극심한 폭력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크게 다쳤다. 17살짜리 청소년이 총을 맞았고, 15살 청소년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며, 22살 대학생이 토끼몰이에 쫓겨 도망치다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저 ‘다르다’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우리는 몇 번의 고개를 넘어가야만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지만, 홍콩에 대해선 별로 그렇지 않다. 동아시아에서의 국제연대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그 때문에 나는 홍콩은 한국의 과거를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쁜 미래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회니까 모순 역시 다르게 폭발하겠지만, 타국의 문제에 대해 &#039;다르니까 모든 것이 다를 것&#039;이란 식으로 바라봐서는 우리가 전 세계 모든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게 없다. 아마도 안치영이 “개인들이 홍콩인들을 동정하고 연대를 표할 수는 있지만 거기까지일 뿐”이라고 말하고, “홍콩 문제는, 그것이 부당하게 보이고, 내부인들이 부당하게 여길지라도 법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무리하게 ‘위악’적 제스처를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광주 항쟁도 10년 넘게 광주 폭동이었고, 전두환도 오랫동안 적법한 대통령 중 하나였다.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홍콩 항쟁 안에는 이러한 관점으로 이 운동에 개입하고, 잘못된 경향(가령 대륙인 혐오 인종주의)에 대해 토론하면서 동참하는 운동가들이 있다. 그들은 평소에는 중국의 노동자운동 등 사회운동들과 적극 연대해왔고, 이 항쟁 속에선 모든 힘을 다 해 다른 경향을 창출하려 노력한다. 그것은 한국의 좌파들이 우리가 촛불 내의 잘못된 경향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 운동 속에서 함께 하려 했던 것과 같다. 세상을 A냐 B냐로 봐선 대안적인 것을 상상할 수 없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안치영이 잘못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사회운동의 모든 국제연대는 ‘동정’이나 직접적 ‘개입’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대비하고, 다른 사회를 상상하기 위한 것이다. &lt;/div&gt;&lt;/div&gt;</content>			</entry><entry>
		<title>명함을 잃은 좌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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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0-02-20T12:23:10+09:00</published>
		<updated>2020-02-20T13:58:41+09:00</updated>
		<author>
			<name>홍명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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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민주당이 1월 29일 &lt;경향신문&gt;에 게재됐던 임미리 교수의 칼럼 ‘민주당만 빼고’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경향신문사와 임미리 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이후 일어난 일련의 파동 이후의 상황은 586세대 지식인들이 처한 곤란과 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치적으로 타락하고 몽매한 진영논리에 빠진 586세대 지식인과 그 친위부대는 임미리 교수를 비난하고 조롱했고, 반대편에서는 조국 대전 이후의 민주당 및 그 지지자들의 타락이 ...</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0px 0px 6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3667/803/083/9091adcb2c7d58cb2e92ab0cba413aae.JPG&quot; alt=&quot;32423432234234.JPG&quot; width=&quot;948&quot; height=&quot;470&quot; /&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29, 33, 41); font-family: Helvetica, Arial, sans-serif; text-align: left;&quot;&gt;민주당이 1월 29일 &amp;lt;경향신문&amp;gt;에 게재됐던 임미리 교수의 칼럼 ‘민주당만 빼고’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경향신문사와 임미리 교수를 검찰에 고발한 이후 일어난 일련의 파동 이후의 상황은 586세대 지식인들이 처한 곤란과 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치적으로 타락하고 몽매한 진영논리에 빠진 586세대 지식인과 그 친위부대는 임미리 교수를 비난하고 조롱했고, 반대편에서는 조국 대전 이후의 민주당 및 그 지지자들의 타락이 이번 논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lt;/span&gt;&lt;br /&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무엇보다 나는 민주당과 현 정부에 비판적이고, ‘촛불’이나 ‘혁명’ 등의 레토릭을 구사하며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비단 &#039;조국 대전&#039;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 관련 공약을 거의 지키고 있지 않으며, 손바닥 뒤집듯 쉽게 엎어버렸다. 장시간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고, 톨게이트 비정규직‧마사회 문중원 열사 등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이번 겨울에도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 이재용의 불법 상속에 대해서도 눈감아주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고, ‘재벌 봐주기 판결’의 은근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 연말 통과된 개인정보3법 역시 민주당이 만든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인데, 국민의 개인정보를 자본이 이윤의 수단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방향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촛불’이니 ‘혁명’이니 하는 수사를 붙이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2016년 겨우내 이어진 수백만 촛불의 목소리는 망각되고 있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상황이 이런 수준으로 가니 586세대 지식인들 중 현 정부의 표리부동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는 문재인 광신도들의 모함과는 달리 중간층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마도 그것이 ‘&lt;/span&gt;&lt;a class=&quot;_58cn&quot; href=&quot;https://www.facebook.com/hashtag/%EB%AF%BC%EC%A3%BC%EB%8B%B9%EB%A7%8C_%EB%B9%BC%EA%B3%A0?source=feed_text&amp;amp;epa=HASHTAG&quot; style=&quot;color:rgb(56,88,152);font-family:inherit;&quot; rel=&quot;nofollow&quot;&gt;&lt;span class=&quot;_5afx&quot;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lt;span class=&quot;_58cl _5afz&quot; style=&quot;color:rgb(54,88,153);font-family:inherit;font-size:16px;&quot;&gt;#&lt;/span&gt;&lt;span class=&quot;_58cm&quot; style=&quot;font-family:inherit;font-size:16px;&quot;&gt;민주당만_빼고&lt;/span&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해시태크 운동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한편 진중권 씨가 다시 온라인에 나타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논평을 달기 시작한 이후로 그의 입장에 대한 미디어의 집중도 높아졌다. 진보누리 시절의 독설이 보다 씁쓸하고 냉소적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땐 ‘민주노동당’의 포지션이었고,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여당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점에 있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나는 그가 페북에 나타나 유시민을 신나게 비판할 때 그것도 뭐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유시민의 파렴치한 언행이 지나치게 해롭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그런 것에 제동을 건다는 점에선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다. 진중권 씨 특유의 냉소와 독설은 우리의 ‘다음 대안’을 만들어내는 힘은 되지 못한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물론 정의당 주류의 태도 역시 문제적이긴 마찬가지다. 예컨대 윤소하 원내대표는 진중권 씨 탈당 즈음에 황당한 수준의 입장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는데, 김종민 부대표 등이 최근 언론에서 ‘조국 사태 과정의 정의당의 패착’에 대해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윤소하 원내대표는 그 패착의 진정한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케 했다. 그 때문에 사태가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김어준 라디오에 출연해서 실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정의당 정치인들은 어디 가서 ‘진보정당 정치인’이라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다시 뭇 지식인들의 상태로 돌아오자면, 작금의 상황이 586세대 지식인들의 멘탈리티가 여러 측면에서 붕괴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된 좌파정당’ 혹은 좌파적 대안이 부재하는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다. 주류 집권세력에 기댄 이들은 여전히 자한당 등 수구세력을 최대 적수로 상정하는 ‘독재-민주’의 80년대식 이분법을 우려먹고 있고, 모두 까기를 신나게 시전하면서 ‘대안’에 대해서는 또렷한 입장을 드러내길 피하는 반성적 586세대 지식인들은 자기파괴적 절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조국과 유시민 등이 타락한 586 지식인을 상징한다면, 진중권 등은 절망에 빠진 냉소주의적 지식인을 상징한다. 민주당의 광신적 지지자들은 진중권이나 임미리 등이 민주당 정권만 비판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뉴라이트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욕하고 있지만, 오히려 뉴라이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세력은 정권을 쟁취한 이후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에 대해선 한 없이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고, 이를 비판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에 대해선 온갖 비난을 쏟아대는 이들이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물론 이런 두 분류에 속하지 않는 지식인들도 있을 것이다. ‘타락’과 ‘냉소’가 아니라, 둘 모두를 거부하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침묵’을 택한 이들이 말이다. 나는 이들이 오늘날 지식인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침묵은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좌파가 건재했다면, 민주당 정권이 타락하고 친자본적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낼 때 ‘민주당만_빼고’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명함을 제시하며 ‘민주당이 아니라 좌파정당을’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비판할 때조차도 현 정권이 노동 사안 등에 있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보다 비중을 실어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냉소주의적 지식인들은 그런 길을 찾는 대신, 냉소와 ‘절망을 여지없이 표출하기’를 택했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한계라고 생각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반면 활동가,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민주당만 빼고’라는 슬로건은 한정된 맥락 안에서, 심정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활동가의 태도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사회운동은 대중들을 향해 ‘지표 없이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희미할지언정 자신의 길을 제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의당 지도부의 태도가 역겹고 비판하고 싶다면, 진중권이나 임미리와 같은 냉소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시민들이 동참할 수 있는 다른 진보정당을 대안으로 제시하거나, 혹은 그 안의 소수파의 자리에 버티고 서서 그 당을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은 그 편에서 이야기하는 게 가장 현실주의적이고 가장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보다 역사적으로 지금의 몰락을 진단하고, 진보정당이 왜 이런 수준으로 추락했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태가 대체 왜 이렇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다 오래 고민한 사람들이 타당한 시각을 갖고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그 편이 민주당의 실체와 자기 세대 지식인들의 타락에 대해 도덕주의적으로 힐난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좌파는 명함을 잃었다. 어디에도 좌파의 자리는 없어 보인다.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40명이나 출마했던데, 이중에서 ‘진보정당다운 국회의원’, ‘준비된 정치인’이 몇 명이나 당선권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저 사람은 대체 왜 나왔나 싶은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은 절대 안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도전이 기대되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좀 됐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도 있다. 주체들의 상태 역시도 정세의 조건인데 냉소적으로만 사태를 바라보지 말고, 이런 형세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lt;/span&gt;&lt;/p&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 &lt;/span&gt;&lt;p style=&quot;text-align:left;margin:6px 0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29,33,4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무엇보다 총선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총선이 끝나면 마지막 도전을 해보고 싶다. 그것은 정의당 안의 좌파들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통합하고, 안팎으로부터의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좌파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SNS 인플루언서들과는 달리 절망에도 불구하고 대중운동 속에서 존거하면서 해볼 수 있는데까지는 해보는 것이 활동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 도리도 못 지킬 것 같으면 무책임하게 소꼽장난 같은 소리를 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님들한테는 사고실험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lt;/span&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039;사상의 분단&#039;과 인터넷행동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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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9-09-06T02:00:34+09:00</published>
		<updated>2019-09-06T10:56:18+09:00</updated>
		<author>
			<name>홍명교</name>
		</author>
		<summary type="text">나는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 별 관심과 기대가 없는 편이었다. 과거 월간 《인물과 사상》에 간통죄 폐지에 대한 명쾌한 글을 썼던 것에 대해선 좋은 인상이 있었지만, &#039;강남좌파&#039;가 우리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순 없다고 여겼을 뿐더러,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후 SNS를 통해 보인 발화들을 보고 관심을 끊어버렸다. 애초 기대도 없었으니, 그가 법무부 장관을 해서 &#039;잘 하면 좋고, 못 해도 실망할 게 없&#039;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summary>
	<content type="html">&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gt;&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3667/746/083/e3a78da9597433e367eceed615a72e75.jpg&quot; alt=&quot;00503965_20190905.jpg&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532&quot; /&g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rgb(29, 33, 41); font-family: Helvetica, Arial, sans-serif; font-size: 14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quot;&gt;나는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 별 관심과 기대가 없는 편이었다. 과거 월간 《인물과 사상》에 간통죄 폐지에 대한 명쾌한 글을 썼던 것에 대해선 좋은 인상이 있었지만, &#039;강남좌파&#039;가 우리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순 없다고 여겼을 뿐더러,&amp;nbsp;&lt;/span&gt;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후 SNS를 통해 보인 발화들을 보고 관심을 끊어버렸다.&amp;nbsp;애초 기대도 없었으니, 그가 법무부 장관을 해서 &#039;잘 하면 좋고, 못 해도 실망할 게 없&#039;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 입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나 사모펀드에 10여 억원을 투자했다는 것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억지스러움 뿐이었다. 이를테면 사모펀드 투자가 불법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부터 시작해서 본인 돈이 아니라 부인 돈이라고 하지 않느냐 등. 그런 류의 궁색한 옹호들은 참으로 놀라웠다. 임명을 지지할 순 있어도, 사모펀드까지 옹호한다는 건 그냥 그들의 진보가 내가 알던 진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는 방증이다.&lt;br /&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검찰 개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조국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이 처음 약속 했던 &#039;소득주도성장&#039;이나 &#039;노동 존중&#039; 등 몇 가지가 실종되고, 한반도 평화가 트럼프의 계속된 어깃장으로 상당히 예측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버린 이후, &#039;검찰 개혁&#039;은 이 정권의 사활적 과제가 됐고, 무조건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amp;nbsp;&lt;/span&gt;전술에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심상치 않은 논란이 시작됐음에도 판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청와대 자신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리석게도 이 임명안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버렸다.&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무엇보다 사람들은 자기 계급의 정치, 자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어떤 사안에 대해 사고할 때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근거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김어준이나 유시민의 말을 듣고 입장을 정하고,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정치인이 유리하냐 아니냐로만 사안을 판단해 버린다. 사상 없는 여론 난투극의 시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조국편이냐 아니냐, 문파냐 아니냐, 황교안팬이냐 아니냐, 박근혜지지자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양분되는 정치적 입장은,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에 큰 기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구도가 이런 식으로만 양분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상태에 빠져있는지 보여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여러 모순들에 대해 두루 고민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조국이 임명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뼈아프게 결론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039;어떻게 사유했느냐&#039;이다. 예컨대, 내가 아는 한 페친은 조국을 둘러싼 여러 모순들, 학벌사회에서 다수 청년들이 느낄 박탈감, 사모펀드 투기의 이중성 등의 여러 사실들에 대해 쓰라리게 인정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039;검찰공화국&#039;으로 전락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는 검찰 놈들을 가만 내버려둬선 안 되기 때문에 조국이 임명되는 게 &#039;조금이라도&#039;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그 정도의 사유와 번민을 거쳤다면, 그 자체로 토론할 수 있는 입장으로 인정하고 싶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페친처럼 &#039;어떻게&#039;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039;무엇을&#039;만 묻고 반복적으로 외칠 뿐이고, 결론들에 대해 편을 나누고는, 제각각 누군가의 반론에 대해 아무렇게나 선언해버리고 욕지거리를 할 뿐이다.&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당연히 토론은 불가능하며, 사유란 것도 정지해버린다. 이 난투극에 사상이 들어올 틈은 없다. &quot;사상의 분단&quot;인 셈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이런 식의 난투극이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이 경멸스럽다. 특히, &#039;386&#039;의 대표적 이론가라든지, 정치인, 혹은 운동가로 분류되던 이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논거로 조국을 비호하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우습다. 그들의 특징은 위악과 위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amp;nbsp;&lt;/span&gt;차라리 조국을 둘러싼 논란 중 여러 합리적 비판들을 인정하면서도, 형세와 싸움의 구도, 검찰의 역겨움에 대해 논한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런 형세를 볼 시야도 없다. 억지로 옹호하려고 애쓸 뿐이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물론 반대편의 조선일보나 자한당류의 역겨움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039;어떻게&#039;를 상실한 조국-지지-인터넷행동주의자들의 검색어 폭격과 조선일보류의 공격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이번 사안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검색어 폭격에 대한 10~20대의 전반적인 생각은 &quot;대체 검색어 가지고 왜 저러는거야&quot;, &quot;그냥 문재인은 왜 저런 사람을 지킨다는 거야&quot;인데, 심지어 저 행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집단 행동에 대해 설명할 차분함도 없다.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분노를 모아 행동하고, 이에 대해 비판하면 &quot;자한당편&quot;이냐고 욕을 한다. 그들 눈에 이 세상엔 &amp;lt;자한당과 자신들&amp;gt;, &amp;lt;기레기와 자신들&amp;gt;이라는 구도 밖에 없는 듯하다. 그 점에서 이분들이 박사모류와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rgb(29,33,41);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절망적이다. 사유의 행로가 어찌 저토록 가파르게 추락할 수 있나 놀랍다. 그래서 이 사안을 두고 논쟁하는 일에 대해 포기했다. 한동안 리버럴 세력에 대한 좌파적 비판의 진의가 전달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 같다.&amp;nbsp;&lt;/span&gt;그냥 슬픈 마음으로 이 사회가 얼마나 더 망가지려고 하는지 지켜보고 기록하려고 한다.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이 정치 좀비가 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책임이 아닐까 싶다. 사상의 분단을 극복하는 일은 아주 지난한 역정이 필요해보인다.&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정의당 당직선거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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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9-07-12T11:17:08+09:00</published>
		<updated>2019-07-12T11:20:35+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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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홍명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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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나는 정의당의 &#039;종이당원&#039;이다. 누군가는 나 정도면 종이당원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한국의 진보정당이 가졌던 &#039;진성당원제&#039;의 의의에서 나는 종이당원으로서의 역할 이상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 사회운동단체와 노동조합 운동 경험을 거치면서 갖게 된 생각과 정세판단에서 보면, 정의당은 내 바람과는 한참 멀리 있는, ‘우경화된 진보정당’이다. 내게 있어서 이는 기분 나쁠 일도, 자조할 필요도 없는, 그저 건조한 평가 이상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3667/720/083/1bf890da168a1abf9b1fce94913e9f11.JPG&quot; alt=&quot;23423423434.JPG&quot; width=&quot;1766&quot; height=&quot;899&quot; /&gt; &lt;/p&gt; &lt;p&gt;나는 정의당의 &#039;종이당원&#039;이다. 누군가는 나 정도면 종이당원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한국의 진보정당이 가졌던 &#039;진성당원제&#039;의 의의에서 나는 종이당원으로서의 역할 이상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 사회운동단체와 노동조합 운동 경험을 거치면서 갖게 된 생각과 정세판단에서 보면, 정의당은 내 바람과는 한참 멀리 있는, ‘우경화된 진보정당’이다. 내게 있어서 이는 기분 나쁠 일도, 자조할 필요도 없는, 그저 건조한 평가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정의당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이 정의당이라는 우경화된 진보정당이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상태이기도 하고, 그밖에 여러 복잡한 고민 때문이다. 이 고민은 당면한 정의당 당직 선거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다소 긴 글이 되겠지만, 페친들 중 정의당 당원인 분들께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lt;br /&gt;&lt;/p&gt; &lt;p&gt;&lt;/p&gt; &lt;p&gt;한 명의 &#039;사회운동좌파&#039;로서 나는 한국의 사회운동 질서가 거의 무너져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완전히 망하지 않길 바라고, 다시 일어설 있길 바란다. 심지어 국제 권역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한국의 운동이 이 정도라도 존재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는 몇 안 되는 희망과도 같은 일이다. 어쨌든 이 와해(혹은 침체) 이후, 좌파에게는 몇 가지 진단과 그에 따른 아포리아가 남았다. 우선 첫째는,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정의당)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비정치성을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당의 사회운동으로부터의 이탈을 낳는 원심력을 더 강화한다.&lt;/p&gt; &lt;p&gt; 노동조합이 비정치화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이 더 이상 고 김용균처럼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혹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조건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법적/제도적 변화 역시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이 진보정당운동과 협업하는 게 아니라, 집권당이 된 자유주의 정당과 협업하고자 하는 동인이 더 커졌음을 뜻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나 계급정당을 통해 자신의 계급적 역량을 정치화하는 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활약하는 스타정치인들에게 자기 정치의 운신을 의탁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민주노총 조합원 상다수가 김어준 팬이 되거나, 문재인 지지자가 되는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 사이 노동자운동과의 접점을 강화하기보단 멀어지는 일에 주력한 진보정당의 잘못이고, 정치방침의 좌초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민주노총의 책임이 더욱 크다. &lt;br /&gt;&lt;/p&gt; &lt;p&gt;종종 언급하곤 했던 한 기억으로부터 이야기해볼까 한다. 2013년 10월 31일 밤 나는 하나의 풍경을 목격해야 했다. 이 일은 어떻게 보면 &#039;당연한 일어날만한 일&#039;이겠지만 당시 내겐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31일 늦은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에어컨 수리기사 최종범은 한 나무 아래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전태일 열사와 회사의 노조 탄압을 언급한 유서를 남겨두었다. 삼성서비스지회에서 교육선전을 맡고 있던 나는 그날 곧바로 천안으로 내려갔고, 금속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두정센터 앞에서 긴급 집회를 열었다. 놀랍게도 그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세 명이 집회에 왔는데, 정의당에서 온 의원은 없었다. &lt;br /&gt;&lt;/p&gt; &lt;p&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0c06r8-q-7o&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15&quot; frameborder=&quot;0&quot;&gt;&lt;/iframe&gt;&lt;/p&gt; &lt;p&gt;그날 은수미 의원이 마이크를 잡자 동료를 잃은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수리기사들은 “은수미”를 연호했다. 은수미는 그들의 절망을 일으켜세워줄 구원자 같은 것이었다.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이었던 민주당 소속 의원이 말이다. 물론 당시 은수미 의원은 칭찬 받기 충분할만큼 훌륭한 일을 하고 있었고, 노동자운동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제공했었다. 그러니 그런 환호를 받을만 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앞으로 진보정당의 자리 같은 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비록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대학 입학 이래 나는 줄곧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잘 되고, 사회운동과 함께 보폭을 맞추어야 세상을 바꾸는 운동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위기감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lt;/p&gt; &lt;p&gt;두 번째 문제는 진보정당 스스로 사회운동과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정당이 사회운동과 멀어지면, 진보정당은 거의 가치가 없어지는데도,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다시 2013년 가을로 돌아가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정의당을 향해 ‘빅텐트론’의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한편 정의당은 지극히 실리주의적인 노선을 밟으면서 ‘이념’을 낡고 구질구질한 것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반면 노동당 등은 거의 아무런 전망이 없어보였고, 당 밖의 좌파들은 진보정당의 이런 침체에 대해 고고한 학처럼 무시로 일관했다. 이를테면 “그거 되겠어?”라거나, “개량주의적이라서…” 뭐 그런 것들 말이다.&lt;/p&gt; &lt;p&gt;그 이후 나는 진보정당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 정의당은 많은 한계를 노출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기도 했고, 때때로 진보정당이 내기 어려운 수준의 논평을 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 안에 소수의 사회운동적 진보정당론자들이 왕성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고, 또 지역의 고군분투하는 여러 활동가들 덕분에 ‘존재감’을 잃지 않고 남아있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2019년 이 시점에서 대단히 유의미하게 되새길 일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그 시점에 발군의 힘을 발휘한 후보였다는 점에서 심상정 후보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라고 평가하게 됐다. &lt;br /&gt;&lt;/p&gt; &lt;p&gt;물론 정의당이 이렇게 양대 정당 바깥에서 ‘제3의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스스로 안정적인 &#039;궤도&#039;에 올라오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포지션은 꽤 위태롭고, 대중들로부터 확실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기에 정의당이 민주당 내의 진보파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를뿐더러, ‘진보주의’로 버티는 한에서는 아무 이념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이 위태로운 자리는 한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더 많은 불안 요소에 노출될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위기의 시대에 사람들은 난국을 타개할 새로운 대안(세력)을 찾지만, 그걸 제시하지 못 한다면, 보다 세고 포퓰리즘적인 이야기를 하는 세력에게 귀를 기울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서구에서 그런 풍경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lt;/p&gt; &lt;p&gt;따라서 나는 이 위태로움을 타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도는 사회운동이 자신의 이념을 재장전하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운동·여성운동 등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진보정당이 자신이 서야할 선명한 자리를 새롭게 찾고, 자신의 이념과 노선을 갱신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lt;/p&gt; &lt;p&gt;물론 모든 건 디테일에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어물쩍 거대한 이야기만 하고, 디테일에 있어선 쥐뿔도 없다면 신뢰받을 세력이 될 리 없다. 그러니 ‘이념’과 ‘현실’이라는 것은 대당되는 개념이 될 수 없다. 한데 내가 아이러니한 것은 정의당의 이번 당직 선거가 마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결’인 것처럼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만약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이라면, 정의당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재검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교섭단체도 만들 수 있고, 집권도 꿈 꿀 수 있다는 게 명확하다. 그런데 속류적인 현실주의, 속류 실리주의에 빠져 있으면, 지금까지의 현실들을 편의적으로 대입해서, 이념의 갱신이나 사회운동적 강화를 논하는 목소리에 대해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라는 레테르를 붙인다. 가당치 않다.&lt;/p&gt; &lt;p&gt;그렇다면 점진적 개혁론자와 대담한 변혁론자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단정할 수도 없다. 대담한 변혁이든 점진적 개혁이든 죄다 상대적일뿐이라서, 누군가가 보기엔 대담한 것도 소심해보이고, 개혁도 혁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한쪽을 지지하고 있다면, 죄다 주관에 따라 수식을 붙일 수 있을 뿐이지, 분명한 판단 기준이 되진 못 한다.&lt;/p&gt; &lt;p&gt;이틀 후면 마무리되면 이번 정의당 당직 선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내년 총선에서 후보를 뽑을 때 개방형 경선을 하겠다는 심상정 후보의 공약이다. 이것이 정의당을 더 위태롭게 하고 지역을 소외시킬 뿐이라는 비판에 대해 옹호론자들은 왜 그렇게 소심하게 생각하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여러 함정이 있다. 일단, 지난 시기 심상정 후보가 자의적으로 데려온 몇 명의 사람들이 정의당의 비례 국회의원들이 되었지만, 나는 이들 대부분이 훌륭한 정치인임을 증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6명 중 심상정 후보가 데려온 분들은 김종대 의원과 추혜선 의원인데, 안타깝게도 내 생각엔 하나같이 함량미달이었다. 김종대 의원은 잇따른 실언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상실했고, 추혜선 의원은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준 적조차 없다. 내년에도 심상정 후보는 자신이 점찍어둔 분들을 데려오려고 하겠지만, 실패할 게 빤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실패에 대해 어떤 반성이야 있으셨겠지만, 나는 대체로 “내가 하면 잘 돼”라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lt;/p&gt; &lt;p&gt;내 생각에 심상정 후보가 잘 하는 것은 정개특위와 같은 공간에서 공격수로 플레이하거나, TV토론에 나가 선수로 뛰는 것이다. 즉, 심상정 후보는 훌륭한 스트라이커이지 유능한 감독은 아니다. 그는 팀을 자꾸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 자신이 꽂힌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방향은 팀을 망가뜨릴 뿐이다. 심상정이 지금껏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에 90의 기여와 10의 실패를 했다고 한다면, (심상정이 싫으신 분은 50대50이라고 보셔도 좋다.) 10의 실패는 죄다 그가 정당이라는 조직을 잘못 이끌어온 것에 맞춰져 있다. 그가 화려한 조직가로 뛰었던 구로동맹파업이나 금속연맹의 경험조차 이제는 그가 이념적으로 폐기한 “낡은 이념”(그 스스로 당대의 노동자운동을 이렇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의 시기의 경험에 맞춰져 있지 않은가.&lt;/p&gt; &lt;p&gt;나는 얼마 전 어떤 이유 때문에 심상정이 쓴 모든 책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최장집류의 이념을 십분 수용해서 노동운동은 신념윤리가 책임윤리보다 앞서지만, ‘진보정치인’에게는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가 앞선다고 양분하는 것이었다. 그쯤 되니 그가 왜 지금껏 이렇게 말해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lt;br /&gt;&lt;/p&gt; &lt;p&gt;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자신의 이념을 잘못 소화해서 생긴 오류로 보인다. 나는 우선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양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념과 책임이라는 화두가 투쟁들의 갈등적 순간에 다다랐을 때 떠오를 순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운동가(정치가)의 윤리는 신념이나 책임 따위의 도덕주의적 개념이 아니라, 대중이데올로기와 정세분석이 되어야 한다. 한데 신념윤리니 책임윤리니 나누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몰정세적 관점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박된 시선을 도덕주의의 자리에 내주고 말았다. 당연히도 이는 정치적 실리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lt;/p&gt; &lt;p&gt;이런 막스 베버의 그 이분법적 구분을 얼마든 수용해서 말하더라도, 나는 심상정 후보의 두 번째 구분을 동의하지 않는다. 노동자운동 역시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신념을 폐기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그 정세와 조직의 조건 속에서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지, 신념을 더 우선에 두고 전술전략을 택하지 않는다. &lt;br /&gt;&lt;/p&gt; &lt;p&gt;그렇기 때문에 정의당 내의 자칭 다원주의자(혹은 실리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이 논리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논리가 정세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일부 대응들은 잠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당이라는 거대한 조직이나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실패하기 쉽다. &lt;br /&gt;&lt;/p&gt; &lt;p&gt;이런 측면에서 양경규 후보는 그가 노동조합 운동 안에서는 소위 &#039;중앙파&#039;로 분류되고 있어, 다른 &#039;좌파&#039;들에 비해 오른쪽에 위치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심상정의 이념’과는 다른 이념을 갖고 있다. 그는 사회운동을 우선시하고, 진보정당의 이념과 가치가 바로 서야 디테일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보다는 팀, 성과를 개인화하는 것보다는 성과를 조직의 것으로 하는 것에 익숙하고, 그런 운동을 해왔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사회운동적/조직적 관점은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을 구축해온 건강한 밑거름이었다. &lt;br /&gt;&lt;/p&gt; &lt;p&gt;사실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구호엔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민주적 사회주의든, 사회주의민주든, 사회민주주의든 ‘민주’랑 ‘사회’가 섞여 있는 모든 것들에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역사적 쟁점들이 뒤섞여 있다. 이 오랜 슬로건이 3주라는 짧은 선거운동 기간 안에 해결될리 없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정의당 당원들의 화두에 올려주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념이 실종된 시대에, 논쟁이 죽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한다.&lt;/p&gt; &lt;p&gt;한편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애매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가까운 중국의 민간사회주의자들이 가졌던 ‘사회주의민주’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공히 돌파해야 하는 아포리아가 이렇게 많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 선거는 의의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양경규 후보를 지지한다. 그 개인이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 그가 얼마나 화려한 언변을 지녔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고, 지역의 여러 활동가들이 좋은 얘기를 워낙 많이 하고 있으니, 굳이 나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lt;/p&gt; &lt;p&gt;우리는 운동의 침체 이후 완전히 순수한 땅 위에서 &#039;순수하게&#039; 좌파적인 사람들을 모아서 정치운동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진흙탕 위에서 지극히 다양하고 순수하지 않은 이들과 함께 무언가 해볼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나는 진흙탕 안에서 지지고 볶는 걸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최소한, ‘에너지’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믿고, 우리가 가진 이념과 가치의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하고 있다면, 이 진흙탕 속에서 꽃이 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내기를 걸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에너지가 없으면 시동도 안 걸리지 않나. 소리가 지저분하지만 시동이라도 걸리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lt;/p&gt; &lt;p&gt;나는 세상에 ‘바깥’이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도 한국 사회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안에 존재하고, 한국의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페미니스트, 공산주의자들도 이 지저분한 진흙탕 안에서 존재할 뿐 결코 독야청청하게 존재할 수 없다. 사무실이라는 청정 공간에서 오염되지 않은 순도100퍼센트 천연암반수만으로 뭔가 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개입할 수 없다. 그냥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 뒷북 치면서 평가만 할 수 있을 뿐인데, 그런 건 역사가들이 할 일이다. 그러니 정의당 당원들 중 이 피폐한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 속에서 변화를 만들고, 꽃 한 송이를 피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양경규 후보에게 한 표 던져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 한 표가 1보 전진을 만드는 에너지다. 양경규&amp;nbsp; 혹은 심상정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의당 당원들이 1표를 던지는 사유의 경로가 중요하다. &lt;br /&gt;&lt;/p&gt;</content>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