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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의 <여담>은 국내외의 좌파 혁신을 주제로 삼아, 당면한 정세에서 필요하지만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온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운동/노동자운동을 향한 여담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사회운동의 상황을 소개하거나 논평하는 것도 포함한다.

활동가. 영화연출을 전공했으나, 돌곶이포럼과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사회운동과 노동자운동, 영화 등에 대한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중국 사회운동과 교류하며 국제연대의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쓴 르포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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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 별 관심과 기대가 없는 편이었다. 과거 월간 《인물과 사상》에 간통죄 폐지에 대한 명쾌한 글을 썼던 것에 대해선 좋은 인상이 있었지만, '강남좌파'가 우리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순 없다고 여겼을 뿐더러,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후 SNS를 통해 보인 발화들을 보고 관심을 끊어버렸다. 애초 기대도 없었으니, 그가 법무부 장관을 해서 '잘 하면 좋고, 못 해도 실망할 게 없'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 입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나 사모펀드에 10여 억원을 투자했다는 것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억지스러움 뿐이었다. 이를테면 사모펀드 투자가 불법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부터 시작해서 본인 돈이 아니라 부인 돈이라고 하지 않느냐 등. 그런 류의 궁색한 옹호들은 참으로 놀라웠다. 임명을 지지할 순 있어도, 사모펀드까지 옹호한다는 건 그냥 그들의 진보가 내가 알던 진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는 방증이다.

검찰 개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조국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이 처음 약속 했던 '소득주도성장'이나 '노동 존중' 등 몇 가지가 실종되고, 한반도 평화가 트럼프의 계속된 어깃장으로 상당히 예측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버린 이후, '검찰 개혁'은 이 정권의 사활적 과제가 됐고, 무조건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술에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심상치 않은 논란이 시작됐음에도 판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청와대 자신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리석게도 이 임명안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버렸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기 계급의 정치, 자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어떤 사안에 대해 사고할 때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근거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김어준이나 유시민의 말을 듣고 입장을 정하고,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정치인이 유리하냐 아니냐로만 사안을 판단해 버린다. 사상 없는 여론 난투극의 시대다.

조국편이냐 아니냐, 문파냐 아니냐, 황교안팬이냐 아니냐, 박근혜지지자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양분되는 정치적 입장은,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주의에 큰 기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 구도가 이런 식으로만 양분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상태에 빠져있는지 보여준다.

여러 모순들에 대해 두루 고민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조국이 임명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뼈아프게 결론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사유했느냐'이다. 예컨대, 내가 아는 한 페친은 조국을 둘러싼 여러 모순들, 학벌사회에서 다수 청년들이 느낄 박탈감, 사모펀드 투기의 이중성 등의 여러 사실들에 대해 쓰라리게 인정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는 검찰 놈들을 가만 내버려둬선 안 되기 때문에 조국이 임명되는 게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그 정도의 사유와 번민을 거쳤다면, 그 자체로 토론할 수 있는 입장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페친처럼 '어떻게'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만 묻고 반복적으로 외칠 뿐이고, 결론들에 대해 편을 나누고는, 제각각 누군가의 반론에 대해 아무렇게나 선언해버리고 욕지거리를 할 뿐이다. 당연히 토론은 불가능하며, 사유란 것도 정지해버린다. 이 난투극에 사상이 들어올 틈은 없다. "사상의 분단"인 셈이다. 

이런 식의 난투극이 무한히 반복되는 세상이 경멸스럽다. 특히, '386'의 대표적 이론가라든지, 정치인, 혹은 운동가로 분류되던 이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논거로 조국을 비호하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우습다. 그들의 특징은 위악과 위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조국을 둘러싼 논란 중 여러 합리적 비판들을 인정하면서도, 형세와 싸움의 구도, 검찰의 역겨움에 대해 논한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런 형세를 볼 시야도 없다. 억지로 옹호하려고 애쓸 뿐이다.

물론 반대편의 조선일보나 자한당류의 역겨움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를 상실한 조국-지지-인터넷행동주의자들의 검색어 폭격과 조선일보류의 공격들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이번 사안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검색어 폭격에 대한 10~20대의 전반적인 생각은 "대체 검색어 가지고 왜 저러는거야", "그냥 문재인은 왜 저런 사람을 지킨다는 거야"인데, 심지어 저 행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집단 행동에 대해 설명할 차분함도 없다.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분노를 모아 행동하고, 이에 대해 비판하면 "자한당편"이냐고 욕을 한다. 그들 눈에 이 세상엔 <자한당과 자신들>, <기레기와 자신들>이라는 구도 밖에 없는 듯하다. 그 점에서 이분들이 박사모류와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

절망적이다. 사유의 행로가 어찌 저토록 가파르게 추락할 수 있나 놀랍다. 그래서 이 사안을 두고 논쟁하는 일에 대해 포기했다. 한동안 리버럴 세력에 대한 좌파적 비판의 진의가 전달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그냥 슬픈 마음으로 이 사회가 얼마나 더 망가지려고 하는지 지켜보고 기록하려고 한다.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이 정치 좀비가 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책임이 아닐까 싶다. 사상의 분단을 극복하는 일은 아주 지난한 역정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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