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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손이상의 호기심 천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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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3 Oct 2026 20:13: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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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화 &lt;미나리&gt; 리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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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amp;lt;미나리&amp;gt;를 나흘 전에 보았는데 여전히 여운이 남아있다.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영화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앞에 놓인 인간을 묘사한다. 한국에는 &amp;lt;미나리&amp;gt;가 마치 한국인 이민자들의 미국 정착기를 다루는 가족 서사인 것처럼 알려졌다. 영화의 외적 측면들(한국어 사용, 한국계 감독과 배우들, 각종 영화제 수상 소식들)이 과하게 부각된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인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amp;lt;미나리&amp;gt;에는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이 거의 투영되지 않는다. 한국인 가족이 이민자로서 미국 주류사회와 갈등을 겪는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인 밀집지를 피해 이주해온 가족과 한인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시골까지 왔다는 여성의 발화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탈-한국을 시도해왔음을 짐작케 한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영화를 관통하는 정체성은 민족성이 아닌 계급성이다. &amp;lt;미나리&amp;gt;는 미국 남부 시골에서 이동식 주택에 사는 가난한 소농민을 다루며, 현실의 삶에 최대한 밀착해 그 안에 가득한 결핍과 불화와 환상들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amp;lt;분노의 포도&amp;gt;나 &amp;lt;에덴의 동쪽&amp;gt; 같은 20세기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완고한 사회주의 미학의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제임스 딘 같은 미남은 안 나오지만). &amp;lt;미나리&amp;gt;에서 한국계 이민자 가족은 남부 복음주의의 미신적 환경 속에 그대로 떨어진다. 소규모 가족 농장이 한 뙈기 있으나 농산품의 안정적인 판매처는 커녕 충분한 물조차 얻지 못한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소득을 얻기 위해 부부가 모두 부업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그런데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현실에 맞선 저항 서사를 만들지 않는다. 적대계급과의 갈등 내지 긴장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불안정계급의 삶이 유산계급의 직접적인 착취나 강압에 의해 형성되지 않기 때문으로, &amp;lt;미나리&amp;gt;의 병아리 공장 고용인이나 도시 유통상인 등은 일순간 스쳐지나갈 뿐 단 한번도 착취자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amp;lt;미나리&amp;gt;는 계급 갈등이나 저항을 그리는 대신 20세기 리얼리즘이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걷는다. 계급성 외에 &amp;lt;미나리&amp;gt;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은 &amp;lt;애정의 조건&amp;gt; 같은 헐리우드 통속영화에서 반복되었던, 사건을 통한 감정이입이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개인적인 것일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기도 한데, 그녀는 특히 &amp;lt;애정의 조건&amp;gt;을 ‘미국적 슬픔’의 구체적인 예로 언급한 바 있다. &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amp;lt;애정의 조건&amp;gt;에 나오는 가족은 아이오와로 이주한다. &amp;lt;미나리&amp;gt;의 가족은 아칸소로 이주한다. &amp;lt;애정의 조건&amp;gt;에 나온 남편은 대학교수지만 학자로서 성공하지 못했으며 소득이 적다. 아내와 끊임없이 불화하다 파혼한다. &amp;lt;미나리&amp;gt;의 남편은 가축공장에서 폐기되는 쓸모 없는 숫놈 병아리와 같다. 아내와 끊임없이 불화하다 결별 선고를 받는다. &amp;lt;애정의 조건&amp;gt;에서 약간 더 교양있는 계급 출신인 아내는 결혼생활 내내 걱정을 안고 산다. 삶의 굴레에 막혀 부부간 대화를 잃어버린다. 아내로서가 아닌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amp;lt;미나리&amp;gt;의 한예리도 그러하다. &amp;lt;애정의 조건&amp;gt;의 아내는 자신의 엄마와 긴밀한 관계로 등장하며 정신적으로 크게 의존한다(영화 포스터도 모녀의 모습만을 제시한다). &amp;lt;미나리&amp;gt;의 한예리와 윤여정의 관계도 그러하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amp;lt;애정의 조건&amp;gt; 같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영화 속에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영화 속 사건들을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일’로 느낀다. 관객을 낯설게 함으로써 감정이입을 원천차단하는 리얼리즘 영화와는 다른 방식이다. 누스바움이 특히 &amp;lt;애정의 조건&amp;gt;이 미국적 슬픔을 드러낸다고 한 구체적 요소는 여주인공의 갑작스런 발병과 죽음이다. 그것은 미국인에게 더 물리적인 두려움이며, 미국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의해 구성된 감정이다(미국인은 굶주림이나 전쟁을 현실적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는다). &amp;lt;미나리&amp;gt;의 가족이 안고 있는 걱정거리도 그와 같다. 가족이 아칸소로 이주하는 차 안에서부터 불화하는 까닭은 어린 아들의 심장질환 때문이다. 시골 농장이라는 공간은 사회보장은 커녕 아무런 의료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병원이 있는 도시까지 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린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amp;lt;미나리&amp;gt;의 가족은 한국에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를 미국으로 모셔온다. 할머니는 한예리가 항상 부채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홀어머니이자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예리 부부가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갑자기 발병한 뇌졸중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이 펼쳐진다. 이 일은 이윽고 연쇄적인 재앙으로 이어져, 테렌스 멜릭의 &amp;lt;천국의 나날들&amp;gt;이나 타르코프스키의 &amp;lt;희생&amp;gt; 같은 작품들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미국인 관객이 경험할 정신적 충격은 한국인 관객이 느끼는 감정과 매우 다르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amp;lt;미나리&amp;gt;는 이 가족이 어쩌다 미국까지 흘러왔는지, 왜 이런 삶에 놓였는지, 클라이맥스 부분의 그 재앙을 어떻게 딛고 일어섰는지,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관객이 이미 알기 때문이다. 미국 관객들은 이 가족이 아칸소로 향하는 첫 장면부터 닥쳐올 비극을 예감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의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이 가족에게 펼쳐졌을 일들을 상상한다. 이 가족은 하필이면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평생 가난하고 불행했을 것이며, 곧이어 오일 쇼크를 겪고 몰락했든지 또는 근근히 이겨내 집 한 채를 겨우 꾸렸더라도 모기지 체계가 무너지면서 모든 것을 잃었으리라는 상상을 관객 누구나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이 미국 소농계급이 지난 수십 년간 겪어온 삶이며 거기서 더 나아진 경우가 극히 드문 예외이기 때문이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이 영화가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며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amp;lt;미나리&amp;gt;는 영화 속 가족의 이전과 이후의 삶에 침묵함으로써 미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명확한 사실을 대단히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오래 전에 실패했고 처참히 무너졌다는 사실 말이다. 폐허가 된 삶의 자리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거기에 휩쓸린 계급은 단지 가난할 뿐 아니라 온전한 삶을 아주 놓아버린다. &amp;lt;미나리&amp;gt;의 아내는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엑소시즘 같은 미신에 기울고 그녀를 비난하던 남편마저도 물을 찾기 위해 유사과학을 받아들인다. 몽매해서가 아니라 다른 수단과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윤여정이 한국에서 가져와 심은 미나리는 비단 한국인 이민자의 은유가 아니라, 그 정도로 무너진 삶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속하고 있는 계급의 은유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이것이 미국 영화계에서 &amp;lt;미나리&amp;gt;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또한 이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반발까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사실 미국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받는 일은 이전에도 흔히 있어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amp;lt;이오지마에서 온 편지&amp;gt;도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런 반발이 없었다. 미국 관객들과 평단의 반응은 2021년 현재의 미국, 철저히 파탄난 미국을 &amp;lt;미나리&amp;gt;보다 잘 드러낸 영화가 없기 때문이고, &amp;lt;미나리&amp;gt; 가족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삶의 은유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영화평이다. 미국 관객들의 &amp;lt;미나리&amp;gt; 리뷰를 보면 트럼프 현상을 언급하는 글이 흔하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한국인 관객들에겐 이런 지점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amp;lt;미나리&amp;gt; 가족이 겪는 주된 비극,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막막한 삶이 한국인 관객에게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농사가 잘 안 되면 보조금 받으면 되고 할머니가 쓰러지면 병원에 데려가면 된다. 그래서 &amp;lt;미나리&amp;gt;에 대한 한국인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힐링 영화라는 관점(실제로 왓챠피디아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평가 중 하나). 다른 하나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답답함에 주목하는 관점(그렇게 된 현실적인 요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 가족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미국에 정착하는 집단 서사로 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 세번째 관점을 장착한 관객들은 &amp;lt;국제시장&amp;gt;을 보듯이 &amp;lt;미나리&amp;gt;를 본다. 그리고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나오지 않는 결말에 크게 실망한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마지막으로 &amp;lt;미나리&amp;gt;와 비슷한 소재를 다루면서 더 하드코어한 영화인 클로에 자오의 &amp;lt;노마드랜드&amp;gt;를 살펴보자. &amp;lt;노마드랜드&amp;gt;의 여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일하던 공장이 사라지면서 일자리를 잃고 남편마저 죽어버린다. 그녀는 주택을 겸한 차량 한 대에 의지해 미국 서부를 떠돌며 산다. 이미 망가진 삶에서도 비극은 연쇄적으로 일어나, 그녀 자신에게 질병이 닥치고 차량은 망가진다. 모든 삶의 의지를 박탈당한 그녀는 다른 가족과 결합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amp;lt;미나리&amp;gt;의 한예리가 겪었을 수도 있는 가장 처참한 미래의 한 측면, &amp;lt;미나리&amp;gt;가 의도적으로 침묵한 미국의 실패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amp;lt;노마드랜드&amp;gt;도 &amp;lt;미나리&amp;gt;와 같은 해인 2020년에 개봉해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lt;br /&gt;&lt;/span&gt;&lt;/div&gt;&lt;div&gt;&lt;span style=&quot;font-size:13px;&quot;&gt;나는 언제나 영화 자체보다도 그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 혹은 사회적인 움직임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amp;lt;미나리&amp;gt;를 사실 5공 때만 해도 한국에 개봉조차 어려웠을 유형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관객들은 이 영화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는 아랑곳 않고 한류에 도취하여 어떻게든 긍정과 희망의 영화인 것처럼 왜곡해 받아들인다. 한편 &amp;lt;노마드랜드&amp;gt;는 중국계 캐나다인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문명이 하드코어하게 무너진 풍경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럼에도 중국인 관객들은 그 영화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는 아랑곳 않고 어떻게든 클로에 자오를 배신자인 것처럼 왜곡해 비난한다. 두 영화 모두, 온전한 감상법은 미국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다. 감독의 혈통을 잊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lt;/span&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손이상의 호기심 천국</category>					<dc:creator>손이상</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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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한이 바라보는 북한, 북한이 바라보는 남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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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kvgmc6g5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0803/936/083/61c24779e764295be1243f93ad32f38b.JPG&quot; alt=&quot;234234234.JPG&quot; width=&quot;1120&quot; height=&quot;631&quot; /&gt;&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1. 북한이 바라보는 남한은 6.25 전쟁을 일으켜 자신들을 침략한 집단이고 미 제국주의의 관리를 받는 유사국가다. 공식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교육해왔다. 물론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북한에 형성된 이데올로기적 믿음이 그렇다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시에 일시적으로 억눌러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튀어나오는 성질의, 남한에 대한 집단적 반감이 있을 것이다. 그 반감의 수준은 한국인이 과거 식민지배에 관하여 일본에 품고 있는 반감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에게는 미 제국의 일부로서의 남한이 언제나 가장 큰 적대 대상이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lt;/span&gt;&lt;br /&gt;&lt;/p&gt; &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2. 북한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북한의 공동연락소 파괴는 한국이 실행했거나 실행중인 화해치유재단 해체, 신일본제철 강제매각과 비슷하다. 양쪽 다 이전의 국가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적대적 행동이다. 나의 이런 진단에 불쾌감을 느끼고 전혀 사안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한국인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일본과의 합의는 파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 이상으로, 남한과의 합의는 파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북한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애초에 합의가 정당하지 않았다고 느낄 테니까. 또한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정의롭게 여기는 이상으로, 북한사람들도 남한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정의롭게 여길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비해 훨씬 더 닫힌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추론할 수 있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3. 남한 자금으로 개성공단 입주, 금강산 개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등은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들에게 베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북한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북한사람들은 “왜 우리 땅에 쟤들이 건물을 짓고 주인 행세를 하는가”하는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제주도에 한국 해군이 철수하고 일본기업 생산기지가 들어와있다고 생각해보라. 아무리 많은 경제효과가 있다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인이 많을 것이다. 북한사람들도 당 중앙이 승인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랐지만, 남한의 베풂을 경제적 침투행위로 쭉 인식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 중에도 일본이 차관을 내어주거나 통화스와프를 제안하는 것을 경제적 침투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집단적 감정은 일순간에 어느 계기로든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그 계기가 대북 전단이었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4. 남한이 북한에 경제협력을 통한 앞으로의 번영을 제안했을 때, 북한은 유엔제재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내심은 대단한 모욕감을 느꼈을 수 있다. 북한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처지가 어렵고 빈궁하더라도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들도 (특히 성인이 되어 탈북한 경우) 그러하여, 가능하면 밥 한끼도 얻어먹으려 하지 않고 항상 자신이 계산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그걸 ‘사회주의적 자존심’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동유럽이나 러시아사람들도 다 그런 게 있다나. 일본은 사회당 정권 시절, 이전의 협정으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입장에서 전진해 일본국민의 모금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재차 보상했다. 그때 한국인들, 특히 위안부 운동단체는 일본이 ‘돈을’ 준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고 거세게 반발했다. 일본의 위안부 지원활동가들과 평화운동가들은 그걸 ‘한국인의 양반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5. 일반적인 북한사람들은 전두환, 김대중, 박근혜, 문재인의 정치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한국사람이 무라야마, 고이즈미, 하토야마, 아베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 중에는 일본이 자민당 일당체제만 쭉 이어왔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 90년대 일본은 일본신당, 사회당의 진보정권 시대였고 모든 내각의 모든 총리가 과거 식민지배를 사과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국 매스컴이 “일본의 꼼수”, “여전한 침략야욕”, “우경화”로 바꾸어 전달하지 않은 예가 없다. 틀림없이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반적인 북한사람은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한국인에 비해 훨씬 제한되어 있다. 그들이 남한 정치의 변화를 이해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우리 쪽에서 평화를 진정 원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일도 몹시 어렵다고 본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6. 일반적인 북한사람들은 남한 정부여당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태영호씨의 당선과 그의 발언들을 한국 전체와 퉁쳐서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민간인이 날려보낸 대북전단도 남한 정부의 공식적인 행위와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일본정부가 과거사 사죄를 할 때마다 일본 내에서 반발하는 우익계의 목소리가 있었다. 한국 매스컴은 언제나 그것을 일본 전체와 퉁쳐서 보도했다. 일반적인 한국인 대부분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북한은 더 심할 것이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7. 한국 국방부는 북한이 개성공단에 군대를 배치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국방부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하는 경고다. 하지만 이런 경고가 북한의 적대 행위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한국이 일본 자산을 강제 매각하면 반드시 대응하겠다는 일본의 경고가 수 차례 있었지만, 그러면 일반적인 한국인들이 더 많은 불쾌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한국 진보진영에서 북한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아사히신문의 극단적인 친한파 논설가조차 한국의 대일정책을 우려하는 칼럼을 내고 있다. 한국 매스컴이 그것을 소개할 때는 ‘일본의 협박’, ‘보복 위협’으로 다룰 뿐이다. 한국이 일본을 그렇게 인식하는 것처럼, 북한은 남한에서 나오는 경고나 염려를 모두 부당한 위협으로 인식할 것이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8. 실낱 같은 기대를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작년 여름부터 지속적인 비난 성명을 내왔다. 그럴 때마다 대북정책에 관여하는 정부 관리들은 그 의미를 축소하고 긍정적 해석을 내놓곤 했다. 남북평화의 희망이 너무 큰 탓에 판단의 왜곡이 있었다. 그러나 대북온건파가 그리 반응할 수록 북한은 오히려 무시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과거 무라야마 총리가 “한일합방이 합법이었더라도 그 내용은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것이었음이 틀림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한국인들로부터 “한일합방이 합법이라는 거냐”며 대단히 거친 비난을 받았다. 북한의 비난성명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때 무라야마를 비롯 사회당 정치인들은 한국측의 비난을 축소하고 애써 긍정적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로 인해 한일관계 경색이 지속됐다. 나는 그게 일본 사회당이 몰락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9. 판문점선언을 남한 국회에서 비준하려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공동연락소 폭파 이후 오히려 비준을 서두르는 외통위원장 판단은 틀렸다. 지금 비준하면 안 된다는 청와대 판단이 옳다. 최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중의원이 한일 위안부합의를 일본만이라도 일단 시행하자고 하였을 때, 한국 언론은 그것을 ‘재압박’, 기시다를 ‘아베의 후계자’라고 표현했다. 그런 것처럼 남한 국회가 지금 판문점선언을 통과시킬 경우, 북한은 그것을 평화-우호의 제스쳐가 아닌 일방적인 압력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참고로 기시다는 고가 마코토 파벌을 물려받은 리버럴로, 현재 자민당 주류와 매우 성향이 다르다. 한국에 대하여도 가장 온건파다. 그는 한일협력의 희망이 너무 큰 탓에 정확한 판단을 못 하고 있다. 한국이 위안부합의를 되돌릴 리가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북한도 판문점합의를 되돌릴 리는 없다. 이미 파기된 것이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10. 대부분의 외교전문가들은 북한이 “어떤 전략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분석해 내놓는다. 이는 북한이 이성적 계산에 근거해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다. 내 생각은 반대다. 북한의 행동은 당 지도부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보통사람들의 집단 감정 때문이고, 일종의 저항적 신념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본다. 이성적 사고를 한다면 대남 적대행위를 할 때마다 남한의 대북온건파 입지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 조차도 일본을 비난할 때마다 일본 내 친한파의 입지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적지 않은 한국인이 무역규제와 불매운동으로 한국도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에 더 큰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한국인도 이럴진대, 북한사람들도 북한이 피해를 입더라도 남한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을 기뻐한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다.&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11. 한국 진보진영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우호감정, 즉 우리는 한 민족이고 결국에는 합쳐야 할 것이라는 관념은 북한에서는 전혀 공유하지 못하는 감정일 가능성이 있다. 민족의식에 근거한 섣부른 희망만으로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공동연락소 폭파가 그 동안의 모든 우호 노력의 실패를 증명한다. 판문점합의와 평양선언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물론 타이밍은 좋았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할 것이다. 북한과의 평화는 북한의 민주화/자유화로는 결코 이룰 수 없고 (평범한 북한사람들은 평범한 한국인들이 일본을 대하듯 남한을 대할 것이므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결단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잘 되지 않았다. 한국이 보인 우호적 제스쳐를 북한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는 굴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은 아닐까.&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12. 한국은 일본 사회당과 민주당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한국이 민주화된 90년대, 일본 진보진영은 가까이에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이 생겼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일본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김대중 납치사건 등을 계기로 한국 민주화를 오랫동안 지원/지지해왔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하여 적극적인 우호외교를 펼쳤지만, 그들은 한국을 경제적〮문화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 국제무대로의 개방을 이끌어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기에 한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더구나 그들은 독재에서 해방된 이들이 “쇠말뚝을 박아서 민족정기가 훼손됐다”는 샤머니즘적 원한을 가졌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결국 한국으로부터 돌아온 것이 비난뿐이니 일본 유권자들은 차라리 보수정권으로의 안전한 회귀를 선택했다. 일본 사회당은 옴진리교 테러 때문에, 민주당은 후쿠시마 쓰나미 때문에 몰락했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우리도 무작정 북한을 도와주려 하거나 섣부른 기대를 품고 접근하다가 한순간에 다같이 무너질 수 있다. 북한이라는 체제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여길 거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니 다들 좋은 사람이더라, 라고 할 사람도 있을텐데 물론 그거야 그렇겠지만.&lt;/div&gt;&lt;/div&gt;&lt;div class=&quot;o9v6fnle cxmmr5t8 oygrvhab hcukyx3x c1et5uql ii04i59q&quot; style=&quot;margin:.5em 0px 0px;font-family:&#039;Segoe UI Historic&#039;, &#039;Segoe UI&#039;, 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rgb(5,5,5);font-size:15px;text-align:left;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div style=&quot;font-family:inherit;&quot;&gt;13. 경제협력, 관광개발 등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이 아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어차피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나 물자 지원이 아닌 체제보장이다. 경제적인 도움을 줘봤자 그들은 승전의 대가를 받아내는 것을 그저 당연하다 여길 것이다. 그게 반복되는 강탈의 원인이다. 북한은 7월 27일, 그러니까 정전협정 체결일을 전승절로 기린다. ‘미 제국과 남조선 괴뢰도당을 꿇어앉혀 항복문서를 받아낸 날’로써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한다. 그러니 거기다 대고 “이제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갑시다”하고 말해도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불쾌감을 살 수도 있다. 북한사람들은 자기네가 이미 전쟁에 이겼다고 생각한다. 전쟁에선 이겼고, 쌀도 필요없다고 하고(작년에 쌀 보내겠다 했을 때 엄청 반발했었다), 요구하는 것은 체제보장뿐이다. 정확히는 핵 보유국의 지위를 갖는 체제보장. 북한은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달갑게 여기질 않고 무엇을 주더라도 호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손이상의 호기심 천국</category>					<dc:creator>손이상</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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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랫글의 보충 (박권일 선생의 질문에 답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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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0803/952/080/62699edb9573af79b66d4b46092738ea.jpg&quot; alt=&quot;rose.jpg&quot; width=&quot;960&quot; height=&quot;640&quot; /&gt;&lt;p&gt;&lt;br /&gt;&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바라보며 (손이상) http://fabella.kr/xe/blog10/80929&lt;/p&gt; &lt;p&gt;진보정당의 정체성 아노미? (박권일) http://fabella.kr/xe/blog2/80947&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박권일 선생은 내가 앞서 쓴 글의 &quot;대립관계&quot; 개념의 불명확성을 지적하며,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집단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불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타당한 질문이었지만, 대립관계를 궁극적으로 따져나가다보면 한국의 정당은 모두 1인정당이어야 한다는 말까지 이르자, 나는 내 글의 마지막 문단에 보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앞서 수도권의 룸펜, 재개발에 밀려나는 영세 자영업자, 울산 등 지방도시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039;대립관계&#039;라는 단어로 설명하며 그 중 하나는 &#039;버려야 한다&#039;고 쓴 바 있다. &#039;대립관계&#039;란 물론 &#039;적대&#039;가 아니며 종종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는 뜻이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질문에 답부터 하자면, 대립적인 집단들을 함께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다른 당에 투표하는 알바노동자와 자영업자는 대립관계가 아니다. 투표장 안에 들어서면 계급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특정 계급이 아니라 같은 여권/야권 성향, 같은 영남/호남 사람, 같은 애국자, 같은 민주주의자, 같은 세대, 같은 종교인, 같은 정치인의 팬 등이 된다. 그러나 노동당에 투표하는 알바노동자와 자영업자는 대립관계다. 노동당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노동당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039;최저임금 1만원&#039;은 한 집단의 이득을 대변하는 한편 다른 집단에게는 가시적인 위협 또는 불안의 요인이 된다.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그렇다. 최저임금 1만원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2천 5백만원 정도다. 이미 그 정도의 수입이 있거나 그 이상을 벌어들이는 노동자에게는 의미 없는 정책이다. 그보다 적게 벌어들이는 노동자에게는 뻔히 예상되는 해고 위협의 증가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에겐 아예 &#039;북진통일&#039;과 같은 급이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따라서 그들의 표심은 어지간해선 노동당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노동당에 투표한다면 그 까닭은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은 채 &quot;그래, 다른 선진국들처럼 최저임금이 1만원은 되어야겠지&quot;라는 당위에 따랐기 때문이다. 훌륭하다. 그러나 당위로만 투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간단히 알 수 있다. 노동당은 10만 표도 얻지 못했다. 선거에서는 가장 높은 계급을 제외하면 아래로 내려갈 수록 더욱 이해관계에 민감해진다. 사소한 차이가 삶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정책은 당위가 아닌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039;최저임금 1만원&#039; 뿐 아니라 노동당이 앞세운 정책들 중 일부는 한 집단엔 이득이 되지만 노동당과 연계된 다른 집단엔 의미가 없거나 해가 된다. 단순히 정책을 제시하고 알아서 따라오기만을 바란 거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박권일 선생에 따르면 &quot;일반적인 현대 정당은 신분, 계급, 정체성의 &#039;동일성&#039;으로 묶이는 조직이 아니다&quot;.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동당도 &#039;일반적인 현대 정당&#039;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노동당원인 주변의 활동가들에게 몹시 미안함을 느끼지만 정치정당, 노동자정당, 대중정당 등은 노동당이 스스로 &#039;상상하는 자아&#039;이지 &#039;실제의 자아&#039;가 아니라고 본다. 사회적 대립관계인 서로 다른 집단들을 조직하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라면, 노동당은 그것과 정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박 선생은 내가 악의적으로 정당정치에 대한 무지를 가장한다고 썼지만, 내가 보기엔 실태를 무시하고 현재의 노동당을 정당정치의 틀에서 파악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과거 진보신당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프레임만 설정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이 둘 다 저절로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당이 쪼개지고 나서야 두 노동자 집단이 처한 환경이 무진장 다르며,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룸펜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한다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일 따름이다. 실수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quot;다 일하는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우린 다 같은 노동자고, 우린 노동자 정당이니까...&quot;라는 상상을 현실로 굳게 믿기 때문이다. 진짜 현실에 있는 물질적·문화적·계급적 차이를 보지 않는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나는 앞선 글에서 &#039;버리는 패&#039; 운운하는 얘길 했다. 불충분한 표현이었지만 내가 그런 방법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당의 정치는 &#039;패를 버리는&#039; 정치다. 한 집단의 이득을 전면적으로 도모하는 대신 다른 집단들에겐 불안을 상쇄할 만한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목소리를 반영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 정책이 다른 집단들에겐 의미가 없거나 해가 된다는 걸 이해하기 싫어한다. 이건 현실을 보고 이론을 세우는 대신 이론 자체가 현실이라고 믿는 한 고쳐지지 않을 고질적 문제다. 진보신당 때부터 비슷한 비판이 계속되어왔지만 고쳐지지 않았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어차피 고쳐지지 않을 문제라면 차라리 정치공학적 선택을 하는 것이 낫다. 지금은 하나를 취하기 위해 둘을 버리는 상황이다. 적어도 둘을 취하고 하나만 버리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내 의견인 것이다. 노동당은 물론 의회진출을 노리는 정당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며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대의는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의는 그저 대의이고 저만치 멀리 떠있는 구름이다. 노동 계급 전체의 이해를 바라본다는 관념을 현실로 믿어선 곤란하다. 현실의 노동당은 그런 적이 없었고(이 문장을 쓰면서 가슴이 아프다) 지금으로선 그럴 역량도 없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박권일 선생은 드물게도 내 글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낀 독자다. 그는 내 글이 &#039;0.38% 지지율의 동호회 정당&#039;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이들에게 핑계가 될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나는 조롱의 의도가 없었으며 내 글을 핑계로 노동당을 조롱하는 사람도 전혀 보지 못했다. 호된 질책은 고맙지만 조롱이란 그런 게 아니다.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홍대 주변의 상가 임대차 문제를 들고 나왔다. 거기까진 좋다. 다른 정당이 거의 침묵하는 이슈에 먼저 발 벗고 나섰으니. 그런데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을 향해서도 &#039;최저임금 1만원&#039;과 &#039;재벌 증세를 통한 기본소득&#039;, &#039;대형마트 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039; 등을 말했다. 그들은 그게 어떻게 &#039;의미되는지&#039;를 몰랐겠지만, 그게 바로 조롱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손이상의 호기심 천국</category>					<dc:creator>손이상</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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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fabella.kr/xe/blog10/80952#comment</comments>			<pubDate>Sat, 23 Apr 2016 07:10: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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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동당의 총선 패배를 바라보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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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0px 0px 6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img src=&quot;http://fabella.kr/xe/files/attach/images/80803/929/080/68e02cbecfff0f8cf2fb893658e32274.jpg&quot; alt=&quot;rose.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0&quot; /&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0px 6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br /&gt;&lt;/p&gt; &lt;p style=&quot;margin:0px 0px 6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노동당의 실패는 단순히 선거 전략을 잘못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 뛰어든 사람들은 전략이 일관되지 않다는 걸 몰랐을까? 알았을 거다. 알면서도 떠밀려 갈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됐나? 제일 큰 이유는 노동당은 자신들의 상상과는 달리 노동자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상상하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에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다. 그런데도 거울단계의 이미지를 진짜 자기자신이라고 강하게 믿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px 0px 6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br /&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이건 노동당 뿐 아니라 한국 정치의 아주 특징적인 부분이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하는 집단이 박정희 식의 개발 독재를 지지한다든지, 국가/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집단이 시장의 파괴적인 확장을 부추긴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우익이 특히 사기꾼이어서가 아니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개발 독재를 지지하고 권위에 기대면서도 &#039;진짜로&#039; 자신들이 미국의 리버럴과 비슷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저쪽 뿐 아니라 이쪽&lt;span class=&quot;text_exposed_show&quot;&gt;에서도 마찬가지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class=&quot;text_exposed_show&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이번 선거를 통해 보건대 그나마 정의당은 자신들이 중산층 정당이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심상정만 빼고 말이다. 정의당의 주요 구성원은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기는 하지만 당장의 고민거리는 주택 할부금과 자동차 보험료인 계급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읽지만 중학생인 아이를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굴리지 않을 수 없는 계급이다. 타겟층이 비교적 분명하니 일관되게 전략을 짤 수 있다. 그 당의 유일한 문제는 그 전략에 맞지 않는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없으면 당이 안 굴러간다는 거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그럼 노동당은? 수도권 룸펜 정당이다. 룸펜은 줄어들지 않는 학자금 대출과 원룸 월세가 고민인 계급이다. 집에서 혼자 즉석식품 먹으면서 미국드라마 다운받아 보는 계급이다. 비정기적으로 알바를 하긴 하는데 그게 자신의 계급성을 만들지는 않는다. 이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당의 정체성을 잘못 알고 있으니 당의 구성원과 지지자들이 &#039;실제로&#039;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039;상상으로&#039; 원하는 것을 선거에 들고 나온다. 일 하는 사람이면 다 노동자라는 말은 웃기는 소리다. 9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말이 먹혔을 지도 모른다. 그 때는 사회 구조가 어느 정도는 실제로 그랬으니까. 지금은 전혀 안 그렇다. 그 시절에 고착된 아저씨들만 그런 얘길 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물론 울산시당이라든지 몇몇 지역당은 (대부분 비정규직인) 노동자로 채워져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조직도 약하고 중앙당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노동당이 민주적이었던 적은 맨 처음 당명을 정할 때 뿐이었다. 사공이 많은 배가 민주적이라는 건 착각이다. 리더십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안 돌아간다. 사회에서 뺨 맞고 당에 와서 화풀이 하는 것도 발언이랍시고 열어놓고 있으면 먼 지역에 사는 당원들의 발언 기회가 그만큼 줄어드는 거다. 쓰레기 같은 포스팅을 계속 구독하면 읽고 싶은 포스팅이 밀려나는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같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margin:6px 0px;color:rgb(20,24,35);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font-size:14px;line-height:19.32px;background-color:rgb(255,255,255);&quot;&gt;&lt;span style=&quot;line-height:19.32px;&quot;&gt;노동당이 살아남으려면 자기 정체성이 뭔지를 계속 살피면서 대대적으로 재편하거나(이 경우 재개발에 밀려나는 자영업자라는 패는 버려야 한다. 대립관계다), 아니면 지방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힘을 실어주거나(이 경우 수도권의 청년활동가들이라는 패는 버려야 한다. 대립관계다), 아니면 빈곤한 대학생들을 데리고 노동계급화하거나(말이 안 된다), 아니면 누가 쿠데타 수준으로 들고 일어나서 당권을 혼자 틀어쥐어야 한다(그럴 인물이 없다). 넷 다 무지 어려워 보인다. 뭐라도 해낸다면 나는 노선이 다르더라도 노동당 실무자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지금은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독박을 쓰고 고통받아야 하나 하면서 안쓰러워 할 뿐이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손이상의 호기심 천국</category>					<dc:creator>손이상</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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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fabella.kr/xe/blog10/80929#comment</comments>			<pubDate>Fri, 22 Apr 2016 15:21: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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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할머니의 기억</title>
			<link>http://fabella.kr/xe/blog10/80833</link>
				<description>&lt;div&gt;화창하지만 누구도 화창하다고 말하지 않는 날이었을 거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여자는 시체를 뜯어먹던 앙상하게 마른 개와 눈을 마주쳤다. 여자는 수색까지 걸어가 높게 자란 갈대를 베어가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당시 서울 바깥에 멀리 떨어진 수색은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이자 서대문을 빠져나와 가난하고 위험한 사람들이 사는 신촌과 마포를 지나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잠시동안 여자를 노려보며 눈을 빛내던 개는, 이내 제 몫의 먹이를 다시 씹기 시작했다. 둘이 만난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세계가 무너지는 풍경을 보았을 거다.&lt;/div&gt;&lt;div&gt;&lt;br /&gt;&lt;/div&gt;&lt;div&gt;집에 돌아온 그녀는 창문 바깥으로 한 무리의 남루한 여자들이 무리지어 걷는 모습을 보았다. &quot;이모, 저 여자들은 왜 저렇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걷나요?&quot; - 이모는 그녀에게 &quot;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이란다. 가족이 죽으면 입관(入棺)할 때까지 머리를 풀어야 한단다.&quot;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죽음은 창문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또한 끓인 갈대만을 먹어온 지가 오래였다. 거리를 떠도는 저승귀신이 언제 집 안으로 들이닥쳐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거다. 그 겨울을 버티기 위해 가구와 서적들도 모두 태워야 했다. 가문의 조상들이 임금에게 받은 교지와 상훈들도 모두 태웠다. 이제 집 안에 남은 것이라고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몸뚱아리들, 그리고 텅 빈 미래 뿐이었다.&lt;/div&gt;&lt;div&gt;&lt;br /&gt;&lt;/div&gt;&lt;div&gt;미 3사단이 구리에서 서진하여 아차산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언 땅은 녹았지만 더이상 피울 꽃이 없던 3월의 일이었다. 그날 밤, 퇴각하는 인민군은 서대문 형무소 앞에 쌀과 보리를 아차산보다 높이 쌓아두고 불을 질렀다. 그 피어오르는 불빛이 어찌나 환했던지, 달빛조차 없는 밤중에도 대낮처럼 밝았다. 인민군이 수탈한 식량은 국군 15연대가 태극기를 들고 종로를 행진해 들어올 때까지 타올랐다. 불이 꺼진 잿더미 사이를 헤집던 굶주린 군중 가운데 그 여자도 있었다. 시꺼먼 잿먼지를 파헤치다보면 반쯤은 타서 그을리고 반쯤은 익어 밥이 된 곡식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겨울 내내 말라있던 눈물이 그제서야 터져나왔다.&lt;/div&gt;&lt;div&gt;&lt;br /&gt;&lt;/div&gt;&lt;div&gt;150만명이었던 서울 사람 가운데 남아있는 사람은 20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저마다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이 지옥을 떠나갔다. 그러나 전쟁은 그 날로부터도 2년 반 동안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죽지 않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곡을 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 3명의 아들을 낳았다. 유달리 온후하고 경건했던 둘째아들에 의해 기독교에 귀의했다. 지금 그녀는 지팡이 없인 걷기조차 힘든 할머니가 되었지만 하루도 기도를 거르지 않는다. 나는 그녀, 내 할머니가 화를 내거나 남을 비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루는 젊은 여자들이 머리를 묶지 않고 다니는 것을 보고 빨갱이 세상이 되었다고 안절부절하는 것이었다. &quot;할머니, 왜 그렇게 불안해하세요?&quot; 이 이야기는 내 물음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다.&lt;/div&gt;&lt;div&gt;&lt;br /&gt;&lt;/div&gt;&lt;div&gt;(2014년)&lt;/div&gt;</description>
		<category>손이상의 호기심 천국</category>					<dc:creator>손이상</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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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fabella.kr/xe/blog10/80833#comment</comments>			<pubDate>Wed, 23 Mar 2016 16:22: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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