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강남역 사건과 여성혐오

조회 수 4997 추천 수 0 2016.05.26 11:57:25

Cixnso7UgAEw4QX.jpg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잠재해 있던 뇌관 하나를 터트렸다. 이 뇌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되었던 문제를 수면으로 띄워 올렸다. 바로 그것은 여성차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속내를 파고들어 가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을 감추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처음에 여혐에 근거한 증오범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타올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증오범죄보다는 조현병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찰의 발표대로 이 살인행위가 증오범죄라는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여혐과 조현병의 망상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조현병의 망상이 현실적 접촉을 누락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망상의 구조는 상당 부분 상징계의 간섭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 조현병의 망상이 왜 여성을 대상으로 삼은 페미사이드였는지, 이 문제를 질문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과 무관하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 문제는 묻지마 범죄인지 증오범죄인지 여부를 가리는, 이번 강남역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의 차원을 넘어서서 진행 중이다.

나는 이번 사건의 현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상이 일베의 행동이라고 본다.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일베는 왜 강남역에 갔는가이다. 어떤 이들은 일베를 여혐종자들이 모여 있는 특수집단으로 간주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베는 보통의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극단적으로 희화화해서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일베는 개그콘서트의 열화버전인 셈인데, 일베는 규범을 넘어서는 파격성을 통해 집단적 쾌락을 즐기는 '사디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이 되었던 옹달샘 파동역시 이런 관점에서 몇몇 정신 나간 개그맨들이 일으킨 문제라기보다 정규방송에서 규범적 제약 때문에 하지 못했던 여성 비하 발언들을 팟캐스트라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매체 특성을 이용해 마구 쏟아냄으로써 선정성을 노렸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의 규범이 강화될수록 이런 선정성을 통해 얻는 해방감은 더욱 강렬해지는 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처럼 전방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관철되고 있는 곳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남성 중심적인 해방의 코미디는 상당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파시즘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한 한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자유주의적 규범은 여전히 넘치면서도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 가보자. 도대체 왜 일베는 강남역으로 갔을까. 말 그대로 강남역은 추모의 공간이었다. 그 추모의 공간에서 일베가 외친 것은 이 사건을 남녀 대결로 몰아가지 말라는 것이었고, ‘묻지마 살인증오범죄로 포장함으로써 남혐을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만, 남성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평소 당했던 수많은 여성차별의 사례들을 증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성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취급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여혐이라는 것이 매너 없는 일부 남성의 문제일 뿐이고, 대다수 남성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몇몇 꼴페미들이 선량한 여성들을 선동해서 무고한 남성들을 미워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일베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여혐이란 것이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실 지금 통용되고 있는 여혐이라는 말은 misogyny의 번역어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 말은 단순하게 여성을 미워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Misogyny는 여성적인 것을 얕보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문화적 태도나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인류사 자체가 여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여혐의 역사는 장구한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여혐은 특정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인류 문명 자체에 내재한 구조적인 논리임으로 판명 난다.

그러므로 여혐에 대응하는 남혐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난센스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워렌 패럴(Warren Farrel)이 만들어낸 이 개념은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여성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당시 여성인권의 처지를 감안해서 생각해본다면 이런 패럴의 주장은 남성 노동자가 처해 있던 계급적 불평등을 젠더 문제와 혼동한 결과물일 뿐이었다. 남성 중심주의가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근본 원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남혐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혐이라는 개념은 여혐에 대칭상인 것처럼 위장되어서 여성차별의 구조성을 은폐하고 문제를 남녀대결구도로 환원시키는 착시현상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레이첼 보울비(Rachel Bowlby)가 지적하는 것처럼, 근대 자본주의는 여성을 소비와 여가에, 남성을 생산과 노동에 위치시키면서 이른바 현모양처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차의 문제는 근대를 구성하는 본원적 축적에 구조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본질을 회피하고 여성차별 문제를 남녀대결로 수렴시켜서 이익배당의 경쟁구도를 강조하는 논리는 상당히 악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통해 불거져 나온 여성들의 발언들은 이 문제가 단순하게 남녀대결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성차별과 여성대상 범죄의 경험을 성토하는 여성들의 발언들은 참으로 광범위했고,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전형적이었다. 이 발언들이 전형적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젠더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의 문제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 일상의 평범성에 깔려 있는 여혐을 넘어서서 여성 문제를 돌아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한국 역시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페미니즘 활동가의 활약이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젠더 감수성이 확립될 수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강남역에 간 일베는 특수한 남성들이 아니다. 마치 미국의 트럼프가 그렇듯이, 이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어릿광대짓을 서슴지 않았을 뿐이다. 몰락한 백인 남성 노동자의 지지가 없었다면 트럼프도 없었듯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한국 남성이 없다면 일베도 없다. 일베는 이런 한국 남성을 대표한다고 자처하기에 당당히 강남역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상대적 박탈감은 분명 여성 때문이 아니지만, 일베를 비롯한 한국 남성여성 때문이라고 믿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런 믿음은 일베 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평범성을 구성하고 있는 일상적 기제이다.

나는 한국의 가족구조와 생산관계가 결과적으로 이런 여혐을 통해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바로 임금 차등이다.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입사해서 일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노동자는 임금을 적게 받는다. 이 문제는 이미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불거져 나온 것이다. 당시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와 똑 같이 일하면서도 임금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았다. 이런 차별은 이른바 경제개발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 노동자는 언제나 임시였고, ‘보조였다. 남성은 큰일을 해야 하고 여성은 현모양처로서 남성을 뒷바라지해야한다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이런 경제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였다. 여성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일베가 토로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여성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런 가부장제를 중심 이데올로기로 구축했던 근대적 경제모델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한국은 전후 국가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청년세대는 취업은커녕 결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성장제일주의는 경제구조를 지탱하는 전통적 가족 구성이라는 최후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전체를 조망할 수 없이 파편적 사실만을 통해 진실을 추단하는 편견의 사고는 눈앞에 보이는 약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게 된다. ‘한국 남성에게 다른 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지금 한국 남성에게 가장 빈번하게 목격되는 약자는 바로 여성이다.

여전히 한국은 다문화적이지도 않고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도 아니다. 장애인은 통행권을 얻지 못하고, 이주노동자들은 특정 지역에 밀집해 있을 뿐이다. 동성애는 강고한 도덕적 금지의 벽에 갇혀 일상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소수약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성은 한국 남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자신들과 대등하게 보일 수 있다. 빈번하게 자신들과 대면하면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은 그러나 일베를 비롯한 한국 남성들에게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여야 한다. 일베가 강남역에 간 까닭은 이처럼 남성보다 열등한 여성을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베의 태도와 평상시에 여성을 대하는 한국 남성의 태도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강남역 살인 사건은 묻지마 범죄이든, ‘증오범죄이든, 사실상 한국에서 여성이 소수약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계기였고, 일베는 이 진실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베의 강남행이 증명하듯, 여성은 여전히 한국에서 소수약자이다. 이 소수약자는 소수약자이기에 다른 소수약자와 연대함으로써 여혐의 구조를 타파하고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인 것이다.

untitled.png





댓글 '2'

2

2016.05.27 13:44:53

"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자유주의적 규범은 여전히 넘치면서도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현병의 망상이 현실적 접촉을 누락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망상의 구조는 상당 부분 상징계의 간섭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분명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만, 곱씹어도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뻐꾸기

2016.08.11 08:27:25

일베의 박탈감의 배경에 경제모델 붕괴가 있다는 지적은 부족한 설명이다.

한국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빈번하게 대면하면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 맞다. 근데 왜? 여성 경활참여율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밑바닥에서는 새롭게 진입한 여성과 고령 은퇴자들이 올라오고, 위로는 가족 부양에도 벅차하는 기성세대 남성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위협에 움츠러든 채 버티고 있다. 위아래로 짓눌린 듯 보이는 이 부분에나마 편입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거나 아예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거나(실업) 한다.

그리고 문제의 근원이 가족구조-생산관계이며 그 증거가 임금차등이라 하는데, 성별 임금격차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전통적 가족구성은 붕괴하는데, 가족임금 체계는 여전한 게 문제다. 가족을 구성한 경우에도 맞벌이 아니고는 버티기 어렵다. 게다가 청년층 남녀들은 노동시장 뿐 아니라 결혼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다수가 루저일 수밖에 없다. 이는 온라인에서 남초 커뮤니티든 여초 커뮤니티든 간에 커플이 배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가족구조-생산관계가 여혐을 통해 구성되어 있다는 시각은 구조에 대해서는 맞을지 몰라도 주체성에 대해서는 부족한 설명이다. 계급은 형성되는듯 하자 곧바로 해체되었고 이에 더해 분할통치(정규직-비정규직)되고 있다. 남성이 다수인 정규직에게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다수가 여성인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은 자본과 담합하여 차별구조를 유지하는 대가로 지대를 받아 챙기는 존재가 된다.

끝으로, 그렇다면, '한국 남성'의 여혐은 디폴트로 하고, 정말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일베의 박탈감과 공격적 언사는 '전체를 조망할' 능력을 결여한 '편견의 사고'의 산물인가? 천만에 말씀. 그들은 전체를 조망하고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답이 없다. 이로부터 발현되는 위악적 히스테리가 바로 일베의 말과 행동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조국 말고 검찰에 요구해야할 것 file

  • 2019-09-07
  • 조회 수 692

정치만큼 묘한 생물이 어디에 있을까. 말 많고 탈 많던 조국 후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청문회 이전까지는 이 세상이 한국당과 민주당 둘만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청문회가 끝나고 나자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펼치던 쇼 무대에 갑자기 검찰이 난입한 것이다. 기성 정치진영을 대표하던 두 당 사이에 끼어든 이 생뚱 맞은 검찰의 출현은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국민의 의혹'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행정부 국정을 담당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무위원 후보의 부인이 ...

“기생충”을 보다 file [1]

  • 2019-07-04
  • 조회 수 1791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영화 <기생충>을 이제야 보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덕분에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미리 알고 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 공포’가 횡행했지만, 이 영화는 줄거리를 다 알고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영화 <명량>을 보고 “이순신 장군 죽는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스포일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여하튼 칸의 수상 덕분인지 이런 “스포일러 마케팅” 덕분인지 영화의 흥행은 성공했지만, 만일 이 둘이 없었더라도 이 영화가 이토록 관심을 끌 수 있었을지 ...

예술과 증언

  • 2019-03-24
  • 조회 수 5898

런던에 있는 영국 국립 미술관에 가면, <아르놀피니의 초상>이라는 그림이 있다. 지금 이 그림의 제목은 <초상>이지만 내가 맨 처음 이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아르놀피니의 결혼>이었다. 1434년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제에 대한 논란은 많은데, 플랑드르 브루제에 살던 이탈리아 상인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그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한동안 우세했지만, 1997년 아르놀피니가 실제로 1434년에 결혼하지 않았고, 반 에이크가 죽은 지 6년이나 지나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제목이...

박항서 매직 file

  • 2019-02-22
  • 조회 수 168

‘박항서 매직’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10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스즈키컵 우승을 이끌고, 베트남 A매치 16경기 무패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축구를 FIFA 랭킹 역대 최고로 끌어올렸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흥미롭게도 박항서 감독의 말에 따르면,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함께 수석 코치를 하면서 지도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박항서 매직’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

인문학자의 빙하기 file

  • 2018-12-21
  • 조회 수 221

'인문학자'라는 말은 참으로 이상한 한국식 명칭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인문학을 일컬어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풀이해놓고 있으니 '인문학자'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자"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이 풀이에 따르면, "언어, 문학, 역사, 철학"을 모두 아울러 뭔가를 하고 있는 나도 '인문학자'임에 틀림없다.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인문학이란 말이 일반 교양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렇듯 인문학과 일반 교양을...

랑시에르를 만나다 file

  • 2018-04-23
  • 조회 수 2313

자택 문이 열리자 자크 랑시에르는 변함없이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나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학술행사가 있어서 들른 차에 잠깐 찾아뵙고자 했던 것인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길어져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청탁할 것이 있었고, 또한 다른 부탁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은 거실도 변함없었다. 아담한 살굿빛 소파가 놓여 있는 정경은 몇 년 전에 찾았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지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특강 때문...

미투 운동과 한국의 진보주의 file

  • 2018-03-17
  • 조회 수 4028

미투(#MeToo)라는 말이 처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폭발적인 운동으로 번져갈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들불처럼 퍼져나간 미투는 이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누구는 이렇게 한국 사회에 성범죄가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터져야할 문제가 지금에야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 특히 남성이 저지르는 성 관련 범죄는 거의 먼지처럼 일상에 퍼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비트코인 신드롬 file [1]

  • 2018-01-27
  • 조회 수 2951

가히 비트코인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빌 모러가 2015년 <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화폐의 미래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트코인은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유시민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광풍’으로 진단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작전세력들’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비트코인에 대한 다소 과도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유시민 같은 이들의 주장을 문제 삼기 위해...

자코메티 file

  • 2017-12-09
  • 조회 수 1647

“나는 예술에도 관심 있지만, 본능적으로 진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러므로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코메티는 ”미술은 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신비감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도쿄에 가서 봤던 자코메티 전은 띄엄띄엄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전시를 둘러보면서 종종 ‘현대인의 고독’을 표...

청문회와 '문자폭탄' file

  • 2017-07-20
  • 조회 수 1174

최근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알렌카 주판치치는 자신의 짧은 에세이에서 이탈로 스베보의 소설 <제노의 양심>에 등장하는 애연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애연가는 언제든지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애연가의 ‘양심’에 비추어본다면, “담배를 끊는다”는 그의 진술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우는 행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애연가는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모순적인 진술과 행동을 지속하는 것일까. 달리 묻자면 이 애연가는 왜 서로 충돌하는 것이 빤한 자신의 진술과 행동...

탄핵, 잔치는 끝났다 file [6]

  • 2017-04-05
  • 조회 수 14103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되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매주 20차에 걸쳐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광화문 촛불집회는 승리의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경우는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초창기에 폭력이니 비폭력이니 논쟁이 잠깐 일었지만, 청와대 바로 앞까지 촛불이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유야무야되었다.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2008년 촛불집회와 2017년 ...

한병철과 헬조선 file [3]

  • 2017-03-21
  • 조회 수 4339

한병철 교수의 특강이 모종의 '퍼포먼스'였던 모양이다. (▶참고 글) 이 문제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린 평가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철학자의 객기" 정도였는데, 이를 두고 벌어지는 풍경이 자못 심각해서 짧게 몇 마디 보태고자 한다. 참석한 관객들의 '증언'과 이후 알려진 정보들에 따르면, 저자는 출판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본인의 강연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미리 주문해놓은 것을 봐도 무엇인가 특별한 계획이 그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해프닝...

차기 대통령의 딜레마: '큰 정치'의 전망을 기대한다 file [2]

  • 2017-02-05
  • 조회 수 6031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할 시기는 격동이라는 한 단어로 담아내기에 너무도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후 세계 질서를 구축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제일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원인 제공자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사실상 전후 세계 질서가 표방했던 개방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점차 폐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야말로 개방주의를 기치로 내건 전후 세계 질서에 가장 잘 적응해온 아시...

트럼프와 촛불, 두 개의 공화국 file [3]

  • 2017-01-30
  • 조회 수 1440

“트럼프도 박근혜처럼 임기 중에 탄핵당했으면 좋겠다.” 힐러리 지지자였던 미국의 지인이 내게 보낸 메시지이다. 그만큼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많은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반도의 정세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역시 트럼프 당선 못지않게 극적인 것이다.  이 상황은 어떻게 극적인가? 2012년을 상기해보자.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보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화’를 의미했다. 이 ‘정상화’를 다른 용어로 번역하면 ‘정치...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트럼프 현상을 다시 생각하자 [2]

  • 2016-12-25
  • 조회 수 1834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의 타락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만들어낸 전후 자유주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배경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디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경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만큼 미국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일...

거기 '내가 있었다': 소셜미디어와 체감의 정치 file [1]

  • 2016-11-28
  • 조회 수 852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는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로 무엇인가를 표기해놓으면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문자를 해석하느라 갑론을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문자에 담긴 이데아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류 중에서 살아남은 우리 사피엔스는 플라톤의 우려와 달리 “돌에 정보를 새기는 능력” 덕분에 사회를 이루고 이렇게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자야말로 괴테가...

100만 인파의 의미 file

  • 2016-11-16
  • 조회 수 4243

100만의 인파가 서울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서울이라는 장소성을 넘어선 ‘시민들’의 집결이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인터넷은 물론 지상파 방송을 타고 생중계되었다. 누구는 봉기라고 했고, 누구는 거대한 콘서트 같다고도 했고, 누구는 엄청난 인파에도 폭력 없이 평화롭게 끝난 시위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고도 했다. 여하튼 언론들은 100만이라는 숫자와 질서정연하게 끝난 비폭력 평화시위를 강조했다. 이렇게 100만 명의 인파가 청와대를 ‘포위’한 듯 연출한 보도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장관은 SN...

트럼프는 무엇의 이름인가 file [2]

  • 2016-11-10
  • 조회 수 1846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긴 결과였다. 클린턴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위터에서 생뚱맞게 샌더스 때문에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개탄하다가 나오미 클라인에게 반박을 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가 가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에 벌어졌던 일들과 겹쳐지는 장면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정부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훌륭했을지 몰라도, 그...

최순실이라는 균열 file

  • 2016-10-27
  • 조회 수 870

박근혜 정부는 인기를 잃어버린 보수가 극우의 포퓰리즘을 포섭하면서 탄생한 정부이다. 이 정점에 박근혜라는 이름이 있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특정한 개인의 호명이라기보다 보수와 극우의 간극을 지우는 '국민'의 대리물이었다. 그러나 꽉찬 것처럼 보이던 이 이름이 사실은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폭로되었다.  이처럼 너무도 견고해보였던 보수-극우 연합전선에 결정적인 균열을 초래한 원인은 최순실이라는 변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상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균열을 이끌어낸 최초의 계기가 이대 투쟁이었다는 사실이...

강남역 사건과 여성혐오 file [2]

  • 2016-05-26
  • 조회 수 4997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잠재해 있던 뇌관 하나를 터트렸다. 이 뇌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되었던 문제를 수면으로 띄워 올렸다. 바로 그것은 여성차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속내를 파고들어 가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을 감추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처음에 ‘여혐’에 근거한 증오범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타올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증오범죄보다는 조현병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살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