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20세기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상징 행위’의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작동방식을 실증해서 보편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만큼 상징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상징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보면 흉조이다.
상징의 문제는 상징물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차원을 얻기도 한다. 상징물은 분명 추상적인 상징성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상징물이 추상적 상징성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에 대한 추상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이것을 하나의 상징물로 표현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국기라는 상징물은 국가에 대한 여러 추상을 하나로 재현하는 것일 뿐이지, 그 모든 추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상징물은 국가에 대한 여지를 남긴다. 태극기는 분명 국가를 상징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상징성 자체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여지, 잃어버렸다고 여기지만, 결코 회수할 수 없는 이런 잔여물야말로 국가의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행정체계나 권력체제로서 국가를 상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의 대체보충으로 항상 민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민족은 바로 국가의 형성을 통해 만들어진, 그럼으로써 선험적인 것으로 떨어져나간 숭고한 대상이다.
민족의 상징은 복원할 수 없는 국가의 잔여이기에 숭고하다. 판타지는 주체성의 경계에서 자기 충족적이지만,그 외부에 숭고 대상을 가진다는 점에서 항상 불안하다. 이 대상은 때때로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그 역시 일시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대상은 없으면서도 있는 것이다. 없기 때문에 있고, 있기 때문에 없다. 이 대상은 ‘그리고’를 매개로 사슬처럼 연결된다. “나를 사랑한다면~”이라는 요구는 특정한 대상을 받는 순간, 사랑의 추상성을 남긴다. 사랑은 충족할 수 없다. 마치 민족처럼. 그러므로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민족에 대한 사랑이지만, 그렇기에 충족되지 않는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만나지 못한다. 이 만나지 못하는 사정이 결과적으로 사랑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도 이런 민족이라는 숭고 대상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협상으로 이 숭고 대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기는커녕 대상을 향해 흐르는 욕망은 점점 더 강해진다. 정부는 일본 정부와 협상함으로써 ‘해결책’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숭고 대상에게 ‘해결책’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민족은 존재했고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때가 오면 이렇게 제거된 민족을 복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민족주의적인 도착의 본질이다. 이 믿음의 중심에 바로 ‘소녀상’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소녀상’은 평상시에 숨어 있다가 ‘위안부 문제’가 법정으로 가게 되자 눈앞에 나타났다. 아마도 ‘소녀상’ 건립 이후로 이렇게 많은 여론의 관심이 ‘소녀상’에 쏠린 적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해결책’에 포함시킴으로써 ‘소녀상’은 돌연 하나의 기념물을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소녀상’을 둘러싼 대립은 팽팽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는 이 ‘소녀상’이 ‘위안부’를 ‘소녀’로 표현했기 때문에 전형적인 민족주의의 통속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2008년 ‘촛불소녀’의 사례처럼,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소년’ 일반을 ‘소녀’로 묘사하는 환원주의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서 ‘소녀상’을 ‘촛불소녀’와 같은 형식논리로 파악하는 것은 무리수이다. 이번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논쟁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사실상 지금 쟁점은 ‘위안부’가 국가적인 기획이었는지, 아니면 국가의 법망을 피해 일어난 개인적인 범죄였는지, 아니면 국가의 기획에 개인이 강요된 자발성을 발휘한 결과였는지 밝히는 지점에 있다. 만일 ‘위안부’의 의미가 ‘소녀상’으로 재현되는 순진한 소녀가 아니라 일정하게 보수를 받고자 했던 성인 여성일 경우에, ‘위안부 문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국가적 범죄이든, 개인의 일탈이든, ‘위안부’에 성인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소녀상’은 사안을 왜곡하는 잘못된 상징물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지금 현재 ‘소녀상’ 철거라는 문제가 쟁점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소녀상’은 분명 판타지의 산물이긴 하지만, 바로 그 판타지의 왜곡 자체에 진리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거짓’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상징물이다. 이른바 ‘학문’은 이런 판타지를 제거하고 말 그대로 실증적인 데이터로 환원한 역사를 기술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할 것인지 고민하는 문제가 남는다. 말하자면, 역사는 가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녀상’의 상징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이른바 ‘학문’의 시도는 무모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박유하 교수와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 또는 ‘학문의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유는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자유가 다른 자유에 비해 우선적이라거나 으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모든 자유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자유의 개념은 종종 현실에서 충돌한다. 이번 ‘소녀상’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박유하 교수와 그 지지자들 역시 ‘소녀상’ 철거를 반대해야한다. 무한한 관용의 정신에 입각해서 보면, 이런 무차별적인 연대감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위안부’와 관련한 ‘소녀상’ 문제는 ‘촛불소녀’의 경우와 다르다. 그 이유는 이 ‘소녀상’은 ‘위안부’ 전체를 재현한다기보다, 거기에서 자행된 국가범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녀상’은 소녀의 ‘순수성’을 보여준다기보다, ‘보편성’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위안부’는 여성이었고, 거기에 끌려간 이들 중에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박유하 교수의 주장처럼 일시적으로 제국의 논리를 수용하고 때로 적극적으로 그 의무에 복무했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위안부’가 ‘소녀’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의 처지에서 종종 탈민족주의는 서구중심주의의 변종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말하자면, 민족주의는 ‘촌스러운 것’이고 탈민족주의는 ‘세련된 것’이라는 태도가 탈민족주의를 운위하는 사람들의 담론에 은연 중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태도는 우리가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하는 민족주의의 폐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효과를 낳는다. 민족주의를 ‘미개’로 간주하는 순간, 탈민족주의가 무의식적 인종주의로 전도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탈민족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파시즘적 전체주의’로 몰아붙이는 현상이 바로 이런 전도된 인종주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한국이나 아랍국가처럼 민족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저열한’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는 ‘미개한 집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학자 임마누엘 월러스타인도 지적하듯이, 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지 결코 ‘미개’의 산물이 아니다. 19세기 이래로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더불어, 역사적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해방적 담론’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동일하게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것을 추동하는 ‘혁명적’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한 ‘유토피아 담론’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재현’했던(또는 이데올로기적 판타지를 통해 통합시켰던) ‘국가’의 존재 덕분이었다.
이 국가는 말할 것도 없이 ‘민족-국가’이다. 이 혼연일체의 ‘민족-국가’가 이른바 세계화를 통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이다. 세계화란 것은 결국 역사적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한 뒤에 이루어진 전후 세계체제의 확대팽창이라고 볼 수 있다. ‘민족-국가’가 냉전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중요한 엔진으로 작동했다면, 세계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에게 ‘민족-국가’는 낡은 장애물일 뿐이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민족’이라는 숭고 대상을 제거한 국가장치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장치조차도 국민을 재현하는 정치기계가 아닌 오직 국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치안기계로서 필요할 따름이다.
‘소녀상’은 바로 이런 혼돈의 시대에 솟아오른 ‘민족’이라는 숭고 대상, 다시 말해서 민족주의의 잔여물이다. ‘소녀상’을 하나의 고철덩어리로 간주하고자 하는 현실주의는 얼핏 들으면 타당성을 가지지만, 이런 현실주의 역시 민족 없는 국가라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만들 내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상실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녀상’을 탈신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녀상’이라는 상징물이 필요한 민족을 21세기에 재구성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만이 섣부른 화해나 해결을 논하기에 앞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관점에서 재정위시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소녀상’은 그래서 여전히 부족하지만, 또한 그렇기에 충만한 이 시대의 상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