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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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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를 보여주는 오래된 미래이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보여준 그 혁명의 열기가 식은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영화가 <레오파드>인 것이다. 1963년도에 개봉한 영화와 2015년에 개봉한 영화가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전후 체제의 모든 것은 반복되었을 뿐,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레오파드>는 이 통찰을 선취하고 있는 영화이다.

물론 <레오파드>빈 체제라는 전후 체제이전을 다룬다. 이 영화는 <센소>와 더불어서 비스콘티의 필모그래피에서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작품에 속한다. ‘리소르지멘토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이르는 용어로서 1815년 나폴레옹 통치가 종결되고 오스트리아의 간섭이 노골화되자 일어난 정치운동을 일컫는다. 대체로 학자들은 보불전쟁이 끝나고 빈 체제가 확립된 시기를 리소르지멘토의 종료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개봉했을 때, 일부 좌파들은 자유분방한 쾌락의 해방을 긍정하고 탐미주의적이고 세기말적인 허무주의를 보여준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데카당하다고 비판했다. 물론 나는 이 영화의 정치성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이런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살리나 왕자는 데카당이라기보다 오히려 세계의 붕괴를 묵묵히 견디는 윤리적 주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그려지는 안젤리카와 왕자의 관계가 바로 이 사실을 방증한다. 이런 이유에서 당시 이탈리아 공산당을 이끌었던 팔미로 토글리아티는 공개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마치 19세기 내러티브 회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구성과 화려한 상류층 생활을 치밀하게 재현하고 있는 이 영화가 사실상 엄밀하게 기획된 정치적 텍스트라는 사실을 간파한 이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이른바 혁명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선동적인 작품보다도 오히려 타락한 부르주아 문학이 더 극적으로 진실을 드러낸다는 말을 했는데, 비스콘티는 의도적으로 이런 리얼리즘의 전략을 도입했다는 생각이다. 결국 루카치의 말은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엥겔스의 명제를 변주한 것으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이 고조되어가고 신사회운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정치의 출현이 가시화되던 1960년대에 많은 철학자들은 기존에 합의되어왔던 진실에 대한 재구성을 요구했다.

이런 관점에서 다분히 <레오파드>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비바 이탈리아>를 겨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로셀리니 역시 좌파 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표명해온 정치적 입장은 기독교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리소르지멘토에 대해 로셀리니의 <비바 이탈리아>는 시칠리아 병합 과정과 관련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긴 했지만, 가리발디를 영웅화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 이와 상당히 다른 입장을 <레오파드>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혁명이 어떻게 기존 체제로 흡수되는지 그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레오파드>는 명백하게 리소르지멘토에 대한 민족주의적 이상을 해체한다.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혁명을 이끈 부르주아 계급, 극중에서 중간계급으로 살리나 왕자의 입을 통해 명명되는 신흥계급은 결국 귀족체제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하위계급의 열망을 배반한다. ‘혁명을 염원했던 진보적 귀족청년 탄크레디는 엘리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가리발디 군대의 레드 셔츠를 벗고 국왕 군대의 제복으로 갈아입는다. 가리발디는 섬으로 유배되고, 그의 부하들은 처형당한다. 화려한 무도회의 장면은 이 모든 역사적 희생을 감추고 있는 거대한 환상의 스크린이다. 이렇게 <레오파드>가 재구성한 현실이야말로 안토니오 그람시가 변형주의(Transformismo)라고 부른 정치구조이다. 변형주의는 지배구조에 변화 없이 오직 의회 내 분파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표면적인 변화만을 지속하는 정치질서의 구성요소를 지칭한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살리나 왕자의 대사를 통해 변화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그람시의 문제의식을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파드>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투표 장면은 이런 그람시의 개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반대표가 분명 있었음에도 묵살되고 투표 결과는 기존의 왕 빅토르 엠마누엘을 존속시키는 입헌군주제에 대한 만장일치 찬성으로 수렴되어버린다. 아주 길게 이어지는 살리나 왕자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는 공공연하게 의회제도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있다.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살리나 왕자의 공언은 기성체제의 헤게모니를 쥔 존재로서 '혁명'을 안정화시키는 '신성동맹'의 재구성으로 이어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무도회의 장면은 바로 이 새로운 동맹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다.

무도회는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살리나 왕자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영화는 부르주아를 포섭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려는 살리나 왕자의 행보를 통해, 통일 이탈리아의 기초를 닦았다고 이상화되어 있는 '리소르지멘토'가 실제로 상층 엘리트의 이익조정과정에서 탄생한 것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폭로한다. 흥미롭게도 이 폭로는 자기 환멸적인 살리나 왕자의 시선으로 더욱 극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선은 귀족계급의 타락을 내포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실체를 폭로하는 거울상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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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카는 이런 부르주아 계급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최초로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한 만찬자리에서 안젤리카는 웃음을 참지 못해서 분위기를 깨트린다. “아름답지만 천박하기도 하다는 살리나 왕자의 평가는 '혁명이 피운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젤리카에 대한, 다시 말해서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이중의 시선을 의미한다. 안젤리카는 '혁명'을 통해 귀족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귀족이지만 진보주의자인 탄크레디와 천박하지만 아름다운 안젤리카의 관계는 귀족과 부르주아의 야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젤리카에 대한 살리나 왕자의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관계는 야합과 권모술수를 통해 탄생했지만, 타락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의 가능성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비록 지금 영원의 별은 사라졌지만, 미래의 가능성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탄크레디와 안젤리카가 숨바꼭질을 하는 버려진 도나푸가타 궁전의 내실들은 이런 가능성에 대한 상징이다.

분명 역사를 다루는 영화로서 <레오파드>는 이탈리아의 통일과 '빈 체제'라는 역사적 순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한 회고적 노스탤지어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무너지고 부서지는 파국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스콘티가 이 영화를 만들던 그 당대의 부르주아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사후에 출판된 <후기 스타일에 대하여>라는 비평집에서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원작 <레오파드>를 일컬어 후기 스타일의 수작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비스콘티는 이런 소설적인 주제의식을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1960년대의 상황으로 확장했던 것이다.

1960년대는 무엇인가. 바로 전후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1956년에 발생한 수에즈운하 위기와 헝가리 혁명 진압은 파시즘에 대항해서 싸웠던 서방세계와 소련의 대의를 각각 훼손시켰다.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은 사라졌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람페두사의 서사를 통해 비스콘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이 전후 체제에서 귀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기원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정황은 영화 곳곳에서 포착 가능한데, 특히 살리나 왕자가 토리노에서 온 피에몬테의 사신에게 상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담담하게 밝히는 장면에서 이 영화의 정치성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살리나 왕자는 효율적인 정부를 세우면 발전은 하겠지만, 그렇게 해봤자 200년 뒤에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정부를 통한 국가의 발전이 개인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않을 것이라는 1960년대적인 통찰이 삽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비스콘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이드가 말하듯이, 원작을 지배하는 파국의 미학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나의 판단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비스콘티는 사라진 빈 체제를 통해 당시에 호황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던 전후 체제역시 혁명을 배반한 엘리트의 야합을 통해 우연히 탄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생각이다. 살리나 왕자가 사라져갔듯이, 부르주아 계급 역시도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레오파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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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자유주의 fi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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