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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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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아예 대학원 비평수업의 소재를 제공하고자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 온갖 철학적 주제를 암시하는 상징과 알레고리로 잔뜩 치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주제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음향이나 시각효과에서 이 영화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할리우드 방식의 컴퓨터그래픽 영화를 넘어서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배우들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했을 액션의 리얼리즘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시대착오적이기에 훌륭한 성취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자기변명을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대사를 최소화하고 오직 감각의 효과로 정면 돌파를 감행하려는 감독의 의지가 확연하게 드러나서 흥미로웠다.

물론 내가 주목했던 것은 이런 영화적인 요소보다도,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희망과 구원이라는 다분히 관념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모탄이나 퓨리오사, 또는 스플렌디드 같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들도 예사롭지 않다. <장미 이야기><천로역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름 자체가 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중세 알레고리 문학의 장치를 여기에서 읽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런 까닭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 영화로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미래를 배경으로 차용한 중세적 판타지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세적인 요소는 종말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라는 혐의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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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전제하는 문제의식은 한 마디로 희망 없이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기이다. 이런 전제에서 이 영화는 묻는다. 종말의 시간에 무엇이 희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임모탄과 퓨리오사는 이 질문을 중심으로 대척점에 놓여 있다. 이들은 희망을 대신하기 위해 구원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사령관퓨리오사가 구원을 위해 임모탄의 아내들을 어머니의 땅으로 인도한다면, 임모탄은 종교적인 구원을 워보이들에게 약속함으로써 충성을 이끌어낸다. 퓨리오사에게 구원어머니의 땅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버지로 불리는 임모탄과 반대에 선다. 임모탄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한다면, 임모탄은 모든 쾌락을 독점하는 원초적 아버지에 대한 암시이다. 물론 이 원초적 아버지는 평등한 쾌락의 민주주의를 위해 제거되어야하고, 퓨리오사와 맥스는 이를 실행하는 주체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문명의 서막에 대한 신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형식 내적인 논리를 기술하는 것에 가깝다.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이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내포한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이 영화는 국가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원래 <매드 맥스> 전편들은 국가의 부재 상황을 전제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이야기했던 늑대들의 정글이 바로 <매드 맥스>의 무대였다. 전직 경찰 맥스는 치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체제의 붕괴를 상징했다. 그러나 이번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전편과 사뭇 다르게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국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국가는 석유와 무기, 그리고 물이라는 희소적인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세 권력의 위계를 통해 구성되어 있다.

이 위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구원이라는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임모탄의 국가는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혈연적인 체제로서 전근대적인 종교국가를 암시한다. 이에 대조적으로 임모탄에 대항하는 퓨리오사는 근대적인 개인을 표상한다.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이 근대적인 개인은 여전히 희망을 품은 스플렌디드와 함께 임모탄의 국가를 탈주하지만, 또 다른 구원으로 굳게 믿었던 어머니의 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다. 남은 길은 160일 동안 소금 사막을 달리다가 절명하는 것. 하지만 이들을 설득해서 다시 국가로 돌아가게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맥스인 것이고 이런 전개를 통해 영화는 극적으로 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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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는 임모탄의 국가에 속하지만 그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과잉이다. 그는 납치되어온 이방인이었지만, ‘전쟁기계를 모는 사령관의 지위까지 올라간 여성이다. 상실된 그의 팔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을 퓨리오사의 정체성을 상징하지만, 또한 그렇기에 그는 재생산으로 표상되는 임모탄의 아내들과 다른 존재이다. 절단된 그의 팔은 사령관이라는 남성의 기표를 위해 잘려나간, 허락받지 못하고 금지된 여성의 욕망, 다시 말해서 그로 하여금 어머니의 땅을 찾아 떠나게 만드는 그 분노의 원천이다.

이 영화가 혁명에 대한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혁명의 모습은 군중 없는 정치이다. 국가의 무장인 전쟁기계를 탈취해서 국가를 전복시키는 퓨리오사가 60년대적인 게릴라 전사라면, 맥스는 보헤미안 혁명가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체 게바라처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뒤에 그는 떠난다. 맥스는 절단된 퓨리오사의 팔과 같은 잔여물이다. 그는 결코 국가로 수렴되지 않는다. 맥스는 이런 의미에서 '전쟁기계' 퓨리오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전쟁기계는 국가에 속하지만 국가가 포섭할 수 없는 힘이다. 전쟁기계의 사령관이 여성으로 설정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이런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혁명의 문제는 여전히 더 나은 엘리트 집단이 군중을 계도하는 것이고, 이익집단들 사이의 충돌을 더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혁명에 대한 자유주의적 환상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군중은 기형적이고 우매한 떼거리’(mob)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분명 혁명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 주체는 군중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가 정치에 대한 태도에서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군중의 일반의지가 혁명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가 결코 이해관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진리를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맥스가 죽어가는 퓨리오사에게 피를 나눠주는 우애야말로 이런 정치의 실체를 우회적으로 증명하는 것일 테다. 물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이야말로 지금 현재 그 시절의 혁명이 어디에 멈춰 있는지를 명확하게 증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댓글 '3'

d

2015.05.29 14:47:33

퓨리오사의 팔에 대해서 극중 인물 누구도 물어보지 않고 물론 영화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보여주지도 않는데, 그 팔에 대해 무려 그런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시다니!

노바리

2015.05.29 15:47:53

말씀하신 대로 영화에서 그 팔에 대해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이, 해석이 자유롭게 침범할 수 있는 틈과 여지를 주는 것 아닐까요? 그 팔은 이전의 어느 전투 중 부상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스스로 자른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타델 안에서 전투 외 다른 상황에서의 사고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퓨리오사는 그를 보조하면서 한편으로 특정상황에서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기계 팔을 장착하고 있고, 이 의수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가능할 겁니다.
다만 이런 해석이나 의미 부여에 최소한의 개연성이 있어야겠죠. 영화에서 시타델 '윗쪽' 내부에서는 출산(육체적 아름다움의 유전자를 전제한 성 노예로서의 가임 여성과 이를 돕는), 그리고 대량의 모유 생산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여성만이 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형 전투트럭(영화에서는 워-릭이라고 하던가요)을 모는 전투 사령관인 퓨리오사는 시타델 체제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상관없는, 시타델 내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존재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저도 이택광 선생님의 해석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허은희

2015.06.17 20:43:51

안녕하세요. 저도 정치외교 학도로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다 큰 그림으로 전문적으로 짚어 주셔서 감탄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제 글도 읽어 주시고 멘트 달아 주시면 감사할게요^^*!
http://m.blog.naver.com/dmsgml2320/22038399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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